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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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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15 10:5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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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43
추천수 :
1,041
글자수 :
202,511

작성
24.05.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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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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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2쪽

15화. 연출부 (4)

DUMMY

“아들, 수능 공부해?”


공모전을 알아보는데, 까치발을 한 엄마가 살금살금 다가왔다.

우리 집은 방과 주방이 분리되지 않은 원룸이다. 서로가 뭐를 하는지 뻔히 보이기에 내가 책을 펴면 엄마의 행동은 조심스러워진다.

편하게 생활하라고 해도 ‘자식의 성적표는 부모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학원에는 못 보내줄망정 방해하고 싶지 않단다. 수능 볼 때까지 조용조용 지낼 거란다.


“빨래하러 갈 건데, 옷 있어?”


저번달에 옆집 미숙 아줌마가 세탁기를 샀다. 감사하게도 엄마에게 하루에 한 번 빌려준다. 손빨래에서 벗어난 엄마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빨래를 양껏 모아서 가져간다.


“촬영장에서 입었던 옷 있어요. 잠깐만요.”


아, 그리고-.


“엄마, 이것도 있어요.”


주섬주섬,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냈다. 엄마가 립스틱을 받고 좋아했다는 말에 두식이 형이 자기가 받은 걸 줬다. 두식이 형의 엄마는 애용하는 브랜드가 따로 있어서 선물해도 사용하지 않는단다.


“어머! 이 좋은 걸 또 받아왔어?”

“미숙이 아줌마가 엄마 입술 보고 예쁘다고 했다며?"

“생기가 돋는 게 십 년은 젊어 보인다고 하더라.”

"세탁기 빌려주셔서 감사하다며 드릴까요?”

“언니 주면 좋아서 덩실덩실 춤추겠는데?”


호호호호호호-.

새초롬한 엄마의 웃음에 기분이 좋아진다.


“일한아, 이 립스틱 백화점에서만 파는 거래.”


누가 들을까, 비밀스럽게 말하는 엄마를 보고 끄덕였다. 신애리가 광고하는 제품은 모두 명품이니까, 당연히 그럴 거로 생각했다.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에 새삼 우리가 가난하구나. 느껴진다.


‘엄마, 세트장에 가니까. 브랜드 아닌 옷은 나만 입었더라.’


다들 집에 세탁기랑 의류 건조기가 있대. 그들이 우리 집을 보면 낯설어하겠지? 근데, 그거 알아요?


‘우리 동네는 다 이렇게 살아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너무 다른 풍경이다.


“엄마, 이것도 세탁기 돌려줘요.”


가방에서 연갈색 운동복 세트를 꺼냈다. 협찬사에서 스태프 단체복으로 선물했는데, 브랜드가 자그마치 나이스 한 나익키다.


“어머, 비싼 옷이네. 이건 손빨래해야겠다.”

“그러지 마. 현장에서 이미 몇 번 세탁기 돌린 거라 그냥 돌려도 돼요.”

“좋은 옷은 관리해서 오래오래 입어야지. 상하면 속상해.”

“괜찮다니까요. 적당히 낡아야 빈티지 느낌이 나서 멋있다고 했어.”

“그래?”


엄마가 운동복을 들어서 내 등에 툭 올린다.


“우리 아들은 이런 색도 잘 어울리네.”

“노란색도 어울려요.”

“뭔들 안 예쁠까.”


엄마가 웃는다.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요즘 자주 웃는다.


“일한아, 사람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바뀐다더라. 그 말이 맞나 봐. 내가 너를 만나서 감사한 일이 많아졌거든. 너는 영화 하는 사람을 만나서 꽃이 피는 것 같아.”

“내가 폈어요?”

“그럼, 폈지. 좋은 것 먹어서 피부 때깔도 좋아지고, 멋 부려서 환해졌잖아.”

“그건 엄마가 웃어서야.”


자세를 고쳐 엄마를 마주 봤다.


“나는 엄마 덕분에 환해진 거예요.”


아빠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엄마를 또렷이 기억한다. 식장에 허겁지겁 들어온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보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짓더니 와락 끌어안았다.


- 아줌마, 제가요. 열 밤 넘게 씻지 못해서 냄새가 많이 나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아줌마는 머리부터 등까지 한참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제공한 밥을 먹였다. 주춤대는 나를 옆에 앉혀놓고 숟가락으로 한술 한술 퍼서 입에 넣어주더라.

챙겨주는 이가 없어서 이틀 만에 먹는 밥이었다. 꼭꼭 씹어 먹으라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라고. 물 잔이 비워지지 않도록 채워주더니 자기가 엄마라고 했다.

아빠랑 계속 살았다면, 오늘 같은 행복은 없었겠지.


“엄마, 고마워요.”


말하기 무섭게 엄마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힝-.”

“아이고, 또 운다!”

“엄마가 잘해줄게. 매일매일 잘해줄게.”

“충분해요.”

“이제 시작이야.”

“내가 할 말을 엄마가 하면 어떡해?”

“힝-.”

“힝힝 거리지 말고 빨리 옆집에 다녀와요.”


빨랫감을 챙겨 든 엄마는 힐끔 내 노트북을 봤다. 복지관에서 후원 들어온 제품을 받아서 6년째 잘 쓰는 중이다.


“무슨 공부를 하길래, 온통 영화 이야기야?”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해 볼까 하는데······.”


쑥스럽네.


“경쟁률이 높다고 해서 고민 중이에요.”


쭈뼛대는 내 옆에 엄마가 주저앉았다.


“아이고- 너만 한 이야기꾼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기똥차게 쓸 거다. 합격! 무조건 합격!”

“내가 이야기꾼이야?”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말수가 줄었지. 그전까지 밤마다 네가 하는 말 듣느라 귀에서 피나는 줄 알았어. 근데 그게 또 재미있어서 끊지를 못했잖아.”


큽!

엄마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입을 틀어막고 큽큽 웃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일하러 가면 조용히 지냈거든. 근데 네 덕에 친구가 생겼어.”

“나 때문에?”


후후 웃더니, 엄마가 나를 토닥였다.


“너는 참 신기한 애였어. 엄마 이거 봤어요? 하면서 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하는데···. 분명히 나도 아는 이야기거든? 근데 네가 하면 새롭게 들려. 이 사람은 이래서 그랬을 거 같아요. 하면서 풀어내는 말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어.”


처음 듣는 말이다.


“뭐랄까, 인물에 폭 빠져서 심금을 울리게 말해줬지.”

“어린애가 무슨 심금을 울려요.”

“진짜야! 내가 그때 너한테 들었던 말을 기억했다가, 그대로 일하는 곳에서 했다니까. 반응이 대단했어.”

“인기쟁이 됐겠네?”

“됐지! 됐고 말고!”


또 엄마가 웃는다.


“일한아, 말 잘하는 애들이 글도 잘 쓴대. 우리 아들이 쓴 글은 정말 대단할 거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진짜야!”


엄마의 응원이 더해지자, 정말 잘해보고 싶다.


시나리오를 써본 적 없는 내가 시나리오 공모전의 우승을 노리려면 방법은 하나다. 주최측의 의도를 파악하여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는 것.

지금껏 어떤 작품이 ‘대한민국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했을까? 10년간의 기록을 찾아봤다. 아쉽게도 수상작 전체가 아닌, 영화로 제작된 작품만 시나리오가 공개되었다.


‘참고할 만한 시나리오가 적네.’


어허!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자료가 있다는 게 어디야.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면 돼!


연도별로 심사를 맡은 사람과 제작된 영화의 목록을 정리했다. 그해에 누가 심사를 했느냐에 따라서 수상작의 성향이 달라졌다.

이제부터 심사위원과 수상작의 연관성을 찾아내야 한다.

오래간만에 두뇌를 풀가동 시켜볼까?


‘10년간 열일곱 명의 심사위원이 돌아가며 심사를 봤어.’


이들 중에 올해의 심사위원은 누굴까? 인물별로 작품을 고르는 특징을 미리 분석해 놓자. 그리고 공모전 일정과 함께 심사위원 명단이 뜨면 그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쓰는 거지.


‘여기서 주의할 점!’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심사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이건 된다.’ 확신하고 제작에 들어간 시나리오는 열 편이다. 이 영화들이 모두 흥행했느냐? 노!

흥행작은 한편뿐이다. 두 편은 겨우 손익 분기점을 넘겼고 일곱 편은 망했다. 시나리오 고르는 눈이 형편없다는 평을 받을만한 성과다.

나름 영화판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심사위원이 되었을 텐데, 결과에 만족했을까? 아닐 거다.

자존심 상했겠지. 보란 듯이 다음 해에는 대박 터트릴 작품을 뽑고 싶었을 거야. 근데 그게 안되고, 또 안되고 안된 거지.


‘만년 2등인 기태처럼.’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 김기태.

내가 전교 1등을 유지하는 바람에 기태는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전교 2등을 했다. 친분이 없어서 어떤 놈인지 몰랐는데, 어느 날 함께 공부하자고 찾아왔다.


- 일한아, 어떻게 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냐?


기태의 목표는 전교 1등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이전 성적을 뛰어넘는데 집중했다.


- 내가 공부하는 자료가 이건데. 뭐가 부족한지 한번 봐줄래?


스스럼없이 자신의 공부 방법을 공개했다. 인터넷 강의 자료부터 과외 선생이 쏙쏙 뽑아준 문제를 보여주며 필요하면 같이 보자고 권하기까지 했다.


- 기태야, 네가 준 자료를 보고 내가 또 전교 1등 하면 어떡하려고?

- 그건 축하할 일이지. 난 내 성적만 오르면 돼.


기태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깎아내리지 않는 멋진 놈이었다. 녀석이 챙겨준 자료로 공부하며, 녀석의 틀린 문제를 봐줬다.


- 나는 이렇게 풀어.

- 미친, 유일한. 이걸 그렇게 접근한다고?


감탄하는 녀석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반년 남짓 같이 공부하고 나는 자퇴를 했다. 이후 녀석이 쭉 전교 1등이었다고 들었는데···. 포기할 줄 모르더니 결국 다음 해에 수능 만점자로 뉴스에 나왔다.

심사위원도 기태 같지 않을까?


‘다음번에는 이번보다 더 나은 시나리오를 선정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헛다리 짚는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게 뭘까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른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와 같은 고민을 했다면?'


다른 전문가는 누굴까? 영화 비평가가 아닐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흥행에 실패한 작품을 비평가가 어떻게 해석했나 보고, 이를 심사위원이 다음 해에 반영했는지 따져보는 거야.


'그랬다면?'


심사위원의 성향에 맞으면서, 비평가가 꼬집은 부분을 제거한 글을 쓰는 거지.





***




“내놔!”


신애리가 <개천에 뜨는 별> 쫑파티에 와서는 내내 귀찮게 한다.


“시나리오 다 썼다며. 왜 안 보여주는 건데?”

“정보 유출 금지, 몰라요?”

“내가 베끼기라도 할까 봐?”


어이없어하는 신애리의 표정이 웃겨서 똑같이 따라지었다.


“어쭈?”


언젠가부터 신애리는 나한테 반말이다. 그게 싫지 않아서 나도 막 나가는 중이다.


“일한아, 시나리오는 여러 사람한테 보여주고 의견을 수렴해서 수정해야 해.”

“엄마 보여줬어요. 재미있대요.”

“그 재미난 글이 나도 보고 싶다고!”


신애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글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이 달라붙었다.


“네가 나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 대표 감독 작품은 대부분 나한테 왔다가 갔어. 그 대단한 시나리오를 다 읽어본 내가 눈이 얼마나 높겠어? 그러니까 제출하기 전에 보여주고 평가를 받으라 이거야.”


까딱까딱, 나는 신애리 보고 다가오란 손짓을 했다. 오란다고 온다. 얼굴이 십 센티미터까지 가까워졌을 때 조용히 말했다.


“그런 사람이 <개천에 뜨는 별>을 선택했어요?”

“이게!”


눈을 동그랗게 뜬 신애리 뒤로 장도연이 다가왔다. 티키타카 분위기 좋은 우리 틈에 끼어보려는지 가운데에 비집고 들어왔다.


“신애리 님, 저랑도 한잔하시죠?”

“저는 술 안 마셔요.”


자리를 피하고 싶은지 슥- 일어나던 신애리가 내 옷깃을 당겼다.


“차로 와. 나 너랑 할 말 남았어.”


멀어지는 신애리를 보며 마지못해 일어나려는데 장도연이 젓가락으로 내 밥그릇을 '탁' 쳤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서 장도연을 봤다.


“너도 시나리오 공모전 준비한다며?”

“네.”

“될 거 같아?”

“해봐야죠.”

“시나리오 써 본 적 없다며? 근데 왜?”

“조건이 되니까요.”

“동네방네 소문내고 떨어지면 쪽팔릴텐데.”

“국제 영화제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덜 쪽팔릴거 같은데요.”


이런. 속으로 말한다는 게 소리내 버렸다.

자기한테 한 말인 걸 알아차린 장도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성질을 긁었나 보다.


"일한아, 나 장도연이야."


자기소개 시간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유일한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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