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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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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15 10:5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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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08
추천수 :
1,066
글자수 :
202,511

작성
24.05.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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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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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12쪽

19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4)

DUMMY

‘누구세요?’


눈앞의 남자를 봤다.

단순 스태프구나.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연륜이 예사롭지 않다. 적잖이 보이는 흰 머리카락, 오랜 세월 길든듯한 2 대 8 가리마, 눈 주변의 자글자글한 주름.


‘적어도 육십 대 이상인데······.’


대표란 직급이 어울릴듯한 어르신이 내 앞의 의자를 만지작거렸다.


“자리가 비었으면 제가 앉아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기 뻘쭘하던 차였다. 어르신은 평소에 웃는 얼굴이 아닌지,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으심에도 날카로운 눈매가 가려지지 않았다.

시나리오 공모전 측에서 식당을 통째로 빌렸다고 했다. 제작사 사람과 수상자가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판이 없는 한정식 코스 요리를 준비했고······!


‘비싸서 인원수에 맞게 주문한다며, 명단을 확보해갔어.’


초대된 사람만 들어오는 자리. 다음 주에 열리는 프레젠테이션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팁을 주고받는 시간.

여기에 있다는 건, 이 사람도 공모전 관계자라는 거다.


‘제작사 사람이면 잘 보여야 해!’


맞을까? 아닐까?

나는 기억력이 좋다. 시상식에 입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스치는 모든 사람을 외웠다. 대화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오다가다 들리는 말속에서 주요 정보도 수집했다. 직분, 이름, 인맥 등. 그 어디에도 이 남자는 없었다.


‘수상하느라 정신없을 때 놓친 외부 인사는 아닐까?’


신애리가 챙겨준 자료와 따로 검색한 정보를 머릿속에 띄워봐도 이 사람을 연상케 하는 인물은 없다. 답답하네.

어르신은 또다시 나를 향해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지각한 탓에 시상식을 못 갔어요. <칙칙폭폭> 작가님이 수상할 때 박수 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놓쳤네요.”


빈말이라 생각하고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어르신이 손을 내민다. 악수하자고요? 엉덩이를 살짝 들고일어나 냉큼 손을 잡았다.


“입상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따스한 말투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손을 맞잡은 어르신은 쉬이 놓지 않고 서너 번 흔들었다.


‘찐으로..... 축하해 주는 건가 봐.’


기쁘다.

시상식장에 따라오겠다는 엄마와 두식이 형을 떼어놓고 왔다. 신애리의 말처럼, 수상자의 이름이 호명될 때 지인들이 환호하고, 꽃다발 주고, 사진 찍는 축제 분위기라면-. 내가 호명될 때 엄마와 두식이 형이 ‘우리도 저들처럼 해야 하나?’ 부담을 느끼게 될까 봐, 애쓰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오지 말라고 했다.

지지 마! 맞서 싸워!

응원전을 벌이는 자리가 아님에도, 머릿수에 밀려서 소심해질 테니까.


‘아니지. 두식이 형은 승부욕 돋는다며 혼자서 열 명분의 함성을 질렀을 거야.’


그것도 볼만했겠는데?

크크크크 어쨌든.

혼자서 씩씩하게 이 시간을 버티려 했다. 진행자가 ‘<칙칙폭폭>의 유일한!’하고 호명할 때까지 당당했다. 내가 일어나는 순간 적막이 쫙- 깔리는데···. 그때 좀 무너졌다.

다른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나는 보란 듯이 열심히 환호했기에, 품앗이처럼 저들도 내게 그렇게 해주지 않을까? 바랐건만 섭섭하게 조용했다.


‘그때 어르신이 박수를 쳐줬으면 울컥했을 거예요.’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치던 어르신은, 자기 뒤로 조금 떨어진 곳의 무리를 봤다. 수상자와 제작자 그리고 공모전 관계자가 명함을 주고받는다. 그들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작가님. 다들 저쪽에 있는데 어째 혼자 여기에 있습니까?”

“힘 빼고 싶지 않아서요.”

“기회를 잡으라고 제공한 자리인데, 부딪혀 봐야죠.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정보를 얻지 못하잖아요. 보아하니 저곳에 몇 자리 빕니다. 이제라도 옮기는 게 낫지 않겠어요?”

“괜찮습니다.”


생각이 있거든요.

나는 일부러 저들을 관찰하기 좋은 구석에 앉았다.

다음 주에 있을 프레젠테이션이 본 게임이라면, 오늘은 그날을 준비하는 리허설이다. 검색으로 알 수 없었던 발표자와 심사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누가 어느 작품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영화사에 들어가고자 하는지 욕구도 드러나겠지.

저 안에 있으면 북적거림에 휩쓸려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봐야 할 때다.’


학교에서 토론 수업을 할 때, 먼저 발표하는 애들이 불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패를 까면 다음 주자가 그 패를 보고 틈을 비집고 공격하거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까지는 아니어도 유리하다. 저들의 계획을 엿듣기에 이 자리가 적당하다.

식당 직원이 전복죽과 샐러드가 담긴 카트를 끌고 왔다.


“손님, 일행이 더 있을까요?”


직원의 말에 어르신이 나를 보고 눈을 찡긋거렸다.


“어쩔까요? 제작자가 올 수도 있으니까, 세팅해 놓는 게 낫겠죠?”

“아니요, 괜찮으시면 저랑 둘이서 식사하실래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어르신의 동의하에 2인상이 차려졌다.


“간이 슴슴하니 괜찮네요.”


음식에 대한 평을 가끔 할 뿐, 어르신은 딱히 내게 질문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떡갈비, 보쌈, 불고기, 갈치구이······!

조용히 음식을 즐기며 건너편 대화를 엿들었다.


“피디님, 제 잔도 받아 주세요!”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서 술을 시키는 작가도 있고-.


“피디님, 저도 한국대학교 경제학과 나왔습니다.”

“후배셨네. 이쪽에서 동문 만나기 어려운데 반가워요.”


인맥을 드러내는 작가도 있고.


“제가 이것 말고도 가진 시나리오가 세 편 더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어요.”


원 플러스 원 행사처럼 시나리오를 홍보하는 작가까지-. 다양한 대화 속에서, 제작자의 시선이 2등 작가와 5등 작가에게 몰린다.


‘저기서 계약작이 나오겠는데?’


시나리오 공모전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 수상작 한편은 무조건 제작한다. 그 티켓을 얻기 위한 수상자들의 노력이 뜨겁다.

짠짠짠,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더해지며, 호탕한 웃음이 여기저기 터진다.


“아침 거르고 왔어요?”


냅킨으로 입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한 어르신이 새 냅킨을 꺼내서 건넸다.


“오른쪽 입술 옆에 양념이 묻었어요.”


닦아내는 나를 보며 어르신은 흐뭇하게 웃더니, 물로 입을 헹궜다.


“먹느라 인사가 늦었죠? 저는 ‘날밤 영화사’의 피디입니다.”

“네- 엑?”


순간 건너편 테이블을 봤다. 훤칠한 삼십 대 남자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질문 공세에 정신없다.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저 사람이 날밤 영화사 관계자다.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어르신이, 남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저 사람은 ‘날밤 영화사’에서 심사자로 뽑혀 온 선배 피디고, 저는 신입 피디입니다. 막내예요.”


막..... 내?

잘못 들었을까?


“1년 차 피디입니다.”


맞게 들었구나!


“작년에 입사하신 거예요?”

“네, 제 나이 육십하고도 일곱에 재취업이 되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와.....!


“축하드립니다.”

“하하하하하하- 고맙습니다.”

“꽃길만 걸으시길 바랄게요.”


뭐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엄지척을 들어 올렸다.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막내끼리 짠 한번 할까요?”


어르신이 물 잔을 들었다.


“선배한테 혼날 수 있으니까, 조용조용히-.”


소곤대는 게 웃겨서 나도 킥킥대며 물 잔을 들었다.


“막내의 꽃길을 위하여!”

“위하여!”


틱, 소심하게 부딪히는 잔소리에 픽, 웃음이 났다.


“신입 피디님도 심사자로 오신 거예요?”

“밥 먹으러 왔습니다. 결혼식장에 따라가면 호텔 밥을 먹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선배 피디가 여기에 오면 좋은 거 먹는다면서 명단에 이름을 올려줬어요.”


어르신이 젓가락으로 광어회 한점을 떠서 입에 넣었다.


“아주 좋네요.”


따라서 나도 한 점 먹었다. 음-.


“너무 맛있어요.”

“하하하하하하-. 작가님. 프레젠테이션 준비하느라 바쁘시죠?”


훅 들어온 질문에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혹시, 여기서 나누는 대화가 심사에 반영된다던데, 저한테 지금 그거 하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공모전과 상관없이 <칙칙폭폭>을 흥미롭게 본 팬으로서 묻는 겁니다.”

“에이-. 이래놓고 여기서 하는 말을 선배 피디한테 전하면 곤란해요.”

“하늘 같은 선배랑 말 섞을 짬이 안됩니다.”


쉬운 사회생활이 있겠냐마는....!

자식 뻘에게 혼나는 신입 사원이라니, 짠하다.


“제가 피디는 1년 차지만, 이전 회사에서 영업담당으로 정년퇴직까지 한 사람이라, 사람 마음을 흔드는 데는 도가 텄습니다. 프레젠테이션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세요.”


그건 괜찮고요. 다른게 궁금한데 말이죠.


“<칙칙폭폭>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제 또래가 쓴 글인가 싶게 구수했습니다.”

“칭찬···.입니까?”

“그럼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은 어르신은 흐트러짐 없이 말했다.


“스무 살 청년이 칠순을 앞둔 사람을 감동케 하는 글을 쓴다는 건, 보통 능력이 아닙니다. 살아온 세월이 달라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포인트를 안다는 거죠. 이 점을 장점으로 소개해도 좋겠네요.”

“감동을 주면 안 되는 글인데요.”


내 말에 어르신의 눈이 커졌다.


“감동을 주면 안 된다니요? 친구를 폭력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열세 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무모한 도전, 뜨거운 열정 모두 감동이었습니다. 서울에 가서 동구를 괴롭히는 녀석을 혼쭐 내줄 때의 시원함, 동구 아버지를 신고하고 도움을 청할 때의 똘똘함. 다 감동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동구의 입장이 되지 못했다는 거예요. 제 글의 한계인 거죠.”

“동구가 왜요?”

“결국, 동구의 엄마는 도망갔고 아빠는 분리조치가 되면서 곁에 남은 가족이 없잖아요. 예전에 살았던 동네로 돌아가지만, 거긴···. 자신이 아빠에게 학대당할 때 방관하던 어른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아픔이 떠오르는 곳이죠. <칙칙폭폭>은 현실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결말이에요.”

“근데 왜 쓴 겁니까?”


학대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꿈을 꿨으면 좋겠다. 나도 이렇게 달려와 줄 친구가 있다면 좋겠다. 그 생각에 단잠을 잤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위로를 바라고 쓴 글이다.


“학대받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해방감입니다. 동구와 닮은 삶을 사는 아이가 있다면, 이 영화를 보는 만큼 함께 도망치는 기분이 들었으면 했습니다. 잠시나마 현실을 탈출해 보는거죠.”

“그러려면 어떻게 연출해야 할까요?”

“다큐멘터리인가? 싶을 만큼 현실적으로 영화를 보여주다가, 친구들이 동구를 구하기 위해서 기차는 타는 순간 판타지구나? 싶도록 아름답게 담고 싶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요. 폭행을 당하는 아이의 꿈인 것처럼- 어딘가에서 네 친구가 너에게 달려가는 중이야. 속삭이듯이.”

“단꿈을 주고 싶었던 거네요.”

“네, 잠깐 덜 아파보자는 거였죠.”

“이 영화, 보고 싶네요.”


우당탕탕-. 건너편에서 누군가 거칠게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실장님!”


시나리오 공모전 위원장이 성큼성큼 우리 쪽으로 왔다.


“썬앤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어찌한 일로!”

“나 거기 작년에 퇴임했어요.”

“기사 없었는데요?”


굽신대는 위원장을 보고 어르신은 눈도 끔뻑 안한다.


“조용히 정리하고 싶어서 몰래 나왔어요. 지금은 날밤에 취직했으니까 예전 회사는 말하지 마세요.”

“날밤 영화사에 취업이라니요?”

“아니아니, 지금 신입 사원이 공짜밥 먹으러 온 상황이니까. 방해 말고 조용히 가세요.”

“강철수 실장님이 오셨는데, 제가 어찌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까.”

“가라고 쫌!”


파리 쫓듯이 어르신이 손을 휘저었다. 위원장은 멀어지면서도 미소를 잊지 않았다.


“저랑 한잔하고 가셔야 합니다-. 오늘 컨셉 이상하게 잡으셨네.”

“조용하라고-.”


술렁, 다들 우리를 바라본다. 정확히는 어르신과 밥을 먹는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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