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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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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15 10:5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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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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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
글자수 :
202,511

작성
24.05.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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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연출부 대타 (1)

DUMMY

전달받은 주소대로 찾아왔는데 문에 ‘영화사’라는 표시가 없다. 혹여나 엉뚱한 곳에 온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열린 문틈으로 안을 봤다.

스무여 명 남짓이 일하고 있다. 가까운 파티션에 A4 종이로 붙여놓은 ‘미술팀’이란 글자가 보인다.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여기가 영화 <개천에 뜨는 별> 사무실인가요?”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이 나를 힐끔 보고는 다시 하던 일을 한다. 분명히 눈을 마주쳤는데 모른 척이다. 누구라도 관심을 주면 좋겠는데······.


“유일한 씨죠?”


사무실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앉은 남자가 손을 들었다. 자세히 보니까 거기에는 ‘연출부’란 글자가 붙어있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안심하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다들 나를 보고 피식- 피식 웃는다.

뭐지?

차갑던 표정은 사라지고 온화하게 미소를 짓는다. 돌변한 모습에 당황스럽다.


“연출부 지원 오신 거예요?”


미술팀에 앉아서 나를 냉랭하게 쳐다보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두꺼운 갈색 플라스틱 안경에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이 비범하다.


“젊은 분이길래, 팬이 온 줄 알고 경계했어요.”


팬? 이건 무슨 말일까? 알아듣지 못해서 멀뚱멀뚱 쳐다봤다.


“캐스팅 확정 기사 나간 후에 배우한테 편지며 선물 전해달라고 오는 팬이 부쩍 늘었어요. 웃으면서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이 몰려드니까, 다들 선을 긋는 거예요. 여기는 직장이니까 연락 없이 찾아오지 말아라, 분위기로 제압하는 거죠.”

“아······. 네.”

“반가워요. 미술팀 김정복이에요.”

“반갑습니다, 유일한입니다.”

“희연이가 자기 대타 온다고 잘해주라 더니, 그분인가 보다.”


집안에 일이 생겨서 급히 일주일간 휴가 냈다는 사람이, 희연인가 보다.


“얼마나 일해요?”

“오늘부터 금요일까지라고 들었습니다.”

“수고하시겠네요. 잘 지내봅시다.”


덕담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올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일을 추천해 준 석중이 형이 그랬다. 영화 연출부는 겉보기에는 번지르르하지만, 막상 해보면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투성이라고.

특히 막내는 정해진 일이 없어서 주는 일은 다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제시간에 못 먹고, 못 자고, 못 쉬고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했나, 후회만 남는단다.

그런데도 할 생각이 있느냐,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적었다.

운전면허가 없어서 대리운전이나 택배도 안 되고, 사무직은 학력이 부족해서 잘리고.

그나마 감사하게 했던 일이 새벽에 나가 건축현장에 불려가거나, 대형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하나같이 삶이 버거웠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갔다.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어른의 입에서 누구의 삶이 더 고단한가 시합하듯이 씁쓸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 그 영화 봤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꺼내면 분위기가 밝아졌다. 집에서 웹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여유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영화란 심심풀이 땅콩이 아닌, 귀한 쉬는 날을 온전히 들여 즐겨야 하는 낭만 있는 이벤트였다.


- 맞선 볼 때, 그 영화를 봤잖여.


누군가 화끈한 말을 꺼내면 다들 화색이 되어 모여들었다.


- 어땠어요?

- 여자를 신경 쓰느라 영화 내용은 기억이 안 나.


신나게 웃어 젖혔다.

영화와 묶인 일상은 대체로 밝았다. 이혼한 이후로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는 엄마를 모시고 갔을 때도 그랬다. 시작부터 웃겨 쓰러진다는 코미디 영화였는데 엄마는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일어날 때까지 울었다.

끌어안은 팝콘을 먹지 못한 채 그대로 들고나오는 엄마에게 ‘영화를 보긴 했어요?’라고 물었더니. 태어나서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재미가 아닌 행복을 주는 곳.

영화보다 함께 한 사람을 떠올리는 곳.

극장은 그런 곳이었다.


나도 남에게 저런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사치스러운 바람이 조금 생길 때쯤, 영화 연출부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 쉴 때랑 일정이 겹쳐서 망설임 없이 한다고 했다.


“반가워요. 저는 연출부 세컨드 박두식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일한입니다.”


박두식은 내게 손짓하던 손으로 한자리를 지목했다.


“여기가 일한 씨 자리예요.”

“감사합니다.”


알려준 자리에 앉자, 박두식은 자신의 의자를 끌어다 옆으로 왔다.


“이력서 가져왔죠? 사전에 받았어야 했는데 석중이가 아무나 소개할 녀석이 아니라서 믿고 진행했어요.”


그는 내 앞에서 이력서를 확인했다. 학력란에 고등학교 자퇴라고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닌 거 같아서 비워뒀는데, 트집 잡히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박두식은 별말 없이 다음 장으로 넘겼다.


“운전면허 취득도 했고, 엑셀, 한글, 워드도 잘한다고 되어있네요. 좋네요.”

“감사합니다.”

“스무 살이면 대학생?”

“아직······.”

“재수생이구나? 나도 재수해서 대학 갔어.”


박두식은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그리고 내 자리의 컴퓨터를 켰다.


“뒤는 감독님 방, 옆은 피디님 방. 두 분 다 외출했어. 오시면 인사하러 가자.”

“네.”

“화장실은 아래층에 있고, 이건 희연이 컴퓨터인데 네가 쓰게 될 거야.”


지지지징-.

켜진 모니터에는 온갖 폴더가 정신없이 쌓여있다.


“아이고 희연아······. 싹 다 밀어버리고 싶네.”


박두식은 폴더를 이리저리 옮기다가 ‘연출부’ 폴더를 찾아냈다.


“너는 이 폴더만 보면 돼. 연출부 컴퓨터끼리 공유되어 있으니까, 수시로 업데이트 시간 확인해서 교체하고.”

“네.”

“보고 있어 봐-.”


라고 하더니 파일을 열기도 전에 돌아왔다. 박두식은 내게 콘티북과 프린트된 시나리오를 줬다.


“이름 크게 쓰고 잃어버리지 않게 관리 잘해. 지갑은 어디에다가 둬도 그대로 있는데, 시나리오는 옆에 둬도 누가 훔쳐 가는 게 현장이야. 촬영하다 보면 바빠서 내 시나리오, 네 시나리오 상관없이 보이는 시나리오 들고 진행하다가 섞여. 없어져서 고생하기 싫으면 스티커를 왕창 붙여놓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명함 여러 개를 줬다.


“네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이렇게 다섯 명이야. 우선 피디님. 금요일에 아르바이트 끝나면 다음 주 화요일까지 회계가 돈을 입금할 거야. 근데 만약 돈이 안 들어왔다?”


박두식이 목소리를 낮췄다.


“다이렉트로 피디님께 전화해. 그러면 오 분 내로 입금된다. 불평불만은 위에다 찌르는 거 알지?”


눈을 찡긋대며 웃는데 고맙다. 쓸모 있는 정보를 얻었다.


“다음은 감독님. 딱히 너랑 연락할 일이 없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알고 있어. 그리고 조감독님, 퍼스트 형, 세컨드인 나는 살붙이처럼 붙어있게 될 테니까 반드시 저장.”

“알겠습니다.”

“역할 알려줄게. 조감독님이 전체 촬영 일정을 짜거든? 누가 뭐라고 하는데 일정에 변동이 생길 것 같다 싶으면 바로 조감독님께 알려야 해.”


말하면서 나를 흘겨봤다.


“일한아.”

“네?”

“안 적냐?”

“네?”

“선배가 중요한 얘기하시잖아. 어허!”


그런 것 같아서 하는 말을 통으로 다 외웠다. 암기에 자신이 있기에 가만있었던 건데, 알 리 없는 박두식은 빨리 필기구를 꺼내란다.


“안 가져왔는데요.”

“이거 은근 손타는 녀석이네.”


투덜대는 말과 달리, 박두식의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다. 짓궂게 킥킥대며 자기 자리에서 분홍색 수첩과 분홍색 팬을 가져왔다. 그냥 분홍 아니고 핫 핑크다. 흔들릴 때마다 빛이 반사돼 반짝였다.


“특별히 준다. 너 가져라.”

“괜찮습니다.”


들고 다니기 부끄러운 화려함이다.


“저쪽에 있는 오마미 볼펜 빌려 써도 될까요?”

“어허! 후회하지 말고 이거 가져. 제시카 팬클럽이 보내준 거야. 돈 주고 못 사는 희귀아이템이라고!”

“제시카요?”

“핑크 스페이스의 막내 제시카!”

“아···.”


여자 아이돌 그룹이다. 유명하다는 말은 들어서 안다.


“이 반응 뭐지? 너 제시카 몰라?”

“이름만 압니다.”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을 이름만 알면 안 되지. 자 봐봐.”


박두식이 요염하게 허리를 꺾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헤이 걸-. 캄캄한 밤 어둠에 갇혀 두렵다고 눈을 감지 말아요. 나를 봐, 계속 찾아봐, 이제 서서히 내가 보이지 않아? 나를 따라와 베이비- 블링 블링 핫 걸. 블링 블링 핫핫 쏘 핫-.”

“큭- 두식이 또 저런다.”

“노래방 갈 때가 된 거지.”

“오늘 온 친구 놀라서 도망가겠는데?”

“적당히 해, 뚜식아!”


여기저기 킥킥대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두식은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이 제시카가 이번에 우리 영화에 출연해. 주조연급.”


출연 배우란 말에 관심이 갔다.


“제시카 연기에 첫 도전 하다-. 기사 못 봤어?”

“찾아보겠습니다.”

“출연 확정 기사 나가고, 이어서 아이돌 발연기 관련 기사랑 묶여서 욕을 많이 들었나 봐. 라이브 방송에서 첫 촬영 앞두고 두렵다고 잘할 수 있게 용기를 달라고 부탁했대. 팬들이 그 소리 듣고 속이 상한 거지. 의기투합해서 우리 제시카 잘 봐달라고 스태프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사양 말고 받아.”

“......... 감사합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일정 관련은 조감독님께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퍼스트 형은 인물 담당이야. 헤어, 메이크업, 의상을 비롯해 출연 배우에 관한 모든 걸 관리하지. 세컨드인 나는 소품, 특수효과 등 이외의 것을 맡는데 미술팀과 한 몸이야. 일하다가 막히면 혼자서 이걸까, 저걸까 머리 굴리다가 사고 치지 말고.”

“네.”

“각 역할에 맡게 찾아가서 물어봐라.”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희연이가 했던 일은-.”


내가 이어받아서 할 일이다. 잘 듣기 위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현장에 있다가 무전으로 우리가 시키는 일을 듣고 바로 해결하는 거야. 화면에 나와야 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서 치우고 넣고 하는 게 네 일이다. 그러려면 무슨 장면을 찍는지 알아야겠지?”

“네.”

“수능 공부하듯이 시나리오 읽고 콘티북을 봐. 최대한 많은 장면을 머리에 넣어둬야 현장에서 우리가 하는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


그렇다면 시나리오, 콘티북을 외워야겠다.


“연출부 폴더 보면 ‘소품 정리표’ 있어. 장면마다 뭐가 필요한지 정리해놓은 거니까, 현장에 프린트해서 가. 시나리오랑 같이 보면서 더블 체크하고.”

“네.”

“인물표 보면 출연 배우 정보 있어. 매니저 연락처 챙겨가고.”


듣고 보니까, 폴더 안에 있는 파일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이것도 외우자.


“우리 영화 주인공이 누군지 석중이한테 들었어?”

“아니요. 제시카만 지금 알았습니다.”

“주연은 신애리.”

“와···!”

“제시카는 모르면서 신애리한테는 감탄을 하네?”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신애리는 열일곱 살에 칸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고 스물세 살이 된 올해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영화배우다. 고양이처럼 날카롭고 귀엽게 생겨서 여자 팬이 많다.


“시나리오를 보면 알겠지만, 신애리랑 제시카가 노래 실력으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듀엣이 된다, 그런 내용인데. 문제는 신애리의 연기가 워낙 돋보이다 보니까, 연기력이 비교될까 봐 제시카가 겁을 먹은 상태야.”


누구라도 신애리랑 있으면 주눅 들지 않을까.


“현장에서 반드시 주의할 점인데, 상대 배우 보는 앞에서 신애리의 연기에 너무 감탄하거나, 제시카의 연기에 야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 것. 배우 멘탈 깨지면 골치 아프다.”

“기억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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