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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5.08 23:30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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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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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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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장: 생존] SOS (2)

DUMMY

<송예슬>


다음 날, 오전

송예슬은 옥상에서 108동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108동과 109동은 아파트 단지 도로 설계 상의 이유에서인지 다른 동들과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다. 그렇기에 홀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108동은 실제로는 가운데 차도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마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송예슬은 SOS 표시를 발견한 즉시 강민엽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문득 임지훈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만두었다.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조금만 생각해 봐도 군인들은 이미 109동을 지키기도 벅찰텐데 108동까지 돕자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예슬은 이번엔 혼자서 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108동을 돕는다는 건 무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그러면 만약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저 SOS표시를 붙여놓은 집은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너갈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육로는 이미 감염자들로 인해 꽉 막혀있고 그렇다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주차장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송예슬은 알고 있다. 분명 방법은 있을 거라는 것을. 그저 송예슬이 떠올리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방법 있으시잖아요.”

뒤에서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유민준에게 말했다. 유민준은 언제나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해 낸다. 무언가가 없으면 직접 만들어서라도 대체하는 사람이었다. 송예슬은 이제 알고 있다. 유민준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 지금도 108동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알려주세요.”

“.. 위험해요. 넘어가면 분명..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송예슬은 뒤돌아 유민준 앞으로 다가간다.

“민준 씨, 아무리 그래도 저 경찰이에요. 눈앞에서 사람이 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데 두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어요. 뭐든 해봐야 돼요.”

송예슬은 간절하게 말했다. 이에 유민준은 시선을 피한다.

“제발 알려주세요.”

그러나 그녀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 유민준은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하던 그는 이내 깊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연다.

“.. 진우 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허진우>


유민준이 찾아왔다. 유민준은 이미 이전에도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었고 그때마다 허진우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업계에 몸담아오며 쌓아왔던 그의 실력과 지식을 총동원해 도와줬었다. 105호 구조 당시 방음벽을 설치할 때도 설계에 도움을 줬고 박준의 목발을 만드는데도 한몫했으며 지금은 유민준과 함께 의족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한참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송예슬이 108동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유민준의 계획은 허진우가 갖고 있는 드론을 이용해 밧줄을 108동으로 넘겨서 밧줄 다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허진우는 송예슬이 홀로 108동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들의 진중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밧줄 다리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일단 아파트 사이의 거리 측정에 나섰다. 요즘은 전문 측정 장비 없이도 인터넷 정보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기에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거리와 항공사진을 이용해 계산한 거리를 비교해서 최종 결괏값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108동의 SOS 집과 109동 사이의 직선 최단 거리는 약 46m 정도로 확인되었다.


다음 단계는 밧줄을 입수하는 것이었다. 밧줄은 이전에 105호 구조 때 입수한 경험이 있었기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완강기의 밧줄을 가져온 것이다. 아라그린 아파트가 착공될 시기에는 건물에 반드시 완강기를 설치해야 되는 소방시설법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옥상에 완강기가 세로동, 가로동 각각 하나씩 총 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의 밧줄을 가져왔다.


그러나 문제는 발생했다. 허진우가 갖고 있는 드론은 단순히 촬영용이었기에 적재 중량이 채 100g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밧줄의 선형밀도는 단순 계산해 봐도 이를 가뿐하게 초과한다. 게다가 들고 날아가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중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었다. 따라서 이 드론으로 밧줄을 옮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중 부담 없이 밧줄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유민준은 금방 해결책을 찾아냈다. 일단 가볍고 튼튼한 소재인 낚싯줄을 먼저 엮어서 보낸 다음 반대편에서 그 낚싯줄을 당겨 밧줄을 받아가는 방법이었다. 이론상으로도 완벽했고 혹시 몰라 진행한 모의 테스트에서도 성공했다.


그다음은 밧줄을 묶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낙차를 줘서 짚라인처럼 내려갈 수 있게 할까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위험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평행이 되게 설치한 다음 안전장치를 걸어서 건너는 게 나았다.


그러나 또 문제가 발생한다. 밧줄이 사람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 밧줄을 묶어놓을 만한 기둥 같은 견고한 지지대가 필요한데 이 아파트엔 그러한 구조물이 없었다. 그렇다고 베란다 난간 같은 데에다 묶었다간 안정성이 너무 떨어져서 위험했다.


하지만 또다시 유민준이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벽에다 묶는 것이었다. 안방의 벽. 아라그린 아파트는 안방이 창문을 통해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따라서 밧줄을 안방문으로 들어가 창문으로 나온 뒤 베란다 문을 통해 거실로 나와 다시 안방문으로 가게 두르면 안방 벽을 거대한 기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해결되는 줄 알았으나 마지막 문제가 있었다. 밧줄의 길이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밧줄의 길이는 약 40m였기에 두 건물 사이의 최단 길이도 충족 못한다. 급한 대로 안정성을 포기하고 이불보나 커튼을 묶어서 길이를 조금 늘려볼 수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길이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지대에 묶는 부분도 있어야 하기에 단순히 46m를 채우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밧줄은 하나 더 있었다. 완강기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른 밧줄은 저번 105호 구조 작전 실행 이후로 다시 완강기에 넣어놓지 않았다. 그 밧줄은 지금 군인들이 보관하고 있다. 즉, 밧줄 다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강민엽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었다.






















<강민엽>


“알고 있습니다.”

강민엽은 이미 SOS 표시를 봤다. 24시간 철저하게 순찰을 하며 아파트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반대편 108동에 있는 SOS 표시를 놓쳤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강민엽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상황은 굉장히 빠듯하다. 109동을 지킬 인력도 충분치 않은데 108동을 구하러 자리를 비웠다가 만약 109동에 사고라도 난다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밧줄만 빌려주세요.”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기가 홀로 넘어가겠다고 한다. 어차피 본인만 넘어갈 거니까 손해 보는 것은 없을 거라고 한다.


“안됩니다.”

강민엽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가 넘어가면 안 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일단 그녀는 감염자와 싸워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감염자들의 신체 능력은 탈인간이다. 고도로 훈련받은 특수부대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숫적 우위의 상태에서 싸워도 이길까 말 까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혼자 넘어가서는 당연히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에 하나 어떻게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해도 108동의 모든 주민들을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109동을 구할 수 있었던 건 감염자가 많이 없던 초기에 빠르게 조치해 방화문을 닫아낸 덕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같이 감염자들이 바다처럼 깔린 지금은 108동의 방화문을 닫아 입구를 차단해 낸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설령 그 불가능한 일들을 다 해낸다 해도 결국 108동 주민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109동은 구조 헬기가 왔었던 덕에 노약자를 태워보낼 수 있었으며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대응한 덕에 식량을 효율적으로 소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8동은 그러지 못했다. 108동에는 노약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고 신선식품들은 빈 집에서 썩어나가고 있을 것이었다. 즉 인원은 더 많은데 식량은 더 없을거란 얘기다. 3개월을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고 109동의 식량을 보내줄 수도 없다. 지금은 109동도 간신히 빠듯하게 맞출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 아파트의 질서를 지켜줄 존재도 없는 108동에서는 이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남은 자원을 두고 주민들끼리 다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처절하게 자멸할 것이다.


“어차피 모두를 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강민엽은 안 되는 이유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해 줬다. 하지만 슬픈 예감이 든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들을 설명을 해줘도 그녀의 의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해보지 않고는 몰라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상식적으로 옆 동은 돕지 않는 게 맞다. 옆 동을 돕는다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어찌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금 사태가 아니었어도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애초에 그들을 모두 도울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작 눈앞에 보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강민엽은 이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딜레마에 놓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의 선택을 매일같이 뼈저리게 후회해 왔다.


그리고 송예슬은 언제나 그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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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3장: 결전] 살인 사건 (1) 24.04.28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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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장: 생존] 여명 (4) 24.04.01 11 0 14쪽
42 [2장: 생존] 여명 (3) 24.03.26 12 0 11쪽
41 [2장: 생존] 여명 (2) 24.03.24 14 0 12쪽
40 [2장: 생존] 여명 (1) 24.03.22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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