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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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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
작품등록일 :
2022.02.14 13:55
최근연재일 :
2022.05.20 22:31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750
추천수 :
4
글자수 :
94,550

작성
22.05.0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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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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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적의 끈(1)

DUMMY

구미호의 기억이, 행복했던 삶의 파편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분명 처음 만난 요괴에다가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상대인데도, 그녀의 기억은 무척 익숙한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타인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타인과 함께하며 안정을 찾는 사람. 따라서 가치를 부여한 타인이 망가지면 따라서 망가질 연약한 사람.

참으로 너무한 사람.


“누가 마음대로 무너지래···! 소중한 존재라면서! 인호랑 시온의 이름으로 누가 이런 악행을 벌여도 된다고 했어!”


[현현 해제: 사방신]


나는 오른손을 치켜들어 현현했던 사방신들의 신력을 회수했다.

청, 적, 백, 흑의 신력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즉시 내 주먹에 힘을 실어주었다. 왼쪽 눈이 퉁퉁 붓고 깃털이 잔뜩 빠진 주작이 발을 쿵쿵 구르긴 했다.


[아이씨! 거의 다 이겼는데! 갑자기 왜 부른 거야!]

“미안해! 하지만 지키는 일이 쓰러뜨리는 일보다 우선이잖아?”

[당연하지!]


[권능: 수호방위(守護方位)]


사방신 모두의 신력을 담은 수호방위는 마을의 동서남북에 자리 잡아 원뿔 형태의 보호막을 생성했다. 과거 부산을 20년 동안 보호한 사방신의 주력 방위진. 그러나 싸움으로 지친 사방신의 권능으로 만든 수호방위는 삼두구미의 포효에 크게 흔들렸다.

삼두구미의 비통한 포효를 들은 풀과 나무가 그녀의 감정과 동화되어 스스로 목을 맨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닿는 것만으로 약한 생명을 빼앗는 악의로 가득 찬 신력. 마을에 있는 일반인에게 절대 닿게 해선 안 됐다.


“아름아! 마을을 부탁해! 나는 이 멍청한 여우의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겠어!”

“이길 수는 있으시고요?”


[가이아의 뿌리가 대구를 보호합니다!]


흔들리는 수호방위를 신력이 담긴 나무뿌리로 감싼 아름이가 흙이 묻은 옷을 털며 다가왔다. 구미호가 광기로 미쳐가는 와중에도 여우 구슬은 공중에 있던 아름이를 안전하게 땅에 안착시켰다. 그건 그녀에게도 일말의 선함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삼두구미의 행보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쓰러뜨리면 안 된다. 그건 오히려 삼두구미에게 자비를 베푸는 꼴이다.


“반드시 이겨야 해! 되돌려놔야 해! 저 녀석이 ‘내가 이렇게 억울하다.’,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죽을 거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본인이 누구의 이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악인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고 싶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말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단순하게 최선을 다해서 삼두구미를 막겠다는 뜻에서라는 표현이었다.

뭐, 삼두구미를 이길 방법이 아예 없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소환: 거구귀(巨口鬼)]


“짜라잔! 무슨 수 등장이요!”


적어도 커다란 개구리 입에서 튀어나온 이 녀석은 아니었다. 덩실덩실 흔들리는 상투 머리와 암록색 삼베 바지로 선보이는 뒤뚱뒤뚱한 팔자걸음, 몸 개그나 다름없는 움직임 사이로 엿보이는 뱃살까지. 외모는 흉터 하나 없이 반반한 샌님같이 생긴 녀석이 날카로운 눈매로 힐끗거렸다.


“뭐야? 왜 반응이 없어? 기껏 안개까지 만들고 화려하게 등장했더니 너희 눈치 꽝이구나?”

“저기, 죄송한데 누구세요?”

“나를 모른다고? 너희 엄청 깡촌에서 자랐구나? 충청도에서 살았니?”

“경기도 토박인데요.”

“아무튼 잘 들으렴! 어디서 나를 모른다는 소릴 들으면 무시당한다?”


맨발에서 흘러나오는 독기로 안개를 만든 샌님은 외투를 하늘에 집어 던지며 땅 밑에서 분출되는 불꽃을 조명 삼아 자기소개했다.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드래곤 오브 드래곤! 용 중에서도 으뜸가는 용! 천하무적, 절대최강, 천상천하, 유아독존, 무소불위, 군계일학의 천재 드래곤! 아아, 두려워라! 아아, 눈부셔라! 사악룡 깡철이라네!”


[독룡 강철입니다.]


그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고유명사다. 바벨의 지적에 자신있게 쫙 핀 어깨가 움츠러든 깡철에게 결정타를 먹인 사람은 깡철이 안고 있던 수호신이었다.


“아까 아줌마한테 굽신거리던 요괴들도 강철님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야 내 창조 설화에는 강철로 기록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꼬마야. 강철이란 이름은 정말 물렁물렁하게 들리지 않니? 깡철이가 훨씬 단단한 느낌이잖아! 안 그래? 깡깡!”

“확실히 머리는 깡깡해 보이네요. 생각 없이 단단한 돌머리.”

“요 귀여운 녀석. 확 깨물어 뜯어버리고 싶어라.”


수호신을 바닥에 내려놓은 깡철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포효하는 삼두구미를 올려보았다.


“감히 나를 제치고 마을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 된 양아치가 너냐?”

“아우우우우!”

“우냐? 울어도 소용없어! 이 몸이 떡하니 있는데 감히 최강의 자리를 넘본 대가는 목숨으로 치르게 해주마! 그러므로 널 도와주지! 넌 누구냐?”

“최강의 구원자요.”

“최강의 구원자? 최강은 나잖아? 아하, 알겠다. 이 몸의 구원자가 되겠다니 요요 기특한 녀석! 좋아! 너는 특별히 최강의 구원자 칭호를 허가해주도록 하마!”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식으로 알아듣는 거죠?”

“준비하렴. 부하야. 여우의 울음이 끝난다.”


말과 행동 모두 경박하기 짝이 없었지만 깡철의 신력은 삼두구미와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의 악의를 담고 있었다. 거기다가 용의 으뜸이라는 자기소개가 마냥 허세는 아니었는지 삼두구미의 포효가 잦아들자 신력이 하늘에 모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부하로 불렸지만, 마침 신력도 거의 없는 상황에 나타난 동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성한 곳이 없는 수호신을 챙긴 아름이와 나는 삼두구미의 머리 위로 모이는 검은 불꽃을 관찰했다.


[삼두구미의 요술이 권능으로 향상됩니다!]

[권능: 혼비중천(魂飛中天)]


구미호 시절에 사용했던 영혼이라면 이미 내 신체가 모조리 흡수했을 터. 삼두구미의 혼비중천은 구미호 시절에 발휘했던 요술과는 구조부터 달랐다. 전에 쓴 요술이 모아왔던 혼을 방출하는 능력이라면, 지금의 권능은 정반대였다.

혼을 모으기 위해 산 자의 목숨을 강제로 약탈하는 권능. 흉악한 삼두구미의 권능에 아름이와 수호신이 입을 열었다.


“포효의 목적은 죽이는 게 아니었어요. 범위 안에 생명을 탐색하는 용도였어요.”

“마을 사람들은 제 가호 덕분에 혼비중천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요괴는 아니죠.”


마을에 요괴가 들이닥친 일은 알고 있었다. 한 명이 특히 강하긴 했지만, 대부분 허접한 신력에다 그 한 명도 수호신이라면 충분히 막을 정도의 차이라서 방치했다. 하지만 요괴가 허접하다고 요괴의 요술까지 약하다곤 할 수 없었다.

칼보다 위협적인 건 언제나 칼자루를 쥔 자였으니까.

검은 불꽃 중 하나가 삼두구미의 입으로 들어가자 울고 있는 머리가 안개를 뱉었다.


[권능: 마마(媽媽)]

[권능: 주작비상(朱雀飛上)]


역신 마마의 요술을 재현한 삼두구미의 권능에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나는 아름이와 수호신의 손을 잡고 날아올랐지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는 깡철이는 마마의 안개에 뒤덮였다.


“너 진짜 띨띨하구나? 대가리가 세 개로 늘었다고 악독을 쓰는 내가 독에 당할 리가 없잖아? 너 정도론 무리지!”


[독룡 강철이 마마에 감염되었습니다!]


“무리가 아니었다?”

“쟤 바보야?”

“머리가 깡깡 비었다니까요.”

“암에 걸렸다고 감기에 면역은 아니죠.”

“최강인 나한테 시비를 걸어? 여우 주제에? 너 오늘 제삿밥 든든하게 잡술 준비 하셔!”


깡철이가 시간을 버는 사이 가이아의 뿌리에 걸터앉은 나와 아름이는 수호신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요술이나 권능에 의한 상처는 없었지만, 팔뼈는 피부를 찢어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갈비뼈 대부분은 금이 갔으며, 내장은 파열돼 출혈이 발생한 상태였다.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에도 내색하지 않는 수호신의 태도는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괜찮아? 왜 이렇게 다쳤어? 저 녀석이 한 짓이야?”

“상황이 거의 정리되는 와중에 저 용이 갑자기 나타났어요. 처음에는 다 죽일 것처럼 굴다가 제가 자기 권능을 막으니까 흥미가 생겼나 봐요. 생일 선물로 받은 장난감처럼 저를 갖고 놀았어요. 이런 꼴을 당하고 할 말은 아니지만, 제 생각에 깡깡 아줌마는 악의는 없어요. 어린이가 잠자리 날개를 떼는 정도의 행동이었지. 저한테 한 짓을 저 아줌마는 악행이라고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은 삼두구미라는 괴물에게 관심이 옮겨간 것 같아도 조심하세요. 직접 상대해봐서 알아요. 저 멍청한 용.”


수호신은 안개를 날려버리고 트럭만 한 크기의 독기를 모아 발사하는 깡철을 바라보았다.


[권능: 악독-충(惡毒-衝)]


“삼두구미라는 괴물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요.”


삼두구미를 얕본 이유가 마냥 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마마의 안개를 증발시키는 낭선 모양의 악독이 삼두구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직격한다면 산조차 용해할 악독의 창을 본 삼두구미의 죽은 머리는 조용히 입을 벌렸다.

구미호에게 기적이나 다름없던 시온은 죽어서도 구미호에게 향하는 모든 피해를 대신 받아주었다. 죽은 눈의 머리가 낭선의 악독을 해체해 증기처럼 흡입하자, 삼두구미의 꼬리 중 하나가 밝은 빛을 뿜어냈고, 곧이어 공허했던 목덜미의 눈에도 빛이 비쳤다.

그렇게 발생한 수련색의 빛은 어린 여우의 입을 통해 발산됐다.


[권능: 호가호위(狐假虎威)]


“꺅! 모가지에도 입이 있잖아? 징그러워!”


몸을 날려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깡철이의 머리 위로 수련색 광선이 지나쳤다. 직격은 피했지만, 장애물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수련색 광선의 충격파에 깡철이의 몸이 공중에 3초쯤 떠 있다가 땅에 곤두박질쳤다.


“말도 안 되게 멍청하고요.”

“그래 보이네.”


콰광!!!!


나뭇잎이 흩날리고 뿌리가 주저앉을 정도의 충격파와 진동이 시간차로 우리를 덮쳤다.

내 공격을 덧씌워 반격하던 요술과 달리 권능을 해체해 자신의 신력으로 치환한 공격인가? 특별한 능력은 안 보이는 대신에 구미호 시절에 없던 초월적인 파괴력에 나는 떨어지는 수호신과 아름이를 붙잡고 근처 평지에 착지했다.

마을 방향에서 발생한 충격파에 당황한 수호신이 벌벌 떠는 팔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마, 마을이. 저, 저, 저희 마을이. 아저씨! 아까 위에서 뭐 봤어요? 저희 아빠랑 누나는 괜찮은 거 맞죠? 아, 아, 아까도 울음소리랑 나무가 막 뒤덮여서 엄청 무서웠을 텐데. 별일 없겠죠?”

“당연하지. 아름이가 보호막을 쳐놨어. 저 괴물이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우리 아름이는 가이아의 신력을 쓰거든. 사실 최강의 구원자인 나를 제외하면 아름이가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지. 그치 아름아?”

“아저씨···.”


나는 아름이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구미호의 요술에 어쩌다 한 번 인질로 잡혀서 그렇지, 올림포스의 대리인과 싸웠을 때도 아름이의 방대한 신력과 권능이 아니었으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구미호에게 신력의 대부분을 빼앗긴 상태에서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마을을 감싼 보호막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무척 안심했다. 아니, 안심하고 싶었기에 아름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다음은 못 막아요.”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미호의 여우 구슬이 아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깡철이라는 용의 독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지도.


[한아름이 악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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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데우스 엑스 마키나(2) 22.02.20 44 0 14쪽
5 데우스 엑스 마키나(1) 22.02.17 54 0 16쪽
4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4) 22.02.15 47 0 14쪽
3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3) 22.02.14 49 0 12쪽
2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2) 22.02.14 6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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