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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2.14 13:55
최근연재일 :
2022.05.20 22:31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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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94,550

작성
22.05.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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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기적의 끈(2)

DUMMY

나약한 자의 섧은 울음.

순연을 거스르고 떠나버린 채 못다 핀 자식에 대한 애도와 손아귀에서 빼앗긴 영원의 사랑을 향한 미련이 담긴 비통이었다. 목소리에 담긴 신력은 수호방위에 가로막혔으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고스란히 대구의 생존자들에게 전해졌다.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 중 누가 소중한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엄마, 왜 울어?”

“미안해. 내가, 내가 겁쟁이라서, 내가 약해서···!”


삼두구미의 울음소리를 들은 주민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낫지 않은 상처의 쓰라림에 통곡했다.

물론 생존자들의 마음에는 일절 관심 없는 강철은 한창 신수호를 괴롭히면서 주민들의 반응을 즐기던 찰나, 자신을 향한 관심이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할 따름이었다.


“너네들! 내가 저 여우 혼쭐내고 돌아올 때까지 정신 차리고 있어. 알았지? 대체 저 목소리가 뭐가 좋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짜증 나!”


[소환: 거구귀(巨口鬼)]


강철의 이탈, 마을을 덮은 나무뿌리, 요괴의 소멸. 일련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한 사람은 신유신과 신수하밖에 없었다. 주민들을 진정시킨 신유신은 마을을 둘러싼 뿌리로 다가가 고민했다.


“이 나무는 가이아의 권능인가? 바깥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직접 찾아가 보지 그래? 왜. 시장의 책임 때문에 마을을 벗어나지는 못하나?”

“대책 없이 나갔다간 오히려 수호신님을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네 발언은 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감정 소모만을 부추기는구나.”

“네가 내놓은 잘난 해답을 부수는 게 지금까지의 목표였으니까. 수호를 대가로 얻은 평화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이렇게 당당해?”

“생존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도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되지.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나도 스물다섯이야.”

“부모 눈에 자식은 언제나 애다. 정신 연령이 낮으면 특히 그렇지.”


부녀의 기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콰광!!!!


흡사 대포가 부딪친 듯한 포격음에 부녀는 귀를 막고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내부를 보호하는 가이아의 뿌리와 수호신의 가호로 몸이 강화되지 않았다면 방금 포격음에 귀가 멀었을 것이다.

흩날리는 모래와 지직거리는 이명이 한동안 마을 주민들을 괴롭혔고, 가장 먼저 시야가 확보된 사람은 뿌리와 가장 가까웠던 부녀였다.


“가이아의 신력이 담긴 뿌리가 썩고 있어···.”


대포와 같은 폭격에도 끄떡없던 뿌리가 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무너져내렸다. 불길처럼 번지는 검은 독은 빠른 속도로 가이아의 뿌리를 붕괴시켰고, 곧 마을 사람들 모두의 시야가 확보됐다.

그들의 눈에 비친 건 썩어 무너져가는 거대한 나무뿌리,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패인 자국, 그리고 패인 자국 끄트머리에 모이는 검은 구름이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 모두 직감했다.

저 검은 구름의 중심에 신수호가 있다. 지금도 마을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신력의 충돌에 주민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자신들이 가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측이나 속단이 아닌, 생물로서의 본능에 주민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늘 그렇듯, 수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가겠어.”


수하는 두려움에 몸이 파르르 떨리면서도 수호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죽음의 공포를 직시하며 나아가는 용기.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것이리라.

그러나 그녀의 용기는 한 인물에게는 무모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지로 나아가려는 그녀의 앞길을 신유신이 막아섰다.


“나가지 마라! 수호신님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우리가 나가봤자 똑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왜 수호신님을 만들었는지 또 설명해야 하나? 사람은 약하다. 막말로 재수 없으면 뒤로 자빠지다 죽을 수도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심지어 밖에는 어떤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뚜렷한 방법도 없이 가겠다고? 죽고 싶다는 말밖에 안 된다!”

“수호는 아직 애야! 수호신이니 뭐니 해도 한창 보호받고 싶어 하는 아이라고!”

“그 녀석은 신이 아니야! 너와 같지 않아!”


짜악!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신수하는 그녀의 부친 신유신을 쏙 빼닮았다. 딸에게 처음 맞은 신유신은 얼얼한 뺨에 손을 올리고 수하를 바라보았다.

수하는 울고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유신은 자신이 죽을까 봐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다. 유신의 사랑은 항상 자신을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수하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자신의 아버지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면 속 편히 혐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마을 모두의 안위를 걱정하고, 아내를 잊지 못하고, 딸을 사랑하는 그가, 수호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수하는 도저히 신유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도대체 왜 너는 나를 챙겨주는 마음을 수호에게는 주지 않는 거야? 대체 뭐가 너와 수호를 가로막는 거야? 가기 싫으면 여기 있어. 날 막지 마.”


용기는 전염된다.

수하가 마을을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주민들도 앞다퉈 깔끔하게 팬 길을 따라 마을을 벗어났다.


“동현아! 나가면 안 돼!”

“싫어! 나도 수호한테 갈 거야!”

“어머니.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왜 고집을 부리세요.”

“이놈아. 젊은애들이 저렇게 발 벗고 나서는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뒷짐 지고 구경하는 것도 못 할 짓이지. 안 그러냐?”

“마침 길이 훤히 트였네. 20년 만의 외출이야. 죽기 전에 자유가 오긴 오는구먼.”


코맹맹이 소리가 가시지 않고 따가운 눈을 비비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수호에게 걸어갔다. 어느덧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신유신과 그런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노인, 구원을 안내했던 혜영밖에 없었다.

신유신은 혜영에게 물었다.


“왜죠? 왜 다들 나가는 겁니까?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두 번이나 도망칠 수 없어서요. 다들 우느라 지쳐서 도망칠 기운도 없기 때문입니다.”


새온의 친구 혜영은 20년 전, 강림의 날 이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천 명도 되지 않는 생존자 사이에서 친구가 살아남은 건 기적이었고, 혜영과 새온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혜영의 그녀의 남편 신유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혜영은 시선을 낮춰 축 처진 유신을 마주 보았다.


“시장님. 시장님은 항상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제 마음은 제가 살고 싶어서 강림의 날에 어머니의 시체를 찾지 않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1년 전, 요괴에 둘러싸여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 수호신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당시 수호를 가진 새온의 몸 상태가 말도 안 되게 쇠약했죠. 아마 수호가 수호신으로 선정되지 않았으면 안 그래도 먹고 살기 급급한 와중에 새온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시장님이 수호를 수호신으로 만든 이유는 마을의 구원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닌 새온을 위해서 아닙니까? 하지만 시장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새온의 바람대로 수호가 컸다고 말할 수 있으십니까?”


새온의 바람.

늘 입에 달고 살던 그녀의 바람을 유신이 잊을 리가 없었다.

유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행동이 혜영의 질문에 대한 부정인지, 순간의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함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저는 제 행동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수호를 집에 머물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맹목적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동상을 세우고, 신전에 안치시키면 될 것을 구태여 수호를 집에 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밖에서는 또래와 놀게 놔두고, 안에서는 누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수의 도구로 자식을 택했지만, 사람으로 대하기엔 비정하며, 신으로 대하기엔 다정한 당신이기에, 그 아이는 수하를 누나로 두고, 동현이를 친구로 두고, 저 같은 늙은 할미의 조카로 사랑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죠.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매주 일요일 성당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신부 역할을 하시는 모습이 어찌나 졸립던지. 깜빡 졸뻔했습니다.”

“제 기억엔 코까지 골면서 숙면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이쿠, 그랬습니까? 늙으면 원래 꾸벅꾸벅합니다.”


가끔은 염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의 뻔뻔함이 매력이었던 혜영. 죽음이 그녀의 살던 세상과 가족을 앗아갈 순 있어도, 그녀의 웃음마저 거두진 못했다.

늙어서도 그늘지지 않은 미소를 지은 혜영이 유신을 일으켰다.


“살아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못 봐도, 죽어서 염치가 없어 못 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가시죠. 수호가 누나만 왔다고 서운해할라.”


***


독룡 강철.

용을 닮은 그 괴물은 용을 잡아 그 뇌를 먹고, 지나다니는 것만으로 독기가 곡식을 썩게 한다. 바닷속에서 용을 쫓아 3일간 싸웠던 그 괴물은 세 교룡과 두 용과의 싸움에서 교룡 둘과 용 하나를 길동무로 삼아 최후를 맞이했다.

강철의 설화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독을 직접 마주한 나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아름아!”


[현현: 불사조]

[권능: 생명회귀(生命回歸)]


아름이가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불사조를 꺼내 아름이를 치료했다. 불사조의 생명이 담긴 깃털이 아름이를 따스하게 비췄지만, 아름이는 여전히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중환자실의 보호자가 의사에게 묻는 진부한 물음이 전부였다.


“어때? 고칠 수 있어?”

[내 권능은 회복이 아니라 회생이다. 일단 악독이 퍼진 부위를 재생하고 있지만, 악독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 안되는 걸 어떻게든 해보라고 널 꺼낸 거야!”

[나한테 소리쳐봤자 소용없어.]


마음 같아선 사방신과 뱀의 신력을 모두 사용해서라도 아름이를 치료시키고 싶었지만, 방금 땅바닥에 뒹군 깡철이는 아름이가 자신의 악독에 중독된 줄도 모르고 삼두구미에게 소리쳤다.


“꺄악! 너 때문에 옷이 더러워졌잖아! 안 그래도 악독 때문에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이 흙먼지는 네 가죽으로 박박 닦을 테니까 각오해!”


[신기: 사룡골-쌍두(死龍骨-雙頭)]


강철은 용을 잡아먹는 용. 두개골이 깨진 상태로 나타난 용의 머리는 악독을 뚝뚝 흘리며 삼두구미의 양옆으로 돌아갔다.


“어디 그 대가리가 다 처먹을 수 있나 시험해볼까?”


[권능: 악독-삼충(惡毒-三衝)]


세 방향에서 방출된 악독이 삼두구미를 둘러쌌다. 피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삼두구미는 피하는 대신 다시 한번 죽은 머리의 입을 벌렸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던 악독은 삼두구미에게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자 아까처럼 해체되어 죽은 머리의 입으로 흡수되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주력 공격이 막힌 깡철이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악! 진짜 먹으란 소리는 아니었다고! 저거 완전 사기 아니야?”


이번 악독은 전보다 양이 많아서인지 삼두구미의 꼬리 세 개가 빛났지만, 아직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삼두구미는 무방비 상태였다.

가이아의 뿌리가 사라지고 왜인지는 몰라도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삼두구미의 공격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하지만 아픈 아름이를 이대로 두고 갈 수도 없다. 아름이와 삼두구미를 번갈아 보면서 안절부절못하던 내 등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다녀오세요. 누나는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나와 불사조의 몸에 손바닥을 갖다 댄 수호신은 눈을 감고 명상에 돌입했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아름이와 주민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금 장난 같지도 않은 수호신의 행동에 나는 수호신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네 장단에 놀아줄 시간 없···!”


하지만 바로 다음 수호신의 변화에 나는 뿌리치려던 팔을 멈췄다. 옅은 황금색을 띠던 수호신의 신력에 불사조의 신력이 스며들더니 이윽고 주홍색으로 변화했다.


[반인반신 신수호가 구원의 신력을 기억합니다!]

[반인반신 신수호가 불사조의 신력을 기억합니다!]


신력을 기억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바벨의 각주 없는 설명은 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수호신은 아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수호신의 권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 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권능: 생명구호(生命救護)]

[신수호의 생명구호가 악독을 정화합니다!]


복사나 흡수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 불사조의 신력의 장점만을 가져와 새롭게 치환시킨 수호신의 권능은 아름이의 몸에 있는 악독을 순식간에 정화했다.

편안해진 아름이의 표정을 보고 안심한 나를 대신해 불사조가 물었다.


[너는 정체가 뭐냐?]


불사조의 존재론적 질문에 수호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 줄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

수호신은 낯선 어른에게 자기 소개하듯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대구의 수호신! 신수호입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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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랑받는 수호신(1) 22.05.20 32 0 15쪽
14 기적의 끈(4) 22.05.18 55 1 17쪽
13 기적의 끈(3) 22.05.15 2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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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데우스 엑스 마키나(1) 22.02.17 54 0 16쪽
4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4) 22.02.15 47 0 14쪽
3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3) 22.02.14 49 0 12쪽
2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2) 22.02.14 6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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