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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2.14 13:55
최근연재일 :
2022.05.20 22:31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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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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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50

작성
22.02.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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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최악의 구원자(1)

DUMMY

암록색으로 물든 삼베 바지를 나풀거리고, 머리에 엉성하게 묶은 상투는 머리를 흔들 때마다 덩실거리며, 또 허리끈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살짝쿵 엿보이는 앙큼한 뱃살을 내놓고 다니는 강철이는 신수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독기가 숨을 조이는 와중에 감히 입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수호신으로서의 책임감을 지닌 신수호 뿐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으음?”


강철은 기형적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뻣뻣하게 굳은 신수호의 볼을 꼬집었다.


“어머, 예의 바른 것 좀 봐라 얘. 왜 이렇게 귀여워?”


신수호의 볼을 쭈욱 늘리며 해맑게 웃는 강철의 행동에 독기의 압력에 짓눌린 다른 존재들도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강철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고 생각한 팔척 귀신은 주민들을 밀쳐내고 강철에게 매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달리려고 했다.


“강철님! 부탁입니다! 제발 저 수호신을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저희를 십 년 동안이나···!”

“조용히 해! 내가 말하고 있잖니!”


[권능: 악독(惡毒)]


팔척 귀신은 강철에게 매달리지 못했다.

강철에게 닿기도 전에 악독에 녹아 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끼아악! 내 손이! 내 팔!”


순식간에 신체를 부식시키는 위력도 위력이지만, 팔척 귀신에게 달라붙은 악독은 귀신의 몸을 빠르게 침식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요. 용이 말하고 있는데 하찮은 너희들이 끼어들면 내 기분이 어떻겠니?”

“내가 뭘했다고 그래! 내 팔 돌려줘!”


분노와 혼란으로 미친 팔척 귀신이 입을 벌려 강철에게 달려들었다.

다음 순간, 팔척 귀신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녹은 살점 덩어리도, 살이 녹은 역겨운 냄새도 남지 않고, 악독은 팔척 귀신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과거 다섯 마리의 용과 호각으로 싸워 셋을 죽인 악독.

강철의 범접할 수 없는 권능을 목격한 역신은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저희 중 한 명의 일탈로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 전체는 강철님을 섬기고 복종할 생각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할 테니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죄송은 됐고, 나는 이 아이와 놀고 싶으니까 너네는 인간 좀 떼어놓으렴.”

“황송하오나 저희도 이미 많은 신력을 소모한 상태입니다. 부끄럽게도 인간을 상대로 온전히 이길 자신이···.”

“어쩌라고? 죽여달라고?”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역신이 말한 대로 지금 요괴들은 인간조차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조금 전 강철의 권능과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강철은 자신이 인간을 죽이지 못해서 요괴를 부린 게 아니다. 죽이는 것조차 귀찮아서 요괴한테 짬 처리를 시킨 것이다. 만약 강철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자신들은 물론 요괴까지 전부 죽을 것이다.

강철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요괴와 인간의 이해가 처음으로 일치하고 물러나려 하자 신수하가 사람들을 밀치고 뛰쳐나왔다.


“수호야! 도망쳐!”

“수하야.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나서는 거냐! 당장 물러서!”

“이거 놔! 수호는 뭐 다른 줄 알아?”

“시끄럽다 얘. 이거나 먹고 떨어지렴.”


[권능: 악독(惡毒)]


강철은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듯 독을 던졌다.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 극소량의 독이었지만, 정의감에 앞서는 인간 하나를 세상에서 지우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수하야!”

“누나! 아빠!”


[권능: 수호의 방패]


강철의 악독이 신수하에 닿기 직전, 신유신이 수하를 끌어안고 수호의 방패가 악독을 가로막았다. 강철은 악독과 함께 중화되는 수호의 방패를 보고 눈을 비볐다.


“어머나? 네가 내 악독을 막은 거니?”


탄생한 지 고작 십 년 남짓한 수호신이 용조차 죽이는 독을 막았다. 이 사실이 지니는 가치를 아는 존재는 역신과 강철 정도밖에 없었다. 만약 강철이 사르페돈 같은 권위적인 성격이었다면, 신수호를 당장 죽여야 할 정도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누나를 건드리면 가만 있지 않겠어요.”

“설마 진심으로 말하는 거니? 아웅, 너 정말 귀엽다. 원래는 바로 죽이고 건방진 여우년도 처리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우리 내기할까?”

“내기요?”


하지만 강철은 괴짜 중의 괴짜. 신수이면서 신수가 아니고, 요괴이면서 요괴가 아닌 초 괴짜였다. 강철은 새로운 놀거리를 찾은 아이처럼 히죽거렸다.


“그래. 너도 알겠지만, 저쪽에서 여우하고 기분 나쁜 인간이 싸우고 있걸랑. 여우가 이기면 너는 나한테 죽고 마을 인간도 죄다 죽일 거야. 하지만 인간이 이기면, 너희를 놓아줄게. 어때? 손해 볼 것 없지 않아?”


신수호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을 모기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 강철의 태도와 숨김없는 비웃음을 보고 있으면 면상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약했다. 수호신으로 태어난 신수호에게 무력감이란 매우 낯선 감정이었다. 그러나 수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울분을 삼킨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해요.”

“물론이지! 내가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반드시 지키거든. 대신!”


강철의 발차기가 수호의 가리에 정확히 들어갔다. 자세도 잡지 않은 장난 같은 공격에도 수호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크흑!”

“둘의 싸움이 끝나는 동안 나하고 좀 놀아줘야겠어.”

“수호야!”

“난 괜찮아. 누나,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줘.”

“어딜 한눈을 팔고 있니? 나를 봐야지, 질투 나잖니.”

“끄아악!”


이번엔 얼굴을 노린 발차기를 막았는데도 수호는 팔이 부러지는 것 같은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수호의 일그러진 표정과 비명을 보며 강철은 몸을 배배 꼬았다.


“꺄하하, 괴로워하는 모습도 너무 귀엽다. 어떡하니? 싸움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는 있겠어?”


신수호는 팔을 부여잡고 강철을 올려다보았다.

만난 지 몇 분도 안 됐지만 이 신수가 어떤 성격인지는 알 것 같았다. 종잡을 수 없는 제멋대로인 성격. 마음에 드는 일이 생기면 계획은 집어치우고 거기에만 몰두하지만, 반대로 질리는 순간 가차 없이 버리는 성격이다.

그의 관심을 끌려면 일어서야만 한다. 수호는 비명을 지르는 고통을 짊어지고 일어섰다.


“아직 멀었어!”

“가면 갈수록 마음에 든다 너! 걱정 말렴. 죽지 않을 만큼만 죽여줄게.”


이제는 사방신의 권능을 쓰는 사람이 기적처럼 구미호를 쓰러뜨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신수호는 처음으로 구원받기를 바랐다.


***


[권능: 생명회귀(生命回歸)]


8분에 걸쳐 다섯 번째 죽음을 겪은 구원은 뻐근한 목을 뚜두둑 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 방식이 아닌가?’


구미호한테 죽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다. 생명회귀로 완전한 소생을 약속받은 내게 죽음은 생채기만도 못했다. 물론 구미호도 바보는 아니었다. 가끔은 내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싸우기를 멈추고 도망가기도 했지만, 나는 스스로 목을 베고 구미호를 쫓으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몇 번이고 유도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챘을 기묘함에 구미호는 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물었다.


“너 뭔가 숨기고 있지?”

“당연하지. 조금만 기다려. 방법만 알아내면 바로 해치워줄 테니까.”

“무슨 속셈이길래 자꾸 죽으려 드는지 궁금하긴 하네. 있지. 내가 고민을 해봤어. 너랑 이대로 놀아주는 편이 나을지, 아니면 아예 해치워버릴지. 솔직히 고민 중이야. 어느 쪽이 정답일지 나도 모르겠어.”

“정답은 하나야. 지금이라도 아름이를 두고 내 눈앞에서 꺼지기.”

“어이가 없네. 네가 뭐라도 되니?”

“최강의 구원자!”


나는 엄지를 가슴에 가져다 대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수치심이란 감정이 없냐고? 그걸 왜 느껴야 하지? 나는 최강도 맞고 구원도 맞는데?

내 호기로운 자기소개를 들은 구미호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팔짱을 풀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구미호의 적대적인 기운에 나는 잠깐 어깨를 움츠렸다.

그래. 솔직히 조금 쫄았다.


“결정했어. 찝찝해서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냥 죽여야겠다.”

“화났냐? 화난 것 같은데? 화났네, 화났어.”

“네 권능은 주둥이냐?”


파앗!

몸을 덮은 여우 불과 함께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다가온 구미호에 당황한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훌륭하게 구미호의 머리가 있던 공간에 곡선을 그렸지만, 구미호는 여우 불로 변해 불씨와 함께 사라졌다.


[요술: 허깨비]


“내가 너를 못 죽여서 고생한 줄 알았니?”


사라진 여우 불은 내 등 뒤로 돌아 다시 한번 구미호로 변했다.


“장단 좀 맞춰주니까 나랑 비슷한 급이라고 생각했나 본데 완전히 잘못 짚었어.”


나는 몸을 비틀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지만, 이번에도 무의미한 불씨만이 손등에 스칠 뿐이었다. 신체 능력상 나보다 약하면서도 여유롭게 내게 접근한 구미호는 내 목덜미를 붙잡았다.


“사방신의 신력이 빠져나간 순간부터 너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어. 그러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네가 내뿜는 기운이 더러웠기 때문이야.”


[요술: 혼백추출(魂魄抽出)]


구미호는 천천히 손을 잡아당겼다.


“뭐, 이젠 안 들리려나?”


인간의 넋을 빼가는 구미호의 고유한 권능이 내 혼을 붙잡았다. 아름이는 막대한 가이아의 신력이 보호하고 있어서 영혼을 건드리진 못했지만, 수호신의 신력이 사라진 내 영혼을 빼가는 일은 구미호에겐 꽃을 꺾는 일보다 간단했다.

혼을 붙잡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 혼은 이미 절반 이상 빠져나온 상태였고, 혼을 잃어버린 육신은 초점 잃은 눈으로 고개를 떨구는 게 전부였다.

확정된 패배.

정확히 내가 바랬던 상황이었다.


[정신 나갔군. 네 가정이 틀렸으면 어쩔 셈이었나?]


처음 듣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낸 내 육신은 혼을 빼가는 구미호의 팔을 붙잡았다.


“뭐야? 혼이 나갔는데 어떻게 말을?”

[조용. 어르신이 말씀하고 있지 않느냐.]


[권능: 배중사영(杯中蛇影)]


내 그림자가 뱀의 형상으로 변해 발목을 타고 올라오자 구미호는 내 혼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혼을 되찾은 나는 가슴을 두드리고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전제가 잘못됐어. 내가 틀렸을 리 없잖아?”


처음 사방신이 내게 신력을 주었을 때는 이세계 전생 혜택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죽었다 살아난 와중에 개연성을 따지면 끝도 없으니까. 하지만 불사조의 권능으로 부활하자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왜 불사조는 내가 죽고 나서야 권능을 발휘한 거지?’


불사조의 권능은 부활이 제일 효과적이지만, 신력의 성향이 주작과 닮아 주작의 권능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무엇보다 불사조의 권능이 각성된 이후 내 신력의 양도 늘었다. 전생 혜택이라면 처음부터 불사조의 권능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대행자들이 내게 했던 말을 종합하자 한 가지 답이 떠올랐다.

분명 말도 안되는 추론이지만, 이미 죽었다 살아난 와중 말이 될건 또 무엇인가?

이 신체는 최악의 구세주라는 사람의 몸이다.

나는 죽은 구세주를 대신해 전생한 것이다.

그 사람이 가졌던 신을 그대로 몸에 지닌 채로 말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신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었어.’


거기에 올림포스의 대행자 전부와 싸웠던 사람이라면, 고작 사방신과 불사조의 힘이 전부일 리 없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둘만 봐도 혼자서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강했으니까.

문제는 내가 어떻게 신을 불러내는지 모른다는 것.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신이 직접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그 신이 나오지 않으면 죽을 정도의 상황을 만든다던가.


[이 신체의 주인은 두 놈 다 어찌 이리 오만방자한지 모르겠군.]

“나도 예의를 차릴 줄 알아. 요즘 만난 놈들이 죄다 그럴 필요가 없을 뿐이지. 그것보다 기왕 나온 김에 여우 한 마리 잡는 동안 협력해 주셔야겠어.”

[좋다. 요괴 따위가 으스대는 꼴을 관망하는 것도 슬슬 한계였던 참이었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나는 사방신의 신력을 처음 끌어올렸던 것처럼 뱀의 신력을 영혼에 담았다. 신력만 따지면 사방신 중 최강인 청룡과 비견될 정도의 힘이 내 몸에 스며들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너. 정말 별로다.”


여태껏 설렁설렁 상대했던 구미호는 신력을 끌어 올렸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는 몰라도 이번에야말로 총력을 다해 나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명확하게 보였다.


“마지막 10분. 버릇없는 애새끼 하나 손봐주기엔 빠듯한 시간이네.”

“일정 있으면 미리 취소하는 편이 좋아. 오늘 저녁은 지옥에서 개구리 반찬이나 먹게 될 테니까.”


작가의말

다음주는 엘든링으로 인한 휴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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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랑받는 수호신(1) 22.05.20 3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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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적의 끈(1) 22.05.08 3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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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데우스 엑스 마키나(2) 22.02.20 44 0 14쪽
5 데우스 엑스 마키나(1) 22.02.17 54 0 16쪽
4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4) 22.02.15 47 0 14쪽
3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3) 22.02.14 48 0 12쪽
2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2) 22.02.14 6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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