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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2.14 13:55
최근연재일 :
2022.05.20 22:31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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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94,550

작성
22.02.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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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3)

DUMMY

대행자.

신의 뜻을 섬기고 주인을 대신해 움직이는 그들은 주인의 신력을 영혼에 담아 사용할 수 있다. 주인에 따라 어지간한 신보다 강한 신력을 가진 그들이지만, 정작 대행자 중 3년 이상 생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애당초 신이 인간을 소모품취급하는 탓도 있겠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해 영혼이 부숴질 정도로 신력을 끌어다쓴 경우가 절대 다수였다.

그만큼 대부분의 인간은 영혼에 믿음을 담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위의 설명에 거의, 절대 다수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영혼을 가진 두 명의 대행자가 있었다.


“형은 몇 분이나 버틸 것 같아?”

“3분. 아니, 그보다 짧나. 금이 간 영혼에 아무리 신력을 쏟아부어도 별 효과가 없군.”


전신(電神)과 전신(戰神). 신력을 영혼이 넘칠 정도로 쏟아부어 순간적으로 주인과 동급의 경지에 오르는 대행자의 최종기이자 비장의 수.

그러나 지난 전투로 인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지금은 밑빠진 독에 불붓는 격이었다. 아주 약간 독 밑바닥에 물이 차기는 해도 새어나간 물이 바닥을 더럽히는 것처럼 전신이 풀리는 순간 반동으로 인해 패배는 확정될 것이다.


“하핫! 그래서 최고인 거야! 우리가 언제 이렇게까지 수세에 몰려봤지? 패배라는 단어가 이토록 실체가 뚜렷했던 적이 있었나? 전쟁은 이래야지! 오만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쳐 뇌가 터질 지경이야!”


긴장을 지독한 광기로 덮은 마스와 달리 사르페돈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저 다가올 번거로움을 생각하니 지끈거리는 두통에 인상을 찌푸릴 뿐.


“좋을대로 느껴라. 목적만 완수하면 될 일이니.”


최강. 최악.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 스스로를 꾸미는 머저리들에게 주제를 깨닫게 하는 일은 20년 동안 질리도록 해온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


바람을 타고 오는 전기에 온 몸이 저릿해지고 핏빛으로 물드는 해변가의 모래는 신화에나 나오는 광경을 방불케했다. 흘러넘치는 신력만으로도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느껴졌다.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저 정도의 힘을 쓸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썼겠죠. 아저씨를 이길 방법이 저것밖에 없다고 판단해서 발휘한 최악의 수라고 생각해요. 길어야 3분. 그 이상 지나면 저쪽이 알아서 자멸할 거예요.”

“좋아. 3분 동안 버티면 이긴다는 말이지? 너는 숨어있어. 혹시나 너를 인질로 삼으면 위험해.”

“믿어요.”


아름이는 한 걸음 나아갔다.

이 아이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시체로 뒤덮인 고통으로부터, 자신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아름이는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저를 믿어요. 제가 아저씨를 믿는 것처럼.”


그 고고하면서도 선명한 금색 눈동자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잠시 넋이 나간채 아름이를 바라보았다.

때문에 저쪽의 선제공격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언은 끝냈냐? 그럼 죽어야지!”


[권능: 거인 골리앗]


배후에서 나타난 3미터의 거인이 옆구리를 강타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제대로 꽂힌 거인의 주먹은 내 몸을 마스가 있는 방향으로 날려버렸다. 아픔을 느낄새도 없이 나는 해맑게 웃는 마스에게 주먹을 날렸다.


[권능: 백호호환(白虎虎患)]


“권능! 죽빵!”


우득. 꾸득. 콰드득.

신력이 깃든 강철 주먹을 무식하게 맨 몸으로 받아친 마스의 팔이 기괴한 형상으로 뒤틀렸다. 뼈가 튀어나오고 살점이 찢기는 와중에도 마스는 환호성을 지르더니 망가진 팔로 내 주먹을 붙잡았다.


“왜 안 피해? 미쳤냐?”

“그럼! 너야말로 충분히 미치지 못했네? 내가 도와줄까?”

“필요없거든!”

“에이, 사양하지 말아. 이미 준비했단 말야.”


마스의 말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말하기가 무섭게 바닥에서 솟은 붉은 창이 정확히 내 턱을 찍었다.


[권능: 효수(梟首)]

[권능: 백호금강(白虎金剛)]


“크윽!”


일초만 늦게 권능을 사용했어도 턱과 함께 머리까지 뚫렸을 것이다. 백호의 강철육체마저 상처입힌 창은 붉은 피로 자랑스럽게 자신의 날을 적셨다.


“캬하! 단단한 몸뚱이네? 역시 지금 상태로는 뚫기 힘들겠어! 하지만 우리 형은 다를걸?”

“좋은 창이군. 장식이 없는게 아쉽다만, 가릴 처지가 아니니 잘 쓰겠다.”


그야말로 맹공.

마스의 몸으로 가려진 사각에서 튀어나온 사르페돈은 붉은 창을 집어들고 나를 향해 찔렀다.


[권능: 천뢰(天雷)]

[권능: 현무귀간(玄武龜干)]


정면으로 막으면 돌파당한다. 순간의 기지로 일부러 울퉁불퉁한 방어벽을 만든 덕분에 사르페돈의 창은 내 머리 대신 허공을 꿰뚫었다.


“두 신의 권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창끝의 궤도를 비트는 전투 감각까지. 최악의 구세주는 아니어도 너 역시 자칭 최강이라 자만할만 하군. 인정하지.”


마치 선심쓰듯 나를 칭찬한 사르페돈은 창자루를 돌렸다. 한 번 만져봤기에 알 수 있다. 제우스의 번개는 강철이고 금강석이고 무엇이든 파괴하는 절대 파괴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

창자루를 타고 오르는 제우스의 번개를 본 나는 순간 죽음을 떠올렸다.


“그런 놈들을 잿더미로 만드는게 내 본업이다. 수 싸움으로는 나를 이기지 못해.”


[형태 변형: 큰가지]


창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간 벼락의 가지가 내 몸에 침투했다.


“크아아악!”

“벼락이 뻗어나가는 모습은 나무와 비슷하지. 그러나 현상의 원리는 정반대다. 나무의 원리가 확장이라면 벼락은 방출. 일단 닿은 물체에 침투하면 자신이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아.”


몸에 침투한 제우스의 번개가 혈관을 타고 내 몸을 휘적이기 시작했다. 죽이려면 순식간에 죽일 수 있었지만 사르페돈은 빠르게 죽이는 대신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번개를 터트리지 않았다.

찰나의 기회.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력을 가득 넣었으니 방금처럼 빼앗진 못한다. 얌전히 불타 죽어라.”

“죽긴 누가 죽어!”


[권능: 현무귀악(玄武龜握)]

[권능: 청룡백뢰(靑龍百雷)]

[형태 변형: 잔가지]


바닷물로 만든 현무의 머리가 나를 집어삼키고 청룡의 권능이 제우스의 번개를 바닷물 쪽으로 방출시켰다. 신력으로 만든 번개는 자연 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신력이 약한 가지를 다른 쪽으로 뻗어나가게 만드는 건 가능했다.

현무의 머리로 뻗어나간 번개는 바닷물 속을 이리저리 헤집다가 서로 부딪쳐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충격으로 밀려난 사르페돈은 감전과 폭발로 만신창이가 나를 보고 혀를 찼다.


“쯧, 빼앗진 못해도 유도는 가능하단 건가. 이런 얕은 수가 통할 줄이야. 짜증나는 군. 내가 어디까지 약해진 건지 가늠이 안 돼.”

“그래도 먹히긴 했잖아? 앞으로 두, 세 방만 더 먹이면 끝장이야.”

“누가 가만히 당해준데?”

“피할 기운이 있으면 피해 보든가.”


나는 마스가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150센치 남짓한 소년이 무언가를 돌리며 나를 노리고 있었다. 골리앗이나 효수보다 위험한 신력의 응집에 붕깅함을 감지했지만 피하지 못했다.

내 육체는 이미 소년이 날리는 돌멩이조차 피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권능: 소인 다윗]


빠악!

백호금강의 방어를 관통하는 돌멩이가 관자놀이를 맞혔다.


“캬핫! 소리 죽이는데!”


마스의 조롱이 아득한 정신 너머로 환청처럼 들려왔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에 급소에 정확히 맞았으니 죽는게 당연했다. 나도 잠깐 검은 강이 보였으니까.

그래도 나는 아직 쓰러질 수 없었다. 나는 최강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말도 안되는 점쟁이의 예언과 처음 만난 아름이와의 충동적인 약속이 내 목숨을 붙잡았다.

살아야한다는 강렬한 일념에 신력이 스스로 권능을 발휘했다.


[권능: 주작멸렬(朱雀滅裂)]


모래까지 녹여버리는 진홍색 불길이 사르페돈과 마스를 뒤덮고 주작의 날개가 나를 불길밖으로 끌어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나는 남은 힘을 쥐어짜내 최대한 높이 날아올랐다.


“불길로 시야를 가리고 공중으로 도망가는 전법이라. 상투적이군. 벌써 힘이 다한건가?”


불길에서 빠져나온 사르페돈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주작의 날개를 붙잡았다. 진홍색 화염까지 소멸시키는 제우스의 번개가 날개를 타고 내 육체쪽으로 다가왔다.


“죽어라.”


콰과과곽!!!!


“죽게 두지 않아.”


번개가 닿기 직전, 무언가가 사르페돈과 나를 갈라놓았다. 수십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제우스의 번개를 막은 나무에는 나와 사르페돈이 가지고 있는 신력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고귀하고 짙은 신력으로 만들어진 나무는 사르페돈을 휘감았다.


[가이아의 교목이 사르페돈을 구속합니다!]


“크윽!”


사르페돈은 번개를 내뿜으며 저항해봤지만, 아무리 제우스의 권능이라도 신력이 다한 사르페돈의 출력은 가이아의 교목을 불타기는 커녕 신력을 흡수해 가지를 뻗었다.


“몇분 전까지 형태 변형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가이아님의 대행자가 갑자기 이런 신력을 사용한다고? 말도 안돼.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믿었어요.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우리는 최강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까부터 누구 앞에서 감히 최강을 논하느냐! 내 영혼만 멀쩡했어도 이깟 나무따위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시끄럽고.”


나는 가이아의 교목에 손을 집어넣었다.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피워낸 따뜻한 신력이 가지를 타고 내 몸을 치유한 것도 모자라 청룡과 공명해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재수없이 무표정을 유지하던 사르페돈은 가이아의 신력이 청룡과 공명했다는 사실에 분노로 미쳐 힘껏 발버둥쳤다.


“아까 확장이 어쩌구 지껄였지? 번개는 내가 체험했으니까 이건 네가 체험해봐.”

“네 까짓 게 감히 몇 번이나 올림포스를 모욕하다니! 네 놈은 오늘 새벽빛을 볼 생각하지 말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만은 여기서, 지금 죽여주마!”

“불만 있으면 우리보다 쎄던가.”


[권능: 청룡승천(靑龍昇天)]


청룡의 비늘에 갇힌 사르페돈은 교목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신력이 다할 때까지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청룡승천. 가이아의 신력으로 만든 나무니까 어쩌면 한달 넘게 날아달지도 모르겠네.

뭐, 명색이 제우스의 대행자라는 인간인데 죽진 않겠지. 죽으면 재수 없는 거고. 나쁜 놈이 죽던 말던 내 알바 아니니까.

아름이 덕에 완전히 회복된 나는 주작의 날개를 피고 사뿐히 지상에 착륙했다.

전투가 시작된지는 이제 고작 1분. 짧은 시간이지만 수많은 공방이 펼쳐졌고, 승리의 여신은 확실히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떡하지? 3분간 버티려고 했는데 상황이 바뀌었네? 너 말이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가만히 서 있는 마스에게 자신만만하게 다가갔다.


“버틸 수 있겠냐?”

“멍청한 새끼야. 너는 내가 왜 가만히 상황을 살피고 있는지 모르겠냐?”

“왜 모르겠어? 이기지 못하겠으니까 비겁하게 꼬리 마는 거잖아?”

“나한테 승리와 패배는 중요하지 않아. 그 사이에 흐르는 피와 감정만 넘쳐난다면 나는 패배해도 충분히 만족해. 그런데 이건 아니야. 난 이 상황을 원하지 않았어.”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아마도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콰르릉!!!!


인지를 벗어난 속도.

번개가 내리쳤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나무가 불탄 뒤인 것처럼, 사르페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걸 눈치챘을 때 이미 제우스의 번개가 내 심장에 꽂힌 뒤였다.


[신기(神器): 아스트라페(ἀστραπή)의 가지]


“무엇도 남지 않는 소멸. 승리도, 패배도, 피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테니.”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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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데우스 엑스 마키나(2) 22.02.20 44 0 14쪽
5 데우스 엑스 마키나(1) 22.02.17 54 0 16쪽
4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4) 22.02.15 4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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