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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2.14 13:55
최근연재일 :
2022.05.20 22:31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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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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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94,550

작성
22.02.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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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데우스 엑스 마키나(3)

DUMMY

신력을 사용해 신의 신체를 구현해내는 현현의 경지. 언뜻 들으면 엄청난 깨달음이 필요한 것처럼 들리지만 나한테는 별 생각 없이 이뤄졌다.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방출한 신력으로 각자 신체를 구성한 사방신은 일제히 사흉수를 덮쳤다.


“저 햇병아리가 이젠 우리한테 일을 떠맡겨! 이 빚은 나중에 몇 배로 갚아야 할 거다!”

“키하하! 몸이 조금 흐릿하지만 약해진 돼지 새끼 상대로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래.”

“조심해. 우리가 밖으로 나와 있는 동안 권능은 사용할 수 없으니까.”

“벌써 현현의 경지라. 이거야 원, 늙은이에게 쉴 틈을 안 주는구먼.”


주홍색 깃털을 흩날리며 하늘을 불태우는 남쪽의 수호신 주작.

뱀과 거북의 머리로 혼돈의 날개를 물어뜯는 북쪽의 수호신 현무.

특기인 무쇠 같은 앞발로 도올의 머리를 내리친 서쪽의 수호신 백호.

한겨울 메마른 나무에 생기를 불어넣어 무기로 사용하는 옥빛 비늘을 지닌 용이자 동쪽의 수호신 청룡,

방출한 신력을 바탕으로 구현된 사방신의 형체는 지친 사흉수를 몰아붙였다.


“부탁할게요!”

“염려 말거라. 요놈들도 어디서 얻어맞고 왔는지 힘아리가 없구먼?”

“청룡! 인간한테 빌붙어 사는 축생이 기어이 인간의 밑으로 들어간 거냐? 구역질 나는 녀석 같으니!”

“어쭈구리? 야! 네가 우리 영감 욕했냐? 다 뒤졌어!”


[권능: 주작극렬(朱雀極烈)]


콰앙!!!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주작의 불길이 사흉수를 덮쳤다. 기운 넘치는 모습을 보니 적어도 쉽게 지진 않겠네.

한시름 놓은 나는 그사이에 저 멀리 도망친 구미호를 쫓았다. 불사조의 신력으로는 날개도 못 펼치는 상태였지만, 아름이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뜀박질로 서서히 구미호를 따라잡았다.


“진짜 끈질긴 인간이네! 사방신의 신력도 없는 네가 날 어떻게 이기겠다고 쫓아오는 건데?”

“알 게 뭐야! 난 최강이거든?”

“누가 물어봤니? 아, 짜증나! 진짜 죽여버린다?”

“덤벼!”


구미호는 갈수록 박차를 가해 쫓아오는 구원을 흘겨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말도 안 돼. 무슨 인간이 저렇게 빨라?’


사방신의 신력이 빠져나갔으니 싸운다면 이길 자신은 있었다. 그렇지만 갈수록 진해지는 악취와 불길한 기운을 가진 인간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두, 세시간만 지나면 여우 구슬이 한아름의 영혼을 흡수할 것이고, 가이아의 신력을 담을 그릇을 손에 넣는다면 승천도 꿈이 아닌 상황. 십 년에 걸친 노력이 결실을 보기 직전인 구미호로서는 작은 변수라도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피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겠지. 신체 능력은 나보다 뛰어나 보이니까. 어쩔 수 없나?’


구미호는 도망치기를 멈추고 한아름을 여우 구슬과 함께 띄워놓았다.


[요술: 둔갑-인(遁甲-人)]


“그렇게 따라오니 어쩔 수 없네. 적당히 놀아줄게.”


아무리 도망쳐도 자칭 최강이라는 인간이 쫓아온다면, 차라리 장단 맞춰주면서 시간을 끄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구미호는 신력을 끌어모았다.

구원은 사람 형태로 변한 구미호에게 주저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놀고 싶으면 요단강에서 물수제비나 실컷 하셔!”


신체 능력만 따지면 지금의 구원과 구미호는 서로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신력을 쓰는 존재들의 싸움은 신체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신체 능력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요소일 뿐,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었다.


[요술: 간 빼먹기]


누구의 권능이 더 효과적이냐. 신적 존재의 싸움은 언제나 권능의 결정력이 승부를 좌우했다. 그 의미에서 구미호는 사흉수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신체를 지녔음에도 그들과 동급에 설 수 있었다.


“수호신의 권능도 없는 인간 따위 얼마나 강하던 내 상대는 못돼.”


다만 구미호가 상대하는 남성.

구원은 신들의 싸움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 뭔가 될 것 같은데 안되네. 처음 죽었을 때처럼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가? 야, 여우.”


[권능: 생명회귀(生命回歸)]


최강이니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반드시 이길 거라는 기묘한 확신이 구원의 사고와 행동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더 죽여봐.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거든.”


태연하게 부활해 죽여달라는 부탁을 하는 구원을 본 구미호는 긴장으로 바짝 선 털을 가라앉혔다. 꺼림칙한 느낌을 애써 무시한 구미호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너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내가 제대로 미쳐? 네가 아직 진짜 미친놈을 못 봤구나?”

“푸엣췡! 아우, 코가 욀케 간지럽냥. 누가 내 얘기 하나.”


대마도에서 명상하고 있던 마스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럴 땐 귀가 간지럽다고 하는 거다.”

“헹! 뜻만 비슷하면 됐지 뭘 바래?”


명상 자세로 망가진 혼을 고치고 있는 두 대행자.

구원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이들이 한아름을 데리러 다시 한반도에 상륙하는 건 조금 먼 미래의 일이다.


***


신수호의 가호를 두른 사람들은 허리가 휜 노인조차 3대 500은 거뜬할만큼의 힘을 발휘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장인과 하얀 괴수 장산범 같은 신화가 적은 요괴는 도리어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사로잡히는 처지가 될 정도였다.


“수호신님! 이것 보세요! 저희가 요괴를 쓰러뜨렸어요!”

“이제 더 이상 잡아먹힐까 봐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사람을 지키는 수호신과 사람을 해치우는 요괴의 신화는 극악의 상성. 일반적으로 두 존재는 싸움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괴들이 신수호를 공격한 이유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신화를 쌓아온 자신들이 고작 인간이 만든 열 살짜리 가짜 수호신한테 질 리 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자만이고 오만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겐 자존심이었다. 비록 인간의 거짓 믿음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일지라도, 자신의 수백 년의 삶에 가치가 있을 거라는 믿음.


“케헥! 다, 다시는 넘어오지 않겠, 사, 살려···!”


신수호는 엉망진창으로 당한 범을 잡아먹는 요괴 추이를 내던졌다.


“이 가짜 수호신이!”


[권능: 마마(媽媽)]

[권능: 수호의 방패]


지금껏 수없이 많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역신이 가진 최악의 권능이 신수호의 보호막에 썩은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소진한 역신은 팔을 축 늘어뜨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추이, 그슨대와 그슨새, 장산범, 장인, 팔척귀신까지. 모든 요괴가 힘을 모았는데도 수호신 하나를 이기지 못했다. 상황이 기울자 주민들은 농기구를 들고 환호했다.


“이겼다! 수호신님이 역신을 물리쳤어!”

“아니야···. 나는 아직···.”

“이제 요괴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아!”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발 뻗고 잘 수 있겠어요!”

“아니야! 아니야! 우리는 요괴다! 인간을 잡아먹고, 죽이고, 너희들이 두려워 마지않는 흉악한 존재란 말이다! 너희들은 우리를 두려워해야 한단 말이다!”


역신이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주름살은 축 늘어지고 사지는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역신의 모습은 평범한 노인과 다를 바 없었다.

주민들은 신수호의 등을 떠밀어 역신 앞에 세웠다. 자신들의 수호신이 요괴의 우두머리를 해치우는 보고 싶었던 주민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수호신님! 요괴를 해치워주세요!”

“죽여주세요!”

“죽여라!”

“죽여라!”


칼을 들고 역신과 마주 선 신수호는 주민들을 둘러보았다.

처음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누군가를 죽여달라고 진심을 바란 적은. 자신의 검으로 누군가를 베어 달라고 부탁한 적은 여태껏 없었다.

수호는 고개를 내려 역신을 바라보았다. 동현이의 친부모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흉악한 요괴라도 귀가 닳도록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로 처음 본 요괴의 우두머리는 자신이 생각한 악귀의 모습과 달랐다.

그저 식은땀을 흘리는 노인. 자신의 분노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늙은 육체에 한탄하는 노인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수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분노를 물려받지 못했기에. 해질녘까지 친구와 놀기를 좋아하고,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수호에게 타인을 죽일 정도의 분노는 없었다.


“나, 나는 죽이기 싫어요. 안 죽일래요. 나 갈래. 집에 갈래요.”


수호는 잔뜩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수호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은 수백명의 주민 사이에서 그의 누나밖에 없었다.

신수하는 수호를 노려보는 주민들을 가로막았다.


“그만두세요! 수호한테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거에요?”

“수하야! 누가 수호신님 이름을 막 부르래?”

“이번엔 네가 잘못했다. 수호신님은 수호신님이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과 같은 잣대를 세워선 안 된다.”

“개소리 집어치워! 아무도 내 동생에게 살인을 강요할 수 없어!”


짜악!


한 사람이 신수하의 뺨을 후려쳤다.

이 마을에서 신수하를 건드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딸에게 손을 댄 신유신은 팔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살인? 네 엄마를 죽인 요괴야. 부모의 원수를 자식이 갚는 게 뭐가 문제지?”

“나도 알아. 하지만 엄마도 수호가 죽이기는 원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 마음은 딸인 내가 제일 잘 알아.”

“나는 그이의 남편이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혹여나 새어 나오지 않을까, 십년 전 그날 이후부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수호신이 요괴를 동정하고 하나뿐인 자식이 수호신을 두둔하자 신유신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그날 막 태어난 수호를 안고 도망친 너는 네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눈으로 봤어! 저놈도 같이 있었어! 네 엄마가, 내 유일한 사랑을 죽였어! 수호신님! 저 요괴를 죽여주십시오!”

“싫어. 싫어요. 아버지···나 안 하면 안 돼요?”

“어디서 그 더러운 입으로 나를 아버지라 불러!”


신유신은 처음으로 수호신에게 반말을 했다.

사람으로 대하기조차 역겨운 신유신은 신수호를 태어난 이후부터 신으로 모셨다. 사람이 아닌 초자연적인 존재로 생각하면 수호를 마주했을 때 몰려드는 역겨움이 그나마 진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호가 자랄수록 신유신은 아예 신수호와 접촉하기를 거부했다. 성당이 아니면 신유신은 신수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있다면 저주하리라. 운명의 신이 있다면 원망하리라. 비극적이게도, 신수호는 그의 어머니이자 자자신의 부인인 새온을 빼닮았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성격마저도.


“너만, 너만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옆에는 그이가 살아있었을 거야! 그이는 널 위해 죽었어! 그러니까 너는! 수호신님은! 요괴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제 아내의 희생이 가치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만하라고 했잖아!”

“시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수하 너도 얌전히 좀 있어.”

“분노와 혼란, 공포, 독기가 가득한 상큼한 향에 벌써부터 군침이 도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혼란을 잠재우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구원자의 등장.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가 기적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구원자가 나타난다면 최고의 결말이겠지만, 대부분은 두 번째 해결책에 의해 사태가 진정된다.


[소환: 거구귀(巨口鬼)]


요괴와 인간, 종족을 가리지 않고 마을에 있는 모두가 허공에서 나타난 괴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구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독기가 모두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자는 누구라도 죽을 거라고.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굳어버린 존재들 앞에 해맑게 뛰쳐나온 청년은 신수호에게 다가갔다.


“네가 여우가 업어 키웠다는 인간이니? 생각보다 훨씬 어리네?”


혼란을 잠재우는 두 번째 방법.

피아를 구별하지 않는 압도적인 폭력의 향연.


[독룡(毒龍) 강철이 대구에 강림합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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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최악의 구원자(2) 22.04.16 41 0 14쪽
8 최악의 구원자(1) 22.02.24 36 0 13쪽
» 데우스 엑스 마키나(3) 22.02.23 36 0 12쪽
6 데우스 엑스 마키나(2) 22.02.20 45 0 14쪽
5 데우스 엑스 마키나(1) 22.02.17 55 0 16쪽
4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4) 22.02.15 47 0 14쪽
3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3) 22.02.14 49 0 12쪽
2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2) 22.02.14 61 0 12쪽
1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1) 22.02.14 15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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