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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선티플님의 서재입니다

자칭 최강 최악 구원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에선
작품등록일 :
2022.02.14 13:55
최근연재일 :
2022.05.20 22:31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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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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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94,550

작성
22.05.0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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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최악의 구원자(3)

DUMMY

갑작스레 발생한 경계의 붕괴. 높은 존재일수록 그 변화를 빠르게 인지했지만, 격이 낮은 신이나 요괴는 낯선 세상에 적응하기도 벅찼다. 특히나 겁이 많은 구미호는 자신이 발을 붙이고 있는 세상이 인간 세상이라는 걸 알고 움직이기까지 꼬박 사흘이 걸렸다.


“이상하네. 원귀가 거의 없어. 묘묘가 그 난리를 쳐서 거의 다 죽지 않았나? 원한이 생길 틈도 없이 죽어서 그런가?”


일단 원귀라도 수집할 겸 굴을 빠져나온 구미호는 무작정 폐허를 걸었다. 세상은 구미호의 예상에 단 한치도 들어맞지 않았다. 수백 년 전, 자신에게 천계에 다다르기 직전까지 신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세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네. 복원도 안 되고, 운명도, 인과도 없어. 이런 재미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 거야? 정말 이쪽 세계의 인간들이 우리의 창조주라고?”


인간의 세계에 대한 기대가 산산조각 난 구미호는 급속도로 관심이 식어갔다. 만약 시야에 들어온 단 한 명의 생존자가 없었다면 구미호는 지금까지도 여우굴에 숨어있었을 것이다.

배낭을 메고선 쇠 긁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한 생존자는 다른 생존자를 찾는 듯했다. 호기심이 동한 구미호는 인간 형태로 둔갑해 살금살금 생존자에게 다가갔다.


“어흥!”

“으악! 깜짝이야!”


생존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꾀죄죄한 몰골에 초췌한 눈을 한 청년은 인간 모습의 구미호를 보더니 허겁지겁 옷을 털고 일어섰다. 폐허 속에서 깨끗한 구미호에게 위화감을 찾을 틈도 없었던 청년은 구미호의 손을 잡고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맙소사! 정말 생존자가 있었어! 다행이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없어. 그보다 뭐 하고 있었어? 그렇게 멍때리고 돌아다니다간 호랑이가 이놈 한다?”

“하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배고프진 않으세요? 운 좋게 멀쩡한 편의점을 찾아서 음식 좀 챙겨왔어요. 약이랑 반창고도 혹시 몰라서 챙겼어요!”


눈물을 닦은 청년은 가방을 열어 물과 빵을 꺼냈다. 어떻게든 부피를 늘리려고 있는 힘껏 압축된 편의점 빵의 형태는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잃을 정도였다. 인간 세계의 음식에 흥미가 있던 구미호는 일시적 흥미보다는 자신의 미각을 보호하기를 선택했다.


“너나 잡수세요. 그나저나 음식도 챙기고 의약품도 챙겼으면서 뭘 찾고 있었던 거야? 자동차가 이 폐허에서 움직일 리는 없고, 말이라도 찾고 있었어?”

“설마요. 여기가 제주도도 아니고,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찾고 있었어요.”

“속 편하게 사네. 그럴 시간에 네 목숨이나 챙기지 그래? 짐승은 둘째치고 슬슬 이쪽 세계에 적응한 요괴가 인간을 사냥하기 시작했어.”

“사실 몇 시간 전에 이미 한 번 봤어요. 무너진 건물 사이로 몸을 숨겼는데, 그냥 지나치더라고요.”

“너처럼 무방비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을 못 보고 지나쳤다고? 기적적이네.”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상황을? 만약 기적이라면 가냘프기 그지없어 차라리 끊어졌으면 좋겠네요.”


청년은 풀썩 주저앉아 구미호에게 권했던 빵을 입에 넣었다. 그동안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넘어지듯 앉은 청년은 까맣게 자리 잡은 다크서클을 매만졌다. 무리하게 소리 지른 목은 빵을 삼키는 것조차 버거워 기침을 했고, 빵가루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억지로 빵을 삼킨 청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다 죽고 저만 살았어요. 가족 중에서 제일 몸도 안 좋고, 머리도 나쁜 제가요. 1층까지 내려가기 귀찮아서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데, 갑자기 충격파가 날아왔고, 저는 운 좋게 나무에 걸쳐서 찰과상만 입고 살아남았어요.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시체더라고요. 제가 살던 아파트는 아예 무너졌고요. 시멘트의 산을 보니까 가족의 시체를 찾을 엄두도 나지 않더라고요. 배가 고파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편의점을 찾았더니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어요. 두 사람 다 베이거나 찔린 상처가 있었고, 무엇보다 복부에 칼이 꽂혀 있었어요. 아마 둘끼리 음식을 두고 칼부림이라도 했겠죠. 한 사람은 아직 숨이 붙어 헐떡이고 있었는데, 10분만 일찍 편의점을 발견했더라면 누워있는 사람은 제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본 요괴도 있잖아요. 아가리에 이미 사람을 물고 있었어요. 당신 말대로 틀림없이 제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 이미 사냥을 마쳤으니 저는 놓아준 걸까요? 모르겠어요. 너무 많아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구미호는 청년을 이해하지 못했다. 청년이 말했던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엄청난 행운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구미호는 의문이었다. 청년의 얼굴에는 기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불안으로 덮여있었다. 평생을 부여받은 서사에 갇혀 산 구미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째서 나만 살아남았을까? 왜 나만 아직 살아있지? 이 사람들보다 내가 뭐가 낫다고? 의문이 제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요. 눈앞에서 널브러진 시체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어요. 죄책감이 떠나가질 않아서 숨을 쉬질 못하겠어요.”

“의미가 필요해? 네가 죽인 것도 아니고, 살아있으니 다행이잖아? 아니면 뭐 죽기를 바란다는 거야?”

“당연히 저도 살고 싶죠. 그렇기에 필요해요.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곳에 숨 쉬는가? 제 생존에 가치가 있어야만 해요. 저 자신을 납득시키고 싶어요. 나는 살아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단순히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아닌,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아남은 거라고요.”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청년의 고뇌를 본 구미호는 확신했다.

이들이야말로 나의 창조주다. 단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넘길 수 있는 현상을 현상으로 넘기지 않는다. 그 현상에서 가치를 부여한다. 사고를 멈추지 않는다. 죄책감을 만들어 스스로 등에 짊어지고, 불안에 휩싸이며, 끝끝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무모하기 그지없다. 실존하지도 않는 가치 따위가 목숨보다 중요할 리 없다. 1분 전까지의 구미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저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하는 구호 활동도 하찮은 자기만족이니까요. 며칠 전부터 머리에 울리는 소리로는 서울에 단군과 웅녀가 터를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이것도 신의 힘일까요? 당신도 들렸죠? 저는 편의점에서 다시 음식 챙기면 되니까 제 가방 가지고 가세요. 무사히 도착할 가능성은 작지만, 여기 있는 것보단 낫겠죠.”

“너는 안 가?”

“글쎄요. 이제 한 명 도와줬으니까, 아흔 아홉 명만 더 구해볼까 해요. 백 명이 어감이 좋잖아요?”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 보긴 어렵겠네.”

“왜요? 저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서울로 갈 건데요?”

“얼씨구, 퍽이나.”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스스로 정한 서사의 길. 비극을 암시하는 어두운 비극의 길을 걸으면서도 희망을 확신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구미호는 빛을 보았다.

백 명 중 아흔 아홉 명은 실패할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은 잡초의 양분이 되고, 가치는 흥얼거리는 한 구절의 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 오직 단 한 명만 잡을 수 있는 가냘픈 기적의 끈이 있다면.


“넌 이름이 뭐야?”

“시온이요. 송시온.”

“난 구미호야.”

“아, 미호씨. ···네?”


끈을 붙잡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둔갑을 해제한 구미호는 하늘하늘한 꼬리를 흔들었다. 지금까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화했던 구미호가 여우 형태로 변하자 시온은 넋이 나간 것처럼 미호의 꼬리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왜? 여우 처음 봐? 무서우면 도망쳐. 쫓지 않을게.”

“꼬리···.”

“응?”

“꼬리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저 어렸을 때부터 동물 꼬리 꼭 만져보고 싶었거든요!”

“안돼.”

“한 번만요!”

“안된다니까!”

“제발요!”

“저리 가!”


구미호에게 생존자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도중에 갑자기 탑이 솟아오르거나, 불가사리가 움직이는 일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때때로 불필요한 반복이라고 느껴진 적도 있었으나, 점점 밝아지는 시온의 낯빛을 보면 어째서인지 가슴이 두근대는 것 같았기에 구미호는 시온과 함께 생존자를 구했다.

백 명째 생존자를 서울에 데려다준 구미호는 후련한 마음에 기지개를 켰다.


“아효, 길었다. 누군가 나한테 고맙다고 웃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네.”

“나는 매일 미호한테 고마운데?”

“그래서 내가 네 얼굴 안 보잖아.”

“너무해!”

“시끄러워. 언젠가부터 말을 놓질 않나, 능글맞아지기나 하고 말이야. 누가 여우인지 모를 지경이라니까?”

“그야 꼬리가 있는 쪽이 여우지. 만져도 돼?”

“안돼.”


구미호가 꼬리로 손등을 때리자 시온은 아픈 척을 하면서 손을 털었다. 시온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가족 중에서 가장 무능하다고 자책했던 시온이지만, 누군가 안 좋은 일을 겪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다가간 사람도 시온이었다.

그때 가족에게 느꼈던 근심 섞인 목소리가 구미호의 물음에서 들렸다.


“이제 백 명도 채웠네. 앞으로 뭘 하면서 살 생각이야?”

“그러게. 당연히 사람들을 전부 구하기 전에 죽을 줄 알았는데, 누구 덕에 목숨을 건져서 난처하게 됐네.”

“불만이라는 뜻이야?”

“당연히 반대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

“감사 인사는 됐어. 빨리 가기나 해. 너도 서울로 갈 생각이잖아. 당연해. 단군과 웅녀 밑에서 살면 안전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거야.”


요괴는 수호신과 함께하지 못한다. 둘 중 하나가 소멸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서사는 아니다. 남매가 한 방에 살지 못하는 것처럼 생리적 거부감이 든다고 생존자를 찾는 도중 구미호가 시온에게 말했었다. 당시에는 왜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하나 생각했던 시온은 표현이 서투른 구미호가 귀여워 헤실거렸다.

구미호와 서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시온에겐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저울질이었다.

시온은 나아가는 대신 옆에 서 있는 구미호의 어깨에 뺨을 비볐다.


“네 옆에 있을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요괴가 어떻게 인간하고 같이 살아?”

“그러게. 어떻게 살까? 궁금하지 않아? 사랑하는 요괴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


구미호가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시온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두 달 전, 무의미한 삶에 가치를 찾던 자신을 어째서 도와줬는지, 자신과 만나기 전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세상이 어떻게 이런 꼴이 되었고, 구미호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시온은 아무것도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나랑 같이 살자. 미호야.”


구미호는 항상 자신을 사랑해 주었다.

그녀의 시야에 머무르는 한, 시온은 사랑받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그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었다.

반지도, 꽃다발도 없는 허술한 고백에 구미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나 참···. 누가 여우인지 모르겠네.”


빛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신도 빛 속에 있었다.

주례 없는 결혼을 맺은 구미호는 이듬해에 자식을 낳았다. 사람과 여우의 자식이라는 의미에서 인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종종 생존자나 낙오자가 나타나면 서울로 안내해주며, 구미호는 시온과 처음 만났던 강원도 산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감정이 틀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한 기억만을 남기며 아홉 번의 봄을 보냈다.

벚꽃이 떨어지는 어느 날, 봄기운에 꾸벅꾸벅 졸던 구미호는 문득 평야에서 뛰노는 두 부자를 보았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생활. 화려한 빛을 지니던 청년과 천 년의 서사를 머금은 구미호가 지금은 평범한 부부가 되어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엄마! 이 꽃 예쁘지! 엄마 닮았어! 여기 선물!”

“조심히 뛰어. 넘어질라.”


어쩌면 청년의 빛은 천계에 다다를 믿음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천년 묵은 구미호는 이쪽 세계의 믿음을 이용해 전설의 천호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도 요괴도 아닌 저 불완전한 생명이 모든 가능성을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문득 떠오른 질문에 구미호는 싱긋 미소 지으며 자답했다.

설령 자신의 모든 서사가 스러지더라도, 저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구미호가 원한포식에 저항합니다!]


“네가 진짜 구원자라면 십 년 전에 인호를 구해줬어야지. 차라리 십 년 전에 나를 죽여줬어야지. 이제 와서 내 원한을 빼앗겠다고? 그것이 네가 말하는 구원이야?”


육사는 구미호의 정신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비록 내용물은 다르지만, 원한포식의 권능은 대상의 영혼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붙잡는 형식.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자극해 원한을 빼앗는 권능이다. 육사 본인도 원한포식에 잡아먹혀 속수무책으로 당한 만큼 그 위력만큼은 불가항력이라 여겼다.

그러나 구미호의 변화에 권능을 멈춘 원한포식을 본 육사는 단 한 가지 약점을 발견했다.


“나의 구원은 20년 전에 완성되었고, 10년 전에 문드러졌어. 여기 남아있는 나는 원한만이 썩지 않은 시체야. 시체에게 구원은 필요 없어.”


원한포식은 대상과 접촉을 필수 조건으로 발동되는 권능. 일단 접촉하면 대상의 원한을 전부 흡수하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못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원한을 흡수하기 위해선 대상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뜻이 된다.

구미호는 논제를 파훼하기 위해 불완전한 여우 구슬을 해방했다.


“단지 저승길을 외로이 걷지 않을 길동무가 필요할 뿐.”


[설화재현: 화(化)]


설화에 따르면 인간과 혼약을 맺은 구미호는 여우구슬에 소원을 빌어 자신 또한 인간이 된다.

그러나 혼약자와 자식은 명을 달리했고, 한때 구미호였던 존재는 이미 원한밖에 남지 않았으며, 인간의 혼만을 담아야 할 여우 구슬은 불경하게도 가이아의 신력을 담았다.

여우 구슬에서 해방된 신력은 구미호의 몸을 난도질해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대상의 성질이 변했으므로 원한의 권능이 해제됩니다!]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거센 빛이 사그라들자, 한때 구미호였던 것의 형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간 크기였던 신체는 코끼리가 귀여워 보일 정도로 거대해졌고. 갈비뼈와 척추는 신체를 뚫고 검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으며, 오른쪽 앞발은 신체에 비해 지나치게 비대했고, 왼쪽 뒷다리는 뼈만 달그락거리면서 움직였지만, 이 모든 문제가 사소해 보일 정도로 구미호의 머리는 기괴하게 변형된 상태였다.

불안정한 분인으로 태어났으나 영원한 사랑의 약속을 맺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죽음으로 떼어진 두 존재. 눈물을 흘리는 머리와 죽은 눈의 머리는 서로의 어금니가 서로의 혀를 씹고 있었고, 분열되다 만 눈동자에서 눈물의 좌안과 시체의 우안이 시선을 움직이다 부딪쳐 인상을 찌푸렸다.

무엇보다 끔찍한 건 척추와 머리 사이에 돋아난 또 하나의 머리였다.

이제야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빼꼼 머리를 내민 어린 여우의 형상을 한 머리. 해맑게 웃고 있는 머리의 눈은 공허하게 비어있었다.

삼두구미에게 온전한 부분이라고는 시온이 특히나 좋아했던 함박눈처럼 포근한 아홉 개의 꼬리뿐이었다.

유일하게 자아가 있는 눈물의 머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악신(惡神) 삼두구미가 울부짖습니다!]


과거, 과분할 정도로 채워졌던 행복을 빼앗긴 여우는 아직 충분히 울지 못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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