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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적장 서재

이계군단 소환술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김동하
작품등록일 :
2021.06.12 15:14
최근연재일 :
2021.07.0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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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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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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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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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3_버려진 세계 (1)

.




DUMMY

3_버려진 세계 (1)









북위의 수호신 현무가 말했다.


「너희는 버려짐과 죽음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내 소설이 현실이 된 세계.

그러나 나는 바뀐 세계에서 주인공은커녕 엑스트라도 되지 못했다.

내게는 어떤 듀토리얼도 발동하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만들어낸 세계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내게도 최초의 튜토리얼이 발동했다. 그런데 그 튜토리얼이 내가 쓴 소설이 아니라 기타자료들로 이뤄진 세계의 것이었다니.


내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현실이 된 내 소설과 <버려진 세계>란 이름으로 등장한 기타자료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건 태초에 창조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몰입하고 있었다.


“나는 버려짐도 죽음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이번 튜토리얼이 실패하면 호텔이 붕괴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예슬이가 죽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당할 순 없었다.

이 미친 튜토리얼을 완료해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성공 보상인 각성권 때문이었다.

각성권만 있다면 예슬이의 진학에 대한 고민도 밀린 월세와 공과금 따위의 걱정들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이런 걱정도 세상이 온전할 때의 이야기지만.


“나는 <버려진 세계>를 되찾고자 합니다.”


「구오오오!」


현무의 웅혼한 숨결이 동공 안을 숨 막히게 채웠다.

이제 내 대답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현무가 던진 선택지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죽음을 택한다면 말 그대로 살해될 것이다.

그렇다면 버려짐 쪽은 어떨까?

내 예상이 맞다면 ‘버려짐’은 이 기타자료로 이루어진 세계에 영원히 갇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슬이와는 물론이고 기존의 현실로부터의 영원한 격리.

이렇게 본다면 본래 북위의 수호신이던 현무의 현재 역할은 수호신보다는 교도관에 가까웠다.


「교만하고」

「어리석으며」

「위태로운 선택이구나.」


거북 머리와 뱀 머리가 번갈아가며 말했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 뱀의 머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 푸쉬쉭.


거대한 독니에서 떨어진 독액이 암석으로 된 바닥에 깊은 구멍을 뚫었다.


「선택지를 벗어난 선택이다. 그러니 이 몸이 합당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다. 넌 죽고 나머지 둘은 버려진다.」


“안 돼!”


최악의 전개였다.

나는 나를 덮쳐오는 뱀의 머리를 향해 본능적으로 가시를 휘둘렀다. 그러나 독니에 닿은 가시는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동시에 거북의 머리가 내 옆을 스쳐 지났다. 등 뒤에서 강렬한 냉기가 느껴졌다. 돌아보니 박주은과 다솜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설마 버려진 세계로?’


그러나 내게는 두 사람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뱀의 머리가 내 몸통을 문 것이다.

강철화가 된 피부조차 이 강력한 신수의 독니 앞에서는 무용했다. 나는 내 복부에 난 주먹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을 보며 절망했다.


“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주견사 사념체 각인 효과가 발동합니다.]

[당신의 몸이 맹독에 저항합니다.]

[해당 독의 강력함에 항독력이 반감됩니다.]


「오호라. 신기한 육신이군.」

「저 아이에게서 주견사의 혼이 느껴지네만.」

「착각일 테지. 그런 일이 가능할 리······.」


뱀머리와 거북머리의 대화가 흐릿하게 들렸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그러자 이대로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어차피 별 볼일 없는 인생 아니었는가.


「···설마 그 전설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더더욱 살려둘 수 없는 일. 어떻게 일군 질서인데 다시 혼란에 빠지게 할 순 없잖은가.」


이 죽음이 나만의 것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나 하나의 죽음으로 끝나는 일일까?

다시금 예슬이의 웃는 모습이 스쳤다.

예슬이만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여기서 죽으면 예슬이도······.


「아니, 저 빛은!」

「···설마 재림의 빛?」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현무의 두 머리가 나눈 대화였다.

나는 암전에 갇히듯 죽음을 맞이했다.


*


[당신은 ‘버려진 세계’에 입장한 최초의 존재입니다.]

[문장 <버려진 세계의 최초 발견자>를 획득합니다.]


[‘버려진 세계’가 군왕의 귀환을 인지합니다.]

[‘버려진 세계’가 당신과 감응합니다.]

[감응력이 10% 상승합니다.]

[현재 감응력 수치는 12%입니다.]


[당신은 버려진 세계(1) 튜토리얼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각성권을 획득합니다.]


‘죽었던 게 아니었나?’


나는 서둘러 복부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셔츠에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그 안쪽은 피부로 막혀있었다.


“윽.”


아직 독에 중독된 영향은 남아있는 듯했다.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살아있음이 더 실감났다.

주견사 사념체의 각인 특성인 항마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저 세상 문턱을 넘었을 거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부활한 거거나 아니면 죽지 않았던 거라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살아있단 사실보다 고마운 건 튜토리얼을 완료했다는 사실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내가 있는 장소가 밀림임을 알았다.

조금 전 알림대로라면 나는 버려진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곳에 갇힌 셈이고.

당장 본래의 세계로 어떻게 돌아갈지가 막막했다.

설사 우여곡절 끝에 지나온 관문을 찾아내더라도 현무가 버티고 있으니까.


대강의 상황파악을 마친 나는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고기 굽는 냄새 같은데.’


새삼 허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고기를 굽고 있는 자들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

연기는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연기가 나는 방향을 향해 다가갔다.

모닥불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가 꼬치에 꽂혀 구워지고 있었고 두 사람이 모닥불 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중 한 명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내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날 돌아봤다.


“이제 깨어났군요.”

“당신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헤드헌터 아랑에게 다가갔다. 아니 사기꾼에게.


“일단 진정 좀 하세요.”

“진정? 사람을 사지로 내몰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지?”


곧장 아랑에게 다가가던 나는 그녀 곁에 있던 사내가 일어서는 걸 보고 주춤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다.

경갑옷 사이사이로 드러난 근육질 몸매. 얼른 보기에도 기세가 남달랐다.

나는 사내에게서 시선을 거둬 다시 아랑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녀의 모습도 뭔가 이상했다.


“다, 당신 귀가······.”


뾰족하고 기다란 귀.


“아참, 엘프는 처음 보죠?”


호텔에서 정장에 어울리지 않게 비니를 쓰고 있던 건 저 귀를 감추기 위해서였나?

하긴 내가 쓴 소설에서는 엘프란 종족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구상단계에서는 엘프에 대해 구체적인 인물까지 설정하긴 했었다. 결국 실제 소설에 등장시키진 못했었지만.


‘어라. 그러고 보니······.’


기억을 확장시키자 확실히 눈앞의 엘프가 눈에 익었다.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데도 그녀에게 기시감이 드는 이유라면 하나뿐이었다. 저 엘프는 내가 기타자료에 묻어둔 인물인 것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랑이란 이름 때문에 미처 몰랐다. 아마도 저 아랑이란 이름은 가명일 것이다.


“당신 레이첼이지?”


맞는 걸까? 나조차 오래도록 잊고 있던 이름이라 확실치는 않았다.

다행이 엘프의 눈이 커지는 걸 보니 정확한 이름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럼 그쪽은······.”


나는 사내의 이름을 떠올리고자 인상을 찌푸렸다.


“신은 감무율이라 하옵니다.”


감무율?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쪽도 가명입니까?”


이후 감무율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와 레이첼은 버려진 세계를 벗어나 대한민국에서 움직이며 그에 맞는 이름을 자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꽤 오래 가명으로 지내다 보니 지금은 이쪽이 더 익숙합니다. 계속 이 이름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그건 귀하가 우리의 군왕이기 때문입니다. 앗! 이리 경솔한 말투를 사용하다니. 죽여주십시오!”


군왕이라니.

앞서 군왕의 귀환 어쩌고저쩌고 하는 알림을 들을 때부터 줄곧 의문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내 무의식이 그 알림에 대해 수긍하고 있다는 부분이고.

얼른 생각하기로는 내가 이 버려진 세계 또한 만들어낸 존재, 즉 작가라는 사실이 유일한 단서였다. 아마도 이곳의 존재들은 저들의 창조주인 존재를 작가로 인식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냥 편하게 말해요. 현대인처럼.”

“혀, 현대인처럼 말입니까?”

“네.”

“현대인의 말이라면 혹시 개빡치네, 존맛탱, 이런 걸 말하시는 건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아, 그냥 맘대로 해요.”


내 이어진 답변에 감무율은 더 난처한 얼굴이 됐다.

하긴 생각해보면 맘대로 하란 말만큼 아리송한 말도 없었다.

감무율이 바른 언어사용에 대해 내적갈등을 겪는 사이 아랑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희랑 갈 곳이 있어요.”


그러나 내 눈은 모닥불 가장자리에 꽂힌 꼬치구이에 꽂혔다.


‘아니 지들만 쳐 먹고 먹어보란 얘기 한 번을 안 하네.’


나는 어딘가 냉랭한 아랑보다는 감무율이 나을 것 같아 다시금 감무율을 돌아보았다.

역시 감무율은 손님 접대의 예를 아는지 먹음직스럽게 익은 꼬치 하나를 집어 들더니 내 쪽으로 내밀었다.


“무슨 고기죠?”

“토끼 고기입니다. 앗! 또 결례를 범했습니다. 감히 주군께 이런 천박한 음식을 올리려 했다니.”


감무율은 난데없이 제 뺨을 한 대 치더니 토끼고기를 제 입으로 우겨넣었다.


“우적우적. 이런 건, 우적우적, 저 같은 놈이나 쳐 먹어야. 우적우적.”


예의 따질 시간에 눈치를 더 배웠으면 좋을 걸 그랬다. 저 정도 눈치로 한국 생활을 했다면 고생 꽤나 했을 테데.

이대로라면 남은 음식도 순식간에 사라지겠다 싶어 잽싸게 감자구이처럼 생긴 꼬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찌 그런 천한 음식을······.”

“뱃속에 들어가면 다 같아요.”


나는 감무율의 말을 일축하고 이미 앞서 걷기 시작한 아랑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죽었던 게 아닌가요? 그때 분명······.”


비록 항독력이 있다고 해도 복부에 생겼던 상처만으로도 회복 불가수준이었다.


“설명하려면 길어요.”


아랑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먼저 버려진 세계에는 세 가지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세 가지요?”


“시간과 서사, 그리고 죽음이 없죠. 그리고 그게 이곳이 버려진 세계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왜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시간이 흐르고 있는 반증 아닌가요?”


“그저 멈춘 시간 속을 해매고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죽음도 없죠. 같은 이유로 서사도 쌓이지 않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있나요?”


확인차 질문이었을 뿐 이미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부분이라면 있었다.

이곳이 내가 소설을 쓰다 쓰지 못하게 된 자투리 자료들을 보관한 곳이라면 소설의 메인스토리에서 배제된 장소란 의미였다. 따라서 비등장인물들과 비등장마수들, 아이템 따위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서사가 없으니 시간과 죽음도 없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굳이 물어본 건 실제 이 세계에 사는 인물들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알고 싶어서였다.


“아뇨. 원래는 의문조차 없었어요. 이곳은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곳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신전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신전?”


“유일한 서사의 흔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랑은 이후로는 부연설명 없이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문득 내가 던졌던 최초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난 죽었다는 겁니까? 살았다는 겁니까?”


“주군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게 죽은 건 맞은데 또 죽은 건 아니고······.”


‘애는 또 뭐래?’


감무율의 답답한 설명에 결국 아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이곳에서는 누구도 죽음이란 기적을 누리지 못합니다. 현무의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쪽도 같은 운명이 됐죠.”


죽음을 두고 기적이라고 표현하다니. 이해될 듯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재차 입을 열려는 순간 전방에 탁 트인 장소가 나타났다.


“도착했습니다. 버려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사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에.”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전 잠시 시간이 멈추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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