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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적장 서재

이계군단 소환술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김동하
작품등록일 :
2021.06.12 15:14
최근연재일 :
2021.07.04 21:39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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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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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_군왕의 귀환 (3)

.




DUMMY

2_군왕의 귀환 (3)









‘내가 이쪽 세계의 군왕이라고?’


분노가 잦아들면서 서서히 앞서 들었던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논리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생각임에도 이상하게 드는 확신.


‘젠장.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건지 참.’


내 확신이 사실인지 착각인지는 이 던전의 끝에 도달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울 리는 없겠지만.


[7급 괴수종 주견사를 제거하였습니다.]

[비각성자에게는 경험치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역시 각성을 한 건 아니야.’


차라리 나도 모르는 사이 각성이라도 한 거라면 앞서 사념체 각인 현상을 받아들이기가 수월했을 거다. 비각성자이기에 경험치 조차 쌓이지 않는 신세인데 사념체 각인 같은 이상한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내가 가장 혼란스러운 건 지금의 일련의 상황들은 내가 쓴 소설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란 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비각성자 아녔어?”


곁에 다가온 여자가 놀란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비각성자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보다 이름이나 압시다. 계속 그쪽이라 하기도 그렇고.”

“흥. 아무한테나 안 알려주거든.”

“그럼 계속 그쪽이라고 부르죠.”


내 덤덤한 반응에 여자가 눈을 흘겼다. 뭇 남자들에게 떠받들어지며 살아왔을 테니 쓸데없이 콧대만 높아졌겠지.


“쳇. 그냥 이름 불러. 박주은이야.”

“전 공명입니다.”

“누가 궁금하대? 됐고 이거나 받아.”


나는 멍하니 박주은이 내민 스카프를 바라보았다. 박주은이 답답하다는 듯 스카프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보는 사람 비위 상하니까 좀 닦으라고.”

“아······.”


나는 스카프에 프린트된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보고 망설이다 얼굴을 닦아냈다. 내친김에 목이랑 손까지 박박 닦았다.


“돌려드리죠.”


나는 검게 물든 스카프를 건네며 말했다. 로고가 새까맣게 된 걸 보니 내심 통쾌했다.


“미쳤어? 그냥 버려.”


박주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때였다. 앞서와 같은 메시지가 들린 것은.


[‘버려진 세계’가 군왕의 귀환을 감지합니다.]

[‘버려진 세계’가 당신과 감응합니다.]

[감응력이 1% 상승합니다.]

[현재 감응력 수치는 2%입니다.]


‘설마 괴수들을 처치할 때마다 감응력 수치가 올라가는 건가?’


아닐 거다. 앞서 가시생쥐들과의 싸움에서 나는 한 마리의 가시생쥐도 해치우지 못했지만 감응력 수치는 올라갔으니까.

그렇다면 이 감응력 수치의 정체는 무엇이며 무엇을 계기로 상승하는 걸까?


[이곳에는 주견사의 잔류사념(思念)이 떠돌고 있습니다.]

[사념체가 흡착대상을 찾습니다.]


‘이번에도?’


나는 앞서 가시생쥐 사념체들이 각인되던 순간의 고통이 떠올라 긴장했다.

이윽고 사념체들이 내 안에 흡착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으윽!”


나는 심장 쪽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 꿇었다.


[주견사의 잔류사념체가 당신의 몸에 흡착하였습니다.]

[사념체 각인 효과로 주견사의 특수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어진 메시지와 함께 통증은 잦아들었다.


“왜 그래?”

“별 거 아닙니다.”

“뭐야? 지금 연기한 거? 너 관종이니?”

“됐고 이동이나 하죠. 시간제한 있잖아요.”


박주은을 보니 새내기 시절 여자 동기 하나가 생각난다. 소이 말하는 퀸카. 관심을 보이면 귀찮다고 짜증내고 무관심하면 무시하냐고 시비를 거는 신기하고 이상한 종족.


우리는 동공을 지나 다시금 좁아진 동굴을 걸어 나갔다.

이동 중에도 나는 내 안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알아내고자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나 가시생쥐 사념체가 각인됐을 때와는 달리 이렇다 할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이게 아니라고?’


나는 박주은과 다솜이 몰래 손목을 이리저리 뻗어보았으나 거미줄은 나오지 않았다.


‘아쉽군. 스파이더맨이 된 건 아니야.’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에 미련이 남아 슬쩍 입도 벌려보았으나 입에서도 거미줄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차라리 다행이었다. 레이저라도 된다면 모를까 거미줄이 입에서 발사되는 건 좀······.


‘뭐 차츰 알게 되겠지.’


나는 단념하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시팔! 막다른 길이잖아.”


박주은이 막혀있는 전방을 보며 육두문자를 뱉어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튜토리얼이 시작된 지 이미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혹시 아까 갈림길에서 잘못 고른 게 아닐까요?”


다솜이가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아씨, 좆같네. 시간도 없는데.”

“잠시만요.”


나는 막다른 벽을 손으로 스윽 훑어보았다.


“뭐하는 거야?”

“이건 벽이 아닙니다.”

“그럼 뭔데?”

“문입니다.”


나는 벽처럼 생긴 문을 밀어보았다.


- 쿠우웅.


거대한 사각의 미세한 틈으로 파란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파란빛에 냉기가 섞여 있었다.

조금 더 체중을 실어 밀자 문이 저절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으으. 추워.”


다솜이가 몰아닥치는 한기에 팔짱을 끼며 떨었다. 던전에 진입한 내내 한기가 감돌고 있었으나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는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냉기였다. 비유하자면 냉동창고의 냉기 같다고나 할까.

마침내 밀려나던 문이 멈췄고 우리는 문 너머로 진입했다.


[보스룸에 입장하셨습니다.]


귓가에 울린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직 보스란 녀석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졌다.


“젠장.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박주은의 목소리에서도 확실히 긴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각성자인 그녀는 이곳에 흐르는 기운의 강대함을 나보다 절절이 느끼고 있을 테니까.

눈앞에 펼쳐진 동공(洞空)은 앞서 주견사가 살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마수는 보이지 않았다.


“앗, 저기 문이 더 있어요.”


다솜이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우리가 진입한 곳과는 달리 확실한 형태를 갖춘 문이 있었다.

출구일지도 함정일지도 모르는 문.

순간 튜토리얼의 목표가 떠올랐다.


<관문 통과>


다시 말해 꼭 던전을 클리어 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모두 떨어지지 마세요.”


혹 은신이 가능한 마수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기 용이하게 벽을 타고 출구방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라. 오빠 이거 그거 아니에요?”


뒤따라오던 다솜이가 멈춰서 있었다.

다솜이는 던전의 벽면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도 벽면을 살폈다.


‘이건!’


벽화였다.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벽화.


“사신도(四神圖)네.”


고구려 사신도였다. 차이라면 교과서에서 본 흐릿한 사신도에 비해 그림이 상당히 선명하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뜬금없이 사신도가 있는 걸까.


“뭐야. 이 촌스러운 벽화는.”


박주은이 벽화를 만져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의무교육 안 받았냐고 따지려던 걸 박주은의 냉랭한 얼굴을 보고 그만뒀다.


“설마······.”

“불길하게 왜 그래?”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박주은이 책망하듯 째려봤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를 느끼는 중이었다.

눈앞의 벽화와 우리가 있는 장소의 거대한 규모. 그리고 피부를 파고드는 한기까지.

이 모든 단서들을 취합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이 방의 주인.


[개요 : 이곳은 ‘버려진 세계’의 북부로 통하는 관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튜토리얼의 설명까지 떠올린 나는 비소로 이곳 보스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사방위신 중 북위를 관장하는 신수.


<현무玄武>.


현무는 오행 중 물을 관장하며, 계절 중에는 겨울을 관장한다.


‘젠장. 미치게 추운 이유가 이거였나.’


팔등에 돋은 소름이 사라지기도 전에 던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쿠구궁!


“뭐···뭔데?”

“모두 문으로 뛰어요!”


나는 뛰면서 진동의 진원지인 동공의 중심부를 흘깃거렸다. 지면 전체가 갈라지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제길. 일당이 센 이유가 있었어.’


새삼 세상에 공짜 없단 말이 스친다. 이런 줄 알았으면 오 억을 준대도 거절했지.

십 미터, 이십 미터, 아니 삼십 미터가 넘는다고?

솟아오르는 지면으로 서서히 청록의 등껍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길고도 거대한 목 두 개가 포효를 지르며 나타났다.


「구오오오!」


진동의 영향으로 동굴의 천장에서 파편들이 떨어졌다. 그러나 그 파편들을 피할 여력조차 없었다. 포효에 실린 강대한 마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으니까.


“크윽!”

“꺄아아!”


우리는 귀를 감싸 쥔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

우리 중 그나마 상태가 나은 박주은조차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시팔. 저건 대체 뭐야!”


박주은이 소매로 코피를 훔치며 하는 혼잣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A급? 아니, 최소한 S급 던전이다.’


이 던전의 주인이 현무인 이상 우리가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현무는 단순한 마수가 아니었다. 무려 신수의 존재.

S급 각성자가 대거 투입된다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제길. 이대로 끝인가.’


아직 절망하긴 일렀다.

현무는 마수가 아닌 신수. 그런 이유로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른다. 대화가 가능한 상대니까. 단 그러기 위해선 대화할 가치가 있는 상대로 보여야만 한다.


마침내 전신을 드러낸 현무의 웅혼한 기백에 숨이 막혔다.

사신도에서는 다소 괴기스러운 형태로 그려져 있었으나 실제 모습은 달랐다. 벽화 속 가늘어 보이던 목조차도 거대한 메타세콰이어 둥치만큼이나 두꺼웠다.


현무의 두 머리 중 우리를 먼저 발견한 것은 앞에 달린 거북의 머리였다. 곧 이어 꼬리부분에 달린 뱀의 머리가 방향을 틀더니 거북 머리 옆으로 다가왔다. 두 머리가 나란히 우리를 내려 봤다.

현무의 전신에서는 드라이아이스가 기화하는 것처럼 냉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미 온갖 마수가 출몰하는 세상이 됐다지만 이건 상상도 못했다.


“젠장.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내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박주은이 화염구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현무는 미동조차 없었다.

입김이었을까, 콧김이었을까.

그저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 닥쳤다.

그러자 박주은의 손에 있던 화염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뭐, 뭐야···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박주은이 연거푸 화염구를 소환했으나 그때마다 화염구는 건듯 스친 냉기에 힘없이 소멸하고 말았다. 무심히 우리를 내려다보기만 하던 현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가려는 것인가, 들어오려는 것인가?」


이제 보니 우리에게 한 질문은 아니었다.

거북의 머리가 뱀의 머리를 돌아보며 묻고 있었다.


「버리려는 것인가, 버려지려는 것인가?」


이번에는 뱀의 머리가 거북의 머리더러 물었다.

현무의 두 개의 머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던 나는 머릿속에 전류가 흐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소설에 나오지 않는 존재, 그럼에도 기시감이 드는 존재.

나는 내 소설에 현무를 등장시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등장시키려고 한 적은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내가 지금 어디의 입구에 와있는지 알 것 같았다.

현무는 내가 소설에 쓰려다 개연성의 문제로 포기했던 존재였다.

앞서 마주친 가시생쥐와 주견사 또한 그러했다.

이들은 모두 결국 소설에 쓰이지 못해 기타 자료로 봉인되고 말았던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저 문 너머는 그렇게 버려진 존재들이 봉인되어 있는 세계일 것이다.


‘<버려진 세계>란 건 이런 의미였나?’


마주 본 현무의 두 머리가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동시에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너희는 벼려짐과 죽음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젠장. 뭐라는 거야.”

“우, 우리 죽는 거예요?”


나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박주은과 다솜을 두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북위의 수호신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나는 버려짐도 죽음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무어라!」


순간 강력한 풍압이 전신을 짓눌렀다. 그러나 나는 고개 숙이지 않았다.


“나는 <버려진 세계>를 되찾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거북인가? 뱀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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