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64)
엘리제의 행방은?
스카레이와 제딘, 테세라까지 합세하니 야수는 맥을 추지 못했다.
제자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당장 살수를 펼쳤겠지만 생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섣불리 손을 쓰지 못했다.
상상외로 강한 근육과 가죽인데다가 풍성하고 강력한 털로 보호되고 있어 점혈이 통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하고 있는 놈은 다른 야수와 분명히 달랐다.
완력이 거의 두 배에 달했고 휘두르는 팔다리의 완력이 내공을 끌어 올린 당주들에 버금갔다.
다만 공격이 너무 단순해서 당주들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다.
"할 수 없군. 살아만 있으면 되니 팔다리라도 잘라 버리자. 사람이 아니니 말로 설득은 할 수도 없고···."
그때였다. 하늘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수직으로 떨어지더니 야수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야수는 한 손으로 까마귀의 날개를 잡아 찢어 버렸다.
그러자 다시 한 마리의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며 야수의 머리를 곧바로 쳤다.
"사형, 이건?"
"레베카님의 전언이다. 이놈 죽여도 된다는 소리다."
제딘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다시 까마귀의 행동을 보고 확신한 듯 말했다.
"죽여도 된다는 것 같습니다."
"그걸 기다렸다. 사람이 아닌 짐승임에 정을 베풀 일은 없어서 다행이군."
천마비행으로 재빨리 전환한 스카레이의 신형이 야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신체 반응력이 뛰어난 야수였지만 구화마검 앞에는 대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검 또한 잉겔리움이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스카레이가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서야 잘린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그래도 수십 걸음이나 뒤뚱거리면 뛰다가 앞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검은 전투복을 입은 녀석들은 용병이 확실한데 마차를 경호하던 기사와 뒤따르던 용병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군. 모그룩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사형, 이번 일은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스카레이는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외쳤다.
"애들아 흔적을 아예 남기지 마라. 시체는 끌어 묻고 핏자국도 깨끗이 지워라."
"사형, 모그룩을 만나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것 같습니다."
"레베카님이 신호를 주신 것으로 보아 아마 군사도 알고 지시한 듯하구나. 어쩌면 모그룩의 말대로 늑대 사냥을 한 것은 분명해. 일단 철수하자. 여기서 냄새를 풍기면 파리떼만 꼬일 거야."
***
모그룩과 아가므네가 말에 오르려 하는 순간 멀어지던 야쉰의 말굽 소리가 다시 가까워져 갔다.
"이보시오. 여기 있다면 나의 말을 들어 주시오."
야쉰은 숲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내의 시체 앞에서 고함을 내질렀다.
"생각해 보니 갈 곳이 없는 모양이지?"
어둠 속에서 모그룩이 모습을 보였다.
야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 해 보니 내가 돌아가면 가족이 위험해. 이대로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흥, 타인의 가족은 그깟 어설픈 비밀유지를 위해 몰살시켜놓고 정작 자신의 가족은 소중한가 보군."
"사실은 그래 보여도 나는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진 않아. 위험하니 몇 번이나 조심하라고 주위를 주었건만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은 녀석이야. 그리고 뒤처리는 내가 하지 않아. 필포드경의 척살대 친구들이 하는 거지. 이 녀석도 척살대 소속의 시커다."
"그렇다고 네 죄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살고 싶으면 아칸을 떠나면 되지 우리는 왜 찾지?"
"잠시 생각해 봤는데 너희들 일루엠 길드에서 의뢰를 받은 용병들이지?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 모르지만, 그 정도 행동력이면 나를 지켜 줄 순 있겠지?"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받은 의뢰에는 너를 지켜 주라는 조항은 없었어."
"그렇겠지. 엘손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테지. 하지만 내가 가진 정보는 쓸만한 것이 상당할 텐데?"
"쓸만한 정보라 구미가 당기는걸?"
"당연한 소리. 20년을 넘게 후작의 뒤처리를 해 왔어. 피안테 남작 일은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일 중의 하나일 뿐이야."
"그래서 우리가 너를 보해 주는 대가로 정보를 주겠다?"
"물론이다. 아는 것 모두를 넘겨주겠다."
***
마교의 제자들은 살육 현장을 완전히 지웠고 그들은 다시 철원의 늑대들로 복귀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여관은 손님 한 명 없이 조용했다.
스카레이는 제자들을 쉬게 하고 자신도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곤히 자고 있는데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사형, 아침이 밝았습니다."
"제딘? 무슨 일이 있어?"
"모그룩이 와 있습니다."
"그래?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스카레이가 내려 갔을 때는 모그룩과 앨빈이 함께 앉아 있었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어젯밤에 많이 뛰어다녔던 모양이더라?"
"저는 스승님께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워낙 사건이 빠르게 돌아가서."
"사정은 모그룩에 다 들었다."
스카레이는 모그룩을 한 번 흘깃 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마교는 상하 관계가 매우 엄격하다. 그것이 규율을 통솔하는 자의 권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너도 들어야 하니 자리에 앉아라."
"그럼 실례 하겠습니다."
의자에 앉은 스카레이는 모그룩을 보며 입술을 움직이려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실 건지 잘 알고 있습니다. 소문이 나면 반사르가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이 갔습니다. 녀석들은 함정을 파서 저희를 유인했습니다. 그동안 야쉰경을 처리할 생각이었죠."
"함정? 그럼 우리가 만난 마차가···. 우릴? 유인책이었나?"
"네 맞습니다. 저희 엘웨스제테를 처리하기 위해서였죠. 마차에 타고 있던 놈도 용병 복장을 하고 뒤따르던 녀석들 모두 필포드경 휘하의 척살대입니다."
"그걸 언제 알았지? 설마 함정인 걸 알면서 우릴 보낸 건가?"
"네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함정이란 걸려 줘야 제맛이지 않습니까? 다만 쥐덫인데 호랑이를 보냈다는 것이 문제긴 했습니다만. 덕분에 신나게 놀지 않았습니까?"
"척살대는 무슨, 허약한 늑대 몇 마리 정도야 때려잡는 맛도 안 나더군. 그렇다면 진짜 야쉰경은?"
"저희가 어제저녁 잡았습니다. 역시 척살대가 침묵의 숲으로 데려가 처분할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저와 아가므네가 끼어들었습니다."
"허, 우리가 쓰레기를 치우는 사이 재미는 너희들이 봤군."
"재미라뇨. 놈은 교주님의 명으로 맨시티로 보냈습니다. 군사께서 직접 신문하고 정보를 뽑아낼 겁니다."
"그럼? 원했던 답은?"
"후후, 우연이 우연을 잡았습니다."
"역시, 마녀의 딸이던가?"
"후작의 명령으로 엘리제를 호위 한 사람이 엘손의 조카 에드워드입니다. 또 한 명은 바럿이라는 인물이더군요."
"그럼 엘리제는 어디에 있는 거지?"
"그것이 참 우스운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어디로 호송하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엠버스피어입니다."
"엠버스피어라면 그럼 그들은 맨시티에 있을 확률이 아주 높지 않은가?"
"케이사르는 저희 마교가 엘리제를 숨기는데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무려 1차 마족을 전멸시킨 집단이니까요."
"계속 엠버스피어에 있었다면 맨시티 이동 때 따라왔으려나?"
"군사께서 그 부분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을 겁니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제 일의 실패를 생각하면 반사르가에서 가만있지 않을 건데?"
"두려우십니까?"
"두렵다니 천만에. 다만 우리가 이렇게 얼굴이 팔리면 움직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야. 반사르가에 숨어들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앨빈 장로께서 이미 서신 한 장을 받으셨거든요."
앨빈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거 필포드경의 초대장이다."
앨빈이 품 안에서 꺼낸 것은 반사르가의 직인이 찍힌 편지였다.
"허, 일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는군요."
"엘리제의 행방은 케이사르에게는 목줄과 같아. 그것을 죄면 즉각 반응이 오게 마련이다."
"스승님 그는 왜 그런 멍청한 짓거릴 했을까요? 범의 소굴에 고기를 던져 넣다니···."
"에르제베트가 누구냐? 희대의 마녀다. 그런 마녀를 상대로 딸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고 있었으니 만약 아칸 시티 내에 엘리제를 두면 언젠가 에르제베트에 발각 될 거다. 후작은 필포드경을 시켜 최소한의 인원으로 엘리제를 엠버스피어로 보낸 거야. 적의 수중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겠지."
"필포드경의 초대에 응하실 생각입니까?"
"왜? 가지 못할 이유라도 있냐? 놈이 직접 초대해 주니 오히려 반가운걸."
"조심하셔야 합니다. 명색이 아칸 왕국 최고의 실세가 아닙니까? 어제의 일만 해도 일반인은 감히 꿈도 못 꾸는 일을 버젓이 하는 놈인데."
"반사르의 성은 레베카님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철통같은 보안 마법으로 꽁꽁 싸맸어. 오히려 정당하게 들어가는 방법을 제 놈들이 먼저 문을 열지 않았나? 단 모그룩과 아가므네는 우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반사르가에 우리와 동행한다."
"놈들이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지. 예측한다고 하지만 그걸 뛰어넘으면 되는 거야. 어제 너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그들은 그 정도 야수를 보내면 용병 무리 하나쯤은 간단하게 해결하겠지 하며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결과는 어땠지? 수련받는 것보다 더 쉽게 때려잡았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스카레이 너는 옛날의 어정쩡한 기사가 아니야. 너는 마교 당주다. 그 실력은 소드 마스터를 가뿐히 능가하고 있어. 어제 만난 마녀의 수호대는 정예 중의 정예다. 함께 있었던 용병들은 상처도 내지 못한 것들을 너희는 간단히 도륙했다. 이미 수준 차이가 너무 커버린 거지."
"확실히 놈이 강하긴 했어도 제 제자들보다 더 다루기 쉬웠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는 아주 많이 강해졌어. 늘 비슷한 사람들끼리 수련을 해왔으니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을 못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실전에 나와보니 대충 알겠지? 만약 반사르가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몰려 일전을 불사할 경우가 발생했다고 치자. 어떨 것 같냐?"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두 사형제와 함께 반사르가 정도는 털어 버릴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 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초대는 저녁이니 그때까지 느긋이 쉬라고 어쩌면 맨시티에서 좋은 소식이 올지도 모르지."
"그런데 어제 모그룩이 갑자기 찾아와서 늑대 사냥을 하러 가라고 했던 것은?"
모그룩이 빙긋 웃으면 말했다.
"저희 엘웨스제테가 일루엠 길드의 의뢰를 받아들였고 의뢰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보원을 통해 필포드경에게 보고가 되었습니다. 필포드경은 빠르게 두 가지 일을 처리해야 했죠. 첫 번째 의뢰를 받은 엘웨스제테를 몰살시켜 경종을 울리는 것, 두 번째 화근이 될 야쉰을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야쉰경이 타는 마차가 반사르성에서 빠져나왔죠. 그것은 저희 엘웨스제테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습니다. 만약 저희가 함정에 빠져서 마차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확인되면 야쉰경을 침묵의 숲으로 이동시킬 계획이었습니다."
"하, 그러니 내가 마차를 따라갔던 것이 함정에 빠진 거군. 너는 뒤에 숨어 있다 진짜 야쉰을 미행한 거고?"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제길, 미리 설명해 주면 어디 덧나나? 넌 인격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워낙 급해서 일일이 설명해 드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너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았나?"
"전혀요! 저도 몰랐습니다. 처음 알아차린 것은 당연히 레베카님의 퍼밀리어였고 확인하러 나가 조사를 한 것은 아가므네였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정보를 바탕으로 급히 계획을 짰습니다. 마침 앨빈 장로께서 자릴 비우셨던 터라. 만약 시간을 지체했다면 야쉰경은 침묵의 숲에서 영원히 입을 닫게 되었을 겁니다. 호송된 여아가 엘리제였다는 사실을 필포드경에게 직접 들어야 했을 뻔했습니다."
"자네가 똑똑한 건지 우연이 우연을 잡은 건지 모르겠어."
"하하, 후자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일이 잘 풀렸으니 저에 대한 앙금은 없는 셈 쳐 주십시오."
"아직이다. 임무가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는 지켜보겠어. 앙금이야 장난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임무를 성공시키는 것이니까."
"당연한 소리다. 저녁이 될 때까지 쉬도록 해라. 최악의 경우 반사르의 성에서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으니."
"나머지 제자들도 다 같이 가는 겁니까?"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확실한 소수의 인원이 더 효율이 높아. 나와 너, 셋째, 넷째가 움직인다. 나머진 성밖에서 대기할 거고."
스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편이 안정됩니다. 그 정도면 각자 앞가림만 해도 충분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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