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59)
위계질서
"네가 똑똑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팀이다. 그리고 마교는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이다. 실수도 팀장이 하는 거고 책임도 팀장이 지는 거다. 팀이 실패하면 팀장이 그 책임을 진다."
스카레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스카레이가 한 말은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 아닌 바로 교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은 것뿐이다. 물론 그 사실은 팀 전체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들 스카레이의 말에 수긍했다. 먼저는 모그룩의 말에 수긍했다가 이번에는 스카레이의 말에도 수긍했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결국 입을 연 것은 앨빈이었다.
"모그룩을 전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어. 그의 행동은 확실한 상황판단 하에 이루어진 거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이다. 하지만 모그룩의 행동을 칭찬 또한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팀의 책임자는 나다. 이번 임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모그룩 네 행동의 책임도 내가 진다는 소리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장로님. 저는 교주님으로부터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행동을 함에 있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주위 눈치를 보지 말고 밀어 부치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 행동에 대한 결과는 제가 책임지고 싶습니다."
스카레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의 책임을 묻고 따지는 것이 아니야. 여기서 따지자는 건 네가 말한 임무의 성공 여부와 관련 있는 거야. 입이 두 개면 팀 전체가 흔들려 모든 행동과 명령의 출발점이 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거지. 앨빈 스승님의 명령이 절대적이어야만 해. 네 의도는 충분히 생각하고도 남겠지만 네 개인보다 팀의 임무가 우선이다."
앨빈은 술 한 잔을 들이켰다.
"맨시티에 있을 때는 아무 일 없더니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부딪침이 있을 줄이야. 스카레이 너도 그만해라. 모그룩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가슴에 묻어 두지 마라. 큰불도 작은 불씨에서 출발하는 거다."
"네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그래서 지금 속마음을 풀어 놓고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내 고집만으로 팀을 운영한다는 것은 무리다. 자칫 말 한마디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칠 수 있어. 결과야 어떻게 되었던 판테리온 시장에서 모그룩의 임기응변은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그 결과 귀찮은 일이 벌어졌어. 모그룩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 생각을 한번 들어보자. 엘손의 의뢰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여기 여관의 눈들이 이미 우리가 엘손의 의뢰를 수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처음 보는 용병들이 갑자기 네임드 길드 관리자의 단독 의뢰를 받았다는 것에 시샘을 보낼 겁니다. 저도 이것은 뜻밖의 경우라 난감했습니다만 달리 생각해 보면 눈치를 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겁니다. 남들 이목을 피해 조용히 움직이는 것보다 아예 대놓고 움직여도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엘손의 의뢰가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자아이라고 한 것 말입니다. 여자아이 호송하는 단순한 일인데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고? 이거 뭔가 감이 오지 않습니까?"
"혹시 마녀의 딸을 떠올리는 것이라면 나도 그 생각은 했다만. 정말이라면 우연이 사람을 잡는 거겠고. 하지만 이 문제는 테드버드 장로가 처리해야 할 일이지 우리 임무가 아니야. 우리는 세 권의 책을 손에 넣는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무의 시작은 세렌 장로의 내성 공격이 신호탄입니다. 그 전에 엘리제의 위치 파악이 선결 조건입니다. 만약 우리가 엘리제의 위치를 우연이라도 파악해 낼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의뢰를 수락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일루엠 길드의 비호를 받는다면 눈치 보지 않고 여기저기를 들쑤실 수 있습니다."
앨빈은 모그룩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레베카의 말에 의하면 책 세 권은 반사르성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가므네와 모그룩이 반사르가에 숨어들어 책을 찾는 것이 자신의 팀 주요 목표다.
그 출발은 세렌팀의 내성 잠입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번 임무의 메인은 세렌팀이 가지고 있고 엘리제나 세 권의 책은 서브미션인 셈이다.
총력은 메인 미션을 중심으로 기울여야 한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스카레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제딘과 테세라를 바라봤다.
"너희도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지 말고."
스카레이는 앨빈의 두 번째 제자다. 세 번째 제자가 제딘이고 네 번째 제자가 테세라다.
앨빈의 제자들은 서열 구분이 확실하고 사제 간의 규율도 마교 내에서 가장 엄하다.
첫 번째 제자인 웨우드는 맨시티에 남아 앨빈 대신 제자들을 이끌고 있다.
이번 임무에 가장 참가 하고 싶어 했던 제자는 첫 번째 제자 웨우드였다. 하지만 앨빈은 과감히 그를 맨시티에 남겼다. 그가 바로 제이미 사건의 책임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웨우드의 제자들이 제이미 사건의 주동자였으니 그 책임을 물어 웨우드를 이번 임무에 제외한 것이다.
스카레이와 함께 루엔의 성에서 오크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웨우드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스카레이는 아칸의 엘리트 기사 출신이라 그의 성정은 기사도에 충만해 있었다. 앨빈도 웨우드도 한성격 하는 인물들이지만 스카레이는 침착하고 사리 분별력이 뛰어났다.
원래 테드버드와 같은 기사도를 신봉하는 스카레이였지만 검보다 장법에 매력을 느껴 앨빈을 스승으로 지목했다.
그러니 상하관계를 잘 이해하는 스카레이에 모그룩의 행동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제자 제딘도 루엔성의 전투에 참여했었고 스카레이와 비슷하게 아칸 엘리트 기사 출신이다. 세 번째 제자지만 스카레이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고 아칸의 기사로 있을 때의 계급이 스카레이보다 상급자였다.
네 번째 제자인 테세라는 인커전 출신의 시커다. 제자 중에서 가장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범용성이 뛰어난 제자다.
"전 과거의 지나간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제딘의 말에 스카레이는 입을 닫았다. 제자 간 서열은 확실하지만, 평소 스카레이는 제딘을 어려워했다. 꼭 친형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제딘의 충고를 꼭꼭 잘 따르기도 해서 간혹 제자들에게 둘째와 셋째가 바뀌어야지 않는가 하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모그룩의 돌발 행동은 조금 눈에 거슬렸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임무를 확실히 생각한 행동이었기에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장에서 임기응변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테세라로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과거 인커전을 가르치던 시커의 우두머리라고 알려져 있을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제자 와이어트는 세렘 팀에 합류해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지금부터 모그룩의 불편한 감정을 다 털어 버리겠네. 나 자신도 임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바 팀워크를 헤치는 이런 불편한 기분을 정리하겠다는 걸세."
"됐다. 이제 모그룩의 행동에 대한 왈가왈부는 이것으로 끝내자 제딘의 말처럼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잘 이용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럼 책임자로서 묻지. 엘손의 의뢰를 받아 들이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른손을 들어봐."
모두의 손이 다 올라갔다. 아가므네를 제외하고는.
"넌 뭐냐? 반대하는 거냐?"
스카이레는 아가므네를 쏘아봤다.
"어? 저도 포함인가요? 전 엘빈 장로가 아니라 마테니 장로의 제자라서 끼일 수 없다고 생각했죠."
"제길 여기 모두가 앨빈 스승님의 명령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 하나뿐인가? 아하. 너 님은 오직 마테니 장로 하나뿐이라는 일편단심이신가? 그건 인정하지."
아가므네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분을 모욕하면 다음 날 밝은 태양을 못 볼 수도 있어요. 어머 스카레이 당주님의 술잔 색이 변하고 있네요."
정말이다. 스카레이의 술잔의 색깔이 퍼렇게 변하고 있었다.
혹자는 그녀가 숨을 쉴 때도 독기를 뱉어낸다고 했다. 더욱이 교주님이 아가므네의 능력을 더 발전시켰다고 했으니 이제 그 누구도 아가므네의 진정한 위력을 모른다.
"장난은 장난으로 받아들여야지 같은 형제끼리 무슨 짓이냐?"
앨빈의 목소리에 살짝 노기가 올랐다.
"죄송합니다. 저도 장난친 거예요. 동료의 술잔에 진짜 독을 쓰겠어요?"
"그러냐?"
스카레이는 퍼렇게 변한 술잔에 술을 따르더니 거침없이 들이켰다.
"술맛 좋구나."
"지금 너무나 중요한 과제를 앞에 두고 애들처럼···. 두 분 모두 무얼 하는 겁니까?"
제딘의 푸념에 스카레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일 아침 사람을 보내 엘손에게 의뢰를 수락한다고 하십시오. 일루엠 길드의 권한으로 드나들 수 있는 최상급의 출입증과 신분증을 부탁해 주십시오."
"음, 엘손은 길드를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우리를 고용한 것이 아닌가?"
"아뇨, 그랬다면 더 비밀스럽게 접근했을 겁니다. 다른 용병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에 얼굴까지 다 팔릴 정도로 우리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보란 듯이 품 안에서 금덩이를 꺼내 놓았습니다. 이건 달리 말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정보가 곧 돈인 곳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만큼 빨리 퍼지는 곳입니다. 결국 엘손은 소문이 퍼지기를 바라고 한 행동입니다."
"음. 일리가 있군. 그래서?"
"당연히 내일 아침이면 우리 소문이 쫙 퍼질 겁니다.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용병이 일루전 간부의 단독 의뢰를 맡았다. 그것도 금 세 덩이만큼의 의뢰다. 이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스카레이는 모그룩의 풀이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심취해 들었다.
"나라면 그 의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거야. 의뢰를 받은 놈보다 내가 먼저 해낸다면?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일을 끝마치면 금덩이를 두 배를 준다는 말을 들었지."
"바로 그겁니다. 엘손이 노린 것이. 조심스럽게 조사해도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이제 외부 인력을 동원해 크게 들쑤셔 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일을 크게 벌여 아예 일루엠 길드도 끌어들일 생각인 겁니다. 내일 한번 봐 보십시오. 우리 부탁을 어렵지 않게 들어 줄겁니다."
모그룩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아침에 제딘이 직접 움직였다. 스카레이와 제딘은 아칸에서 기사 생활을 했기에 무엇보다 아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점심나절이 되었을 때 제딘이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저를 맞아 주더군요. 출입증과 신분증까지 다 만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신분증에 기재될 저희 용병 단체의 명을 묻기에 대충 제가 떠오르는 대로 지었습니다."
"앨웨스제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고상한 이름도 많은데 이건 뭐야?"
"갑자기 묻는데 생각하는 척을 할 수 있어야죠. 그러니 첫 글자만 딴 겁니다. 그래도 막내 이름까지 넣으면 너무 이상해서 막내는 제외한 겁니다."
스카레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떻게 읽어야 하지 앨웨~스제테인가? 앨웨스~제테인건가?"
"그리고 이것은 엘손이 조사한 모든 것을 기록한 사건 일지입니다. 참고가 될 거라며 주더군요."
점심과 함께 엘손이 보내온 자료를 꼼꼼히 검토했다.
"조카 에드워드에게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이 피안테 남작이었군. 그럼 열일곱의 식솔이 살육당한 것은 남작 가문인 셈인데···. 이건 귀족의 살인이라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스카레이의 말에 모그룩이 답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짐승을 끌어넣어서 사건을 종결지은 겁니다. 사람이 한 짓이 아니니 간단하게 사건을 종결지을 수 있고 표범은 그 자리에서 참수. 이처럼 간단하게 사건을 덮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그리고 처음에는 집행관 두 명이 바로 수사에 들어갔지. 귀족의 죽음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여기 그 두 명의 이름도 있군. 메이버와 루이즈. 어? 가만 루이즈라고?"
일지를 보던 모두의 눈길이 한 명의 이름에 쏠렸다.
루이즈. 마교 아드리안경이 데리고 있는 집행관 세 명 중 한명이다.
거구의 알렉, 추적술의 달인 아딜, 그리고 게으르지만 최고의 분석가 루이즈.
"설마 동명이인 건가?"
"잠깐이 두 사람의 행적도 이상한데?"
"메이버는 군단으로 전출 후 1군단에 배치 오크와의 전투에서 사망 확인. 루이즈는 파견 임무 차출 그 이후 기록 소멸. 행방불명 처리됨."
"이거 마교의 루이즈가 일지에 적힌 루이즈가 아닐까?"
스카레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지. 당장 연락을 취하자."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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