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승계
뒤돌아선 채로 말했다.
"왜, 쫄리시나 보지?"
"무엇을 원하는 거지?"
"같은 말 두 번 하게 만들지 마. 알면서 왜 물어."
"불가능한 것은 악마도 어쩔수 없어."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겠지만 바알의 낙인을 받은 이상 나도 레벨 자체가 악마야. 인간과의 계약이 아닌 악마 대 악마의 계약이란 걸 너도 잘 알잖아. 고로 내 입장에서 조금의 손해도 볼 수 없어. 협회도 그 사실을 인지했고 인증서까지 보내왔으니 꿀릴 이유도 없지."
"죽은 사람을 되돌릴 방법은 인간을 창조한 신만이 할수 있는 레벨이야. 나더러 그 애들 살려내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인간 사육장으로 가는 길을 열어줘야겠어."
"인간의 몸뚱이를 가지고 게헤나로 들어갈 수 없어."
"개념 없는 소리를 자꾸 늘어놓는군. 파리 교단의 맘마전도 이미 방문한 사람이야. 더욱이 바알의 낙인까지 받은 몸이라 문제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자꾸 되지도 않은 세 치 혀를 놀리면 이 계약은 파기다. 너 말고도 다른 방법 찾으려 들면 얼마든지 가능해."
"게헤나로 들어간다고 해도 수확장의 영혼은 어떻게 할수 없을 거다. 육체 대신 영혼을 담을 그릇이 필요해. 그리고 무엇보다 수확장의 간수들을 전부 상대할 테냐? 바알의 낙인이 만능은 아니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네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어."
그때였다. 갑자기 바르타무스가 달려들었다. 내 손에 들린 천사의 기원을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 미친 새끼가?"
손에 몰래 감춰 들고 있던 작은 병 안의 물을 놈에게 뿌렸다.
"크아아악"
녀석은 얼굴을 움켜잡고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얼굴 피부가 타들어 갔다.
"멍청한 놈. 내가 지금 어디에서 왔는지 잊었어? 교황청에 있었다고. 그곳에는 네가 가장 싫어하는 성수가 차고 넘치는 곳이라서 조금 준비해 봤는데 맛이 어때? 달달하니?"
"으, 잔인한 놈."
"헤? 나더러 잔인하다고? 악마가 할 소리는 아닌데. 근데 몹시 급한가 보군. 교차로의 악마는 계약자에게 강제성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는데 말이야."
"구체적으로 말해 진짜 원하는 것을···."
"악마 중 유일하게 게헤나와 인간계를 거리낌 없이 왕복 가능한 녀석은 교차의 악마뿐이지. 강압적인 것이 아닌 인간 스스로 소원을 비는 행위이니 수호천사들도 너희를 쉽게 터치 못 하는 거고."
"크, 물론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소환술에 상관없이 인간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소원을 빌기 위해 우리를 초대했을 때 한해서다."
"하지만 게헤나로 돌아가는 경우는 프리패스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교차로의 악마 자격증."
"말도 안 되는 소릴."
"왜 말이 안 돼? 난 모든 자격을 갖췄어."
"협회에서 네필림에 자격증을 줄 리가 없어."
"맞아, 안된데. 그런데 말이야. 승계는 가능하다고 들었거든."
순간 바르타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그의 얼굴은 반 이상 시커멓게 타버린 상태였다.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 네 상태에서는 본신의 힘을 사용하지 못할 거야. 교차로의 악마는 그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지 소환당해 불려 나오면 강제로 인간의 레벨에 맞춰지기 때문이지. 물론 여차하며 게헤나로 도망쳐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이걸 가지고 가지 않으면 넌 곤란을 겪게 될 거야. 아주 지독한 곤란을···."
"이거 하나만 말해주지. 넌 단지 내게 기만당했다고 복수심에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책은 그 애들 영혼에 비하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만약 계약을 이행해 준다면 더 값진 보상을 해 줄 수도 있어."
"호오? 그렇게 말하니까 이 책이 더 탐이 나는데?'
"네게 있어봤자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아."
"결정할 때가 온 것 같군. 교차로 악마의 자격증 승계를 해 줄 거면 이 책을 가지고 돌아가 원하는 보상을 손에 넣고 떵떵거리며 사는 거고. 아니면 빈손으로 돌아가 그놈에게 죽을 때까지 쫓기며 사는 거지. 어때? 난 강요하지 않아. 선택은 순전히 네 몫이라고 이 사실은 협회에서 공증까지 받은 내용이라 난 꿀릴 것이 없다는 거지. 협회 쪽에서 승계를 받는다면 딱히 제지할 이유는 없다고 그러더군. 그렇지 않아 락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협회 수장이 직접 사인해 준 공식적인 서류입죠."
"자, 승계해주면 가장 간단히 끝나는 거야. 협회에서 인증해 주는 것이니 책잡힐 일 없고 천사의 기원을 받으면 나와의 계약은 완벽히 이루어진 것이니 교차로 악마의 책임도 깔끔히 이행한 셈이 되지. 그리고 그 책을 원하는 녀석과 거래도 깔끔히 끝나고 네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모두를 위해 윈윈한 셈이 되는 거야. 어때 네 생각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네 결정을 존중해 줄 생각이거든."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놈."
"칭찬이라 생각할게. 요행히 내게서 강제로 뺏는 데 성공해도 계약 불이행으로 평생 협회에서 쫓기게 될 거고 그냥 빈손으로 내려가면 너와 계약한 그놈에게 평생 쫓기게 된다고."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영악한 놈."
"뭐, 결정은 네가 하는 것이니까."
"···."
녀석은 반쯤 타버린 얼굴을 찡그리더니 오른 팔목을 걷어 올렸다.
팔목 안쪽에는 기이한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는데 락케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교차로의 악마 자격증입니다."
"넘겨주겠어. 제길 네가 이토록 영악한 놈이란 걸 알았다면 맘몬과 계약하지 않았을 거다."
"섭섭해하지 마! 너도 그만큼 받아 챙겼을 거 아니야."
"가까이 와라. 승계하려면 맞붙여야 하니까."
천사의 기원을 락케에게 쥐여 주고 바르타무스에 다가갔다.
"승계를 받아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씨발! 내가 너희들 악마 새끼처럼 입만 떼면 거짓말만 하는 줄 알아? 계약을 어기면 나도 손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
바르타무스는 처연한 눈빛을 하며 내 팔목을 붙잡았다.
"악마 인생 통틀어 가장 썩은 똥을 밟은 날이 되는군."
녀석은 문신이 새겨진 팔을 내 팔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주문 비슷한 것을 외웠다.
잠깐의 타들어 가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렸는데 문신은 녀석의 팔에서 정확히 내 팔로 옮겨와 있었다. 바알의 낙인 밑에 교차로 악마의 증명서 낙인이 자리 잡았다.
"승계가 끝냈어. 그거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거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제 약속을 지켜."
"어이, 락케 건네줘."
"정말입니까? 이 책은 상당한 값어치···."
"잔말 말고 주라니까."
락케에 책을 건네받은 바르타무스는 즉시 책장을 넘기며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찌질하게 악마 새끼가 한숨이나 푹푹 내쉬고 하이고 애처로워라. 씨발."
"이로써 우리의 계약은 완벽히 이행되었다."
바르타무스의 발밑에서 작은 원형의 펜타클이 떠오르더니 그의 몸이 그 속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져 버렸다.
"녀석 급하긴 급한 모양이구먼."
"주인님 그 책을 준 것은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아냐 상관없어 그 녀석은 절대 모르는 것이 있어."
원래 천사의 기원은 단 한 권으로 구성된 책이었다. 서전 임펙트 이후 천사들은 반입, 반출 금지 품목을 바티칸 시국에 모아 놨다. 그리고 그들은 철수했고 단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왓쳐를 한 명을 배정해 놓은 것이 다였다.
이 행성이 마지막 생명을 다할 때 그들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동안 왓쳐가 지켜보는 자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아 물품을 확인하던 천사 한명이 혹시나 해서 천사의 기원을 상하 두 권으로 나눠 버린 것이다. 바티칸 시국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악마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진실이었다.
즉 상하 두 권을 합쳐야 오리지날 천사의 기원이 되는 것이고 상권이든 하권이든 한쪽만을 가지고는 내용을 완성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중에 바르타무스가 속았다고 발버둥 칠 때는 이미 늦은 후라는 이야기다. 내 볼일은 이미 다 끝난 상태니까.
"락케 너는 협회에 내 증명서를 등록해줘."
"정말 교차로의 악마로 활동하실 생각입니까? 그러면 소속이···, 정말 악마 신분이 되실 텐데요?"
"야, 바알의 낙인이 찍힌 순간부터 난 이미 악마 레벨이야. 비록 반쪽이지만. 협회에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지?"
"네, 정상적인 방법으로 승계를 받으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등록시켜줘."
"승인 절차가 나려면 최소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그래. 여기선 몇 달 정도 시간이 지나버리는 거야. 그러니 서둘러"
애들 영혼 수확장에서 빼내려면 서둘러야 한다. 바르타무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난리가 나겠기만 쉽게 들키지는 않을 것이니 시간은 어느 정도 벌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바르타무스와 계약을 맺은 것이 단달리온은 아니라는 말이지?"
"네 보고를 받고 뒤를 캐봤는데 게헤나의 서기 단달리온도 그 책을 몹시 원하고 있지만 단지 수집욕 때문이고 바르타무스와는 상관없었습니다."
"넌, 일단 가서 협회에 자격증 신청서 넣고 바르타무스와 계약한 놈이 누구인지 조사해봐. 그리고 바알에게 이 편지 좀 전해 주고."
"편지 말입니까? 어떤 내용인지 알수 있겠습니까?"
"너한테 해 되는 것은 아니야. 감옥에 갇힌 내 애들 좀 풀어 달라는 애교 몇 자 적어 놓은 거야."
"아, 그 정도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락케는 순식간에 바퀴로 돌아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감금된 락시누와 우피르를 석방해야 한다. 락시누는 루시퍼의 종자 출신이라 인맥이 상당한 녀석이고 권능 또한 오만이니, 그에 걸맞게 능력치도 좋다.
우피르는 주특기가 연금술. 이건 정말 이용할 방편이 다분하다. 권능은 시기. 제 한 몸 지키기 위해서는 나의 명령에 잘 따를 것이다. 하긴 둘 다 나를 통해 바알의 낙인을 받았으니 내가 강제 주인이 되는 것이니.
두 녀석을 활용해야 할 곳이 많다.
"지금까지는 우리 계획대로 잘 된 것 같군. 녀석이 반항해서 일이 틀어질까 봐 조바심이 다 났어."
【승인이 떨어지려면 약 서너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 승인만 떨어지면 교차로 악마의 권능으로 게헤나 출입이 자유로워진다. 애들도 구하고 두 번째 가면도 찾아야지."
그러려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계획한 대로 잘 풀려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마하 3의 속도로 날아 10분 만에 바티칸 시국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셈텍스를 이용해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어링을 점검하고 침대에 누우려고 하는데···.
'어라? 제임스가 왜 혼자 지하에 내려갔지?'
나는 즉시 개인 채널을 이용해 제임스를 호출했다.
"제임스 거기서 뭐 합니까?"
"아, 이제 연락이 닿네요. 조금 전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이어링 수신 범위 밖에 있었고 마하 3의 속도로 날아 오다 보니 이어링 통화 불능 상태였다.
"밖에 있다가 방금 돌아왔는데 지하엔 왜 내려갔습니까?"
"이상한 냄새에 이끌려서요. 이건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냄새인데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져서 조사 겸 내려 온 겁니다."
"변신해 있습니까?"
"네, 발음이 이상하죠. 변신하면 주둥이 모양 때문에 발음이 샙니다. 하하."
"무슨 냄새죠?"
"저도 몰라요. 변신에 능숙해지고 변신하는 동안 여러 가지 능력을 끌어올렸는데 크리스의 조언으로 냄새 수련을 하다 보니 이상한 냄새를 발견했는데 본능적으로 매우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연락을 드리고 함께 조사해 보려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제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거기 기다려요. 금방 갈 테니."
"아,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셈텍스를 이용해 순식간에 제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코너를 돌자마자 거대한 제임스의 몸체가 보였다.
"안 그대로 좁은 복도 꽉 메우고 있네요."
"엇, 어떻게 벌써 오셨습니까?"
늑대 인간으로 변한 제임스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누가 봤다면 일단 비명부터 지를 정도의 끔찍한 외모였으니까.
"냄새 근원지는 찾았습니까?"
"네, 이 복도의 끝입니다."
'언노운 이 친구와 나의 후각 차이가 어느 정도이지?'
【두 사람의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제이미는 변신함과 동시에 후각상피 구조 자체가 인간과 완전히 다르게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냄새 자극을 담당하는 후각 전위가 냄새 분자를 완벽히 분석하도록 개조되었으므로 인간의 후각 센서와는 격이 다릅니다】
'제임스가 맡은 냄새의 정체가 무어지?"
【그건 저도 알수 없습니다】
"저 복도 끝이라면 창고인데···. 냄새가 어떻길래?"
"매우 위협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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