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demonium. Mammon's Tower(283)
롱기누스의 창(1)
살아남은 네 명은 원인도 모를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고 있다.
"잠깐 아래층에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뭣 하러? 시체라도 치우게?"
파니의 말에 윌리엄은 오소리를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희 악마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해. 시신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그들이 서운해할 거야."
"그건 빈 껍질에 불과해. 영혼은 이미 게헤나로 끌려갔어. 서운해할 짬도 없을 거다."
"나도 같이 가지."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가르고 떨어졌다.
고개가 절로 돌려졌다. 상상 이상의 끔찍한 모습에 윌리엄은 순간 얼어붙었다.
파비앙의 잘린 머리가 언덕 가운데 비스듬히 뉘어져 있었고 오웬은 허리 아래로 몸이 반 토막이 나 있었다. 불에 그을린 사람은 누구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양팔이 뽑히고 눈알이 뽑힌 율리고. 리안은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십자가에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의 가슴은 벌어져 있으며 심장이 밖으로 뽑혀 있었다. 머리가 으깨져 확인이 어려운 이는 가진 무기를 보고 퍼시벌인 걸 알았다. 뱃속의 내장이 모두 쏟아져 나와 죽어 있는 이는 피터였다.
"으아아. 이게 도대체 뭡니까?"
윌리엄의 고함이 가슴을 뒤흔들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추슬렀다. 이미 벌어진 일. 분노한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사실 이 정도 시신은 정크 보이 시절에도 흔히 봐왔다. 이미 이런 지옥이 익숙했다.
윌리엄과 함께 시체를 수습하고 화장식을 치렀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 먼지 한 줌만 남길 뿐이다.
사이보그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다섯은 몸체가 종잇조각처럼 구겨졌다.
"크리스의 힘으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이그조틱은 강력한 힐링 팩터를 가졌다고요."
"알아, 바르타무스가 개입해서 이리된 거야."
"놈을 그냥 두면 평생 원망할 겁니다."
"실수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지. 놈은 분명히 롱기누스 창을 찾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고 두 번씩이나 경고했어. 그걸 못 알아들은 것은 나야. 파니 말대로 소원을 말할 때는 앞뒤 정확히 따져서야 했어. 파니가 말렸건만 내 욕심이 지나쳤어. 문제는 바르타무스에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끌려간 이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거야. 맘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이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문을 받을 테니까."
"어떻게 하시게요?"
"일단 롱기누스 창을 찾는다. 생각해 보자. 여기서 1년이 저쪽에서는 한 시간이야. 우린 충분한 시간이 있어. 잘 활용해야지. 창을 찾으면 악마를 상대할 어떤 것을 찾을지도 몰라."
"아라곤이 창을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악마를 물리치기 위함인가요?"
"물론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내 목표야."
"그건 저도 공감합니다. 악마를 때려잡는다면 언제든 힘을 보태겠습니다."
"너도 알지만 그들의 힘은 거대해 수만 년을 넘나들며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꿈틀댔던 것들이야. 그런 놈들을 쉽게 때려잡을 수는 없어. 진짜 악과 싸우려면 반드시 본신을 찾아야 해. 화장하는 데 헬파이어를 사용하다니 이들에게 모욕이 아닐까?"
12명의 사체를 완전히 녹여 버렸다. 물론 찌그러진 사이보그는 어쩔수 없었지만···.
"바퀴에 665층을 설계한 놈을 찾으라고 명령해 두었어. 사역마 둘은 네르갈이 감금해 두고 있어 활용을 못 하겠네."
위층에서는 고통의 비명이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근데 사체를 보니 이상하더군. 비석에는 외압이 가해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현장을 보니 다른 권능이 작용했어. 바르타무스 그놈 짓이겠지만, 어떻게 다른 권능이 작용하고도 미션이 완수 된 거지?"
"놈은 우리와 이야기 하는 동안 맘몬과 계약을 한 거죠. 2중 계약인 거죠. 바르타무스는 맘몬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을 것이고 맘몬이 그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봐요."
"놈들은 별거 아니라는 롱기누스 창을 왜 쉽게 주려 하지 않지? 이미 우리가 개입한 이후로는 이 탑은 엉망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창을 찾아보면 알게 되겠죠. 과정이야 어떻든 미션을 모두 끝마쳤으니 롱기누스 창은 당연히 손에 들어 올 거예요."
"그냥 주지 않고 왜 게이트를 연 거야?"
"저도 그것까지는, 들어가 보면 알게 되겠죠."
"아라곤 제가 먼저 들어가 분위기를 보고 올까요?"
"아냐. 함께 하는 편이 나아. 바퀴가 무슨 정보를 물어 올지 모르니까."
"아래층에서 바퀴에 명령했죠? 그곳에서는 아직 1초도 안 지났을 겁니다."
"알아, 하지만 바퀴는 하루에 한 번이지만 시간 축을 비틀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정보를 알아내고 이 시간대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루에 한 번뿐이지만."
'"665층을 설계한 악마를 알게 되더라도 놈을 어떻게 불러냅니까?"
그때 브릔힐드가 말했다.
"내가 교차로의 악마를 불러내서 12명의 영혼을 돌려 달라고 하면 어떨까? 아니면 그들이 죽기 이전으로 되돌려 달라고 하면 되잖아?"
"어? 누님 말이 되네요. 아라곤 생각은 어때요?"
"그렇지만 놈이 황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어."
"안된다니까요. 교차로의 악마를 자꾸 불러내서는 안 돼요. 만약 불러내서 만에 하나 네 육신을 내가 가지겠다고 말해 버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란 말이에요."
"그럼 네가 불러내. 넌 악마니까 상관없잖아?"
"미안하지만 내 몸은 호문쿨러스라 안 돼."
"교차로의 악마는 무엇이든 가능해? 내 본신을 찾아 달라는 것도 가능한가?"
"놈은 우수한 협상 전문가예요. 네필림의 본신 위치를 알고 있는 악마와 접촉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럼 본신을 얻어서 교차로 악마를 잡아 죽이면?"
"그럴 확률은 제로라고 해두죠. 제가 말했죠? 교차로 악마는 게헤나에서 직업과 같은 거예요. 교차로 악마에 종사하는 악마들은 널려 있다고요. 그리고 주인님은 이미 한번 계약한 상태라 그 계약이 끝나지 않았기에 교차로 악마를 불러낼 수 없어요."
"나는 가능해."
"물론 너는 가능해. 네가 지금 다시 교차로의 악마를 불러낸다고 치자 놈은 앞뒤 정황을 알고 있는 상태야. 12명의 동료를 살린다고? 그 대신 놈이 부를 대가를 감당할 자신이 있어?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사악한 것을 요구할 거야. 교차로의 악마는 인간이 평생 단 한 번 부를 수 있어. 그 단 한 번 소원에 자신의 영혼을 판 거라고. 앞으로도 절대 불러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이상하네. 왜 맘몬은 뻔히 보이는 곳에 상자를 설치했지? 마치 교차로의 악마를 불러내라고 하는 것 같잖아? 그리고 부르지도 않은 서기인지 뭔지 모를 놈이 나타나 왜 쓸데없이 교차로의 악마를 불러내라고 힌트를 준 거지? 우연이 너무 겹치면 그건 계획된 거라고 봐도 되겠지?"
내 말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우연이 겹쳐지는 것이 이상하긴 하네요."
지금은 바퀴가 어떤 정보라도 가져오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아래층의 끔찍한 모습이 가시지 않았는데 비명은 그 기억을 더욱 떠오르게 했다.
"6초가 지났어. 어디 보자."
저쪽에서 맘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재빨리 그쪽으로 달렸다.
"호오? 처음 하는 테스트인데 꽤 성공적인데?"
"뭐야 이거?"
"누구였지?"
모습이 실로 끔찍했다. 머리는 인간의 머리가 아닌 괴물의 머리통이었다.
덩치도 거대해졌고 모습은 완전히 짐승의 모습이었다.
너무나 깜짝 놀라 처음에는 몬스터가 출현한 줄 알았다. 걸레 조각이 되었지만 입고 있는 옷을 봐서는 그가 제임스인걸 알았다.
"맙소사. 제임스!"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되긴 거대한 힘을 인간의 몸뚱이가 버틸 수 있겠어? 수인화를 시켜야지 겨우 버틸 수 있는 정도라고. 상상도 할수 없는 힘을 얻는데 이깟 수인화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지."
"이런 미친 새끼가? 되돌려 놔."
"입이 험한 네필림이군."
윌리엄은 순간이동으로 맘몬의 뒤를 잡았다. 그러나 순간 허공에서 정지한 듯 아니 석상이 되어 멈춰 버렸다.
"괜찮아. 잠시 공간을 압축했어! 못 움직일 뿐이지 죽지는 않아. 네필림을 잘못 죽이면 손에 똥이 묻거든."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12명을 몰살시키더니 이젠 4명을 병신 괴물로 만들어 놓았어.
나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말했다.
"원래대로 돌려놔 줘. 인간의 모습으로 돌려놔."
"안돼. 이미 수인화가 진행되면 다시는 번복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정확히 말했잖아. 힘을 받는 대신 그릇이 변하게 된다고. 넌 사람의 말을 특히 악마의 말은 주의 깊게 들어야 할 거야. 이번이 좋은 경험이 됐기를 바랄게. 정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죽여 버려도 돼."
난 이들의 비명이 듣기 싫어 근처에 가지 않았다. 만약 처음부터 확인해 봤더라면 이 꼴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세상 살기에는 아직 아주 어리구나.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놈이 무슨 세상을 구하겠다고 지나가는 헬하운드 오줌싸는 소리지. 컬 컬."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인가 보다. 귀찮은 빈대 열두 명 싹 정리했고 괜찮은 애완동물 네 마리나 구했으니까···."
"그래,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으면 되는 거야. 네 마리 인수인계 끝났고 창은 저 게이트 안에 있으니 내 임무는 모두 완료된 셈이지. 아, 지나가는 말이긴 한데 악마와 맞짱 뜨고 싶으면 힘 좀 키워서 와. 교황청에 가면 네 본신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거야. 발바도스가 먼저 힌트를 준 것 같던데? 넌 악마의 말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니까. 악마는 실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아. 악마의 말에는 모든 진리가 담겨 있는 거라고. 컬 컬, 그럼 수고 하게나."
-팟
맘몬의 형체가 사라지자 허공에 매달려 굳어 있던 윌리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억, 컥, 후아, 후아."
숨을 쉬지 못한 듯 괴롭게 헐떡였다.
"으하하하. 하하."
나는 실없이 웃었다.
"우리 존재는 놈에게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보다 가치가 없었던 거야. 차원이 달라. 힘의 레벨이 다르다고."
브릔힐드마저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도 맘몬과의 힘 차이를 피부로 느낀 것이다.
"헉, 헉.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놈들의 장난질에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으, 아부, 아으. 아부다. 컹."
제임스는 입을 제대로 놀리지 못해 발음이 샜다. 인간의 입 대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개의 주둥이를 가지고 있으니 발음이 되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더 처참했다. 새 부리를 가진 검은 독수리의 머리다. 잭은 호랑이 머리를 크리스는 곰의 머리로 바뀌었고 신체도 반인반수의 신체로 변했다. 그것도 평범한 동물이 아닌 거의 몬스터에 가까운 사악한 모습이었다.
맘몬은 이그조틱을 괴물 짐승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사악하고 포악한 느낌이 물씬 나도록 말이다.
이어링에 표시된 형식은 악마도 아니고 데몬도 아닌 데빌이었다.
데몬은 악마가 무에서 새롭게 탄생시킨 생명체를 통괄하며 데빌은 기존의 생명체에 사악함을 불어 넣어 악의 성향을 지니도록 개조한 것을 통칭한다.
네 사람은 개조가 되었으므로 통칭 데빌의 표식이 뜬 것이다.
'심층 다이브를 사용하지 않으면 혹시 악의 사념에 물들지도 모른다.'
"키아악."
"크악."
항상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 언노운 없이는 심층 다이브를 사용할 수 없다.
"윌리엄, 브릔힐드, 게이트로 들어가 지금 녀석들과 싸울 순 없어."
"맘몬! 이 우라질 같은 놈."
윌리엄은 욕설을 퍼부으며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를 브릔힐드와 파니가 함께 들어갔다.
"으, 오늘 하루는 아주 지옥 같은 날이군."
흙으로 만든 집? 흙냄새가 진동하는 마른 흙벽돌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담 사이로 사막의 모래 냄새가 진동했다.
모든 것이 황갈색으로 보이는 곳이다.
"여기는 또 어디야?"
윌리엄의 목소리 뒤로 소란스러운 군중의 소음이 섞여 들어왔다.
"제길, 롱기누스 창이 있다며 열어준 게이트인데 놈이 거짓말한 거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분노가 극에 달해 모든 걸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뿐이다.
흙벽으로 된 좁은 통로를 따라 뛰어나오는데 골목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통로에서 막 빠져나오려고 하다 멈췄다.
수많은 군중이 웅성거리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한 사람이 구부정한 자세로 힘겹게 큰 나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의 머리에는 가시관이 씌어 있었다.
"지져스 크라이스트!"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수 있었다. 주두의 십자가 길드 현판에 그려진 그림과 똑같은 장면이 연출 되고 있었다.
"여긴 저도 들른 적이 있어요. 골고다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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