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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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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4
추천수 :
176
글자수 :
76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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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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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32. 기숙사 뱀 습격사건 - 2

DUMMY

똑똑똑


성천이 문을 열고 나가자 심각한 표정의 아현과 피아가 서 있었다.


“뭐야, 왜 또?”


귀찮다는 듯 대답하는 성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걸 꾹 참아야 했다. 피아와 아현은 손가락으로 반대편 문을 가리켰다.


“문 잘 잠갔다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벌써 두 번이나 당했는데, 세 번째가 없을 리 없잖아.”


처음엔 운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튿날 또 뱀이 나타났다. 이번엔 무려 세 마리였다. 절대 우연일 리 없었다. 그래서 매번 문을 잠그고 나갔지만, 다시 돌아와 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덕분에 성천만 괴로워졌다. 벌써 닷새째였다.


“그동안 없었잖아. 언제까지 내가 너희들 방을 확인해 줘야 되는 거야?”


“그러지 말고 제발 도와주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응?”


“하아.”


이웃을 잘못 만난 탓을 하며 맞은편 방문을 열었다. 커튼도 걷은 그대로였고, 창문도 열려있었다. 옷장을 열고 침대 밑을 살폈다. 다행히 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없어. 들어와.”


“정말?”


두 소녀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방에 뱀을 풀 정도면 어지간히 미움 받고 있나 본데. 그 정도면 거의 원한이라고 봐야 되는 거 아냐?”


“넌 하루 종일 나랑 붙어 다니면서 보고도 몰라? 내가 누구한테 원한 살 사람이냐?”


“그럼 네가 아니면 누구야?”


성천과 아현의 시선이 피아를 향했다. 워낙 떠오르는 일이 많아 할 말이 없었다.


“뭐가 됐든 얼른 해결해. 이젠 나도 지친다.”


“그거 잠깐 도와주는 거 가지고 엄청 생색내네. 더럽다. 더러워. 더러워서 더 부탁 안 해. 됐냐? 퉤퉤.”


그렇지 않아도 범인을 찾아 해결하고 싶었다. 언제까지 불안에 떨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테러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범인을 찾을 방도가 없었다.


“진짜지?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니야. 미안. 잘못했어. 그러지 마. 너 없으면 우리 방에 못 들어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며 다시 매달렸다. 아무리 아니꼬워도 스스럼없이 부탁할 수 있는 건 성천 밖에 없었다.


복도 한 구석,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쾅!


의료실 문이 세게 열리며 벽에 부딪혔다.


“성천이 다 죽어 간다며?”


성천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치곤 피아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밝았다.


“조용. 의료실에서 누가 떠드니?”


의술 교수 분타가 피아를 무섭게 노려봤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매서운 눈빛에 움찔한 피아는 고개를 숙이곤 성천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향했다.


“멀쩡하네? 소문엔 크게 다쳤다던데?”


침대 옆 의자에 앉아있는 아현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왜? 아쉽냐?”


다쳐서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피아까지 깐죽대자 발끈해 소리쳤··· 소리치고 싶었지만, 분타의 눈치를 살피고 속삭였다.


“애들이 볼 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거야. 체력훈련장 계단에서 엄청 심하게 굴렀거든.”


오전수업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맨 앞에서 계단을 내려가던 성천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으이그, 한심아. 평소에 얼마나 수양이 부족하기에 계단에서 구르냐?”


“그게 아닌 것 같아.”


아현은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누군가 민 것 같아.”


혼자 균형을 잃은 자세가 아니었다. 넘어지기 전 성천의 상체가 앞으로 크게 휘청이는 걸 확실히 봤다. 누가 밀지 않고선 갑자기 그렇게 될 리가 없었다.


“뭐? 어떤 미친놈이?”


“그건 나도 몰라.”


“뒤에 서 있던 놈들이 범인일 거 아니야? 그 중에 의심 가는 놈 없었어?”


의심할 만한 인물은 없었다. 아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홀로 앞서 있어서 뒷사람의 손이 닿을 거리가 아니었다.


“언니가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 나도 등을 떠밀리는 느낌이 있었어. 근데 손으로 민 것 같진 않고··· 묵직한 바람 같달까?”


마법이었다. 피아는 예상 못한 전개에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현과 성천은 고개만 끄덕였다. 분타가 들을 수도 있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그럼 마법학부생 전부가 용의자가 되는 거잖아? 상황이 상당히 큰데?”


“그건 아직 몰라. 꼭 주변에 있던 애들이 아닐 수도 있어. 다른 곳에 숨어서 마법을 썼을 수도 있잖아.”


“마법학부 뿐 아니라, 마법학과 전체가 용의자라고? 설마······.”


허가받지 않은 대련에 대한 처벌은 매우 엄중했다. 하물며 상해를 목적으로 한 일방적인 폭행은 퇴교될 정도로 엄중한 사항이었다. 그런데 그 상해에 마법까지 사용됐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모른 척 하자. 증거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일만 커질 수 있으니까.”


“근데 왜 그랬을까? 얘가 밉상이긴 하지만, 이런 짓을 벌일 정도로 미운털 박힐 애는 아니잖아.”


욕인지 칭찬인지 묘하게 헷갈렸다.


“모르지. 입장에 따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수도 있는 거잖아.”


“하긴··· 나도 가끔 높은 데서 밀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어이, 친구들. 나 여기 있어. 다 듣고 있다고.”


심하지 않은 부상이었지만, 성천은 하루 더 의료실에서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 * *


문을 잠그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지 않아 문틈에 솔잎을 끼워뒀다. 문을 열지 않는 한 떨어지지 않도록 잘 끼워뒀는데, 문 옆에 떨어져 있었다. 마침 타미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데? 벌써 세 번째잖아?”


방에서 나온 타미의 양 손에 뱀이 한 마리씩 들려있었다.


‘지금까지 잠잠하다 어째서 오늘이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지난 닷새 동안 잠잠하던 뱀 테러가 성천이 다쳐 의료실에 들어간 날 다시 시작됐다. 만약 솔잎을 끼워두지 않았거나, 타미가 없었다면 첫날의 공포를 다시 한 번 느꼈을 것이다.


‘성천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였나? 우릴 돕는 성천을 치우려고? 아냐. 너무 과한 생각이야.’


고작 독도 없는 뱀 몇 마리 풀어놓는 장난을 위해 큰 부상을 야기할 수도 있는 행동을 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누구야? 누가 자꾸 이따위 유치한 장난질이야?”


타미가 억눌렀던 분통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방문이 하나둘 열리며 학생들이 복도로 나왔다.


“애들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야? 분명히 경고한다. 또 이런 짓 벌이면 교수님한테 다 보고 할 거야!”


두 번의 테러가 벌써 닷새 전이었다. 엄청난 우연이거나 일시적인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타미의 손에 또 뱀이 들려 있었다. 세 번이나 같은 일이 벌어진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씩씩거리는 타미를 보며 웅성거리던 학생들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순식간에 돌변한 공기의 이유가 등 뒤에 있음을 직감한 타미가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뭘 보고한다는 말이죠?”


학장이었다. 겁만 줘서 장난을 멈출 생각이었지 진짜 교수에게 고자질할 생각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군요. 그 손에 든 뱀은 또 뭐죠?”


아현은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 같은 직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 * *


우려했던 대로 사건은 공론화되어 교수 회의까지 소집되었다. 학장을 비롯해 카델의 모든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묵과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이야 장난이었다 치더라도 세 번은 불량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범인을 찾아 엄중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교수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러나 다른 입장을 가진 교수들도 없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범인을 찾죠? 작심하고 찾자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학생들 일에 교수들이 능력을 쓰면서까지 개입해야 되는지 의문입니다.”


“이 걸 어떻게 학생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이랍니다. 세 번이나 다른 학생 방에 뱀을 넣었어요.”


“독은 없는 뱀이라죠.”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학생 수준에 맞춰 해결해야 된다는 쪽과 학교 차원에서 직접 개입해야 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학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러 교수님들 의견 잘 들었습니다. 결론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적절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 같군요. 그 적절의 수준이 문제이긴 한데··· 이건 제 사견이지만, 그래도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으니 다소 가볍게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정신적인 피해도 피해죠. 두 학생 모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뱀이라면 아주 질색한다고 하더군요.”


침묵을 지키던 분타의 일침이었다.


“그렇군요. 제 말이 경솔했습니다.”


“그리고······.”


학장의 사과를 끊고 분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있습니다. 육체적 피해자. 지금 의료실에 누워있고요.”


분타의 한 마디가 회의실을 뒤집어놓았다.


“무슨 말입니까? 피해자라뇨?”


놀란 교수들이 소리쳐 물었다.


“자기들 딴엔 숨기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던 모양인데··· 들었습니다. 우연찮게. 정신적 피해를 입은 두 학생에게요.”


* * *


성천과 아현, 피아는 회의실의 무거운 분위기에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분명 불쾌하고 짜증나는 상황이었고, 빨리 해결되길 바랐다. 그러나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시나브로 해결되길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어져버렸다.


“요약하자면, 세 차례 잠긴 문을 누군가 강제로 열고 방에 침입했다. 없어진 물건은 없다. 독 없는 뱀을 풀어놨다. 누군가 계단에서 성천 학생을 밀었다. 직접 접촉은 아니었고, 바람마법으로 추정된다.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맞나요?”


아현과 피아는 잔뜩 긴장한 덕에 학장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성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절 밀었다는 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마법도 확인된 게 아니라, 아현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성천의 대답은 아현과 피아가 바라던 대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교수들의 반응은 생각과 달랐다.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군요. 감추려 한다고 감출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닙니다.”


분타의 차분하면서 강한 어조에 아현과 피아는 움찔했다. 그러나 성천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황을 두고 저희끼리 얻은 결론일 뿐, 어떤 증거도 없음을 교수님들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섣부른 판단이 일을 키웠습니다. 모두 저희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아현과 피아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증거가 없다라······.”


학장의 시선이 분타에게 향했다. 분타는 짧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천에게 다가갔다.


“잠깐 일어나 뒤돌아볼래?”


성천이 일어나 몸을 돌리자 분타가 성천의 웃옷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등 위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아주 짧은 시간 회의실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분타가 다시 손을 때고 옆으로 비켜섰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행히 흔적이 남아있군요.”


성천의 등에 미약하게 푸른 얼룩이 보였다. 마치 화장 붓으로 살짝 스친 듯 아주 작고 흐린 얼룩이었다. 얼룩을 확인한 교수들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졌다.


“아현 학생, 피아 학생도 이 얼룩이 보이지? 인체에 닿은 마나는 이렇게 흔적을 남기지. 이래도 착각이었다고 변명할 거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됐습니다. 확인은 끝났으니 세 학생은 그만 나가보세요.”


휴우


아현과 피아는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냥 심한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이. 당한 건 우린데 고자질한 것처럼 마음이 영 불편해. 넌 아무렇지 않아? 어쩜 그렇게 무덤덤할 수 있어?”


피아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교수님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시겠지.”


“와, 냉혈한. 얘는 가끔 보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단 말이야.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저렇게 대답 하냐? 무서운 놈··· 응?”


계단 아래서 인기척을 느낀 피아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도무라다였다.


“도무라다? 거기서 뭐 해?”


도무라다를 알아보고 계단을 내려가던 아현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도무라다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맞잡은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도무라다는 아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설마?’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살른 교수가 밖으로 나왔다.


“도무라다 학생, 회의실로 들어오세요.”


도무라다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아현을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들어가자.”


살른은 부드러운 말투로 도무라다를 이끌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피아의 놀란 눈이 아현을 향했다.


“설마 쟤야?”


아현은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학장은 차가 다 식도록 손도 대지 못했다. 찻잎을 갈던 바기라는 찻잔을 치우고 다시 뜨거운 차를 채워 학장 앞에 놓았다.


“제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데,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년이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정학이 아닌, 조금 더 합리적은 방법은 없었을까요? 살른 교수에게 책임을 넘긴 것 같아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살른 교수는 출산휴가가 예정되어 있었으니, 나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신 학장님 덕분이죠.”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학장 자리에 있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과분한 자리에서 결단을 내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바기라는 위로의 말을 꺼내려다 다시 삼켰다. 지금 학장에겐 어떤 말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학장의 눈앞에 살른과 도무라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죄송합니다. 가벼운 장난으로 시작한 건데··· 성천이 다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가볍게 겁만 줄 생각으로······.”


도무라다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뱀은··· 그렇게까지 겁먹을 줄 몰랐어요. 그런데 너무 겁먹기에 통쾌해서 그만······.”


도무라다는 모든 잘못을 시인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편입생에 대한 질투였다. 그러나 과정과 결과가 결코 단순하지 못했다.


“다른 학생의 방에 무단침입, 정신적 피해, 허가되지 않은 물리적 마법 사용, 상해. 이상이 도무라다 학생의 잘못입니다. 인정하나요?”


“네······.”


떨리는 입술로 겨우 대답했다.


“처분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그만 돌아가도 됩니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기다릴 것 같았다.


“한 말씀 드려도 괜찮을까요?”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살른이 나섰다.


“학장님을 비롯해 여러 교수님들께서 아시듯, 도무라다 학생은 제가 추천했던 학생입니다. 제 조카이기도 하고요. 이 사태의 원인은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제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부탁드립니다.”


도무라다는 불안한 눈빛으로 고모인 살른을 봤다.


“제 교수직을 걸겠습니다. 부디 퇴학만큼은 재고해 주시길 청합니다.”


살른의 폭탄 발언에 교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놀란 건 도무라다와 학장도 마찬가지였다.


“교수직을 걸겠다는 건 무슨 뜻이죠?”


“며칠 후면 출산을 위해 당분간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출산휴가 기간 동안 제가 책임지고 도무라다 학생을 다시 지도하겠습니다. 1년, 딱 1년만 유예해 주십시오. 그 안에 제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교수직을 내려놓겠습니다.”


“고모!”


“가만히 있어!”


살른의 의지는 얼굴에 뚜렷이 드러나 있었다. 도무라다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고모의 교수직이 위태로워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교수님의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리 쉽게 결정할 사항은 아니군요. 더 나은 해결책이 있는지 논의를 해봅시다.”


교수 대부분은 도무라다의 퇴학을 주장했다.


“전 아직도 다른 방법이 생각이 안 납니다. 정학··· 그것도 살른 교수가 교수직을 거는 조건을 수렴한 정학밖에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학장의 완곡한 설득으로 도무라다의 처분은 살른의 요청대로 결정됐다.


“오늘은 차보다 술이 필요한 날인 것 같군요.”


바기라는 다시 식어버린 찻잔을 치우고 술병과 잔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저도 공범입니다. 제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두 분이 학교를 나갈 일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하하하.”


“아······.”


잊고 있었다. 카델의 불문율, ‘문지기를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절대 카델에 출입할 수 없다.’ 이유 불문. 모든 사항에 우선하는 첫째 법칙. 만약 문지기인 바기라가 허락하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어떠한 경우라도.


* * *


카델을 나와 뱀의 협곡을 지나는 내내 도무라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섣부른 선택이 부른 결과와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사과의 말조차 함부로 뱉을 수 없었다.


“고모 심심하다. 집에 갈 때까지 그렇게 입 다물고 있을 거니?”


“······.”


“어차피 지난 일이야. 앞으로 잘 하면 전부 해결될 수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


“아 놔, 소심한 년. 언제까지 꽁해 있을 건데?”


“미안······.”


힘겹게 꺼낸 한 마디와 함께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살른은 살며시 도무라다를 안았다.


“괜찮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한 번은 할 수 있는 거야. 반성하고 고치면 되는 거야.”


“으앙~ 미안해, 고모. 정말 미안해. 나 잘 할게. 정말 열심히 잘 할게. 으앙~”


대성통곡이 뱀의 협곡에 메아리쳤다.


“그래. 그래. 앞으로 잘 하면 돼. 근데 그 애들이 왜 그렇게 미웠어? 너한테 잘못한 것도 없잖아.”


“몰라. 재수 없어. 실력도 없으면서 고개 빳빳한 놈도 재수 없고, 얼굴 예쁘고 가슴까지 큰 년이 잘난 것도 재수 없고, 꼴 보기 싫어.”


‘아이고, 이 철딱서니 없는 년아.’


품에 안겨 하소연하는 조카의 철딱서니에 살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 년. 그 숲에서 살던 촌년이 제일 재수 없어. 세상물정도 제대로 모르는 년이 다 잘 해. 가슴도 작은 년이 어떻게 못하는 게 하나도 없냐고. 진짜 재수 없어. 으앙~”


수업에 집중하던 아현은 갑작스런 가려움에 귀를 긁적여야 했다.


“그렇지. 확실 눈에 띄지.”


궁술 훈련 도중 아현이 보여준 마법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과녁에 명중하기 직전 화살이 방향을 바꾸는 마법은 학부생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지였다. 더군다나 이제 마법운용을 시작한지 몇 개월 되지 않는 아현의 마나 량으론 불가능에 가까운 마법이었다.


“응? 뭐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도 세 번이나 방에 뱀을 푼 건 너무 했어. 넌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그 아이들에게서 떨어뜨리려고 성천을 다치게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잖아.”


“아냐. 마지막은 나 아니야.”


“뭐?”


“그때는 너무 무섭고 경황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데, 세 번째 뱀은 나 아니야.”


“······.”


세 번째가 아니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사안이 더욱 확대돼 정학으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사건 때문에 모든 것이 밝혀졌다. 누군가 의도를 갖고 벌인 일일 수도 있었다.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아무 의미 없는 일이야.’


세 번째 사건이 누구의 소행이든, 도무라다의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더 이상의 의심은 의미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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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 개학 - 불편한 소문 22.05.24 34 2 17쪽
26 #25. 서열 1위 맏내 아르젠느 22.05.24 25 2 16쪽
25 #24. 머글의 착각 +2 22.05.23 35 3 16쪽
24 #23. 엑스펠리아르무스 22.05.23 26 3 17쪽
23 #22. 본격적인 마법수업, 마법 감응훈련 22.05.22 37 4 16쪽
22 #21. 너무나 현실적인 판타지 세계의 교육방식 22.05.22 30 4 17쪽
21 #20. 지극히 주관적인 편입 테스트 22.05.21 32 4 15쪽
20 #19. 문지기를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카델에 출입할 수 없다. 22.05.21 34 3 18쪽
19 #18. 미끼와 간식, 그 사이 어딘가 22.05.20 32 3 22쪽
18 #17. 지안/싱 전쟁의 악귀 아한지 +1 22.05.20 33 4 21쪽
17 #16. 아한지와 검성 체프만 22.05.19 32 3 20쪽
16 #15. 답답한 놈의 신중함 22.05.19 30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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