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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최근연재일 :
2022.12.28 22:25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74,048
추천수 :
2,527
글자수 :
469,180

작성
22.11.03 22:15
조회
2,124
추천
62
글자
17쪽

생명수의 소녀(3)

DUMMY

“지나치게 효과가 좋았다? ”

“학자님도 마셔보셨겠지만 릴리의 생명수는 무기력이나 나른함, 식욕부진 같은 피로를 씻어준다오. 예로부터 피로는 만병의 근원이라 하였지. 해서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그 물을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르곤 했소. 한데 물을 팔면서 비슷한 소릴 한 치들이 있었던 모양이야. 값을 올려 받으려는 속셈이었겠지만 그게 도리어 화근이 되었지. ”

“보통은 사기꾼이라며 비난을 받게 되는 전개겠지만, 하시는 말씀을 보니 아니었나 보네요. ”

“반대였소. 처음에는 예상대로 잠을 잘 잤다거나 피로가 사라졌다는 정도의 반응이었지. 한데 언제부턴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더군. 입마름과 부종에도 효과가 있고, 혈뇨나 혈변에도 효험이 있다는 거요. 눈병과 다리병을 치료해 준다는 말이 들리더니 종국에는 늙은이를 회춘시키고 과부를 처녀로 만든다는 소문까지 퍼졌지. 정작 몇 달씩 마신 우리로서는 감도 안 오는 얘기였소. 몇날 며칠을 수소문한 끝에 나는 겨우 답을 찾아낼 수 있었지. ”


이맛살을 찌푸린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알고 보니 생명수는 ‘부자병’의 특효약이었던 거요. ”

“부자병이요? ”

“음? 부자병을 모르시오? ”

“가르침을 청합니다. ”

“말 그대로 부자들이 걸리는 병이라서 부자병이라오. 때로는 여신의 심판을 받았다고도 하고 거지신의 저주를 받았다고도 하지. 혼자 저택에 틀어박혀 호의호식하는 식탐 많은 부자들이 자주 걸리는 병인데, 겉으로는 풍채도 좋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다가 발 없는 손님처럼 불쑥 찾아온다고 하오. ”


흠흠, 헛기침을 한 촌장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이후로는 아무리 물과 술을 마셔도 입이 마르고, 커다란 소시지를 통째로 먹어도 살이 빠진다고 하오. 아름다운 것만 보는데도 눈이 침침해지고 밖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퉁퉁 다리가 붓는다지. 오줌에서는 그동안 마신 맥주를 토해내어 하얀 거품이 일고 잡아먹은 짐승들의 피가 섞여 붉게 물든다고 했소. 마치 여태까지 부린 사치의 값을 뒤늦게 치르듯 시름시름 앓다가 거지꼴로 죽게 되는 무서운 병이지. ”


병보다는 귀신이야기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촌장의 설명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오라클, 검색창을 띄워 줄래? ’


나는 머릿속 인터넷 검색엔진 오라클을 호출했다.


이미지검색이 아니라 검색어를 직접 입력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생긴 것부터 구골 판박이니 어려울 건 없었다.


<ORACLE>

[ ]


‘검색, 당뇨병. ’


-타닥!


<ORACLE>

[당뇨병_]


-딸깍!


<ORACLE>

[당뇨병]

전체 | 이미지 | 기사 | ...

* 당뇨병 | 질환백과 | 의료정보 | 건강정보 | 연희의료원

* 당뇨병 - 세피로스위키

...


‘역시나. ’


입마름, 체중감소, 시력저하, 부종, 혈뇨와 단백뇨.

모든 증상이 내가 알고 있는 당뇨병(Diabetes)과 일치했다.


나는 다시 사념을 보내 명령을 내렸다.


‘오라클? 검색 키워드에 부자병을 추가해서 재검색. ’


<ORACLE>

[당뇨병&부자병]

전체 | 이미지 | 기사 | ...

* [당뇨대란] 당뇨병이 부자병이라고요? - 헬's조선


‘과연. ’


‘부자병’이라던 촌장의 말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제1형 당뇨병을 제외한 당뇨병의 90%는 잘못된 식습관과 스트레스, 운동부족에서 온다.


그리고 현대의 부자들은 운동이나 식습관, 스트레스 관리 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서 자기관리를 하거나 의학의 도움을 구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영양학을 비롯한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과거에는 값비싼 음식을 먹을 여건이 되는 부유층이 오히려 당뇨병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비만이 자기관리의 실패보다는 부유함의 상징으로 동경 받았기에 운동으로 관리하려는 생각도 잘 하지 않았다.


이곳의 생활수준은 여태까지 봐온 경험으로는 기껏해야 중세 무렵, 한창 당뇨병이 ‘부자병’일 시기다.


문제는 아무리 마법으로 만들었다지만, 맛좋은 ‘물’일뿐인 생명수가 왜 당뇨병에 효험이 있었냐는 건데...


나는 검색 결과들을 쭉 훑어보며 촌장에게 물었다.


“잘된 일 아닙니까? 부자들이 앞 다투어 찾았을 텐데요. ”

“나도 처음에는 그럴 줄 알았소. 하지만 현실은 다르더이다. 머지않아 이 근방의 물장수라는 물장수들은 전부 우리 마을로 몰려왔지. 전에는 이쪽에서 와 달라고 사정을 해도 멀다고 안 오거나 웃돈을 받던 놈들이 말이오. ”

“분쟁이 일어난 겁니까? ”

“일어났소, 안팎으로. 물장수들끼리의 다툼이야 강 건너 불구경이었지만은, 곧 온 마을 사람들이 협박과 회유를 받기 시작했지. 생명수가 솟는 샘의 위치를 말해주면 몰래 은화를 주겠다거나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거래를 끊겠다는 식이었소.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소? 생명수는 샘이 아니라 릴리의 두 손에서 나오는 것을. ”

“흐음. ”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릴리를 넘기자고 했지만 내가 쌍수를 들고 겨우 말렸다오. 하지만 그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지. 늦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게 바로... 막혀있던 마을의 폐우물을 다시 파는 것이었소. ”

“우물을요? ”

“자연에서 솟은 샘이야 위치를 아는 누구나가 쓸 수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공을 들여 판 우물은 마을의 자산이자 그 주인이신 영주님의 자산이니 말이오. 거기서 허락 없이 물을 떠가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하는 짓은 다름 아닌 영주님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게요. ”

“거기서 생명수가 나온다고 거짓말을 하신 거군요. ”

“그렇소. 덕분에 겨우겨우 물장수들을 쫓아내고 릴리의 존재를 숨길 수가 있었지. ”


거기서 촌장이 들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신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말이오. ”


그가 마을 광장 중앙에 위치한 우물을 바라보았다.

작업이 어느새 끝났는지 수십 개의 물통들이 쌓인 수레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학자님. 내일 저 수레가 어디로 갈지 짐작이 가시오? ”


대답은 쉬웠다.

방앗간지기가 괜히 영주님 핑계를 댄 것은 아닐 테니까.


“영주님의 성으로 가겠지요. ”

“맞소이다. 혹시 이유도 아시겠소? ”

“마을의 우물은 마을의 주인이신 영주님의 자산이니까. ”

“그렇지, 빌어먹을! ”


한약 같이 쓴 홍차도 태연하게 마시던 촌장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우물의 사용권을 핑계로 물장수들은 쫓아낼 수 있었지만 대신 우리는 ‘생명수가 솟는 성스러운 우물’의 사용료를 영주님께 바쳐야하는 처지가 되었소. 덕분에 그동안 밖에 팔아온 만큼의 물을 고스란히 성에 갖다 바쳐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 ”

“그래서 릴리가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거고요? 마을 사람들과 영주 양쪽의 수요를 맞추느라? ”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순순히 납득하기는 어렵군요. ”

“왜 그렇소이까? ”

“물론 세금이 가볍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전부 바치는 건 아니잖습니까? 우물을 다시 팠으니 새로운 담수 공급원도 생겼을 거구요. 품삯을 더 주진 못해도 부담을 줄여줄 수는 있었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쓰는 생명수의 양을 줄여서요. ”

“그게 말처럼 쉽게 되면 참으로 좋겠소만. ”


촌장이 윗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오. ”

“어째서인가요? ”


초로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우그러졌다.


“우물파기는 실패했으니까. ”

“예? ”

“저건 그저 우물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구멍일 뿐이오! 막혀 있던 물길을 기껏 다시 파봤지만 나오는 건 소태처럼 짠 바닷물뿐이었지. 돌담을 다시 쌓고 지붕을 세운 뒤 두레박을 달아 멀쩡한 우물인 척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외다. ”


노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식수라곤 빗물을 빼면 릴리의 생명수뿐이오. 그간 거래해온 물장수들과도 그때의 분란 탓에 척을 져버렸지.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게요.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새로운 샘이나 우물이 나와 주지 않는 이상. 농사짓기도 바쁜데 가는 데만 반나절은 걸리는 강 상류까지 가서 물을 길어올 수도 없는 일이잖소? ”

“흠. ”

“뻔뻔한 소리라고 할 지도 모르겠소만, 우리들도 살고는 봐야 하니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다오. ”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해서 학자님께 감히 드리고픈 부탁이 있소이다. ”

“릴리한테 이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는 건가요? ”


예상과 달리 촌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녀석도 진실을 알 때가 되었지. 문제는 이 사실을 안 릴리가 배신감에 훌쩍 마을을 떠나기라도 하면, 우리 마을은 불과 몇 달을 못가서 폭삭 주저앉아버리고 말 거란 게요. 이 늙은이가 평생을 바쳐 쌓아온 모든 것과 함께! ”


벌떡 일어난 노인이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니 부탁드리오. 현명하시고 정의로우신 학자님! 학자님께서 부디 릴리에게 잘 좀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을의 딱한 사정과 이 사람의 안타까운 마음을. ”

“제가요? ”

“차마 내 입으로 하기는 민망한 얘기라서... ”

“글쎄요. 전 사과는 본인이 하는 게 제일이라 봅니다. ”

“면목 없지만 내 입장도 생각해주시오. 이런 작은 마을의 장이라도 대장은 대장이지. 마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세워야하는 위엄이란 게 있는 거요. 아직 결혼도 안 한 처녀한테 허리를 굽히면 다들 날 얼마나 우습게 보겠소? 가뜩이나 제분소의 게일이 방앗간지기가 된 이후로, 궁내관 나리하고 안면 좀 텄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기어오르고 있소이다. 참고로 전에 물장수들과 분란이 났을 때, 놈들한테 당장 릴리를 넘기라고 길길이 날뛰던 놈이 그놈이었소. 녀석한테 날개를 달아 줄 참이오? 그건 그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거외다. ”

“그래도 제가 당사자가 아닌지라. ”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오. ”


촌장이 응접실의 벽장에 꽂혀있던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를 가져오더니 내 앞에서 펼쳤다.


그가 책갈피처럼 끼어있던 얇은 주머니를 거꾸로 들고 탈탈 털자 반짝이는 은화들이 짤그랑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늙은이가 한 푼 두 푼 모아온 저금이라오. 외국의 학자님이신데 조난을 당하셨다고 들었소이다. 아무리 귀하고 똑똑하신 분이라도 본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면 노잣돈이 필요하시지 않겠소? 가져가서 릴리와 나누시오. ”

“굳이 이렇게까지... ”

“아니. 받아주시오. 노자로 필요하신만큼은 학자님께서 가지시되, 나머지는 릴리한테 주시고 우리네 사정을 잘 좀 설명해주시오. 딱 내년 봄까지만 견뎌 달라고... 그때쯤 되면 뭐라도 방법이 생기지 않겠소? 여름에 밀을 수확하면 섭섭지 않게 챙겨 줄 테니 그때까지만 같이 참아보자고 말이오. ”


촌장이 주머니에 다시 담은 은화를 내 손에 쥐어주며 고개를 숙였다.

매몰차게 뿌리치기는 힘든 태도였다.

그의 말처럼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기도 했고.


언제까지 릴리한테 얹혀살 수도 없거니와, 그녀에게 빚진 구조비와 치료비, 숙박료도 챙겨주고 싶다.


게다가 나도 당분간 이 세계의 주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상 이곳의 돈은 필요할 것이고.


[관련 검색어 : 은화 (상태가 좋다.) ]


나는 못 이기는 척 주머니를 챙겼다.


“결과를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

“그걸로 충분하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소. ”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촌장의 집을 나섰다.

뉘엿뉘엿 기운 해가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 * *



“늦으셨네요. ”


벽난로 앞에 앉아있던 릴리가 뾰로통하게 눈을 흘겼다.


“미안해요. 촌장님과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

“그럴 것 같더라니... 휴우, 아무튼 식사부터 하세요. 데워드릴게요. ”


그녀가 언제나의 빵 그릇에 죽을 담아서 내왔다.

예상대로의 똑같은 식단이었지만 릴리의 목소리에 묘하게 자신감이 넘쳐서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과연 달라진 게 있었다.


[관련 검색어 : 귀리죽 (적당하다.) ]


평가가 무려 적당해졌다.

메뉴가 귀리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근데 왜 그릇이 하나뿐입니까? 릴리 씨는요? ”

“저는 먼저 먹었으니 편히 드세요. ”


정말로?

저 ‘적당한’ 농도 뒤에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기 어려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인가?


나는 난로 옆 찬장에 있는 그릇 빵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그 거짓말 진짜예요? ”

“우... 진짜 먹었어요. 오늘처럼 피곤한 날은 과식하면 오히려 안 좋고요. 미르 씨도 어제 비슷한 말씀을 하셨잖아요. ”

“그렇기는 하지만. ”

“정말 괜찮으니 드시기나 하세요. ”


독촉한 릴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아. 이번에는 자신 있다는 거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식사는 미룰게요. ”

“네? 아니, 그래도 한 입 정돈 드셔보세요! 진짜 두 배는 나을 거라고요? ”


2 x 0 = 0, 기초적인 사칙연산인데. 아무튼,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빵 그릇도 불릴 겸. 제 입맛에는 많이 딱딱하더라고요. ”

“하여튼 진짜 입맛이 까다로우세요. ”

“하하, 출신지가 다르다 보니. 저도 제 나라에서는 절대 입이 짧은 편이 아니었답니다. ”

“그 거짓말 진짜예요? ”

“오. 한 방 먹었네. ”


릴리가 의기양양함과 씁쓸함이 반반 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걸 보고 있던 나도 따라서 웃음이 나왔고.


하지만 농담은 여기까지.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 돌덩이 같던 트랑쇼와르가 물먹은 골판지가 되어갈 즈음 릴리가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

“생각보다 놀라시지 않네요. ”

“비슷한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여행을 계속해왔던 것도 있고요. 오래 머물었다가는 꼭 이런 일이 생기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마을과 떨어져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


그녀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허탈해보였다.


“괜찮은 게 아니라 저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네요. 마을 분들도 그동안 얼마나 괴로우셨을지. ”


이 와중에도 남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지 싶었다.

살면서 그녀 같은 진짜 선인을 만나기는 힘들다.

내 세상에서도 그랬고 이런 시대에는 특히나.


아니, 오히려 이런 곳이라서 그녀 같은 별종이 나올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아직 한 가지 화제가 더 남아있었다.


“그래도 딱 하나 긍정적인 소식이 있습니다. ”

“뭔데요? ”

“이거요. ”


-짤그랑!


나는 예의 동전 주머니를 꺼내어 탈탈 털었다.

지켜보던 릴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은화네요? 그것도 깨끗한 게 일곱 닢이나! ”

“방금 이야기를 전해주는 조건으로 받았습니다. 제 수고비를 제하고 릴리 씨한테 드리라더군요. ”

“아. ”

“그럼 분배를 해 볼까요? ”


나는 총 일곱 닢의 은화를 눈앞에 끌어 모은 다음, 릴리에게 한 닢을 내밀었다.


“구해주신 값이랑 이것저것 해서 6:1, 불만 있으세요? ”

“아,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 ”

“정말입니까? 있다 말 바꾸실 거면 지금 미리 말해요. ”

“충분해요. 더 주시면 오히려 제가 죄송해져요. ”

“그럼 이걸로 됐군요. ”


나는 왼손바닥으로 내 앞의, 오른손바닥으로 그녀 앞의 은화를 누르고 반원을 그려서 위치를 바꾸었다.


“자, 릴리 씨가 여섯 닢, 제가 한 닢, 그렇게 6:1. 말 바꾸기 없다고 했습니다. ”

“네, 네에? ”


벙 쪄있던 그녀가 목소리를 떨었다.


“이, 이이이건 너무 많은데요? ”

“바로 몇 초 전에 불만 없다고 하셔 놓고? ”

“그 뜻이 아니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

“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인데 이깟 은화가 대숩니까? 제 목숨 값 그렇게 안 쌉니다. ”

“아무리 그래도... ”

“가끔은 제값 쳐주는 손님도 있어야죠. 물론 이것도 한참 모자라겠지만. ”

“모, 모자라다뇨? 이 돈이면... ”


꿀꺽 숨을 삼킨 릴리가 입술을 다물었다.


“이 돈이면, 그 다음은 뭔데요? ”

“아,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이 돈은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드리는 데 보태는 게 좋겠... ”

“릴리 씨? ”

“네? ”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시면 저 혼자서 일곱 닢 다 챙겨들고 도시로 튈 겁니다. ”

“말 바꾸기 없다면서요. ”

“제가 안 바꾸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

“... ”

“말해 봐요. 그 돈이면 뭘 할 수 있죠? ”

“어... 할 수 있는 일이야 많겠죠? 이것저것. ”

“내가 질문을 잘못했네. ”


나는 다시 물었다.


“뭘 하고 싶은데요? ”

“그건... 소원을 물으시는 건가요? ”

“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릴리 씨만의 소원이요. ”

“제 소원은... ”


눈을 감은 그녀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돌아가고 싶어요. 고향으로.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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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양의 우물(1) +3 22.11.04 2,041 48 17쪽
» 생명수의 소녀(3) +3 22.11.03 2,125 62 17쪽
5 생명수의 소녀(2) +2 22.11.03 2,293 61 16쪽
4 생명수의 소녀(1) +9 22.11.02 2,720 72 19쪽
3 불시착(2) +8 22.11.01 3,303 88 19쪽
2 불시착(1) +11 22.11.01 3,762 190 14쪽
1 프롤로그 -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17 22.11.01 4,295 19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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