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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최근연재일 :
2022.12.28 22:25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74,080
추천수 :
2,527
글자수 :
469,180

작성
22.11.03 22:05
조회
2,293
추천
61
글자
16쪽

생명수의 소녀(2)

DUMMY

“참! 학자님? ”


앞장서서 걷던 릴리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어제도 말했지만 그냥 미르라고 부르세요. ”

“아! 네, 미르 씨.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는 학자님이라고 부를게요. 그 편이 훨씬 소개하기 편하거든요. ”

“그렇다면 뭐... ”

“이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에요. ”


그녀를 따라서 해변 반대쪽으로 걸었다.

잠시 후 제법 널찍한 밭을 낀 작을 마을이 나왔다.


나무로 골자를 세우고 흙벽으로 사이를 메운 집들, 얼기설기 지은 목책과 그 바깥을 흐르는 실개천,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아담한 광장과 짚 지붕을 세우고 돌담을 둘러친 우물, 뒤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풍차와 제분소.


크게 볼품은 없지만 나름 운치 있는 풍경이었다.

멀리 보이는 성벽과 석조건물은 영주의 성이겠지.


릴리는 작년 겨울께부터 이 마을의 치료사 겸 물장수 노릇을 해왔다고 했다.

원래는 겨울을 나는 대로 다시 길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망망대해 앞인 데다 나침반도 고장 난 탓에 발이 묶였다고.


그래서 어획철 임시숙소로 쓰는 해변의 외딴 집에 살며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거나 물을 팔아 살아왔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걷다보니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근처에서 서성이던 노인이 이쪽을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촌장님! ”

“릴리 왔니? 오늘도 생명수를 팔러 왔나보구나. ”


나이치고는 날카로운 시선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한데 그쪽은 누구시오? 생김새가 암만 봐도 이 근방 사람이 아니신데? 옷차림도 범상치 않으시고. ”

“바다 너머 나라에서 오신 학자님이세요. 근처에서 조난을 당하셔서 제가 간호하고 있었어요. ”


릴리의 말에 촌장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호오? 아직 한창 때로 보이는데 학자님이시라니! 누추한 곳에 귀한 손님께서 오셨구려. ”

“아닙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

“심지어 겸손하기까지!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구랴. 음, 해서 말인데, 괜찮다면 우리 집으로 모실 테니 이 무지렁이에게 지혜를 빌려주시지 않겠는가? ”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내 옆구리를 릴리가 쿡 찔렀다.

돌아보니 그녀가 뻐끔뻐끔 입술을 움직여서 ‘나중에! 나중에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몸이 나으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

“부탁하네. 요즘 걱정거리가 늘어서 가뜩이나 없는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릴 지경이거든. ”


혀를 찬 노인이 물러서서 길을 터주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하고 릴리 뒤를 쫓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나는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살림이 찢어지게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후! 말씀하신대로 네 통 다 채웠어요. ]

[고생했어요. 삯은 늘 주던 만큼이면 되죠? ]

[아, 그게... 오늘은 환자분이 계시니 조금만 더 안 될까요? ]

[네? 아니, 그거는 그분한테 받아야죠! ]

[조난을 당하셔서 남은 게 옷밖에 없으시거든요. 그렇다고 굶으시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딱한 처지는 알겠는데 이러면 저도 곤란해요. 과부 사정 어려운거 빤히 알면서. ]

[알고는 있지만... ]

[그리고 얼마 전에 막혔던 우물 다시 뚫은 거 아시죠? 내가 그래도 릴리 양 물 팔아주려고 얼마나 애쓰는데요. ]

[아... 죄송해요. 부담되신다면 앞으로는 안 올게요. ]

[네? 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얘기죠. 이번만이에요? 영주님 바뀌고 나서 나도 많이 힘들어. ]

[감사합니다. 그럼 모레 다시 올게요. ]

[그때는 혹 같은 거 달지 말고 와요. ]


릴리가 진땀을 흘리며 집에서 나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민망한 듯 배시시 웃었다.


“그... 들으셨어요? ”

“뭘요? ”

“아, 아니에요! 휴우... ”


문틈으로 새어나온 대화야 못 들은 척 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든 광주리의 내용물을 보고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한 줌의 밀과 두 주먹 정도의 귀리, 그릇 대용으로 사용하는 오래된 빵 세 개와 살구만한 풋사과 두 개, 살코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돼지비계 한 덩이와, 처음 볼 땐 동전인 줄도 몰랐던 거무튀튀한 동화 한 닢.


참고로 아까 간 집에서 다 받은 것이 아니었다.

열 곳 가까이 돌아서 모은 것을 전부 합친 게 저거였다.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 돌아가면 돼요. ”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

“저번 달부터 다들 원하시는 양이 늘었거든요. 염해 때문이겠죠. 그래도 보세요! 소시지는 아니지만 간만에 밀과 사과가 들어왔네요. 학자님 핑계를 대서 그런지 풍년이에요! ”


운수 좋은 날이라며 릴리는 웃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

“아! 그렇죠? 생각해보니 운이 아니라 학자님 덕분이었네요. 마을 분들께는 부담을 드렸지만... ”

“어휴. 진짜 병이네, 병. ”

“네? 어디 아프세요? ”

“나 말고 그쪽이요. ”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게 풍년이라니?


말이 안 되었다.

깨끗한 물은 희소한 자원이다. 생수도 정수기도 없는 중세시대에는 더더욱.


빵 그릇인 트랑쇼와르를 쓴다는 사실부터가 이를 증명했다.

설거지를 할 수 있을 만큼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제대로 된 그릇을 쓰는 것이 훨씬 편하고 경제적이니까.


마을에 개천이 있긴 했지만 딱 봐도 사람이 쓸 건 못 되었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릴리가 방문한 집들은 하나같이 몇 잔 정도가 아닌 몇 동이 이상의 물을 요구했다.


대충 봐도 가구당 20L 이상.

대량생산체제가 완비된 한국 기준으로도 배달비 떼고 5천 원은 줘야 했을 양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받은 품삯은 아무리 봐도 5만 원은커녕 만 원어치도 안 돼 보인다.


물론 세상이 다른 만큼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어쩔 수 있나요. 다들 어려우신 때이니. ”

“아직 가을 아닌가요? 추수한 곡식이 남아있을 텐데. ”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올해 춘경지의 반 가까이가 염해를 입었거든요. 겨울을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아껴야 할 거예요. ”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염해를 당했으면 깨끗한 물은 오히려 귀해진 거 아닌가? ”

“그건 그렇지만... 세상에! ”


릴리가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딱 벌렸다.


“설마 마을 분들의 불행을 이용해서 폭리라도 취하라는 건가요? 그딴 데 쓰라고 하나님께서 제게 힘을 내려주시지는 않았을 거예요! ”

“꼭 그러란 게 아니라 더 줄 법도 했다는 거죠. 사람들의 부담을 릴리 씨가 대신 짊어질 필요도 없고요. ”

“그래도 도울 수 있는 만큼은 도와야죠. ”


그녀가 항의하듯 덧붙였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만 삯이 내려간 건 아니에요. ”

“그럼요? ”

“학자님께서 좋아하실 법한 이유를 대자면... 얼마 전에 마을 분들께서 우물을 파셨거든요. 막혀있던 폐우물의 물길을 다시 뚫으셨다고. 그래서 이젠 굳이 제 물을 사서 마실 필요가 없어졌대요. 잘 된 일이지만 제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 거죠. 그래도 이틀에 한 번은 꼭 찾아주시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에요. ”


수요 감소로 인한 가격인하, 나름 타당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식 논리다. 정작 릴리가 강조한 나눔이나 온정은 쏙 빠져있는.

게다가,


“그럼 하다 못해 양이라도 줄여 줄 수는 있잖습니까? 쉬기라도 하게. ”


그 말과 동시에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깐.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 ”


나는 방금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했다.


1. 마을 사람들이 막혀있던 폐우물을 다시 뚫었다.

2. 그럼에도 이틀에 한 번 릴리의 물을 찾는다.

3. 그 양은 혼자 사는 과부 기준으로 약 네 동이(갤런), 20L 이상.


명백히 이상했다.


‘혼자 사는 집에 릴리의 물이 20L 넘게 필요하다고? ’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릴리의 생명수는 명백히 식수(食水)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쓴다면 명당 하루에 1.5L, 반동이 이하면 충분했다.


아무리 가격을 후려쳤다지만 가난한 과부가 아쉬운 소리를 하며 네 동이씩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꼭 사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분명 다른 곳에 있으리라.


나는 패딩을 벗어서 릴리한테 내밀었다.


“릴리 씨, 잠시 다녀올 테니 방에 둬주세요. 입고 뛰기에는 아직 덥더라고요. ”

“네? 이제 곧 저녁 시간인데... ”

“금방 갔다 올게요. ”

“어, 어디를요? 하, 학자님? 미르 씨? ”


릴리가 다급히 내 이름을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윽고 도착한 예의 마을.

광장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이놈들아, 빨리 빨리 실어! 몰래 꿍쳐 둘 생각일랑 하지 말고. 오늘까지 약속한 수량을 맞춰드려야 한단 말이다! ”


어느 중년인의 지휘 아래 마을 사람들이 광장 앞 수레 위로 뭔가를 정신없이 옮기고 있었다.


“엥? 거기 인마! 너는 왜 혼자 멍 때리고 있어? 당장 이리로 와서 거들지 못하... 하, 학자님? ”


개당 4L쯤 돼 보이는 나무통이 겹겹이 쌓인 수레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던 중년인이 나를 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학자님이 여긴 어쩐 일로... ”

“아침에 마을의 촌장님께서 제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빌려드릴까 해서 와봤습니다만. ”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군요. 이미 알아서 살길들을 마련하고 계셨는데 말입니다. ”

“오, 오해십니다요! 이건 영주님께 바치려고 빚은 술... ”

“춘경지가 염해를 입어 가뜩이나 수확이 준 때에 피 같은 곡식으로 수십 통씩 술을 만들어 바친다? 제정신이 박힌 영주라면 오히려 당신들 목을 매달려고 할 텐데요. ”

“... ”


사내가 합죽이가 되었다.

얼굴을 보니 오늘 낮에 릴리의 물 다섯 동이를 받아가고 딱딱한 그릇 빵 두 개를 내민 방앗간지기였다.


“그게,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


남자가 변명하기 전에 나는 아직 수레에 실리지 않은 나무통 하나의 뚜껑을 따서 입에 들이부었다.


“아니! ”


-꿀꺽! 꿀꺽!


“캬, 물맛 좋네요! 어라? 내가 아는 맛인데? ”

“아무 것도 모르면서 비꼬지 마십쇼! 이건... ”

“알면 뭐가 달라집니까? 당신들이 자기 딸 만한 아이를 여태껏 착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요? ”

“차, 착취라니! 아까부터 듣자 듣자하니까! ”

“이보게! ”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이 사태에 끼어들었다.


“젊은 학자 나리,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게일, 자네도! ”

“촌장님, 들어보십쇼! 지금 저 새파란 학자 놈이... ”

“그러게 왜 씨알도 안 먹히는 거짓말을 해가지고 일을 키워? 자네 말처럼 이 분은 지혜로운 학자님일세. 자네 아들내미 같은 바보 천치가 아니란 말이야! ”


그의 일갈에 중년인이 입을 뻐끔거렸지만, 결국 내뱉지 못하고 ‘에잇!’ 소리치고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 모습을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촌장이 시선을 돌렸다.


“학자님 몸이 생각보다 빨리 나은 모양이구려. ”

“몸이 낫길 기다리다가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왔지요. ”

“허허, 이제 보니 말솜씨만큼 정의감도 있는 분이셨군. 아직 여신께서 우리 마을을 버리시진 않으셨나 보오. ”


그가 마을 중앙의 큰 집으로 고갯짓을 했다.


“따라와 주시겠소?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 ”


넓은 응접실에서 노인과 마주앉았다.


주변에 의자가 많고 깃펜이나 양피지 등의 필기구가 탁자 한쪽에 굴러다니고 있는 것을 보아, 촌장의 업무공간 겸 마을의 회의실로 사용하는 장소인 모양이었다.


고용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차를 가져다주었다.

찻잔을 바라보며 사념을 보내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관련 검색어 : 홍차 (매우 진하다.) ]


색깔을 보니 마셔보지 않아도 맛을 알 것 같았다.


“게일 놈 일은 이 늙은이가 대신 사과드리리다. 옛날 같았으면 뺨이라도 한 대 갈겨줬을 텐데 세월이 야속하구려. ”


나는 최대한 학자연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저도 말이 심하기는 했습니다.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하는 전제 아래 드리는 말씀이지만요. ”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들어보시고 판단하시겠소? ”

“말씀하시죠. ”

“고맙소이다. ”


시뻘건 차를 한 모금 마신 그가 수염 아래로 흐르는 붉은 물방울을 털어내며 말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고장은 옛날부터 물이 귀했다오. 조금만 나가면 바다인데 무슨 소리냐는 치들도 있지만, 학자님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지. ”

“담수가 부족했다는 말이겠군요. 특히 식수가. ”

“맞소이다. 마을 주변에 개천이 흐르기는 하나 저 위의 영주님 성과 도시에서 쏟아지는 오물들 때문에, 농사에나 겨우 쓸모가 있는 수준이라오. 빗물을 받아쓰기도 했지만 늘 양이 모자랐고. 그런 우리 마을에 깨끗하고 맛좋은 물을 만드는 릴리가 와준 것은 여신님의 축복이었지. ”

“처우를 보니 당사자에게는 저주 같던데요. ”

“지금은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우리도 나름의 성의를 보여 왔다오. 저 변덕스러운 바다가 올 가을 수확물의 3분지 1을 앗아가기 전까지는 말이지. ”

“그게 릴리의 잘못은 아니지요. ”

“알고 있소.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축복이 저주로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드오. 그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


노인이 다시 홍차를 입에 대고는 말을 이었다.


“춘경지가 염해를 입고 수확물이 줄어들자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지기 시작했소. 추경지는 다행히 무사했지만 지금 씨앗을 뿌려도 내년까지는 있는 걸로 버텨야하거든. 목초의 소금기를 못 견디고 죽은 가축들을 잡아 소시지를 만들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였소. 청어철도 멀었으니 다들 마음이 급해졌지. ”

“그 정도면 아예 구휼을 요청하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

“재작년까지라면 그랬을 거요. 이곳은 걸핏하면 소금물이 올라와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지만 그걸 아시는 영주님께서도 세금을 자주 감면해주시곤 했으니까. ”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까? ”

“영주님이 바뀌었소. 선친의 덕은 찾아볼 수 없는 새파란 젊은이로 말이오. 어느 날 순시에 웬 마법사를 데리고 오시더니 다음 해부터는 칼 같이 세금을 거두시겠다하시더군. 전쟁영웅으로 출세해서 자기 성을 세운 선대와 달리 곱게 자란 분이라 아랫것의 고충을 모르는 거요. 게다가 성미도 괴팍해서, 걸핏하면 누굴 지하감옥에 가두었다, 심지어 처형했다는 이야기가 나돌더군. 그런 상황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소? ”


촌장이 자기도 사양이라는 듯이 두 손을 펼쳤다.


“힘드셨겠습니다. ”

“그랬지. 그래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차에, 마을의 애송이들 몇이 꾀를 냈다오. 바로... ”

“릴리의 생명수를 다른 곳에 파는 거였겠죠. ”


잠시 멈칫한 촌장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벌써 다 짐작하고 계셨구려. ”


그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다시 차를 들이켰다.

혹시 생각보다 안 쓴가 싶어 나도 잔을 들었지만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본 홍차는 역시 소태처럼 썼다.


“어우! ”

“왜 그러시오? ”

“아닙니다. 대강 사정은 알겠군요. 하지만 어째서 이 사실을 릴리에게 밝히지 않았죠? 그 녀석 성격에 오히려 나서서 도왔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물을 팔아 번 돈을 나누기 싫었던 게 아닙니까? ”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해서였소. 학자님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벌지도 못했고. ”

“설명해주시죠. ”

“물론 처음에는 벌이가 꽤 괜찮았소. 깨끗한 물이 귀한 곳은 우리 마을만이 아니고, 특히 그 아이의 생명수는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까. 처음에는 물을 팔기 위한 릴리의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달 마셔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

“저도 압니다. 그래서요? ”

“바로 그 점이 문제였소. ”


뜸을 들인 촌장이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요컨대, 지나치게 효과가 좋았던 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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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양의 우물(1) +3 22.11.04 2,041 48 17쪽
6 생명수의 소녀(3) +3 22.11.03 2,125 62 17쪽
» 생명수의 소녀(2) +2 22.11.03 2,294 61 16쪽
4 생명수의 소녀(1) +9 22.11.02 2,720 72 19쪽
3 불시착(2) +8 22.11.01 3,305 88 19쪽
2 불시착(1) +11 22.11.01 3,763 190 14쪽
1 프롤로그 -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17 22.11.01 4,296 19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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