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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175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4.01.25 10:00
조회
2,906
추천
120
글자
17쪽

24장 [그리고] -03-

DUMMY

처음에는 옆으로 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뒤에 있던 그녀가 발로 걷어찬 것인지 콘크리트 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태민은 어쩔 수 없이 LN블레이드를 휘둘러 덩어리를 조각냈다. 조각난 덩어리들 사이에서 이미 자세를 잡은 그녀가 보였다. 그녀가 온 몸의 힘을 끌어올려 날린 주먹이 눈앞의 콘크리트를 잘라냈고, 태민에게 피할 시간은 없었다.


정을 대고 망치로 내려친 듯한 고통이 얼굴을 강타했다. 찰나였지만 머릿속의 생각과 몸의 감각이 모두 사라지고 순수한 고통이 몸을 지배한 순간이었다. 생각이 사라진 머릿속에 쓰러지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 채워졌다. 실제로 충격에 의해 기능이 정지된 상체는 심하게 꺾이며 뒤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 다리만은 머릿속이 날아간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일을 잊지 않고 굳건히 수행했다.


잘린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닥에 쏟아질 때, 오른쪽 다리는 스스로 힘을 주어 쓰러지던 몸을 단단하게 받쳐줬다. 그러자 날아갔던 정신이 서둘러 돌아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패배의 단어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감겨있던 태민의 눈이 번쩍 뜨이고 아래윗니가 까드득 소리를 내며 맞물렸다. 목에 힘이 돌아오면서 그녀의 주먹을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거의 뒤를 보고 있던 태민의 얼굴이 이제는 그녀의 죽은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누나….” 태민은 오른 주먹을 힘껏 쥐었다. “지금이 그때죠?”


목의 힘만으로 얼굴을 짓누르고 있던 그녀의 주먹을 밀어내고 앞으로 돌진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죽은 눈은 자신이 아닌, 바닥을 보고 있지만 지금 이 사태는 알고 있다는 듯이 꿈틀거렸다. 새롭게 날아오는 주먹은 자신보다 빠르다. 피할 생각은 없다. 주먹을 이마로 쳐내자 그녀의 몸이 순간 균형을 잃었다. 태민은 모든 힘을 다한 오른 주먹으로 그녀의 복부를 쳐올렸다.


배를 정통으로 맞은 그녀는 서둘러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내지른 기백과 다르게 지극히 평범한 주먹이었다. 아까 전처럼 몸이 공중에 뜨지도, 배를 뚫을 정도로 강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거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는 순간, 집어 던지기로 빠르게 그녀의 뒤로 이동한 태민이 발을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도 않고 손으로 태민의 발을 막아낸 뒤 그대로 발목을 움켜잡아 앞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에 튕기며 날아간 태민은 공중에서 몸을 돌려 간신히 바닥에 착지했다.


순간 그녀는 이제까지 없던 무언가가 자신의 주변에 있음을 알아챘다. 여섯 개의 LN나이프가 손잡이가 돌려진 채로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을 이용해 탈출구를 찾아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였다. 등 뒤에서 LN나이프가 폭발하자 그녀는 지금 사용한 탈출구가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도망친 곳에서는 아직 날을 뽑지 않아 손잡이 상태인 LN블레이드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힘들게 몸을 일으킨 태민은 입을 움직였다.


“발검.”


그 말을 신호로 LN블레이드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날이 목표를 향해 뻗어 나갔다. 그녀는 아까 전에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상태에서 공격을 막은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LN나이프의 폭발을 피하느라 자세가 크게 무너진 지금, 전 방향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이 공격까지 피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얕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가장 가까이 있던 LN블레이드를 손으로 낚아채 자신에게 쏟아지는 칼날을 모두 짧게 잘라내고 튕겨버렸다. 그중 하나는 태민이 있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태민은 날아온 LN블레이드를 LN타일로 막아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을 위협하던 함정을 철저하게 박살 낸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당장에라도 이쪽으로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걸 인식하자마자 그녀가 뛰어왔다. 태민도 LN타일에 막혀있던 블레이드를 뽑아 앞으로 달려나갔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칼을 쥔 팔을 휘둘렀다. 0.01초의 차이였지만 그녀 쪽이 조금 더 빨랐다. 태민은 그 작디작은 차이로 인해 자신의 먼저 목이 날아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정면으로 뛰어든 건 아직 수가 하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휘두른 LN블레이드가 만들어낸 공기의 흐름이 목에 닿았다. 하지만 자신의 칼날은 그보다 두 배는 먼 거리에 있었다. 그녀의 칼날이 목에 막 닿아 살을 잘라내고 있었다.


지금이었다.


[소멸.]


그녀의 LN블레이드는 세아의 제어에 의해 태민의 목에 작은 상처만 남기고 연기와 같이 사라졌다. 몸의 체중을 검에 실었던 그녀는 손안의 무기가 사라지자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태민은 팔을 몸 앞으로 가져오면서 LN블레이드의 날을 손잡이 안으로 거둬들였다. 얀 메이가 죽기 직전에 수진에게 했던 말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었다.


다음 순간, LN블레이드의 날이 그녀의 왼쪽 가슴을 꿰뚫었다. 동시에 태민은 이제까지 없었던 위화감을 느꼈다. 칼날을 통해 전해진 감촉 중에 생물이 아니라 금속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세아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이건…. 이 사람…, 심장이 아니라 레가니움 원석이….]


원석. 태민의 머릿속에 과거 홍콩지부에서 패트릭이 보여줬던 커다란 원석이 떠올랐다. 그건 분명, 주먹 그리고 심장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녀는 가슴에 난 상처와 입에서 검게 죽은 피를 뱉어내며 LN블레이드를 빼내기 위해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손에 상처만 생길 뿐이었다. 검에 손을 가져가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상처가 난 손으로 태민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힘은 급속도로 빠져나가, 손이 태민의 몸에 닿았을 때 남아있던 힘은 갓난아기만도 못했다.


그녀는 태민의 얼굴과 가슴을 계속 치다가 결국에는 힘이 다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태민은 LN블레이드의 날을 회수하면서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쳤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아래로 내려 바닥에 눕게 해준 뒤 유일하게 남아있는 오른쪽 눈꺼풀을 감겨줬다.


태민은 주변을 둘러보고 아까 전에 미처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던 자신의 권총을 집어 들어 PA슈트의 허벅지 부분에 붙였다. 모래 폭풍이 그친 건지 사방이 고요했다. 다행이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누가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캣이 지다니,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전개야. 아무튼 네 행동은 잘 지켜보았다. 새로운 건 별로 없었지만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것들이군. 역시 캣을 보내길 잘했어.


패트릭의 목소리가 지하 3층을 울리자 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패트릭! 어디에 있는지 대답해! 당장 그곳으로 가서 죽여주겠어!”

-크큭. 좀 어른스럽게 행동하면 안 되겠나? 계획했던 일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마당에 안전까지 내던질 인간은 세상에 없어.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저 말투, 태민은 그제서야 패트릭과 비슷한 말투를 쓰는 인간이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주변 사람을 비웃을 때 안젤루스가 사용하는 말투가 바로 지금 패트릭이 사용하는 말투와 판박이였다.


-아까 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오늘 너와 나, 둘 중에 하나가 완전히 끝날 거라는 거. 그 약속은 지키겠다. 마침 하늘이 돕는 건지 모래 폭풍도 그쳤고 말이야.


패트릭의 말에 반박하려 하려는 순간, 세상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과 천장이 크게 흔들렸다. 거대한 진동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위를 쳐다보자, 낡은 천장이 어떤 큰 힘을 간신히 버텨내면서 모래를 사정없이 떨구고 있었다.


-예전에 캣이 크로노스를 상대하러 갈 때 폭격을 요청했던 적이 있었던 것 기억하나? 회사 사정 때문이라고는 해도 사랑하는 캣의 요청을 거절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어. 그래서 많이 늦었지만, 지금 그 폭격이 시작됐다.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아. 웬만한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폭탄을 너 하나 죽이는 데 쓰는 거니까. 오히려 과분한 거지.


다시 다시 한 번 지하가 크게 흔들렸다. 천장이 갈라지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보일 때 세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안 돼! 상공에 있는 전투기들의 제어권을 훔쳐보려고 했는데 이전보다 강력한 방화벽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시간에 맞출 수 없어! 태민아!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마지막 말과 거의 동시에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세아의 말대로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태민의 눈은, 방금 전 싸움으로 영원한 침묵에 들어간 예원의 몸을 보고 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무너진 천장이 바로 그녀를 향해 떨어지는 중이었다.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바로 몸을 움직였다.


태민은 손과 어깨와 등을 모두 이용해 무너지는 천장을 막아냈다. 지상에 있던 관제탑까지 더해진 천장의 무게는 무겁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안 그래도 기능이 많이 저하됐던 PA슈트는 장갑이 비틀어지고, 기계 장치가 설치된 곳에서는 전기스파크가 흘렀다. 태민의 한쪽 무릎이 꺾이고 다른 무릎은 바닥에 닿았다. 그렇지만 바닥에 누워있는 예원의 몸에는 작은 부스러기만 떨어졌다.


[태민아….] 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지상에서 폭격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태민의 등을 누르는 힘은 더욱 더 강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사라지면서 PA슈트의 작동이 중단됐다. 지하 3층을 비추고 있던 전등들도 하나둘 빛을 잃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전등 하나가 몸을 반짝이면서 버텼지만 그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사방이 암흑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디선가 패트릭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민.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걸로 생각하고 소식을 전해주지. 블랙 레벨은 이 시간부로 자네를 정식으로 해고하기로 결정했네. 퇴직금이 없다고 욕하지는 말아. 자네가 회사에 끼친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어마어마하지만 우리는 관대한 마음으로 그 부분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지.


바닥에 닿아있던 한쪽 무릎이 바닥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버텨도 바닥은 위에서 내려찍는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태민은 자세를 바꿔 무게를 분산시켜보려고 노력했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대로 폭격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어둠 속에서 패트릭이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저러는 것이라고 태민은 생각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네가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가르쳐주지. 네가 크로노스에게 공격당한 뒤에 우리 임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어. 네가 겁을 먹고 회사를 그만둘까 봐. 순수한 레가니움 에너지 추출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였거든. 그래서 우리는 네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할 방법을 기획하고 실행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태민은 고개를 번쩍 들고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노려봤다. 머릿속을 관통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눈치챘겠지만 비행기가 추락한 건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한 짓이야. 세아를 데려올 때처럼 따로 암살할까도 했는데 여러 정황상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돼버리더군. 호앙이 고생이 많았지.

“패…트…릭….”


태민의 목소리는 분노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후아. 털어놓으니까 속이 시원하군. 이래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나 봐.

[저 인간은 대체….]


세아 또한 큰 충격을 받아 말을 잊지 못했다.


-네 비석은 양지바른 곳에 세워주겠다. 그럼, 다시는 보지 말자.


폭발은 쉼 없이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태민의 몸은 바닥을 향해 파묻혔다. 종아리는 이미 먹힌 지 오래였고, 무릎, 허벅지가 그 다음이었다. 태민은 허리와 상체만으로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폭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고 이윽고 허리를 지나 가슴마저 바닥에 먹혀버렸다. 차갑게 식어버린 예원의 몸이 이제 바로 코앞에서 느껴졌다.


결국,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태민과 예원을 함께 먹어 치웠다.





※ ※ ※





태민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장소 이전에 바닥을 밟고 있는 건지 아니면 공중에 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손과 손을 아무리 부딪쳐봐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더운지 추운지, 깨어있는 건지 자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피곤만이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전부였다. 비몽사몽간에 시간은 흘렀다. 찰나였을 수도 있고, 영원이었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쓰러지려는 순간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학습지 선생님처럼 머리가 짧은 때의 예원이 멀지 않은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를 보이며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예원은 눈썹 끝을 밑으로 내리며 쓴웃음을 짓더니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붙이더니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볍게 두 번 찔렀다.





※ ※ ※





블랙 레벨 병사 두 명이 폭격에 의해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비행장을 조사하고 있었다. 뼈대째 사라진 격납고와 허리가 부러져 쓰러진 관제탑을 조사한 그들이 마지막으로 관심을 기울인 건 땅 아래로 무너져 내린 활주로였다. 폭격에 의해 활주로가 무너지면서 그 밑에 있던 지하층은 완전히 매몰되어 버렸다는 게 그들의 견해였다. 필요한 조사를 모두 마친 그들은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는 사막의 하늘을 올려보면서 힘겨운 하루의 끝을 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병사는 동시에 땅의 흔들림을 느꼈다.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라 둔탁한 소리도 함께였다. 흔들림은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일어났다. 두 명의 병사는 자연적이지 않은 이 현상의 발생지를 찾아내기 위해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들의 눈은 무너진 활주로에서 멈췄다. 흔들림이 일어날 때마다 활주로의 특정 부분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땅이 흔들리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둔탁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두 병사는 이 현상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 흔들림은 땅속에서 일어난 폭발에 의한 것이었다.


병사 중 한 명이 자신이 알아낸 것을 외치려고 할 때였다.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활주로의 파편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두 병사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병사 중 한 명이 무전기를 꺼내 들고 본대에 연락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방금 전 폭발로 뚫린 구멍에서 피와 상처로 얼룩진 그 손이 올라와 활주로 표면을 거칠게 붙잡았다. 손에 이어 팔이 보이고 결국에 그것들의 주인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상처투성이의 태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서진 활주로 위에 몸을 올렸다. 두 병사는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태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성은 이미 사라지고 블랙 레벨, 패트릭에 대한 증오만이 남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붉게 타오르는 노을 아래로 두 명의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태민은 한동안 그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두 개의 총구가 동시에 불을 뿜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십 개의 LN타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생성됐다. 타일과 총알이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요란하게 피어났다.


태민은 자신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바라봤다. 그것은 검은 피에 얼룩진 주먹만한 크기의 레가니움 원석이었다. 정중앙에 LN블레이드의 날과 정확히 같은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음에도 원석에서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복잡한 생각을 할 힘이 없었다. 거기에 대한 증거로 눈꺼풀마저 무겁게 내려오고 있었다. 태민은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결국 작은 신음과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에서 모래가 피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을 때, 손에 쥐고 있던 레가니움 원석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두 블랙 레벨 병사는 일단 사격을 멈췄지만 여전히 총구로 태민을 겨누고 있었다. 둘 중 왼쪽 병사가 턱 끝으로 오른쪽 병사에게 조사를 명령했다. 오른쪽 병사가 눈을 찌푸리면서 망설이다가 간신히 앞으로 한걸음 내디디던 그때, 그가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더니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장난하지 말고…….”


왼쪽 병사는 거기까지 말하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껴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모래 언덕 위에 낯선 그림자가 보였다. 본래 그곳을 지키고 있었어야 할 동료의 모습이 아님을 눈치챘을 때, 병사는 이마에 구멍이 뚫리며 의식을 잃어버렸다.



작가의말

24장 [그리고] 완료

25장 [잔향을 쫓아] 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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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마지막장 [지금 여기에서] -01- +6 14.02.04 3,062 104 11쪽
121 25장 [잔향을 쫓아] -02- +4 14.01.30 3,350 104 13쪽
120 25장 [잔향을 쫓아] -01- +3 14.01.28 2,992 104 19쪽
» 24장 [그리고] -03- +7 14.01.25 2,907 120 17쪽
118 24장 [그리고] -02- +8 14.01.23 3,266 109 15쪽
117 24장 [그리고] -01- +5 14.01.21 3,066 120 15쪽
116 23장 [모래 폭풍 속에서] -04- +6 14.01.18 3,258 110 17쪽
115 23장 [모래 폭풍 속에서] -03- +5 14.01.16 3,527 117 15쪽
114 23장 [모래 폭풍 속에서] -02- +6 14.01.14 3,059 106 12쪽
113 23장 [모래 폭풍 속에서] -01- +8 14.01.11 3,742 111 15쪽
112 22장 [오랜 친구] -08- +6 14.01.09 3,615 115 18쪽
111 22장 [오랜 친구] -07- +7 14.01.07 3,274 110 16쪽
110 22장 [오랜 친구] -06- +7 14.01.04 3,559 121 17쪽
109 22장 [오랜 친구] -05- +8 14.01.02 3,553 112 13쪽
108 22장 [오랜 친구] -04- +5 13.12.31 3,520 124 15쪽
107 22장 [오랜 친구] -03- +4 13.12.28 3,382 120 16쪽
106 22장 [오랜 친구] -02- +3 13.12.26 3,364 106 15쪽
105 22장 [오랜 친구] -01- +6 13.12.24 3,601 110 14쪽
104 21장 [재회] -04- +6 13.12.21 4,192 119 18쪽
103 21장 [재회] -03- +10 13.12.19 3,165 124 16쪽
102 21장 [재회] -02- +10 13.12.17 3,691 124 15쪽
101 21장 [재회] -01- +6 13.12.14 3,120 109 15쪽
100 20장 [내키지 않는 관계] -04- +13 13.12.12 3,074 133 15쪽
99 20장 [내키지 않는 관계] -03- +6 13.12.10 3,475 12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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