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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숨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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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조회수 :
11,065
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작성
22.07.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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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천계_해야 할 일

DUMMY

“여기까지 온 성의를 봐서 알려줄까? 미사가 부활하기 전에 손을 쓰려고. 혼 조각까지 깨끗하게.”


사랑을 속삭이듯 읊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율명의 가슴에서 증오가 끓어올랐다.

진백성으로서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미움, 원한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솟았다.


“그래서 진유를 인간세에 보냈나?”

율명의 목소리가 떨리자 아유라는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여태 몰랐어?”

날개를 펼럭이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기다리기가 너무 지루해서 말이야. 완벽한 것도 좋지만 너무 느리면 답답하잖아? 진유는 널 최고 최강의 유일신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어. 그러니 이용하기 좋지.”


율명은 참지 못하고 자신의 검을 불렀다.

날카로운 빛의 검이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미사랑을 베려했던 바로 그 검이었다.


아유라가 날개를 펼치고 율명에게 바짝 다가섰다.

“날 벨 수 있겠어? 네가 사랑한 날개를 피로 물들일 수 있을까?”


그녀는 날개를 퍼덕여 살랑이는 바람을 만들어냈다.

“하긴, 사랑하는 친구에게도 검을 겨누었으니 못 할 일도 아니지?”


아유라가 눈웃음을 짓자 검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율명의 얼굴을 감쌌다. 율명의 눈두덩을 혀끝으로 부드럽게 핥았다.

율명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갔다.

“넌 너무 순수해. 순진하고, 유치하지. 그래서 좋아.”


“너를 믿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 여겼는데···.”

율명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유라는 천천히 율명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무엇도 믿지 마. 특히 너 자신을 믿지 마.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완전한 모든 것을 잃게 돼. 그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뜻이지.”


그녀는 날개를 접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율이 진실을 알았으니 여기선 신력을 회복하기 어렵겠는걸. 귀찮게 되었어. 다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니.’


아유라는 허리를 숙여 율명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새로운 차원을 열거야. 조금만 기다려. 네게도 보여줄게.”


그녀는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 입맞춤은 견고의 주술이었다. 율명은 아유라의 모습이 다 사라질 때까지 굳어있었다.


그녀가 귓가에 속삭여주던 말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완벽한 유일신, 천선계가 하나가 되면 순수한 세상이 될 거야.’


‘인간세는 빛의 신을 원해. 최고의 신이라고 여겨. 들어봐. 너를 찬양하는 소리가 들리잖아? 암흑성은 불길한 어둠이고 악일 뿐이야.’


‘차원의 경계에서 받은 예언이 있어. 어둠이 세상을 덮으면 어떤 생명도 살 수 없게 돼. 암흑성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에 빛의 세상을 만들어야지. 넌 할 수 있어.’


‘너도 차원의 정수에서 보았다며? 그 암울한 미래를.’


주술이 풀리자 율명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미사랑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자 그의 마음은 노각부줄보다 깊고, 별의 무덤보다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졌다.

‘내, 내가 무슨 짓을···.’


율명은 자신을 둘러싼 대기의 기운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암흑성단의 기운이 어지럽게 섞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암흑성단을 되돌려야 했다.

‘해밀을 찾아야 해.’


*


율명은 곧바로 영천옥으로 날아갔다.

‘천인을 가둘만한 힘은 그곳밖에 없어.’


그의 예상대로 해밀과 암흑성단의 천인들은 의식을 잃고 거대한 알에 갇혀있었다.


영천옥 입구로 들어가던 율명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결계?’


아유라의 결계는 들어갈 수 있어도 나올 수 없는 막이었다. 무엇보다 결계에 닿으면 무기력해지는 주술이었다.

그녀가 지금껏 모은 신력의 대부분을 소모하여 만든 결계였다.


누구도 애써 깨어나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숨 쉬는 것조차 의미 없이 느껴지는 강력한 주술이었다.


보이지 않는 막에 닿자 율명도 자신에 대한 회한과 자책이 밀려왔다.

‘거짓 예언을 믿고 미사랑을 소멸시키려 했다니.’

‘진실을 보라고 알려준 여하에게 오히려 내가 경고하다니.’

‘내가, 신도 아닌 내가···, 유일하고 완전한 신이 되려고 했다니···.’


비틀어지고 기울어지는 우주의 축도 자신의 잘못 같았다.


그의 기억은 곧 진백성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분열은 삼신성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어. 완전한 선, 완벽한 세계는 시작도 하기 전에 내 안에서 무너진 거야.’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어디에든 숨고 싶었다. 존재 자체가 무거운 짐이어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었다.

‘어둠이 없는 빛은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왜 잊고 있었지?’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모든 것을 잃은 듯 허탈했다.

‘난 정말 쓸모없는 존재야. 미사를 그렇게 만들다니.’


율명은 귀를 막았다.

‘미사···.’


머릿속 어딘가에서 미사랑의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우주의 기둥 바로섬에서 별의 무덤을 내려다볼 때였다. 미사랑이 그에게 물었다.

‘아유라를 사랑하니?’

‘응. 누구보다 찬란하고 아름답잖아.’

‘그녀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네가 아름다운 거야.’


그때 미사는 웃고 있었어. 하지만, 왠지 슬퍼 보였지.

내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알고 있던 거야.


기억은 다른 날로 바뀌었다. 암흑성단을 공격하기 전 아름누리에서 만난 미사랑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일, 꼭 하고 싶니?’

‘순수하고 완전한 세상을 위해서야. 그렇게 되면 나도, 너와 여하도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어.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거야.’


미사···. 그때 난 어리석은 확신으로 차 있었어.


아름누리를 둘러본 미사랑이 젖은 눈으로 그에게 돌아섰다.

‘그래. 율, 너는 네가 할 일을 해.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테니.’


그녀가 율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련을 끝내고 돌아갈 때 늘 하던 인사처럼.


웅크리고 앉은 율명의 귓가에 미사랑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너는 네가 할 일을 해.’


그 소리는 머릿속에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네가 할 일을 해!’


율명이 눈을 부릅뜨고 일어섰다.

‘그래. 지금 내가 할 일을 하는 거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의 손에 빛의 검이 나타났다.

이글거리는 힘이 검을 감쌌다. 별 하나를 조각낼 수 있을 만한 기운이었다.


번쩍!

한 줄기 빛이 지나가자 아유라의 결계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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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사로잔_대장 누리예 22.07.12 49 1 10쪽
119 사로잔_가락국 산곡 22.07.12 49 1 10쪽
» 천계_해야 할 일 22.07.11 49 1 7쪽
117 천계_율명의 각성 22.07.11 48 1 8쪽
116 아랑누_배웅과 마중 22.07.10 47 1 10쪽
115 아랑누_새얼의 의지 22.07.10 50 1 10쪽
114 아랑누_축제 구경 22.07.09 4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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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아랑누_지하 미로 22.07.07 47 1 12쪽
108 아랑누_또 하나의 반월도 22.07.06 49 1 11쪽
107 아랑누_신령수 동명 22.07.06 47 1 11쪽
106 아랑누_천인 무아 22.07.05 46 1 12쪽
105 아랑누_무용수 사란야 22.07.05 47 1 12쪽
104 아랑누_책방 고연재 22.07.04 48 1 11쪽
103 아랑누_회한의 성벽 22.07.04 45 1 11쪽
102 아랑누_여관 산연곡 22.07.03 44 1 10쪽
101 아랑누_상재믈국 감항 22.07.03 44 1 12쪽
100 천계_암흑성단의 비밀 22.07.02 46 1 11쪽
99 천계_아유라_발견 22.07.02 50 1 9쪽
98 천계_아유라_깨달음 22.07.01 47 1 11쪽
97 천계_아유라_선택 22.07.01 45 1 10쪽
96 천계_아유라_다른 차원 22.06.30 43 1 13쪽
95 천계_아유라_회귀 22.06.30 4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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