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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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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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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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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천계_아유라_다른 차원

DUMMY

‘새로운 차원을 보게 될 것이다.’


몇 개의 우주가 태어났다 사라질 긴 시간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낯선 소리는 여전히 아유라의 곁에 남아있었다.


왜 깨어났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은 울긋불긋한 꽃과 싱그러운 초록 풀로 덮였다. 부드러운 색깔이, 깔끔한 향기가 긴 잠에서 깨어난 아유라를 반겨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전 차원에서는 불멸의 전능한 신이었지만, 신력이 남지 않았다.

색을 갖지 못한 몸은 그대로였고, 다리가 사라진 것도 그대로였다. 안개구름이 다리 대신 몸을 떠받치고 꿈틀거렸다.


날개를 펼쳤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부드럽게 펼쳐졌다. 희고 아름다운 날개만은 그녀가 북방신이었음을 기억했다.

다행히 그녀의 능력 중 하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


들판의 세 곳에서 허공이 열리며 삼신성이 들어섰다. 그들에게서 미약하지만, 신력이 느껴졌다.

‘신의 신부름꾼인가?’

예고 없이 이곳에 나타났으니 내가 무엇인지 확인하러 왔으리라. 아유라가 날개를 펄럭여 일어섰다.


“그대는 누구인가?”

영진성 우지개가 물었다. 세 신성 중에서 가장 수려하고 찬란했다.


“북방신 아유라. 여기는 어디지?”

“수많은 차원 중 하나이면서 우리에겐 유일한 세계라오.”

진백성 주다가 우아한 미소로 답했다. 주다가 영진성 우지개와 암흑성 태왁을 소개했다.


‘이전 차원에서 우리가 다섯이었던 것처럼 여기서는 셋인가?’

아유라는 서서히 천계의 공기를 통해 지식을 빨아들였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속도가 늦고 약했지만, 곧 이 세계에 대해 모두 알게 되리라.


“차원의 틈에서 나오는 것을 느꼈소. 천계에 처소를 마련하겠소.”

태왁은 그녀를 데리고 어디로 갈지 진백성단과 암흑성단을 바라보았다.


우지개가 그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에게 안내하라고 하지.”

“그거 좋은 생각이네. 어차피 그 애들 차례이니.”


아이들이라니? 아유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있나?”


“우리는 시간이 다 되어 곧 무결의 고리에 들어가오. 새로운 삼신성이 나왔으니 그들이 세계를 보살필 거요.”

태왁이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아유라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삼신성이 수명이 있어? 차원이 닫히는 것도 아닌데 태어나고 떠난다고?’


날개를 펄럭이며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뒷모습을 바라보니 차원이 닫힐 때 사라진 네 신이 떠올랐다.


동방, 서방, 남방의 수호신은 차원과 함께 소멸했다. 휘모랑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생각하니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거야. 나는 영원하지만, 이곳의 신들은 끝이 있으니까. 무결의 고리? 순진하네.’


차원의 틈에서 들은 대로 여기가 자신에게 허락된 곳이라면 기회가 온 것이다.


*


공명의 들판 가장자리에서 수련해야 할 어린 삼신성이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 또 내뺐군그래.”


영진성 우지개가 너털웃음을 짓자 암흑성 태왁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턱의 움직임을 따라 다박수염이 불끈불끈 움직였다.


“이번에도 미사 짓이겠지.”

태왁이 부들부들 떨자 진백성 주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난 좋은데? 젊은이들은 패기가 있어야지. 보고 있으면 즐겁지 않아?”


주다가 손으로 허공을 젓자 삼신성과 아유라 모두 별의 무덤 앞으로 옮겨졌다.


어린 삼신성이 별의 무덤을 청소하고 있었다. 말이 청소이지 막대기를 들고 재가 된 별 가루를 쑤시며 남은 불티를 피워 올렸다.


미사랑과 여라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새까맣고, 율명은 잿더미에 머리와 어깨를 담갔다 꺼낸 것 같았다. 아이들의 눈만 초롱초롱 빛났다.


태왁이 치켜뜬 눈썹을 내려놓았다. 목청을 다듬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곳은 별의 무덤이오.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지.”


아유라는 천계의 모든 것을 눈여겨보았다. 곧 자신의 것이 될 테니 무엇이든 알아야 했다.


“창조신이 별을 만들지 않는가?”

“여기에는 그대가 생각하는 신은 없소.”


아유라에게는 진지한 태왁도 어린 삼신성을 돌아보는 순간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른 두 신성도 즐거운 얼굴로 새까만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별을 만들지 못하다니. 생명도 창조할 수 없을 테지···. 이곳의 신은 나약하구나.’


남은 영력을 가다듬어 신을 찾으려 하였으나 태왁의 말대로 그녀가 생각하는 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쪽 차원에 있는 이상 자신 역시 저 삼신성 정도의 능력만 갖춘다 생각하니 서글펐다. 완벽한 세계로 이끌려면 막강한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창조의 근원은 어디 있지?’

아유라는 신을 찾는 일은 포기하고 차원의 근원을 알아내는 데 집중했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느끼면서도 삼신성은 어린 삼신성을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주다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삼신성들은 시커먼 가루를 뒤집어쓰고도 힘찬 웃음소리를 쏟아냈다. 그들의 크고 명랑한 기운이 주변까지 밝게 만들었다.

서로 가루를 집어던지며 깔깔거리느라 바로 앞에 선대 삼신성이 온 것도 알지 못했다.


태왁이 눈을 부릅뜨고 미사랑을 불렀다.

“이놈들! 지금 뭐하는 짓이냐?”


그제야 미사랑이 깡총 뛰어올라 암흑성 앞으로 달려왔다.

별 가루가 풀풀 날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미사랑을 따라 율명과 여라함도 선대 삼신성 앞으로 다가왔다.


“태왁님, 마중 나오셨나요?”

“마중? 허! 미사, 할 일은 다 마쳤느냐?”

“아, 맞다. 그치만 오늘은 별의 무덤이 절 부르더라고요. 헤헤.”

미사랑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지개가 뒷짐을 지고 중얼거렸다.

“마음 편히 무결의 고리에 들게 해달랐더니만···.”


태왁이 한마디 더 하려고 손을 드는데 주다가 그의 팔을 잡았다.

“손님이다.”


주다의 시선을 따라 미사랑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아유라를 보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와아, 이쁘다!”


미사랑이 성큼 다가갔다.

검둥이가 된 손으로 날개를 만지려 하자 아유라는 뒤로 물러나면서 날개를 거두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천인이 있다니. 다른 세계에서 왔군요!”


아유라를 바라보는 율명과 여라함도 같은 생각이었다. 서로가 아유라에게서 다른 모습을 보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영진성 우지개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린 삼신성의 모습이 곧 말끔해졌다. 금방 목욕을 마치고 새 옷을 꺼내 입은 듯 깔끔하고 신선했다.


여라함을 보자마자 아유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날개 깃털 하나하나가 얼어붙었다.

‘휘모랑? 어떻게 여기에?’


당신도 차원의 경계에서 빠져나왔구나. 소멸한 게 아니었어.

울컥 뜨거운 응어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는데.

휘모랑을 끌어안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여라함은 그녀를 알지 못했다. 낯선 방문자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차원을 건너며 기억도 사라졌구나. 괜찮아. 내가 기억하니까. 언젠가 기억이 돌아올 거야. 예전처럼 서로에게 전부가 될 수 있어.’

그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떨리는 손을 날개 아래 감추었다.


주다가 미사랑과 율명을 소개했지만, 아유라에게는 여라함만 보였다.


“여하는 곧 영진성이 된다오. 빛과 어둠의 균형을 담당하지. 조화를 이루는 역할이오.”

주다의 소개에 맞춰 여라함이 고개를 숙였다.


아유라의 낯빛이 밝아지며 은은한 미소가 이어졌다.

‘휘모랑, 이전에도 균형과 조화를 맡았는데, 여기서도 같구나. 우주의 중심이라고 불리던 그때 그대로야.’


그의 얼굴, 몸의 윤곽, 표정, 스며 나오는 기운, 모든 것이 휘모랑이었다.

그토록 오랜 기다림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니.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고 새로운 빛이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은 여라함에 붙들려 있었으나, 여라함의 시선은 미사랑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 지금의 아유라는 그가 가장 바라는 모습일 텐데, 그녀에게 머물지 않았다.

그에게 아유라는 그저 손님일 뿐이었다.


*


진백성의 응접실 어진당에 손님을 맞이하는 소담한 다과가 펼쳐졌다. 차의 향기와 더불어 천계 진백성단의 향기가 은은하게 공간을 채웠다.


주다가 어린 삼신성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아유라가 머물 곳이 필요해. 너희 생각은 어떠냐?”


“우리와 함께 머무나요? 와, 멋져요.”

미사랑이 손뼉을 쳤다.

율명도 마음이 들떴다. 이토록 아름다운 천인과 함께 지낸다니.


암흑성 태왁이 이리저리 생각하다 답을 내놓았다.

“암흑성단에서 하는 일을 나누지. 아유라에게 염라성의 역할을 주는 거야.”

“그래도 되겠어? 혼을 관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영진성 우지개가 난감해했다.


“괜찮아요. 함께 일하면 더 좋을 거예요. 아유라가 우리와 친구가 되면 좋겠어요.”

미사랑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어린 여라함이 미사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잘했어.”

그가 미사랑을 얼마나 아끼는지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삼신성들이 대견해하며 그들을 바라보는데도 아유라만은 굳은 얼굴이었다.

‘친구? 우습군. 겨우 죽은 혼이나 다루는 자리에 생색내긴. 내가 누구였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아유라는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안개와 구름으로 이루어진 다리가 회오리치듯 뒤틀렸다. 그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 천둥이 폭발했다.


영진성 우지개가 천선계를 안내하려 했으나 아유라는 여라함을 가리켰다.

“여라함? 네가 알려주면 좋겠어.”

우지개는 근심 어린 눈으로 여라함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여라함과 아유라는 우주의 기둥 바로섬으로 올라갔다. 천계와 선계가 까마득히 펼쳐졌다. 이곳보다 아름다운 경치는 없을 것이다. 손님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곳이었다.


“천계와 선계는 우주와 인간세를 돌보지. 인간세는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우린 지켜보는 것뿐이야.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경우라는 건···, 사람이 차원의 파괴자가 되는 경우인가?”


“미사 말이야. 가끔 내려가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거든. 간절한 소망을 외면할 수 없대. 미사는 슬픈 영혼을 위로하는 소임도 같이 맡을 거야.”


여라함이 아유라의 하얀 날개를 돌아보았다.

“아유라도 염라성이 되었으니 비슷한 일을 하겠구나. 율은 위험하다고 인간세에 관여하지 말라고 야단이지만. 그 녀석 고집이 보통이 아니거든.”


미사랑에 대해 말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천선계의 장엄관문에서 노각부줄까지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미사랑이 빠지지 않았다.


‘휘모랑, 널 기다린 내가 여기 있는데.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

아유라가 입술을 비틀었다.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영진성단을 둘러본 그들은 성단 바깥쪽을 둘러싼 별의 무덤 위에 섰다.


“별의 무덤은 천선계 바깥에 펼쳐져 있어. 어디서나 볼 수 있지. 가장 깊은 곳은 가지 마. 거긴 금지된 벽이 있어. 미사가 들어간 적 있는데···.”

그는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는지 하던 말을 잘랐다.


문득 생각난 듯 아유라를 돌아보았다.

“벌써 수련 시간이 되었네. 미사가 기다리겠다.”


여라함은 그녀를 염라성역 앞에 데려다 놓고 이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는 아유라의 마음은 별의 무덤보다 깊고 어두운 수렁으로 끝없이 떨어졌다. 날개 끝이 제멋대로 휘날렸다.


*


염라성역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날개로 몸을 감쌌다.

여라함에게 알려달라고 한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저 그의 기억을 각성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읽는 방법은 간단했다.

대기의 흐름이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생각을 멈추면 숨을 쉬듯 모든 지식이 흘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 차원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모르면 좋았을 사실마저 알아냈다.


“이곳에도 똑같은 인간세가 있다니!”

아유라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쏟아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곳의 인가세도 이전 차원의 간계와 똑같이 변해가고 있었다.

언젠가 그들로 인해 차원이 무너질 것이다. 죄 없는 다른 생명까지 그들 때문에 고통받다가 함께 차원을 잃을 것이다.


‘이쪽 차원이 나를 깨운 거였어.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날 부른 거야. 인간세가 없는 차원으로 돌려놔야 해.’


아유라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신력을 키울지 고민했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이 없는 차원을 만들어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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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천계_율명의 각성 22.07.11 50 1 8쪽
116 아랑누_배웅과 마중 22.07.10 47 1 10쪽
115 아랑누_새얼의 의지 22.07.10 50 1 10쪽
114 아랑누_축제 구경 22.07.09 49 1 9쪽
113 아랑누_보물 사냥꾼 22.07.09 48 1 10쪽
112 아랑누_새로운 인연 22.07.08 47 1 11쪽
111 아랑누_공격과 회복 22.07.08 52 1 10쪽
110 아랑누_대결 준비 22.07.07 51 1 11쪽
109 아랑누_지하 미로 22.07.07 47 1 12쪽
108 아랑누_또 하나의 반월도 22.07.06 49 1 11쪽
107 아랑누_신령수 동명 22.07.06 47 1 11쪽
106 아랑누_천인 무아 22.07.05 46 1 12쪽
105 아랑누_무용수 사란야 22.07.05 47 1 12쪽
104 아랑누_책방 고연재 22.07.04 48 1 11쪽
103 아랑누_회한의 성벽 22.07.04 47 1 11쪽
102 아랑누_여관 산연곡 22.07.03 44 1 10쪽
101 아랑누_상재믈국 감항 22.07.03 44 1 12쪽
100 천계_암흑성단의 비밀 22.07.02 47 1 11쪽
99 천계_아유라_발견 22.07.02 50 1 9쪽
98 천계_아유라_깨달음 22.07.01 47 1 11쪽
97 천계_아유라_선택 22.07.01 45 1 10쪽
» 천계_아유라_다른 차원 22.06.30 44 1 13쪽
95 천계_아유라_회귀 22.06.30 4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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