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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숨은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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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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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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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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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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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천계_아유라_회귀

DUMMY

차원의 틈에 갇히기 전, 이전 차원에서 아유라는 북방신었다.

수많은 차원 중의 하나였으며, 몇 개의 다른 차원과 시간과 공간이 겹쳐있었다.


아유라와 휘모랑은 차원이 생길 때부터 신계에 머물며 모든 것을 다스렸다. 신계가 생겨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 뭉클거리던 기운이 간계를 빚었다.


혼돈의 우주를 정화하고, 간계에 생명을 심기 위해 휘모랑은 아유라의 기운에 자신의 신력을 더해 다른 세 명의 신을 만들어냈다.


아유라는 우주의 근원이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흑과 백, 무채색으로 채워진 단순한 덩어리지만, 모든 생명을 담을 수 있었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크고 섬세한 날개와 아름답고 매끈한 다리였다.


휘모랑은 중앙을 지키는 수호신이었고, 세계의 균형을 이루는 역할이었다.

서방신 끌랑, 동방신 아나, 남방신 솔거, 북방신 아유라는 다섯이면서 하나였다. 그들의 사명은 차원의 모든 세계를 보살피는 일이었다.


그들의 우주는 영원할 것 같았다. 혼돈이 가라앉은 간계에 그들이 심지 않은 존재가 스스로 생겨나기 전까지는.


*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있어.”

동방신 아나가 말하자 서방신 끌랑 역시 암울한 눈빛으로 답했다.

“서쪽도 마찬가지야.”


아유라가 수호하는 북방에는 아직 균열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남방에도 틈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시간문제였다.


우주의 궤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간계에서 시작된 균열은 별과 별 사이의 궤도에 영향을 주었다. 더 많은 별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욕망에 반응하여 귀물이 완전히 세상을 덮었다.


사람의 집착에서 태어나 욕망에서 힘을 얻으며 세력을 키운 귀물은 간계를 지배할 정도가 되었다.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지배받으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조종당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차원이 회귀하려는 거야.”

휘모랑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무게 있었다.


“차원이 회귀한다니···. 그런 일은 생각 못 했는데.”

솔거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모든 세계는 하나의 씨앗에서 생겨났다. 열렸으니 닫힐 때가 있다는 것도, 언젠가는 그때가 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잊은 지 오래였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온갖 별과 수많은 생명을 키워냈다. 차원의 씨앗이 성장을 멈추더라도 언제까지나 꿈틀대며 존재할 줄 알았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나가 휘모랑과 아유라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이 차원과 같이 태어났으니, 마지막도 함께 하겠지.”

휘모랑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아유라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저 살아있는 별과 생명은 어떻게 하고?”

아유라의 머리카락이 흰빛에서 검은빛으로 바뀌며 파도치듯 요동쳤다.


그녀는 신계와 간계, 빛과 어둠, 숨결 있는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들이 사라진다니 믿을 수 없었다.


끌랑이 부서진 별의 잔해를 쓸쓸히 바라보았다.

“간계의 사람들이 일을 저질렀군. 우주를 정복한다는 욕망은 위험했어. 이렇게 될 줄이야.”


“사람의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귀물이 조종한 거니까.”

아나가 대답하면서 아유라를 흘끗 돌아보았다.

아유라가 사람을 얼마나 아끼고 보살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솔거가 구름을 불러 토닥이다가 날려 보냈다.

“귀물을 만들어낸 건 사람이야. 귀물이 능력을 갖도록 힘을 내준 것도 사람이고. 자기 손으로 직접 하지 않았다고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


“사람이 오십 명만 모여도 귀물 수천을 살릴 수 있지. 그런 걸 보면 사람이 우리보다 강해.”

끌랑이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아유라는 반박할 수 없었다. 간계의 사람들을 가장 많이 도와준 존재가 자신이었다.

‘나 때문이야.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건네준 거야.’


간계에 사람이 생겨날 때부터 각별한 애정으로 대했다. 그들은 간계에서 스스로 생겨난 유일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신이 사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려 노력했다. 어설픈 몸놀림으로 자신을 흉내 내는 것이 가련하고 대견했다.


지금껏 많은 생명을 창조했지만 신을 닮으려는 생명체는 없었다.

사람들의 노력은 끝없이 이어졌다. 휘모랑과 비슷한 모습으로 바꾸었고, 삶의 방식도 바꾸었다.


신계와 달리 간계는 척박하고 황량했다. 살아있는 별에 붙어살기에 삶은 힘들고 고단했다.

화산, 지진, 가뭄과 홍수 같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아유라는 간계로 들어가 그들을 도왔다.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간계의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아껴준 것이 잘못이라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휘모랑이 그녀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차원도 수명이 있으니까. 회귀하려고 사람을 만들었겠지. 서서히 문을 닫으려고.”


아유라는 날개깃을 움직여 눈물을 닦았다. 휘모랑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넌 최선을 다했어. 문제가 있다면 사람이지. 경쟁하듯 별을 가지려 하니···. 그들은 전혀 만족할 줄 몰라.”

“그래도 다른 생명까지 소멸하는 건 너무 잔인해.”


끌랑이 코웃음을 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태어났으니 사라져야 한다···. 붙잡을 때와 놓을 때를 알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는데 말이야. 막상 내 앞에 닥치니 놓을 수가 없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아나도, 솔거도 틈이 벌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


간계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다섯 신을 믿었다. 점차 힘을 갖게 되면서 필요에 맞춰 신을 만들어냈다.

이름과 모양도 다른, 다양한 신을 만들고 교리를 지어냈다. 신의 교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간계는 수시로 피바다가 되었다.


신의 명령이고, 선택받은 자의 사명이라며 더 많은 별을 정복해나갔다. 마침내 자신이 만든 신을 따르지 않는 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유라는 진저리쳤다.


“알아. 네 마음이 어떤지.”

휘모랑이 그녀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사람은 우리와 닮으려고 스스로를 바꾸었어.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면서. 그래서 남보다 더 많이 갖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해. 아마 우주의 별을 모두 가져도 허기질 거야.”


그는 미소 지었지만 아유라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바닥까지 축 처진 날개가 깊은 슬픔을 알려주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시작할 때도 찰나였으니 돌아갈 때도 그렇게 순간일 거야.”


휘모랑은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

“꼭 살게 해줄게. 네가 소멸하는 것은 볼 수 없어.”

“네가 없는데 남을 이유가 없잖아. 그런 세계는 가고 싶지 않아.”

아유라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과 귀물만 없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다른 생명은 살릴 수 있어.”

“아유라. 흐르는 운명은 바꿀 수 없어. 태어나면 사라지는 거야.”


‘너와 함께라면 세상의 끝까지 아름다울 거야.’

그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이미 알았던 거야?


휘모랑은 다정한 손길로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다시 만나면···. 그때도 우리, 서로의 전부가 되자.”


먼지로 사라지는 우주가 환상처럼 펼쳐졌다. 그 안의 수많은 생명은 먼지도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유라는 그의 품에서 일어나 똑바로 섰다.


“왜 그런 말을 해? 아직 시간이 있어. 내가 되돌릴 거야.”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돌아갈 수 있어. 사람이 생겨나지 않게 할 거야. 어떤 도구도, 지식도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귀물을 만들어내는 존재는 절대 나오지 않는 차원으로 바꾸면 돼.”


아유라는 하얀 날개를 펼쳐 북쪽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다려. 내가 꼭 이뤄줄게.’


*


그것이 휘모랑의 마지막 입맞춤이 될 줄은 몰랐다. 별들은 엉키고, 부딪치고, 폭발하며 가루가 되었다.

찰나에 닫힐 거라는 그의 말대로 차원이 사라지는 순간은 너무나 빨랐다.


끌랑과 솔거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곧이어 아나도 사라졌고, 차원은 빠르게 닫혔다.


아유라는 애타게 휘모랑을 찾았다.

‘보고 싶어. 휘모랑!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


차원의 경계에 갇혀 다리가 끊어졌다. 신력도 사라졌다.


의식이 아득해질 때 무언가 그녀를 경계 밖으로 밀어냈다. 차원의 회귀마저도 외면할 수 없는 간절한 힘이었다.


‘휘모랑···.’

정신을 잃으면서 아유라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낯선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너는 새로운 차원을 보게 될 것이다.”


*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가 사랑하던 차원은 보이지 않았다. 차원의 틈에서 아유라는 울부짖었다.

“휘모랑! 어디 있어! 날 버리지 마!”


어디서도 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력이 남았다면 다리를 만들겠지만, 지워진 다리는 다시 자라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물조차 말라버리자 날개로 몸을 감쌌다.

‘휘모랑, 다시 만나면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


그녀는 웅크리고 알이 되어 깊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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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아랑누_축제 구경 22.07.09 4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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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아랑누_지하 미로 22.07.07 47 1 12쪽
108 아랑누_또 하나의 반월도 22.07.06 49 1 11쪽
107 아랑누_신령수 동명 22.07.06 47 1 11쪽
106 아랑누_천인 무아 22.07.05 46 1 12쪽
105 아랑누_무용수 사란야 22.07.05 47 1 12쪽
104 아랑누_책방 고연재 22.07.04 48 1 11쪽
103 아랑누_회한의 성벽 22.07.04 45 1 11쪽
102 아랑누_여관 산연곡 22.07.03 44 1 10쪽
101 아랑누_상재믈국 감항 22.07.03 44 1 12쪽
100 천계_암흑성단의 비밀 22.07.02 46 1 11쪽
99 천계_아유라_발견 22.07.02 50 1 9쪽
98 천계_아유라_깨달음 22.07.01 47 1 11쪽
97 천계_아유라_선택 22.07.01 45 1 10쪽
96 천계_아유라_다른 차원 22.06.30 43 1 13쪽
» 천계_아유라_회귀 22.06.30 4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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