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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샷 님의 서재입니다.

어플로 키운 걸그룹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핫샷
작품등록일 :
2020.12.02 11:28
최근연재일 :
2020.12.17 19:1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931
추천수 :
41
글자수 :
87,914

작성
20.12.02 11:31
조회
215
추천
5
글자
9쪽

걸그룹 좋아하세요?

DUMMY

“걸그룹 좋아하세요?”


모든 이야기는 이 짧은 질문 하나로 시작됐다.


걸그룹이라.


호불호를 논한다면 불호는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 노래 좋고 보기 좋으면 시선 한 번 더 가는 정도?

그저 귀엽고 예쁜 아가씨들의 춤과 노래가 보고듣기 좋은 것일 뿐, 그들에게 바칠 팬심 같은 건 머릿속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덕질이라니.


반짝반짝 꺄르르 웃어대는 모습이야 현실도피 하기 딱 좋지만, 덕질 따위나 하고 있기에는 나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이리저리 압박이 심한 것이, 이 양반처럼 마음 편한 상황 아니라는 얘기다.


“걸그룹은 사랑입니다. 소중히 아끼고 가꿔야 하거든요. 조금만 실수해도 산산이 부셔져버리죠.”

“아···.”

“섬세해요.”

“그렇군요.”

“얇디얇은 공예품이죠.”


공예품이지. 성형외과가 빚은 예술적 조각품.

반짝반짝 샤이닝 패키지 은혜를 입은 현대의학의 결정체.


군대 시절에 품은 환상은, 그녀들의 성형 전 사진을 보던 날 산산이 조각났다.

그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이라니···. 완벽하기만 했던 나의 여신님들은 키보드 Delete를 누름과 동시에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위문열차의 감동을 안고 화장실로 달려갔던, 그 짜릿하고 아련하고 거시기했던 핑크빛 추억도 함께 말이다.


“전 그런 아이들이 너무 좋아요. 내 모든 걸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스런 피조물이죠. 그쪽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 뭐···.”

“그녀들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나에게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이 자식 무섭다.

낮선 남자에게서 범죄의 향기가 느껴져.


“걸그룹이야 말로 삭막한 세상을 밝히는 한줄기 빛, 그녀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내가 돌아가 쉴 곳은 그녀들뿐입니다.”

“······”


난 네가 없는 집으로 가고 싶다.

모친의 잔소리를 피해 집밖을 나온 것 인데,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네.


그런데 이 남자가 누구냐고?


몰라.

나도 모른다고.


지금 날씨는 영하 5도. 위치는 집 근처 편의점의 간이의자다.

그리고 나는, 고추도 얼려버릴 칼바람을 맞으며 세뇌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한잔 하시죠.”

“그럴까요.”


도란도란 사이좋게 맥주 캔을 부딪치며···.


“대한민국 걸그룹 만세!!”


플러스.

이런 개소리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그냥 생까는 건데 시부럴···.’


처음에는 담배 한 대만 빌리자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말을 걸어왔고, 몇 마디 예의상 받아주자 맥주 맛이 어떠냐며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때가 골든타임이었거든.


‘쩝.’


경우 없어 보여 살짝 빈정 상하긴 했지만, 마누라 집나간 놈처럼 청승맞은 행색에 측은지심이 발동해버렸다.

본래 검은 털 자라는 것들은 거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 자식 머리숱도 나보다 많은데.

안쓰러운 마음에 캔 맥주 하나를 건넸다.


“아이쿠~ 뭘 이런 걸. 전 괜찮은데. 하하.”


그것이 실수였다.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은 결국 놈의 스위치를 켜버린 것이다.

한 시간 넘도록 이어지는 걸그룹 강의라니.


여하튼 그리하여 난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지금껏 몰랐던 깊고 넓은 세계.


걸그룹의 시초는 누구인가.

그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걸그룹이 되었는가.

한 달 지출은 얼마가 소요되며 손익분기점은 어떻게 맞춰지는가.

연예계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걸그룹 이렇게 하면 빙구도 성공시킬 수 있다.

구름처럼 떠도는 연예계 소문은 사실인가.

걸그룹 팬덤은 어떻게 만들고···


그만 하라고 새꺄!


“하···, 그러고 보니 제가 너무 많은 시간을 축내버렸군요.”


그 중요한 걸 이제야 눈치 챘냐.


하여간 사람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건 어떻게든 해야 되겠다. 이리저리 휘둘려 지기만 하고 말이야.


피곤해.

귀찮아.


안 그래도 남의 인생 흔들려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첨보는 덕후까지 날 쥐고 흔들려고 하네.

인사치례 필요 없으니 그냥 가라.

적당히 꽁술 자셨으면 제발 그만 고잉 홈. 프리즈.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라고 말해버렸다.


‘하··· 이건 중증이야. 평생을 가도 이 습관은 안 고쳐지겠지.’


남아있는 맥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고 인상을 쓰며 꿀꺽 삼키자, 남자는 표정을 바꾸며 말을 걸어왔다. 마치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친 노련한 바이어처럼 말이다.


“초면에 실례 많았습니다.”

“별말씀을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네.”

“걸그룹 아이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개새끼.


다시 걸그룹이냐?

무한루프, 개미지옥이구나.

오냐.

그 도전 받아주마. 같이 오순도순 날밤 까보자.


“뭐, 예쁘고 상큼하고 보기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네요.”


딱히 남자의 걸그룹 사랑을 배려해서 한 말은 아니다.

평소 생각이 그러했으니까.


“어째서요?”

“저 화려한 모습은 무엇을 대가로 치르고 얻은 것일까. 무수한 시간과 땀, 자존심,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까지···. 그녀들이 포기한 삶이라는 건, 어쩌면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일지 모르죠.”

“후훗···”

“너무 거창한가요?”

“아니요, 제 예상대로네요. 역시 좋은 분이셨어요.”

“네?”


깜짝이야.

뭐야 그 눈빛은? 갑자기 촉촉하고 아련하게 왜 그래?

흠칫 했잖아.

난 TV에 나오는 그 형이랑 취향이 달라.


“사람들은 모르죠. 그 아이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하루하루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며 버티는지···. 물론 머릿속에 똥만 가득 들어찬 애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애들은 알아서 사라지겠죠. 그런 정신머리 없는 것들까지 챙겨줄 만큼 대중들은 착하지 않으니까요.”


남자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 화면을 만지작거렸다.

이어서 가벼운 손놀림으로 몇 번인가를 터치하더니, 이윽고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제 이름은 강성현입니다. 한때 ‘티라미슈’라는 걸그룹 매니저로 활동했었죠.”

“아, 어쩐지 그래서···.”


집요하기까지 한 막대한 걸그룹 지식은 직업 탓이었나.

그저 주워들은 잡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거구나.


‘티라미슈’


익숙하진 않지만 분명히 들어본 이름이다.

허나 기억 속 어딘가에 맴돌기만 할뿐,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설마 제과점에 있는 그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렸지만, 이대로 갈수는 없더라고요. 그 아이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매니저가 돼서는 지켜주지도 못하고.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아이들인데···.”


망한 건가.

하기야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걸그룹이니까.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글썽이는 저 눈시울을 보니 조금 미안해지는 건 사실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착이 컸던 것 같은데, 내가 너무 한심한 듯 바라봤나보다.


“그러니 새로운 걸그룹은 당신께 맞기겠습니다.”

“좋죠··· 네?”

“저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당신은 다를 것 같네요. 성공을 빌겠습니다.”


이봐, 깜빡이는 켜고 들어와야지.

걸그룹을 맡기겠다니. 그게 맡긴다고 맡아지는 거냐고?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참, 김민우씨. 핸드폰으로 어플을 전송해 드렸습니다.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제 이름을 어떻게··· 어플이라니요?”


조금 전까지 생각하던 거 다 취소!

이 자식, 완전 계획적으로 접근한 거 아니야?


“잠깐만요.”


생까냐?

야! 대답은 해주고 가야지

무섭잖아!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고? 그리고 어플은 언제 깔아둔 거야? 아니 내 허락도 없이 어떻게 전송한 거야?


“저기요. 어떻게 된 거죠? 혹시 제 뒷조사 했나요?”

“훗···. 그럼 이만.”


이, 이봐 그렇게 쿨 한척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웃지 말라고!

후훗 거리지 말라고!


“아니, 제대로 설명을 좀···.”


무슨 신종 사기 같은 건가?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쫒아가며 휴대폰에 설치된 새로운 어플을 확인했다.


[걸그룹 마스터]


큭―

이 새끼가.


“이봐요! ···어?”


사라졌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바로 고개를 돌렸건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옆으로 빠져나갈 골목하나 없는 외길.

몇 발자국 앞의 남자는 그렇게 홀연히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매직 쇼가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강성현씨! 장난치지 말고 나와 봐요!”


걸그룹 좋아하냐고?

이 상황에 그게 가능하겠냐. 이 자식 사라졌다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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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출사표 20.12.12 94 2 14쪽
11 보컬 쌤 제시. 그리고 첫 회식. 20.12.11 90 2 10쪽
10 댄스 트레이너 이윤정 20.12.11 87 2 10쪽
9 걸그룹, 좋아합니다. 20.12.09 93 2 11쪽
8 두 번째 그녀. 20.12.08 97 3 13쪽
7 너의 몸값은. 20.12.06 94 2 12쪽
6 나 이런 사람이야. +1 20.12.06 103 2 12쪽
5 적진으로 20.12.04 123 2 10쪽
4 차예린 그리고 아이언 맨. 20.12.03 140 3 12쪽
3 첫 번째 그녀 20.12.02 184 4 10쪽
2 걸그룹 마스터 20.12.02 173 3 11쪽
» 걸그룹 좋아하세요? 20.12.02 21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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