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 쌤 제시. 그리고 첫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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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내가 좀 늦었어.”
“미친년, 일찍일찍 안다닐래?”
이윤정의 작은 개인 연습실 문이 열리며 아담한 사이즈의 여성이 슬그머니 들어왔다. 늦었다며 한손을 들어보였고, 그에 맞서 이윤정은 걸지게 욕을 날렸다.
“안녕하세요. 김민우입니다.”
“어머나, 훈남이···. 안녕하세요. 첫 미팅인데 늦어서 죄송해요. 제시라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이제 막 만났어요.”
작은 키, 옅은 화장.
얼핏 수수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걸치고 있는 옷들은 죄다 명품이다.
‘미안, 나 자다가 대충 걸쳐 입고 나왔어.’
이런 분위기?
일종의 ‘스웩’이란거지.
“그럼 대표님···?”
“아, 네. 일단 서류상으론 그렇죠.”
“와우, 아직 젊으신데 대단하시네요.”
“하하하, 그럴만한 건 아닌데, 여하튼 감사합니다.”
이 짧은 몇 마디 나누는 동안 내 전신을 스캔당한 기분이다.
수수한 인상은 연막이고, 꽤나 탐욕스런 눈빛으로 짧고 빠르게 사람을 훑어간다.
‘허허··· 이것 참, 이렇게까지 대놓고···.’
이 여자에게서는 상당한 남색가의 향기가 난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끼를 부리는 타입은 아니겠지만, 마음에 들면 어떻게든 덤벼들 스타일이다.
아니면 다행이고, 허나 그런 끼를 다분히 가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곤 해도, 이 자리에 와있다는 건 그녀역시 내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
이름은 생소하지만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는 이윤정의 추천 때문이었다.
“혹시 보컬 트레이너는 섭외하셨나요?”
“아직 섭외전입니다.”
이하중략.
이윤정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제시라는 여인은 나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
‘흠, 추천만큼의 실력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유명한 이윤정의 추천이니 당연히 믿을 만하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안하던가. 기왕 아이들을 맡기는 거, 좋은 선생님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설마 노래실력 보다 섹스 실력이 더 뛰어난 건 아니겠지.’
여전히 힐끗힐끗 사람을 훑어보는 그녀를 보며 살짝 쓴 웃음을 지었다. 어딘가 초점을 잘못잡고 있는 느낌이라 솔직히 불안감이 없지 않다.
“어? 제시 선생님···?”
“···응? 어머! 예린이구나?!”
“제시 쌤!”
허나 쓸데없는 기우였던 것 같다.
거울을 보며 춤을 추던 차예린이 제시를 발견하곤 한달음에 다가왔다.
“예린아, 어떻게 된 거야? 언니가 네 소식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회사는 빠져나온 거니?”
“저희 실장님이 빼내주셨어요.”
“실장님?”
“저기계신 대표님요.”
“아, 그랬구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두 사람은 이산가족이 상봉하듯 한참을 애틋하게 끌어안았다.
“두 사람 아는 사이야?”
갑작스런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 하던 찰나, 이윤정이 시원스레 질문을 날렸다.
“당연하지. 내 최애 제자인데.”
제시는 모성 가득한 표정으로 차예린을 바라보았다.
반가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눈빛.
예린이의 지난 시간을 대변해주는 듯 한 그녀의 애잔한 눈은 천천히 방향을 돌려 나에게로 향해왔다.
“김 대표님. 감사드려요. 정말 큰일 해주셨네요.”
“별말씀을요. 예린이 정도라면 당연히···.”
“그 개새끼는 그러지 않았죠.”
“네? 아··· 최대성 대표.”
“차세대 디바가 될 아이에게 그 쓰레기 놈은···, 아 열 받아. 김 대표님 이 아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세요?”
안다.
그야 나에게는 [걸그룹 마스터]가 있으니까.
차예린의 능력치는
미모 A (잠재력 A+)
보컬 S (잠재력 R)
댄스 B+ (잠재력 A)
스타성 S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보컬은 S. 잠재력은 무려 R, 레전드 등급이다.
거기에 미모 A. 방송 짬밥 먹다보면 A+까지 오르겠지.
기존 걸그룹들이 아무리 예쁘다고 한들 멤버 모두가 미인은 아니다.
각각의 매력으로 팬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것이지, 여배우 얼굴 뜯어먹듯 이목구비를 조목조목 따져들 때 견뎌낼 수 있는 아이들은 한줌도 못된다.
거기에 각종 튜닝빨을 배제한다면?
허나 나의 차예린은 미모등급 A에 잠재력은 A+다.
당연히 출고당시 그대로인 100% 순정 상태이고, 개취의 문제가 아닌 지엄하신 [걸그룹 마스터]님의 냉철한 분석이다.
(···라고 믿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새끼들이 더 예뻐 보이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소위 여신급 대우받는 애들 아니라면 예린이 앞에 면상 내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걸그룹 마스터]의 눈높이는 높다.
레전드급 노래 실력에 여배우를 씹어 먹을 미모.
그리고 S급 스타성까지.
이래서야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말려도 알아서 디바가 될 재능 아닌가. 나는 그저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저 김대표님 아이들 가르칠게요.”
“그래주시겠습니까?”
“네, 예린이가 있는데 당연히 가르쳐야죠. 다른 아이들도 어떻게든 해볼게요.”
예린이와 극적상봉을 통해 제시의 경력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몰락 전 가람 엔터에서 보컬트레이닝을 담당했던 것 같으니 검증은 된 거지. 짜달시리 그녀의 실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역시 이미 충분해 보이고, 그렇다면 트레이너 진영은 얼추 준비된 건가?
뭔가 술술 잘 풀려가는구나.
남은 건 언젠가 마주칠 아이들이란 건데···, 어떤 녀석들이 나타날는지 모르지만 시작부터 이정도 라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렇게 한껏 들떠있는 나의 귓가에 제시의 또 다른 비명이 들려왔다.
“어머 김대표님! 이 아이는 어디서 데려오신 거예요!?”
나유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 긴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그렇고.
“그 아이 JYK 강진영 대표를 까고 온 애에요.”
“웬일이니! 유미 목소리가 너무 예쁘네요. 어쩜 이렇게 투명할까. 공기 같아요!”
나유미 저 자식, 왠지 턱 끝이 점점 올라가는데?
콧대도 점점 치솟는 것 같고.
‘어이, 듣고 있나 김실장?’
시발··· 이건 환청이겠지. 환청일거야.
*
고기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들러붙은 건가.
처음 보는 모습은 아니지만, 역시 잘 먹는, 푸드 파이···터, 아니 그냥 3일 굻은 거지새끼네.
“실땅닝 더머거더 대지여?”
“입속에 든 것 먼저 먹지?”
테스트를 마치고 향후 계획을 의논하던 중 큰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소개해준 이윤정과 만난내용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별일 없으면 함께 저녁먹자는 말에 이렇게 고기 집에 모여 앉게 되었다. 나름 첫 번째 회식이랄까?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제 적당히 먹자? 명색이 걸그룹 지망생인데 먹부림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괜차나여, 전 먹어도 살이 안찌는 체질이거든여.”
“저도요.”
쩝, 그래 먹을 수 있을 때 맘껏 먹어라. 돈은 누나가 내기로 했으니까.
“두 사람 다 트레이너 계약하기로 했다니 잘됐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바로 그룹 만드는 거니?”
“이게 무슨 게임이냐 엔터 누르면 실행되게. 아직 한참 남았어. 멤버들도 더 모아야 되고.”
큰누나의 질문에 늘 그랬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몇 명이나 더 모아야 되는데?”
“일단 5명부터 셋업 시작해보려고.”
“나머지 애들은 어디 있는데?”
“찾아야지.”
“어디서?”
“여기저기.”
“하긴 하는 거야?”
“응.”
“그러며···”
“밥 좀 먹자!!! 같이 저녁먹자며? 젓가락 위에 고기 덜렁거리는 거 안보여?”
니들 작당했니? 짠 거지?
왜 내가 젓가락만 들면 돌아가면서 말시키는데?!
“야, 그거 내가 구워놓은 거잖아. 유미 너는 네 앞에 있는 것만 먹으라고!”
“키잉···.”
“실장님! 왜 먹는 걸로 우리 막내 울려요!”
“푸하하하~”
“큭큭···.”
“나 JYK 갈래영··· 아까도 문자 왔는뎅, 흐이잉~.”
“이모!! 고기 5인분 추가요!!”
“콜라도··· 흐이잉~.”
“이모!!”
시부럴···. 내가 밥을 먹는 건지 밥이 나를 먹는 건지.
그 뒤로도 이모! 라는 외침을 수도 없이 질러댄 뒤에야 차분히 젓가락질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랬구나, 예린이는 부모님이 안계시고, 유미는 남동생 때문에 힘들고. 그런데 민우 너희 집 좁지 않아?”
“좁아터지지.”
“아이들이 불편하겠다.”
“저 애들이?”
이 자식들··· 왜 갑자기 발 다친 고양이 눈깔을 하고···.
“유미는 남동생이 몇 살이라고?”
“중1이여.”
“아~, 하긴 그 나이면 누나 속옷이 궁금하기도 하지. 민우도 중1 때까지 내 가슴 만지고 잤거든.”
“풉―”
“으엑!”
“콜록―”
“어머···.”
큰누나의 말에 유미와 제시 쌤은 가슴을 감싸 안았다.
둘 다 뭐냐고?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얼굴 붉히지 말라고!!
“미쳤냐!! 뭔 소리야!”
“우리 어릴 때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내가 아들처럼 키웠는데.”
“닥쳐!!”
“쪼그만 게 점점 손기술이 현란해져서는···, 손끝으로 거길 잡고 비비기 시작하는데··· 아후, 그래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으엨, 실장님 변태!”
“중1이 손끝을···.”
“조숙하셨네요.”
“실장님··· 실망이에요.”
“그런데, 거길 잡는 건 어딜 잡은 거예여?”
“···꼭지?”
“으에에엨?”
의식의 흐름이 멀어져 간다.
시발롬들··· 다 죽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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