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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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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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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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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9

DUMMY

9.


황백의 물음에 수하가 바로 답한다.

“기용장 청구입니다.”

“흠. 그에게 소환령을 전하라.”

“예!”

수하는 즉시 황백의 군막을 물러간다.

수하가 사라지자 황백은 나직이 입을 연다.

“진전이 없어…….”

남오평야에서 발한 물산국과의 전쟁은 나아감도 물러섬도 없이 쌍방의 소모전 형식이 되었다.

형세를 바꾸고자 한다면, 어느 쪽이든 우세해야 한다.

“그들이 곧 도착할 테니, 당장은 유리해지기도 하겠지만.”

얼마 안 있으면 상용장 하청과 파마이의 군대가 도착한다.

자신의 힘만으로 남오평야에 몰려든 물산국 병력을 몰아내 그 여세를 타고 요국 권력층의 우위를 차지하려던 황백이었지만, 만만치 않은 물산국의 힘에 지금까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요국 군황부의 압력 아닌 압력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것도 그 탓.

“그래도 한 번은 찔러 두어야겠지.”

하청과 파마이가 도착하기 전에 전선을 조금이라도 밀어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도착한 그들보다 나은 위치에서 남은 전쟁을 수행할 터이니.

물산국 진영에 침투한 기용장 청구가 돌아와 전황을 듣는 즉시 공격을 시행할 것이다.

그동안 슬쩍 물러서 있던 태도가 아닌 대대적인 공세로 말이다.


공승우와 휘정은 여전히 마주 서 있다.

다만, 처음과 다른 것은 두 사람 모두 호흡이 다소 거칠다는 것.

휘정은 문뜩 입가에 흐르는 비릿함을 느끼고 손등으로 쓰윽 문지른다.

손등을 내려다보니 붉은 핏물이 얼룩지듯 번져 있다.

“훗.”

슬쩍 미소를 흘린 휘정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오랜만이군.”

기분 좋은 미소를 내며 휘정은 대상 없는 중얼거림을 흘렸다.

두 사람 주변에 그들의 격돌을 보고자 나왔던 이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놀란 눈으로 입을 가린 채 보고 있을 뿐.

휘정이 다시 입을 연다.

이번엔 상대가 있다.

“자네의 무(武)가 고선기라 했던가?”

공승우가 답한다.

“예.”

“흠. 이곳의 것은 아닌 듯하군.”

“예.”

“그럼, 자네도 태제륙 사람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우리 딸도 알고 있나?”

“예? 예.”

“그런데 내 딸내미는 왜 아비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까?”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하려던 공승우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휘정이 보이는 씁쓸한 모습에 왠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됐다.

그런 공승우를 보고 피식 웃은 휘정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후후. 나중에 자네도 딸 나서 키워보게.”

“예?”

의아해하는 공승우에게 손을 내저은 휘정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둘이라면 음…….”

뭔가 심각한 고민을 하는 휘정에게 다가온 휘산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아버지 괜찮…….”

물으려다 말고 휘산영은 말을 삼킨다.

자신의 아버지는 팔룡선무회의 일인인 청룡이다.

그에게 이런 식으로 묻는다는 건 무례라 생각해서이다.

그런 휘산영의 머리를 쓰다듬는 휘정.

“녀석. 내가 청룡이든 아니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휘산영이 가만히 보자 휘정이 웃으며 말한다.

“네 아비라는 것 말이다.”

휘정의 말에 휘산영이 활짝 미소를 그리며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런 휘산영에게 휘정이 말한다.

“둘이나 있는데 괜찮겠냐?”

“예?”

“뭣하면 내가 힘 좀 써주랴?”

“무슨 말씀이세요?”

휘산영이 묻자 휘정이 눈짓으로 공승우를 가리킨다.

어느새 다가든 호약란의 살피는 손길에 미소를 흘리고 있는 공승우를.

살짝 얼굴이 붉어진 휘산영은 아무 말도 않는다.

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추스르다 보면 자신의 눈길은 공승우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응? 둘?’

문득 생각이 난 휘산영은 얼른 지은희를 바라봤다.

지은희의 눈길도 그녀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공승우에게 가 있는 것을.

“에휴.”

짧은 한숨을 쉬는 휘산영을 보며 휘정이 씨익 웃음을 짓는다.


일행은 다시 군막 안에 들어왔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니까 그게 활이라는 말인가?”

공승우가 내보인 신궁 궁제(弓帝)를 보며 눈빛을 반짝이는 휘정의 물음이다.

“예.”

“궁제라. 일월룡께서 그리 지어 주셨단 말이지.”

“예.”

“호오. 전혀 활처럼 생기진 않았군. 특급의 마황석이 들었는가?”

“궁제에는 마황석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 시위도 없고 화살도 필요하지 않은 활이라? 게다가 크기도 작으면서 큰 위력을 낸다……. 음.”

한참을 보던 휘정이 말한다.

“곧. 요국을 향해 공격이 있을 것이네. 그 자리에서 자네의 활, 궁제의 힘을 보겠네.”

공승우가 고개 숙이며 답한다.

“그리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귀면(鬼面)을 준비해 주십시오.”

“귀면?”

“예. 검은 바탕에 붉은 눈을 가지고 날카로운 이빨과 서늘한 미소를 품은 귀면입니다.”

“흠. 특이하군. 좋네. 하나면 되는가?”

슬쩍 사혼과 만혼을 본 공승우가 답한다.

“세 개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러자 지은희가 나선다.

“우리 것까지 다섯 개 더.”

공승우가 지은희를 보자 그녀가 고집스럽게 마주 본다.

어깨를 으쓱한 공승우.

“그렇다는군요.”

휘정이 ‘훗.’ 하니 멋쩍게 웃는다.

이후 그들은 수뇌부 회의에서 나온 전략을 토대로 공승우를 비롯한 사혼과 만혼, 지은희의 공격지점을 선정해 나갔다.

공승우가 이번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자 마음먹었으니 일월룡의 명에 그를 보좌하는 사혼과 만혼도 당연히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은희 역시 비룡일맥의 일원으로 동참하겠다는 말에 휘정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어렸다.

호약란과 휘산영은 지휘부에 남아 대기토록 하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시점 물산국 진영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요국과의 전쟁에서 물산국이 치른 선제공격은 세 번.

뜻한 바와는 달리 이렇다 할 전황은 없었다.

그것은 요국도 매한가지였기에 이번 격돌은 상호 다지는 각오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요국 측의 지원 병력이 남오평야로 향하는 시점이기에 물산국에서도 지원병력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양측 모두 이번 격돌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광활하게 넓은 평야에 수많은 군집을 이룬 두 무리가 각기 다른 깃발을 바람결에 펄럭이며 대치 중이다.

아직은 상호 횡주포의 기탄이 닿을 거리가 아니다.

저벅거리는 군중의 발걸음 소리와 그릉 소리를 내는 기갑전차의 움직임, 그 뒤를 따라 기마전단의 기수들이 한 손으로 고삐를 쥐고 한 손에 무기를 세운 채 따른다.

각 진영 중간마다 놓여 전진하는 횡주포의 포문 역시 활짝 열려 있었다.

휘정이 준비해준 귀면으로 얼굴을 가린 공승우는 말에 올라 신궁 궁제를 쥐고 군단의 최 선방에 있다.

양 옆으로 역시 같은 종류의 귀면을 쓴 사혼과 만혼이 각기 말을 타고 따르고, 공승우의 바로 뒤쪽으로 귀면 뒤로 나풀거리는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 지은희와 비룡일맥의 여전사 다섯이 따르고 있다.

촹!

높이 솟은 깃대에 금색 저울이 그려진 물산국의 추공기(錘共旗)가 힘껏 펄럭인다.

“진격!”

광활한 평야에 떨쳐 울리는 외침에 기마전단이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내달린다.

물산국의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요국 측에서도 엄청난 함성과 더불어 평야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마전단을 시작으로 연노병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방패군이 그 앞을 막아섰다. 연노병의 후방에 대기 중인 진격보단에선 질식할 듯한 긴장감과 한껏 부풀기 시작하는 사기가 팽팽하게 번져나갔다.

진영을 유지한 채 전진하는 요국과 물산국.

양측의 선봉 기마전단이 빠르게 접근해들 즈음 횡주포의 포문이 열렸다.

위이잉. 투왕!

횡주포의 사수, 력사인 호장수가 전력을 끌어낸 내력이 마황석으로 빨려 들어가 응축된 기탄이 되어 허공을 가르며 쏘아져 간다.

슈와와앙! 슈왕, 슈왕!

한꺼번에 쏘아진 세 발의 기탄은 대기를 비틀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기마전단의 돌격에 맞춰 그들을 격살하고자 쏘아진 기탄을 보며 공승우는 궁제를 들어 겨누었다.

어른 팔뚝보다 약간 큰 정도의 길이에 시위도 없는 활.

지이이잉.

공승우가 왼손으로 궁제를 내밀며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기듯 뒤로 당기자 궁제와 공승우의 오른손 사이에 맹렬한 기파가 만들어졌다.

세 가닥 시리도록 밝은 빛 무리가 화살처럼 어리더니 ‘퉁!’ 하는 소리와 함께 궁제를 떠나 대기로 쏘아져 나간다.

공승우의 손을 떠난 세 줄기 빛살은 요국에서 쏘아낸 횡주포의 기탄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들었다. 아직은 높은 곳에서 날아드는 기탄을 향해서.

슈왕. 푸북.

그다지 크지 않은 소리가 들리자 전황을 주시하는 휘정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공승우의 손에 들린 궁제에 빛이 어리자 눈을 빛냈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실망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날아든 횡주포의 기탄은 궁제를 벗어난 빛살을 삼켜버리고 여전히 앞으로 쏘아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쿠과과광!

거대한 폭음이 평야를 울려대고 내달리던 기마전단도 일시 움찔할 정도의 폭발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헉!”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휘정.

방금 벌어진 현상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이 되었다.

물산국의 다른 수뇌부 역시 휘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횡주포의 기탄은 막강한 위력을 품는다.

기탄의 폭발력은 기갑전차 여러 대를 한꺼번에 부숴버릴 정도이며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진격보단을 무력화시킬 힘을 가졌다.

그런 무력을 한 대의 화살, 아니 빛살로 날려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공승우와 함께하는 물산국 진영이 이러할 진데, 대치한 요국은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냐?”

상용장 황백과 요국 수뇌부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현재까지 태제륙 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횡주포이다.

다만, 사수인 력사의 내력에 따라 그 사용함에 10회 이상이 드물다는 제한이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 횡주포의 기탄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적에게 신무기가 있었단 말이냐?!”

황백은 침음을 흘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다.

횡주포의 공격은 전쟁 초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적 선봉 전력을 줄이고, 전진의 혼란을 일으킨다.

적이 보유한 군사력을 파괴하여 아군의 전력에 일조하는 것이다.

태제륙 내의 전투에서 횡주포의 사용은 당연하듯이 가장 먼저 치러졌다.

상대편이 기탄을 쏘아내는 동안 기마전단이나, 기갑전차로 공격하다가는 그 피해가 막심해짐을 알기에 마주 횡주포를 쏘아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호 기마전단으로 선 격돌을 하자고 약속을 할 리도 없다.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것. 물론 때론 지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종국에 가서는 승리가 주목적임은 분명하다.

“당장 확인해라!”

황백은 눈을 부릅뜬 채 명령을 내렸다.

자신들도 적인 물산국도 여전히 횡주포를 쏘아내고 있지만, 그 수요는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요국 측 기마전단의 진격지점으로 물산국 횡주포의 기탄이 쏟아져 내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장!”

꽉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황백의 시선은 적 기마전단 선봉에 꽂혀 있다.


귀면의 공승우는 재차 궁제를 들어 시위를 걸었다.

지이이잉.

다시 울리는 강렬한 기파는 손을 놓는 즉시 밝은 빛살이 되어 허공으로 쏘아졌다. 여전히 날아드는 요국 횡주포의 기탄을 향해.

허공에서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기탄이 터져나가는 사이 물산국에서 쏘아댄 기탄은 요국 기마전단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매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기마전단의 전열이 흐트러지고, 상당수의 기마병과 말이 붉은 핏물로 산화되어 날아갔다.

이후로 몇 번의 기탄이 상호 진영에서 쏘아져 날아들었지만, 군중에 떨어져 폭발하는 것은 물산국의 기탄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양 진영의 본진은 가까워졌고, 기마전단들의 격돌이 발하였다.

“우와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부딪치는 양측 선봉.

요국 기마전단의 선봉 공격력은 공승우 측에 집중되었다.

그들도 을씨년스러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공승우가 쏘아낸 빛살이 요국 횡주포의 기탄을 부수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공승우 양 측면에서 질러나온 사혼의 사령환(死領環)과 만혼의 만혼삭(卍魂索)에 막혔고, 이어지는 지은희와 비룡일맥 여전사의 화살들에 몸통이 꿰뚫려 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틈으로도 한두 대의 창날이 공승우에게 찔러 들었지만, 방탄기(防彈氣)를 두른 공승우의 손끝에 들려 휘둘러지는 궁제에 막혀 터져나갔다.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공승우와 그 일행.

나아가며 풀어내는 그들의 힘에 요국 기마전단은 물살이 갈리듯 쓸려나갔다.

쉬악!

한 자루의 창날이 공승우의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었지만, 상체를 비틀어 흘린 통에 어깨 위로 지나버린 것이다.

헛되이 공간만을 찌른 창을 급히 회수하려 드는 요국 기마병은 복부로 파고든 엄청난 충격에 허리가 꺾인 채 말에서 떠올라 피화살을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발경장산 암경(暗勁).

상대와의 거리와 동작이 짧을 때 발하는 고선기의 무(武).

그 하나를 시작으로 공승우 주변에 질러든 요국 기마병들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근접한 기마병은 마상에서 질러든 공승우의 손길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거리가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궁제에서 뿜어진 빛살에 대여섯이 한꺼번에 꼬치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한껏 치솟은 전의로 진격했던 요국 기마전단은 귀면을 쓴 무리에게 단박에 무너져 내리며 저도 모를 두려움을 품고 만다.

“악귀(惡鬼)…….”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전장의 소음 속에 묻히고 공승우 일행은 그대로 질러 나가 요국 기마전단의 공격범위를 뚫어버렸다.

그들은 그대로 내질러 적 진형으로 돌진했고, 그 순간 하늘을 가득 메우는 화살들이 ‘쏴와-.’ 소리를 내며 소나기처럼 날아들었다.

“탄(彈)!”

짧고 굵게 내지른 공승우의 음성에 따라 자신과 일행 모두를 두르는 방탄기(防彈氣)가 생겨났다.

슈와악. 쏟아지는 화살비는 공승우가 만들어 낸 방탄기에 막혀 투다닥 퉁겨진다.

그 순간 공승우가 다시 궁제를 들어 올린다.

자신을 향해 거칠게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를 향해.

지이잉. 퉁!

손을 떠난 빛살이 질러 드는 요국 군사들로 쇄도한다.

다시 한 발. 또다시 한 발.

요국 상용장 황백의 명에 귀면을 쓴 적의 정체를 파악하고 휘어잡으러 달려온 요국 용장과 장수, 군사의 무리는 연이어 날아드는 빛살에 휘말려 비명을 토하며 사방으로 날아간다.

그들 중엔 적룡이 황백을 도우라며 보낸 적염당 일원도 있었지만, 역시 쓸려나감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적진에서 보기엔 황당한, 그러나 엄청난 위력이었다.

병장기를 섞어보지도 못한 용장들이 나뒹굴 때도 공승우 일행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몇 기 안 되는 기마만으로 질러 드는 그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무모하기만 했으나, 지금 이곳 요국 군사들은 그런 생각으로 그들을 보지 못했다.

인간의 얼굴이 아닌 귀신의 얼굴을 한, 귀면의 악귀들을 보면서.


격한 충돌로 서로 병장기를 휘두른 기마전단이 엇갈릴 즈음 양측 연노병의 활은 일제히 시위를 퉁겨낸다.

그 즉시 방패군은 자국 진영을 보호하고자 방패를 들어 막았고, 쏘아진 화살은 허공에서 상쇄되거나 매서운 곡선을 그리며 상대 진영에 쏟아져 내렸다.

“으악!”

“크으윽.”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진영은 전쟁만이 가질 수 있는 광기에 훅 달아오른다.

비명과 고통, 분노와 살의로 물든 광기.

물산국 진영, 조금씩 진격 속도가 빨라지고 연노병의 후방에서 나아가던 진격보단이 무기를 고쳐 잡는다.

진격보단을 이끄는 용장의 입에서 전장을 흔드는 외침이 솟아난다.

“공격!”

“우와아아아!”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진격보단의 병사들이 평야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연노병이 포진한 진영을 돌아 나가고, 때론 그들 사이를 내달리면서.

그와 동시에 창기병이 격돌에 엇갈려 달려드는 적 기마전단을 맞아 창날을 곧게 세운다.

“투(投)!”

짧고 단호한 외침에 창기병은 있는 힘껏 창을 던져낸다.

휘리릭 돌아가는 창대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며 말과 기마병에게로 꽂혀 든다.

일부를 쳐내 퉁겨 내고 일부는 그대로 달아오른 몸통으로 파고든다.

히이이힝.

고통에 찬 울음을 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말과 기마병이 달리던 속도 그래도 엉망으로 나뒹굴고 그 위를 타고 넘고 짓밟으며 다른 기마전단이 내달린다.

물산국 창기병을 쓸어가며 무기를 휘두르는 요국의 기마전단.

그러나 그 수가 예상에 미치지 못함은 공승우와 그 일행이 보인 힘 때문이리라.

공승우 일행을 맞은 것도 요국 연노병의 활과 창기병의 창이었다.

하지만, 공승우의 방탄기를 뚫지 못한 화살은 무용지물이었고, 용천백령수 령수인 사혼과 만혼의 무력 앞에 던져진 창은 그다지 효력을 내지 못했다.

다시 들린 궁제에서 빛 무리가 쏘아지고, 빛살에 관통된 요국 진영은 우르르 무너졌으며, 그 틈으로 뒤를 따른 물산국 기마전단이 파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산국 진격보단과 창기병들이 요국 진영으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니 요국으로써는 더는 지탱할 여력을 잃고 말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치떠진 두 눈엔 원한이 가득하다.

전장을 노려보는 요국 상용장 황백의 이빨은 연방 빠드득 소리를 냈다.

“명을…….”

수하 장수가 조심스럽게 황백에게 입을 땐다.

그도 황백도 현 상황에서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잘 안다.

다만,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상용장 하청과 파마이가 오기 전까지 유리한 전황을 만들어 그들의 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황백의 의도는 이미 물거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 몸을 빼내 한참을 물러서야 할 판이다.

어쩌면 남오평야를 물산국에 내주고 자신의 근거지인 정소까지 물러나 그곳에서 수성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빠득. 삐드득.

붉어진 눈으로 전장을 노려보던 황백이 힘겹게 입을 연다.

“물러……서라.”

황백의 입에서 후퇴명령이 떨어지자 수하 장수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달려나간다.

다음을 위해서라도 남은 병력을 최대한 살려내야 한다.

그러려면 서두르는 길 말고는 없다.

지금도 요국 군사들은 물산국 군사들의 병장기에 붉은 핏물을 뿌려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사람.

현 전장의 물산국 수뇌부이자 상용장인 양광주는 황백과는 다르나 그다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전황을 주시한다.

‘틀어지는군.’

요국 황백을 자극하고 그들을 공격하여 대치 상황을 전쟁이 되게 만든 장본인.

‘좋지 않아.’

속내를 보니 그가 의도한 바는 물산국의 승리가 아님은 확실해 보였다.


§


태제륙의 동부.

사라국 수도 벽라성은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다.

긴 시간을 끌어온 사라국과 상조국의 전쟁.

대화에서 벌어진 양국의 접전에 유세하가 나타났다 사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벽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사라국 군황 강수를 비롯한 군황부, 상조국 간토까지 진격했다 패퇴하여 돌아온 상용장 염마철, 그간의 전투에서 밀리고 밀려 벽라성까지 온 여러 용장은 사력을 다해 전쟁에 임했다.

그들을 도왔던 화룡일맥의 화룡오대 역시 총력으로 나섰지만, 상승기류를 탄 상조국 1황자 호만추가 이끄는 군사력에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게다가 호만추의 곁엔 용천백령수 수장인 령수 단혼과 그가 이끄는 용천백령대가 있었고, 동해에 포진하며 사라국의 출항을 제지하던 해룡일맥이 육지에 내려 벽라성 공세에 합류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공성과 수성의 전쟁은 사흘 동안 지속하였고, 용익조에 올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용천백령대의 활약에 결국 벽라성의 굳게 닫쳤던 성문은 무너지고 말았다.

항복을 선언하고만 사라국 군황부.

그들은 곳곳에 전쟁의 참화 흔적이 그득한 벽라성에서 상조국 1황자 호만추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장기간 끌어온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린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사라국은 상조국에게 엄청난 염폐를 보상하게 됐고, 국토 일부를 상납했으며, 앞으로도 상조국의 종국이 되어 요구하는 것을 시행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한 사라국 군황과 수뇌부는 현재 자신이 놓인 상황에 울분을 토해냈다. 그들의 야욕으로 말미암아 한 줌 재가 되어 스러져간 혼과 전쟁 중에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던 백성의 고통에 대한 생각은 지금 순간에도 그들의 속엔 없었다.

그저 상조국에 드러내지 않고 이를 바득바득 갈아댈 뿐이니 말이다.

이번 전쟁은 사라국이 먼저 드러낸 전쟁이었다.

겉으로 내세운 것이 어찌했든 상조국의 물량과 그들이 지닌 국토와 자원을 빼앗아 자신이 가지려 일으킨 전쟁.

현재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한 그들은 지금도 그 욕망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군황전(君皇殿)에서 물러나 빈청(賓廳)에 내몰린 군황 강수와 상용장 염마철은 마주앉아 독한 술을 연방 넘기고 있었다.

빠득!

이를 간 염마철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낮게 으르렁거린다.

“아직 늦지 않았소이다.”

그의 말에 강수가 그를 바라본다.

“뒤로 빼놓은 병력이 있소.”

염마철의 말에 강수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승패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전쟁 중에도 뒤로 병력을 빼돌린 염마철의 행태에 화가 났음이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낼 상황이 되지 못했다.

군황이란 신분은 여전히 등에 지고 있으나, 별다른 힘을 낼 수 없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병력이 있다는 염마철이 강수보다 나을 판이다.

“산재한 귀갑병을 총동원하여 호만추를 치고 성내에 들어선 상조국 병력을 고립시켜 공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상조국 군사력이 다시 이곳 벽라성을 치러 올 때면 우리 사라국의 군세는 지금보다 몇 배는 커져 있을 겁니다.”

강수가 염마철을 보다가 허탈하게 웃는다.

“후후. 그리되면 그대가 사라국의 군황 자리에 오르겠군.”

내심이 들킨 염마철이 일시 주춤하지만, 이미 서로 알던 일이다.

염마철이 이전에도 수시로 군황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염마철은 급격한 상황에도 자신의 병력을 뒤로 빼돌렸을 것이다.

“그대가 바란 상황이 되었구려.”

강수의 말에 염마철의 입가 한쪽이 씨익 말려 오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나 상용장 염마철은 사라국이 상조국 발아래 놓여 허덕이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것뿐이지요.”

염마철의 말에 강수는 가만히 자신의 술잔을 잡아간다.

“내 가족들은 어찌할 참이오?”

강수가 묻자 염마철의 미소가 더욱 진해진다.

“사라국 군황부의 식솔을 지키는 것은 사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후후후.”

나직이 웃기만 하는 강수.

염마철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지만 두 눈만은 강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이미 강수의 시대는 기울었다는 것을, 그러니 내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듯 말이다.

“그래 어찌해달라는 말이오?”

어차피 자신은 전쟁에서 패한 군황이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보면 상용장인 염마철보다 힘이 없다.

명분도 권력도 잃었다는 말이다.

“상조국을 도왔던 집단은 내일 벽라성을 떠날 것이오. 이후 이뤄질 조인식(調印式)에 공격을 감행하고자 하니 군황께선 호만추의 시야를 가려 주십시오.”

“시야를 가려 달라……. 내 한 목이면 되겠소?”

강수의 말에 염마철이 웃는다.

“하하. 군황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결국, 앞으로 벌일 일이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군황인 강수를 밀어내겠다는 말이다.

군황 강수가 죽어 사라지면, 사라국의 새로운 군황 자리는 염마철이 잇게 되는 것이 유력하니까.

“헌데, 그대가 사라국을 돌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어찌 믿어야 하겠소?”

그에 염마철이 씨익 웃더니 한쪽을 보고 말한다.

“나오시오.”

염마철의 음성 뒤로 한 사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용천백령수 령수 단혼이 찾았던 인물, 화룡 단철심이 그였다.

“이 사람과 그의 뒤에 계신 분이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서 내뿜는 단철심의 기세에 흠칫한 강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다음 날.

단혼을 비롯한 용천백령수 일행은 상조국 1황자 호만추의 극진한 대접을 뒤로 사라국 벽라성을 떠났다.

이곳의 전쟁은 끝을 맺었으나, 새로이 발발한 요국과 물산국의 전쟁 속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단혼의 말에 호만추도 더는 잡지 못한 것이다.

그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전후 처리에 박차를 가하는 와중이니 그의 힘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라국 군사력은 무장해제 되어 한곳에 모아놓았고, 수뇌부는 모두 빈청으로 몰아넣었다.

벽라성에서 무기를 손에 쥔 자는 모두 상조국의 군병들뿐.

화룡오대라고 불리던 적 역시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자신을 위협할 힘은 없다고 판단한 호만추이다.

용천백령수 일행을 돌려보내고 호만추는 곧 이어질 조인식 준비에 한창이다.

조인식에서 양국 대표가 전쟁 종결과 이후 협의 사항에 서명하면 사라국은 공식적으로 상조국에 속한 종국이 되는 것이다.

호만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상조국의 영웅으로 칭해지는 그의 인생에서.

조인식 이후 진행은 후발대로 들어서는 여러 인물의 손에 이어질 것이다. 물론, 호만추는 벽라성 높은 곳에서 그 모든 것을 관장할 것이고.

마황석을 포함한 무기의 일괄 통제. 사라국 정세와 인물들의 통제까지.

할 일이 많아졌지만, 호만추는 크게 웃음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빈청에 머무는 사라국 상용장 염마철의 입가에도 진득한 미소가 걸렸다.


§


비홍환(秘紅宦) 수철을 통해 보고받는 적룡 우길청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쫓고 있으나, 아직 잡지는 못했다?”

적룡일맥의 정보조직 비홍대의 수장인 수철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잇는다.

“용령께서는 어찌 된 일인지 요국과 물산국의 전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훗.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닐 진데.”

비홍환 수철의 이마에 한 줄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살기를 뿜어내지 않는 우길청의 음성이 오히려 더욱 그의 마음을 옥죄어왔기 때문이다.

“송구하옵니다.”

당장 죽을지언정 수철은 비굴함을 보이진 않았다.

그 모습에 우길청이 피식 웃는다.

“하늘을 날아가니 시간이 걸림은 어쩔 수 없음이겠지. 그래 다음은 무엇이냐?”

우길청에게 용령은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이다.

다만, 지금은 일 순위에서 살짝 비켜갔을 뿐이다. 이전까지는 일월룡을 처리할 확실한 힘이 될 용령이었지만, 그런 한상준이 죽었으니 자신을 막을 자가 없다 자신하기에 비홍환 수철에게 아량을 베푼 것이다.

수철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며 말을 잇는다.

“물산국과의 전투에서 뜻하지 않은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변수?”

“예. 귀면대라 불리는 소규모 전투집단입니다.”

“귀면대라?”

“단 여덟뿐인 인원이지만, 그들의 수장인 자가 쏘아내는 화살이 횡주포의 기탄을 부술 정도라 하옵니다.”

우길청의 눈가에 이채가 어린다.

“호오? 그렇다면 물산국에서 새로운 무기라도 만들어냈다는 말이더냐?”

“그렇진 않습니다. 게다가 귀면대 수장인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인물도 아니며 일월룡을 포함한 팔룡 중 어느 곳의 인물도 아닙니다.”

“뭐라?”

그 순간 우길청은 진황국에서 부딪힌 유세하를 떠올렸다.

그도 태제륙의 인물이 아니었다.

수철이 말이 이어진다.

“그에 대한 사항은 현재 비홍대에서 전력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흠. 비홍대가 전력을 다할 정도의 사안이더냐?”

“귀면대의 힘으로 말미암아 남오평야의 전투는 물산국의 승리로 돌아갔으며, 요국 상용장 황백은 자신의 근거지까지 물러난 상황입니다.”

우길청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진다.

“요국 수도는 일월룡의 아랫것들이 들어찼고, 물산국으로의 진격은 늦어지고 말았다 이 말인데.”

“…….”

수철은 우길청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씨익 미소를 그린 우길청이 말한다.

“마염국에 통보하고 적공의 전 무력을 한곳으로 집결하라.”

그의 말에 수철의 신형이 미미하게 떨린다.

적공이라함은 적룡일맥의 근거지이다. 그곳의 무력을 집결하라는 말은 기다려왔던 일의 시작이니 그 격동을 감추지 못한 탓이다.

“그 말씀은…….”

감히 되묻기까지 했지만, 우길청은 개의치 않았다.

“우리 적룡일맥은 이제 태제륙의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수철이 더욱 깊숙이 고개를 조아린다.

태제륙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마염국이 전쟁에 참여하고, 그동안 힘을 길러온 적룡일가, 그들이 웅비함이다.

각국에 암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최종 무대를 만들어 온 결실을 이제 곧 보게 될 것이다.

팔룡 중 누가 자신을 따르고, 반대하는 자들이 갖춘 힘이 어떠한지를 살피고, 어느 나라를 휘하에 두어 사용함에 이득이 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월룡을 제거함에 성공한 지금.


§


용익조에 바짝 붙어 하늘을 나는 용소와 자하린.

긴장한 용소와는 달리 자하린은 처음 접하는 광대한 하늘과 차가운 바람에 흠뻑 빠져 있었다.

“앗. 고개 숙여 위험하다니까!”

세차게 휘도는 바람에 머릿결이 마구 휘날림에도 고개를 들고 사방을 바라보는 자하린의 태도에 용소가 또 소리를 지르지만, 자하린은 그저.

“좋아. 정말.”

하는 소리만 낼 뿐이다.

“쳇.”

결국, 용소는 투덜거림을 남기고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자하린의 손등을 덥석 덮고 만다.

보드라운 살결이 전해지자 일시 ‘헤-.’ 하고 웃던 용소는 곧 정신을 추스르고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직은 뒤를 잡히지 않았지만, 자신을 쫓는 자들 역시 용익조를 타고 날아오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서둘러야만 했다.

뛰어난 기수가 말을 잘 몰듯이 아마도 자신을 쫓는 자들은 자신보다 용익조를 잘 몰아올 테니 말이다.

‘빨리 형을 만나야 해!’

공승우를 만나기 전까진 용소에게 다가온 위험은 여전히 위태롭다.

다행이라면 한 가지, 엉뚱한 방향이 아닌 용천백령수가 일러준 방향으로 곧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뿐.

지금의 속도 그대로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곧 요국 상용장 황백이 다스리는 정소를 지나 남오평야에 도달할 것이다.


§


용천백령수가 준비해 둔 용익조는 상당히 빨랐지만, 뒤따르는 적룡일맥의 용익조가 용소의 용익조를 결국은 따라잡았다.

아직은 눈으로만 확인될 거리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부딪힐 수밖에 없다.

“칫!”

멀리서 들려오는 용익조의 울음에 뒤를 돌아본 용소는 이를 악 다물고 자신의 용익조를 채근한다.

방향을 잡아 몰아가는 것만을 익힌 용소와는 달리 쫓아오는 용익조의 기수는 용익조를 사용한 공격에 특화된 자일 것이다.

‘서둘러야 해!’

저 앞에 황백의 도시 정소가 보인다.


앞선 하나와 뒤따르는 한 무리의 용익조가 빠른 속도로 머리 위를 지난다.

그들을 발견한 요국 군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하에게 묻는다.

“용익조? 그들이 용익조를 날려 올렸나?”

얼마 전 남오평야에서 패퇴한 후 자신들을 돕는 일단의 무리가 정소에 도착했다. 적룡일맥의 무력이 그들이다.

“아닙니다. 그들이 데려온 용익조는 모두 후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군장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용익조를 세심히 살피려 집중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떨어진 터라 구분이 어려워 눈가만 찡그려질 뿐이다.

“앞에 가는 하나를 쫓는 것도 같은데?”

중얼거리던 군장이 수하에게 말한다.

“즉시 보고……, 엉?”

말하는 사이 후방에서도 일단의 용익조 무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급히 뛰어간다.

곁의 수하 역시 군장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소강상태에 있던 전시상황이 끓기 시작한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오평야를 지나 정소로 향하던 물산국 진영에도 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정소에 잠입한 간자에게서 온 정보로 용익조 군단이 빠르게 공격해 든다는 첩보였다.

수뇌부와 함께 지휘부에 있던 휘산영과 지은희가 공승우에게로 뛰어왔다. 호약란과 담소를 나누던 공승우가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맞자 휘산영이 급히 말한다.

“오빠 가자!”

“응? 어딜?”

“요국에서 용익조를 날려 올렸어. 궁제의 힘을 다시 보여줄 차례야.”

“용익조?”

“응! 이번에 우리 군에 오빠의 귀면대가 조직되는 건 알지?”

“응.”

“그렇다면 보여줘야지. 앞으로 웅비할 귀면대가 어떻다는 걸 말이야.”

“아, 뭐…….”

살짝 들떠서인지 상기된 표정으로 말하는 휘산영을 보며 공승우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귀면을 요구한 것은 친구인 강영석 등과 함께 인의단 활동을 할 때가 생각나서 요구했을 뿐인데 이제는 대(隊)라는 하나의 군사 조직이 되어버렸으니.

“뭐해? 얼른.”

손을 잡아끄는 휘산영을 따라 공승우가 딸려나가듯 처소를 나서자 호약란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뒤를 따른다.

잠시 후, 물산국 진영에서도 용익조 여섯 마리가 날아올랐다.

공승우와 호약란, 휘산영, 지은희. 사혼과 만혼, 비룡대 일인.

그들은 곧장 정소 방향으로 용익조를 몰아 날아가기 시작했다.


용소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따라붙은 용익조에서 날아온 화살 공격에 어깨를 다친 것도 문제지만, 자신들을 태운 용익조가 상처를 입어 날아가는 속도가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니이미!”

욕지거리를 뱉은 용소가 급히 몸을 숙이며 용익조를 아래로 이끌었다.

슈슈숙.

세 대의 화살이 머리 위를 지나 날카롭게 지나간다.

용소의 뒤쪽으로 용령인 자하린이 있기에 전면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용소의 용익조는 벌써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래로 향하다 다시 솟아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뒤쪽을 바라본 용소가 으득 이를 간다.

쫓는 자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때 살며시 다친 어깨를 만지는 손길을 느낀 용소가 흠칫하다가 이내 꽉 들어찼던 긴장을 완화한다.

“괜찮아?”

너무도 맑은 여아의 음성과 손길에 왠지 힘이 났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을 다잡은 용소가 용익조의 고삐를 바짝 틀어쥔다.

“꽉 잡아!”

다부지게 말한 용소의 음성에 자하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응.”

자하린의 가녀린 손길이 용소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계속.


@@@@@@@@@@


어느새 10월.

찬바람이 쌩하니 불어대는 것이 젤로 싫어라 하는 겨울이 올 날도 멀지 않은 듯합니다.

아우--.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늘 반복되는 일상에 때론 지치고 투덜대면서 지냅니다.

한 달 중 가장 싫은 날은 월급날이고요.

다 떼어가서 남는 게 없습니다. ㅠ,.ㅠ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요일은 수요일입니다.

수요일 아침에 회사 주변 청소한답시고 일찍 오라고 그러거든요.

물론 좋은 날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쯤 하는 주말에 당직근무 하는 날이지요.

오전 9시에 나와서 저녁 6시에 집에 가는데, 그때까정 사무실에 나 홀로 룰루랄라입니다.

집안일도 안 하구 간섭하는 사람두 없습니다.

회사에두 당직사령으로 있으니 간섭하는 사람두 없구요.

다만, 일이 터지믄 그날두 싫은 날이 되고 말지만요. ^^


이 글을 써온 시간이 삼 년이 넘었네요. ^^

후아- 째작째작 써대니 시간만 자꾸 싸여버렸네요.

냐하하-

추워지는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요.

예방 접종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 작성자
    Lv.21 氣高萬仗
    작성일
    11.10.22 06:48
    No. 1

    오랜만에 올려주신 글의 양이 제 마음을 배부르게 합니다..제 직장은 12시간 근무에 주/야 2 교대 근무인데도 급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급여 받아보면 많이 떼어 가더군요..어느 직장인이든 봉인가 봅니다..하여간 힘내시거 건강 챙기세요. 다음 글도 이렇게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땅꾼
    작성일
    11.10.22 10:57
    No. 2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로이엔탈
    작성일
    11.10.22 23:36
    No. 3

    감사. 오랜만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제노
    작성일
    11.11.06 15:18
    No. 4

    흠... 묻혀 있다가 이제 제궤도에 오르는 듯 싶네요.
    그런데 너무 잊혀졌네요. 글이.~
    화이팅해서 +_+ 더 진도를 나가 주시기를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베푸는맘
    작성일
    11.11.07 16:41
    No. 5

    며칠동안 정주행~~~!
    작가님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눈을 뎨수없을 정도로 몰입했읍니다
    담편이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건필하시고 자주좀 올려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풍물장터
    작성일
    12.04.19 11:41
    No. 6

    잘보고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리멤버
    작성일
    12.06.15 23:25
    No. 7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氣高萬仗
    작성일
    14.01.09 00:34
    No. 8

    새해에도 저는 기다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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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5 +8 11.03.09 1,543 12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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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2 +7 10.10.29 1,692 15 46쪽
104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1 +9 10.09.01 1,886 14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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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5 +8 10.05.31 2,088 10 41쪽
9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4 +9 10.05.20 2,112 9 39쪽
9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3 +7 10.05.18 2,014 9 31쪽
9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2 +8 10.05.12 2,252 9 32쪽
94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1 +9 10.04.14 2,410 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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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7 +9 09.12.31 2,632 9 41쪽
90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6 +3 09.12.31 2,547 9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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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4 +8 09.10.22 2,791 11 45쪽
8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3 +6 09.09.28 2,933 9 47쪽
8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2 +7 09.09.11 3,134 8 31쪽
8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1 +5 09.09.07 4,035 7 48쪽
84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1 +9 09.08.12 3,741 9 40쪽
83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0 +3 09.08.12 3,249 9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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