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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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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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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3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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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쪽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6

DUMMY

6.


정주지점.

호약란이 입구로 들어서자 손님맞이용 다탁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짜증 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눈이 확 밝아지는 늘씬한 미녀. 그것도 이런 곳에 지금 같은 시기라면 뜻밖이니 말이다.

“누구……?”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그의 이름은 배영준.

배영준은 남주상단 상단주인 배염의 장자이다. 그런 그가 이곳에 와 있는 것도 뜻밖이다.

남주상단은 대륙의 여러 상단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상단이다. 그곳 상단주의 장자라면 아쉬울 것 없을 터인데, 곧 큰 전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한 이곳 정주에 있다니, 그것도 잔뜩 짜증 어린 표정을 하고선 말이다.

배영준은 들어선 호약란의 외모에 한차례 놀랐지만, 곧 정신을 추스르고는 그녀에게 방문 목적을 우회적으로 물었다. 남다른 면이 있다.

하지만, 호약란은 그의 물음엔 상관없이.

“많군.”

이라는 말을 탁 뱉어냈다.

일시 그녀의 말뜻이 무언지 이해 못 하던 배영준, 순간 그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그녀가 말한 ‘많군.’이란 의미를 눈치를 챈 것이다.

“당신 누구야?”

경계의 음성. 여차하면 무력을 쓰겠다는 듯 두 주먹까지 불끈 쥔다.

그의 음성에 호약란이 바라본다.

무심한 듯 차가운 그녀의 눈빛.

배영준은 전해지는 한기에 흠칫 몸을 떤다.

상단의 차기 주인이 될 몸으로 어려서부터 온갖 것들을 익혀온 배영준.

상단을 꾸림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지만, 그 못지않게 무력 또한 갖추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해서 배영준은 상조국 용장에게 직접 무공을 전해 받았다.

그에는 남주상단이 상조국에 국적을 둔 바도 있지만, 아비인 배염이 지닌 염폐의 위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바가 더욱 컸다.

어릴 적부터 무공을 달고 산 배영준, 서른둘이 된 현재 그는 성검사 수준은 아니지만, 력사 이상의 능력을 일신에 지녔다.

그러니 곧 전쟁이 벌어질 위험한 곳에 있으면서도 근심보다는 짜증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여인의 눈매에 흠칫하니 몸을 물린다.

배영준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인에게 버럭 성질을 부릴 정도로 제멋대로인 자는 아니다.

“누구요?”

재차 묻는 음성. 하지만, 호약란은 무어라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뒤로 들어서는 몇몇 사람들이 있으니.

“지미널. 여긴 식당이 아니잖아.”

투덜거리며 들어서는 용철과 그 뒤를 이어 들어서는 공승우, 용소, 용하 그리고 장여련이라는 이름을 지닌 나이 스물넷의 여인.

일행은 매우 독특한 구성을 보였다.

특이한 옷을 입은 청년과 어딘지 닮은 장년과 소년, 소녀. 겁에 질린 표정이지만 수수하면서 관능적인 몸매를 지닌 젊은 여인.

배영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것들은 뭐야?’

기실 배영준은 자신의 아비인 배염이 행한 일 때문에 불만이 쌓인 상태였다.

이곳 남주상단 정주지점을 임시 피난처로 쓰라는 말.

상조국 군에게 무기를 조달하고자 이곳에 들른 배염과 배영준은 곧 전쟁이 벌어질 곳이지만 마을 평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인지라 미처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한데 모아 이곳에 있게 한 것이다.

위로 3층에 지하 4층의 구조를 지닌 정주지점.

상단 물건을 보관하고 지켜야 할 곳이기에 여타의 건물보다 튼튼하고 보안 또한 우수한 곳이니 임시 피난처로 쓰기에는 적합한 곳임을 알지만, 그래도 상단 지점이지 않은가.

무기 조달이 상당한 이익을 남기는 바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곳 정주 주민들을 돕는 바는 어떤 이익이 남는다는 것인지.

어찌 되었든 5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지하로 내려가 몸을 피했다.

그 인원들을 그냥 둘 수 없으니 기본 생필품과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뭐, 이곳에서 장사하던 이들이니 그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상호 조달할 수 있었지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어이 형씨.”

배영준의 일그러진 표정이 안 보이는 지 장년 사내가 이를 드러내 미소를 그리며 다가든다.

“먹을 것 좀 없수?”

‘뭐, 뭐 이런?’

배영준은 황당했다.

처음 들어왔던 여인은 이미 저쪽으로 걸어가 접대 업무용 탁자 곁에 놓인 긴 의자에 털썩 앉아버리고 어디서 마구 굴러다니던 옷차림을 한 사내가 다가와 히죽거리다니.

“당신들 뭐야?”

그에 용철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한다.

“나? 용철인데.”

“…….”

“먹을 것 없냐고?”

“…….”

확 패버릴까?

배영준의 심정이다.

힐끗 여인을 바라본 용철이 부들거리는 주먹을 애써 참아 내린다.

“여긴 상단이다.”

“상단?”

용철이 되묻자 배영준이 고개를 끄덕여 준다.

알았으면 그만 나가라는 뜻이다. 상단에 볼일이 있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에 용철이.

“아, 그렇구나. 근데, 먹을 것 없냐고?”

‘아, 확 그냥 진짜!’

배영준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용철을 노려본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용철이 ‘헥!’ 하고 놀라며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난다.

“뭐, 뭐?”

이제는 용철의 음성만 들어도 화가 솟는다.

짜증에 짜증이 겹치니 화가 된 것이다.

그 상대가 용철이고 말이다.

다만, 여인의 존재가 마음에 걸린다.

이들을 보니 이곳 정주 주민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행객들이거나 모종의 목적을 띈 상조국, 사라국 두 나라의 어느 쪽 인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배영준은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이 단순 여행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어쩌다 위험이 도사리는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더는 헛소리 말고 나가.”

나직하나 은은한 분노가 실린 음성이다.

용철이 한 발 더 물러나며 중얼거린다.

“제, 젠장. 머, 먹을 것 좀 있냐고 묻는 것도 못하나.”

그에 배영준의 눈매가 확 일그러지니 용철이 움찔하며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럼에도, 나가지는 않는다.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듯하고 눈앞의 사내는 까칠하니 나가고픈 마음이 꿀떡꿀떡 하지만, 그가 여전히 마녀라 생각하는 호약란의 눈치를 보느라 말이다.

배영준의 시선이 용철을 따라 움직이더니 미미하게 꿈틀거린다.

‘저 여인이 문제군.’

어찌 보든 이득은 없어 보인다. 해서 내보내겠다는 마음으로 그가 호약란을 향해 움직이려는 순간. 지하로 향하는 문이 열리며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두 사람과 한 명의 장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한 노인이 말한다.

“손님이 오셨군.”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인 노인의 음성은 편안하다.

그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배영준.

“아버님.”

“그래, 저분들은 누구신가?”

노인, 배염의 물음에 배영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다.

“흠.”

나직한 소리를 낸 배염이 의자에 앉은 호약란에게로 다가간다.

“젊은 아가씨께선 이곳엔 무슨 일이신가?”

호약란이 노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묻는다.

“근처인가요?”

호약란 그녀도 상조국과 사라국이 격돌한 바는 안다. 이곳은 그녀가 향하는 목적지로의 길일뿐이니 굳이 전쟁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피하려 들렸을 뿐이다.

호약란의 물음이 무언지 눈치챈 배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여행 중이신가?”

“그런 셈이지요.”

“저들은?”

“…….”

배염이 공승우등을 가리키자 호약란이 얼굴을 찡그린다.

일행이지만 인정하고픈 마음이 별로인 그들.

호약란의 반응에 배염은 얼추 그들의 관계를 파악한다.

거대 상단의 주인인 그. 상황판단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사람을 보아 판단하는 바도 탁월하다.

그의 판단은 눈앞의 여인과의 충돌을 피하라 속삭이고 있다.

게다가 그와 동행한 노인의 말도 있었으니.

배염이 여인에게서 눈을 돌려 공승우 등을 보다가 아이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 때문이구먼.”

“…….”

“그래 잠시 쉬다 가겠는가?”

“그렇게 해 주신다면.”

“내려가시게.”

그에 호약란이 일어서고 배염은 함께 나선 장년인에게 호약란 일행을 아래로 안내하게끔 말을 마쳤다.

호약란과 공승우 등이 지하로 향하는 문으로 사라지자 배영준이 배염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아버님 저들은.”

“되었다.”

“예?”

“너는 저 여인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

배염의 질문에 배영준의 이마에 골이 생긴다.

왠지 가까이하기엔 꺼림칙한 바 외엔 별반 느껴지는 것이 없었지만, 배염이 묻는 바는 그것이 아닐 것이기에 말이다.

배영준이 별말이 없자 살짝 미소를 그린 배염이 말을 잇는다.

“묘한 여인이지.”

그 말에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는 배영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살짝 웃은 배염이 옆으로 다가온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배염이 청수한 외모의 노인이라면 옆의 노인은 어디서나 볼 듯한 평범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 깊은 눈만큼은 달랐지만.

“어떤가?”

“재미있는 녀석들이군.”

“역시 그런가.”

“특히 사내 녀석은.”

“사내? 여인이 아니고?”

“여인도 물론이지만, 사내 녀석은 아주 특이해. 끌끌.”

“호오?”

두 노인은 알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통로로 들어섰다.

홀로 남은 배영준의 이마에 깊어지는 골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지하로 내려서니 넓은 공간에 노인들과 청년, 아낙은 물론 여러 아이가 모여 있다가 새로이 들어서는 이들에게 호기심 반, 걱정 반의 시선을 보냈다.

그런 그들에게 호약란의 뒤를 이어 나타난 배염이 웃으며 말한다.

“걱정들 마시게. 자네들에게 해코지할 사람들이 아니니.”

그리고는 호약란에게 말을 잇는다.

“저쪽으로 가시게나.”

고개를 끄덕이는 호약란.

장년인이 다시 앞서고 호약란과 공승우 등이 뒤를 따른다.

그 뒤를 배염과 또 한 명의 노인이 따르고.


§


다가닥다각.

무장한 군인을 등에 태운 한 필의 말이 군막 앞으로 달려와 멈춘다.

말에서 내리는 군인.

짙은 곤색 갑옷. 가슴 어림에 사자 한 마리의 얼굴이 새겨진.

사라국의 갑옷이다.

철커덕 소리를 내며 군막으로 들어서는 이는 용하가 공승우를 발견했던 전장에서 보았던 무장 난중이다.

그가 군사들을 이끌고 정찰을 나섰다가 돌아온 것이다.

난중이 군막으로 들어서니 여러 군장이 그를 바라본다. 현재 군막 안에는 호장수와 일등장수, 그리고 무사장들 중 일부가 있었다. 그러니까 력사급의 장수와 검사급의 무장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깊이 고개 숙여 군례를 취한 난중이 그들 중 자신의 직속상관인 무사장 박필에게 다가간다.

“상조국 진형은 호구평야 동남쪽, 우리 군과 이천 단(段) 가량 떨어진 곳에서 군막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 단이 어른 양팔 벌린 길이 정도이니 이천 단이라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그 말인즉 곧 상호 조우를 할 거리라는 말인데.

“횡주포(橫主砲)와 기갑전차(驥鉀戰車)의 수는 4기와 15기.”

횡주포, 기갑전차 모두 마황석을 이용한 무기로 력사 이상의 무력을 지닌 자만이 활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횡주포는 력사 중 호장수는 되어야 쓸 수 있는 무기로 사용자의 내력을 마황석에 불어 넣어 응축해 원거리의 목표를 격살함에 주를 둔다. 다만, 사용자의 내력 한계가 있으니 사용빈도가 항상 같지 않으며, 그 횟수 역시 10회 이상이 드물었다.

기갑전차 역시 마황석을 사용함은 같으며, 력사 중 일등장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로 1인 탑승식 무기이다. 일등장수 1인 탑승, 기갑전차는 말보다는 전진하는 속도가 느렸기에 후방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횡주포와 마찬가지로 내력을 응축해 쏘아내는 짧은 주포와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호막을 지닌 장비이다.

기갑전차 역시 사용자의 내력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장비인지라 장시간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장비의 연원은 진황국에 있었다. 진황국만이 지녔을 당시 그 위용을 다해 타국에 월등한 무력으로 존재했던 장비였다.

하지만, 진황국과 마염국의 전쟁 이후 승자인 마염국에 의해 대륙으로 빠르게 번져나갔으며, 지금은 어느 나라든 전쟁에서의 대표적인 무력이 되었다. 그에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팔룡선무회의 입김이 존재했으나 그는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현재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마황석의 양은 미약했으니, 그 개체 수가 더는 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나라마다 지닌 개체 수는 상이했다.

난중의 말이 이어진다.

“그들의 특화병인 환요병(幻妖兵)의 위치는 파악되지 못했으며, 보유 군사 수는 대략 1만 2천 이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박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기마전단과 창기병 등의 동향은?”

“경계가 삼엄해 자세한 바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보유한 전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대륙, 그들의 군사력, 아니 군사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상 무력인 기마전단(騎馬戰團), 군사 대부분이 소속된 진격보단(進擊步團), 연사 가능한 쇠뇌로 무장한 연노병(連弩兵), 방패와 검을 소지해 최전방에서 진격하는 방패군(防牌軍), 전면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검수단(劍秀團)과 창기병(槍技兵) 그리고 각 나라의 특화된 군력.

이러한 구조에서 얼마만큼의 수와 조직력, 전술 등의 차이로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각 나라가 보유한 성검사의 수와 질 역시 전쟁의 승패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마치 현세 육해공의 뼈대와 그 질적, 수적 차이가 있듯이.

“음.”

무사장 박필.

지금 사라국의 군력을 보면, 총사령관 격으로 출전한 1황자 강황을 필두로 성검사급의 상용장 1인과 한 단계 아래인 염용장 2인, 그 아래 성검사인 기용장 4인이 존재하고 횡주포와 기갑전차를 운용할 력사급의 호장수 6인과 일등장수 10인, 일등장수를 보좌해 기갑전차의 후미를 지키는 이등장수 10인이 그 수에 맞게 각각 배치되었으며, 10인의 무사장과 50인의 무장, 1만 여의 군사가 곧 벌어질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다.

그들 중 현재 이곳 군막에 자리한 이는 호장수들 중 수장인 특호장수 곽천기와 호장수 두차, 일등장수 곽진 그리고 무사장의 수장인 일무사장 박필과 무사장 경호기가 있었다.

무장 난중이 비록 직속상관인 박필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으나, 이는 결국 이곳에 자리한 모두에게 전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필은 난중의 말을 듣고 특호장수 곽천기를 바라봤다.

들었으니 다음을 지시하라는 무언의 표현.

서른아홉의 다소 젊은 나이로 특호장수의 위치까지 오른 곽천기는 마흔여섯 나이인 박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무사장께선 각 무장에게 전해 방패군을 필두로 각 군열을 전진 배치토록 하시고, 두 장수와 곽 장수께선 횡주포를 군열의 후미로 기갑전차를 전면에 배치토록 하시오. 나는 강주호 상용장께 적진의 상황을 아뢰겠소.”

곽천기가 언급한 강주호, 특급성검사인 그는 상용장의 신분 외로 군황 강수의 사촌 형제로 이번 전쟁에 사라국 기마전단을 맡아 기동전을 책임지고 있다. 전쟁이 발하면 그가 이끄는 기마전단은 적 상조국 진형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알겠습니다.”

박필이 대답하고 그와 무장 난중은 군막을 나섰다.

남은 이들 역시 곧 각자의 자리로 움직일 테고.

군막을 나선 난중은 가만히 박필의 표정을 살폈다.

일무사장이긴 하나 장수보다는 아래인 계급. 나이가 많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박필이 그보다 젊은 곽천기의 명을 받아 혹여 기분이 상하지 않았나 살핀 것이지만, 괜한 기우였다.

‘하긴, 지금은 전시이니.’

내심 피식거린 난중.

그에게 박필이 말한다.

“난중.”

“예.”

“정찰임무는 다른 무장에게 건네고, 지금부터 너는 연노병을 이끈다.”

“예?”

“너 외의 무장 넷을 포함해 총 다섯이 연노병 15개 단을 분할하여 지휘하도록.”

난중의 주 임무는 정찰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연노병을 이끌라니.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궁금하다.

하지만, 난중은 그저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박필이 걸어간다.

저 앞 무사장들의 군막으로.

난중은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이 전쟁의 진실한 내면에 대해서.

하지만, 그것을 알기엔 난중의 지휘와 경험이 짧다.

그러니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따르는 것이 편하다.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낸다.


현재 태제륙에서의 전쟁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진황국과 마염국의 전쟁이 그러하며, 전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라마다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용형도와 해인도 그리고 하나의 대륙에 여덟 나라로 분할되어 그 나라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 이해관계는 언제든 상충한다. 또한, 자국의 이익을 위함이라면 전쟁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타국의 이익을 자국에 가져올 수 있고, 그에 해당하는 수단 중 하나가 전쟁이니 말이다.

특히 인접한 나라 간의 관계는 예전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도 같다. 현재는 사라국과 상조국이 그 화산을 터뜨린 상태이고.

양화산맥의 근방을 기준으로 사라국과 상조국의 접경이 이뤄져 있으며, 접경지대에서 발한 다섯 번의 국지전으로 양국의 감정은 악화된 상태이니 이번에 치를 전면전은 꽤나 사나울 것이다.

처음 발한 국지전은 접경지 순찰 중에 터졌다.

상호 조약으로 순찰부대끼리는 격돌하지 않는 것을 깬 상조국에 사라국이 응대한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상조국으로서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한 상조국에서 특별한 이득이 없음에도 사라국을 먼저 건드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격돌한 상조국 순찰부대원 중 사라국에 포로로 잡혀간 자의 진술을 토대로 상조국이 먼저 도발했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를 수긍할 수 없는 상조국은 전면 부정에 들어갔다.

그러는 와중 다시 한 번 상조국의 접경도시인 국지(局地)에 사라국의 공격이 행해져 두 나라 간의 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사라국의 음모라 주장하는 상조국이나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지라 상조국 군황부는 전쟁을 선포하고 대응에 나서서 전쟁은 고조되었던 것이다.

두 나라의 전쟁 외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망독군의 존재이다.

이전부터 없지는 않았지만, 이번 전쟁의 주변에는 유난히 많은 망독군들이 발생해 일반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잔혹하고 비정하게 말이다. 황적포가 이끌었던 망독군들이 수완 마을에서 저지른 것처럼.


구오오.

정주 호구평야에 무거운 공기가 휘몰아친다.

이제는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대치.

사라국과 상조국 양측 진영이 각자의 깃발을 나부끼며 조금씩 전진해 든다. 이번이 전면전으로는 처음이다.

이 단 한 번으로 양국의 전쟁이 끝날 리는 없겠지만, 승패의 향방은 앞으로의 진행에 막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양측 모두 전력을 다할 것임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무장 난중은 긴장을 고조한 채 전방을 주시했다.

그가 이끄는 연노병은 3개 단 60명. 이번에 배치된 사라국의 연노병이 15개 단이니 대략 300의 연노병이 진을 친 셈이다. 연노병과 방패군이 조화를 이룬 배치.

그 300의 연노에서 한 번에 쏘아지는 쇠뇌는 1천에 가깝다.

하늘을 온통 메우며 날아갈 1천의 쇠뇌.

그 수는 상조국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터다. 무작위로 쏟아지는 쇠뇌의 끝은 양국 군사들의 살을 헤집어 그들의 뜨거운 피를 대지에 뿌릴 것이다.

방패군과 기갑전차의 방어막은 그런 연노의 일부를 막아주겠지만, 이어 발포되는 횡주포의 파괴력은 온전히 감당치 못하리라.

횡주포와 연노. 두 개의 무력이 끝날 즈음 진격보단과 기마전단의 대대적 격돌이 발할 것이다. 이것이 전면전이다. 힘 대 힘의 격돌.

전술과 전략은 이 처음 한 번의 전면전 이후 풀어질 것이다.

이것이 태제륙의 전쟁. 전면전의 시작이다.

“조준!”

난중의 입에서 무거운 명령이 터져 나오자 3개 단 연노병의 연노가 일제히 처저적 소리를 흘리며 하늘을 향한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갈 연노.

“격발!”

퓽. 한 발의 쇠뇌가 날아오른 순간. 퓨븅, 퓨부부부부.

무수히 많은 쇠뇌가 뒤를 이어 솟아오른다.

다른 무장이 담당한 연노병의 쇠뇌도 하늘로 오른다.

쏴아아.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가는 쇠뇌.

“조준!”

처저적.

“격발!”

퓨부부부부부. 쏴아아.

두 번째 격발이 떨어질 즈음 반대쪽에서 날아든 쇠뇌가 내리꽂히기 시작한다.

슈우우 메아리처럼 울려오더니 쏴아아 하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내리꽂힌다.

팍. 파바박.

방패군이 들어 올린 방패에 쏟아지고, 지잉 하며 공간에 막을 형성한 기갑전차의 위로도 쇠뇌는 마구 쏟아졌다.

그러나 방패로도, 기갑전차의 방어막으로도 막지 못한 쇠뇌들은 그 틈으로 드러난 군병들의 살집을 헤집으며 박혀 들었다.

푸부부북.

일시에 터지는 소리를 이어 수많은 군병이 비명을 지르며 모로 쓰러졌다.

그럼에도, 난중의 명령은 끊이질 않는다. 이 정도는 처음부터 예상한 바다.

“조준!”

“격발!”

처음보다는 다소 적은 수의 쇠뇌가 다시 하늘을 메우며 날아간다.

그런 쇠뇌의 한쪽을 뚫고 마주 날아오는 강렬한 기운.

후와왕. 주변 대기를 휘저으며 몰려드는 기운은 날아오른 쇠뇌를 휘몰아 흩어버리며 난중이 자리한 군영으로 떨어져 내린다.

“!”

하늘을 올려다본 난중은 이를 악 다문다.

상조국의 횡주포가 발한 기운. 상위 력사인 호장수의 모든 내력이 응축된 기운은 군병들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말이다.

그런 난중의 뒤쪽에서 몰려드는 기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운이 매섭게 쏘아져 나간다.

쏘아지는 기운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배치된 군병들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가늘게 몸마저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사라국의 횡주포도 포문을 연 것이다.

첫발의 횡주포가 상조국 진영에서 날아든 횡주포 기운과 거세게 충돌해 공간을 이지러뜨리고 연이어 쏘아진 횡주포가 상조국 진영으로 매섭게 몰아쳐 나간다.

양측 진영에서 마주 쏜 횡주포의 기운과 그에 섞여 날아든 쇠뇌가 교차한다.

일부는 진영 중간 어림에서 강하게 충돌해 상쇄하고 그들 중 일부는 상대 진영에 무참히 내리꽂힌다.

쿠왕!

강렬한 충돌 음에 이어 바닥이 패고 군병들의 육신이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떨어져 나간다. 방어막을 견고히 했던 기갑전차의 일부도 강렬한 횡주포의 기운에 타격을 입고 흐트러진다.

그렇데 일거에 진영의 군데군데가 넓은 천에 떨어진 불똥으로 구멍이 뚫리듯 변해간다.

비명이 난무하고 먼지가 어지럽게 휘날리는 그곳. 무장 난중은 그가 속한 진영으로 떨어지던 횡주포의 기운이 마주 쏘아진 기운과 충돌하여 일으킨 여파로 일시 몸을 숙였다가 재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횡주포는 특성상 연노처럼 연이어 발하지 못한다.

재차 발사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조준!”

이번에 연노가 쏘아지고 나면.

“격발!”

퓨부부부. 쏴아아아아!

뒤를 이어.

둥-!

전장을 울리는 한 소리를 따라.

“와아아아아!”

진격보단과 기마전단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내달린다.

두두두두.

호구평야의 땅바닥이 거친 말발굽에 비명을 지르고 마상에서 눈을 치뜬 채 창칼을 휘두르는 군사의 살기가 대기를 적신다.

양측 기동력의 핵심인 기마전단이 점점 가까워지며, 마상 군병들의 눈이 붉어지고 무기를 쥔 손에 꾸욱 힘이 실린다.

“차아앗!”

누군가의 기합이 전장에 섞이고 그가 휘두른 창날이 내쳐 엇갈린 군병의 목을 훑고 지나간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창대를 타고 울린다.

상대 군병의 치떠진 눈동자가 핏물을 머금고 자신을 노려본다.

하지만.

창날을 휘두른 군병은 그런 상대 군병을 지나쳐 기합을 지르며 앞으로만 전진한다. 자신이 지나쳐 온 군병의 처리는 자신의 뒤를 받친 다른 군병이 해 줄 것이니 말이다.

쾅!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이 지나친 상대 군병이 마상에서 휘휘 날려 바닥에 떨어지더니 마구 뒹군다.

“이여업!”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기합을 내지르며 빙빙 창을 사납게 휘젓는다.

차장. 서걱 하는 소리가 두두두두 울리는 말굽 소리에 이지러진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양측 기마전단은 정면으로 격돌하듯, 스치듯 그렇게 엇갈려 공격을 감행하더니 그들 중 일부가 후두둑 줄줄이 피를 뿌리며 대지에 무릎을 꺾고 쓰러진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일부, 사납게 내친 양측의 기마전단은 여전한 기세를 뿜어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상대 진영으로 파고든다.

바로 뒤를 이어 빠르게 내달리는 진격보단의 품으로.

진격보단의 군병들은 무리를 지어 창날을 곧게 세운다.

마상의 무력은 대지에 발을 디딘 군병보다 우위에 있다.

그런 마상 무력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무리를 지어 함께 파상공세를 펼쳐야 한다.

“이야야!”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터지고, 그가 내지른 창날이 마상 군병에게 파고든다.

하지만, 마상 군병들은 진격보단의 군병들과 그 질적인 수준이 다르다.

“차앗!”

소리치며 진격보단 군병이 내지른 창날을 퉁겨낸 기마전단의 군병이 재차 창날을 휘돌린다.

서걱!

너무도 간단하게 떨어져 나가는 진격보단 군병의 수급.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수급 아래로 푸슈슈 핏물이 분수처럼 솟아난다.

마상 군병, 확 뿌려져 후두둑 갑옷을 적시는 상대 군병의 핏물이 뜨겁게 다가드나, 한가로이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다. 적의 창칼은 여전한 살기를 싣고 자신에게 파고들고 있으니.

뭐라 해도 기마전단의 핵심은 용장이다.

성검사급의 무력을 지닌 용장.

그런 용장들 둘에서 셋이 기마전단에 들어차 있다.

그리고 그에 대비해 진격보단을 지휘하는 이도 용장이다.

각국의 핵심 무력.

그것은 언제나 최전방에서 휘날린다.

사라국 상용장 강주호 역시 기마전단을 이끌고 상조국 진격보단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내력이 실린 창날은 상조국 진격보단 군병들을 마구 헤집으며 피를 뿌린다. 그에게 상조국 상용장 석진이 빠르게 달려든다.

강주호의 후미를 노리는 석진.

전장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다. 어떻게 죽이는가는 하등 상관없다. 죽이기만 하면,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다.

찌르르, 뒷골을 당기는 위기에 강주호는 재빨리 고삐를 틀어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꾸욱 쥔 창대를 뒤로 휘돌아 치니.

쾅!

창대와 창대가 부딪혔다고는 생각지 않은 충돌 음이 주변으로 번지고.

끼기긱 소리를 내며 엇갈린 창대가 부르르 떨어댄다.

상대의 눈매.

강주호는 그가 상조국 상용장 석진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차압!”

힘껏 창대를 밀어 석진에게서 거리를 만들어낸 강주호가 씨익 살기를 띄우며 석진의 얼굴로 창날을 쑤셔 넣는다. 그의 주요 목표가 알아서 와 주었으니.

상체를 틀며 창대를 휘돌리는 석진.

차장.

강주호의 창날을 퉁겨낸 석진의 입가에도 살기가 진득한 미소가 걸린다.

“죽어라!”

사납게 내지르는 창날에 그의 내력이 흥건히 실려 나아간다.

미미하게 울리는 창대, 그에 실린 거력.

감히 경시 못 한 강주호도 한껏 내력을 실어 마주 공격을 감행한다.

차장. 휘이잉. 창! 휘잉.

두 개의 창이 서로 살아서 움직이듯 대기를 거칠게 흐르며 주변을 아우른다.

강주호, 석진.

그 두 사람 주변으로는 감히 누구도 다가들지 못한다.

그만큼 두 사람이 뿜어내는 살기와 공세가 막강했기 때문이다.


일등장수가 탑승한 기갑전차는 방어막을 풀고 앞으로 전진 해 나간다.

말보다 느린 기동력 탓에 기마전단과 함께 진격하지 못하는 기갑전차.

하지만, 그들이 지닌 파괴력은 횡주포 다음으로 가공하다.

일등장수의 내력이 기갑전차 포문에 박힌 마황석으로 흘러간다.

우우웅 소리를 내며 빛을 발하는 포문.

푸슝.

적량의 내력이 마황석으로 증폭되더니 망설임 없이 터져나간다.

목표는 상대 진격보단의 후미 기마전단이 나아갈 방향, 이미 어지럽게 엉킨 양측 진격보단이 아닌 그 뒤쪽에서 이동 중인 적군의 머리 위다.

기갑전차는 이처럼 간헐적인 포격을 하며 적 최상부를 향해 돌진한다.

적 사령관과 그 주변의 군사력 파괴가 주목적이다.

물론 쉽지 않다.

적 역시 같은 부류의 기갑전차는 물론 살기를 한껏 띄운 검수단과 창기병들이 있으니.

진격보단을 뚫은 기마전단은 창기병의 창을 상대해야 한다. 물론 그 기마전단의 뒤는 검수단이 받쳐준다. 하지만, 그것은 적군 역시 마찬가지.

기갑전차는 꾸준히 앞으로 진격한다.

그런 그들 위로 양측의 횡주포가 다시 포문을 열어 하늘을 가른다.

전쟁은 점점 치열하고 잔혹해간다.


사라국 1황자 강황은 전장의 전체적인 면을 세밀히 살핀다.

“흠.”

마염국을 이어 두 번째로 성검사를 많이 보유한 군사 강국이 사라국이다.

강황 역시 성검사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그가 전장의 흐름을 보며 나직이 탄식하자 그 옆에 시립 한 염용장 지단이 말을 건넨다.

“상조국 전력의 5할 이상이 포진했다 하더니 쉽지가 않습니다.”

“후. 그렇군.”

“횡주포는 앞으로 두어 번 쓰고 나면 당분간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저쪽도 비슷해.”

“귀갑병(鬼鉀兵)을 쓸까요?”

“숙부께선 어떠신가?”

강황이 말하는 숙부는 기마전단을 이끄는 강주호를 말함이다.

“적 상용장 석진과 격돌하셨습니다.”

“흠. 석진이 쓰러지지 않으면 기마전단이 더는 앞으로 나가기 어렵겠군.”

“그렇습니다.”

“상조국 환요병은?”

“곧 드러나겠지요.”

“나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면?”

“강주호 상용장의 기마전단이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흠.”

“쓸까요?”

염용장 지단이 재차 묻자 강황이 턱을 한차례 쓰다듬더니 단호하게 말한다.

“호만추에게.”

“명 받듭니다!”

강황의 뜻을 헤아린 지단은 스르르 물러나 강황의 곁을 벗어났다.

어딘가에 있을 귀갑병의 수장에게 명을 전하러 움직인 것이다.

귀갑병은 사라국의 특화병이다.

침투와 암살, 파괴적 행위만을 위하여 조성된 군.

그들의 행적은 언제나 은밀하며 모습을 드러낸 후엔 이미 그들로 말미암아 피해를 본 뒤가 되고 마는.

그들이 상조국 1황자, 현 군세의 적 총사령관인 호만추를 노리고 움직인다. 적군의 머리를 베기 위함이다.

이어 강황은 검수단의 일부를 우회토록 명하고, 창기병을 적 진격보단을 향해 파고들 것을 명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호각과 깃발이 흔들리며 전장의 흐름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


상단주 배염을 따라 지하에 따로 마련된 방에 들어선 공승우 일행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얻어 허기를 달랬다.

용철과 용소, 용하는 게걸스럽게 순식간에 먹어치우더니 입맛을 다시며 절절한 눈빛을 보내 조금 더 얻어먹을 수 있었고, 공승우와 호약란, 장여련은 그저 조금만 먹었을 뿐이다.

호약란이야 식욕이 별로였고, 황적포에게 끌려왔다가 일행에 합류하게 된 장여련은 여전히 두려움에 몸이 굳어 있었다.

공승우 역시 이곳 음식과는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먹는 것이 시큰둥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저마다 움직여 방 여기저기에 퍼져 나갔다.

용철은 방 안을 이리저리 기웃거렸으며, 장여련은 용하 곁에 바짝 붙어 앉았고, 그런 장여련에게 용하와 어느새 다가든 용소는 재잘거리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풀고 있었다.

누구에게든 스스럼없이 다가드는 두 아이는 두려움에 떠는 장여련에게 위안이 되었고, 곧 세 사람은 두런두런 자기들끼리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호약란은 한쪽에 놓인 의자로 가서 입을 꾹 다물고 앉았을 뿐이며, 공승우는 그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바닥에 털썩 앉았다.

여전히 냉랭한 호약란의 태도에 그녀 곁에 가서 말을 건네기가 무안했던 탓이다.

그렇게 자리 잡고 앉은 공승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곳은 묘한 곳이다.’

자신이 아는 독고열이라면, 아니 그 같은 인물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문화, 경제, 군사적으로 자신이 살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마치 중세의 도시에 고대의 중국 문명이 섞여 있는 듯한.

한마디로 고층 건물과 많은 수의 차량, 편리하고 유용한 현대문명에서 한참이나 뒤처지는.

무기도 달랐다. 총포나 탱크, 전투기는 물론, 함정까지.

그러한 것이 아닌 원초적인 무기가 대부분이다.

다만, 그 무기들에 마황석이라는 기물이 섞여 있다는 것이 다를 뿐.

하여간, 지금까지 듣고 보아온 이곳의 세상은 달랐다.

“훗.”

가볍게 웃음을 흘린 공승우는 그런 생각들을 접었다.

이런 것들은 차차 겪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썬 몰라도 별 상관이 없고.

그것보다 지금은 자신의 몸 안에서 변화된 상황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문지르며 몸 안을 휘도는 빙기를 가만히 이끌었다.

피수슈.

하얀 입김처럼 손가락 위로 피어났다 사라지는 기운.

이전엔 없었으나, 호약란과 몸을 섞은 이후 자신의 품에 들어찬 기운.

그러나 차갑다는 느낌은 없었다.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다.

성질이 다른 것은 하나로 섞이기가 어려운 법이건만, 호약란에게서 이어진 빙기는 공승우 체내에 존재하던 기운과 너무도 잘 어우러졌다.

이에는 소천공의 공부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자연지기를 끌어 자신을 채우는 공부. 처음부터 소천공은 각기 다른 자연의 기운을 그 존재와 잘 어울리게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가만히 내부를 관조하던 공승우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긴다.

그에게 배염과 함께 있던 노인이 다가들었기 때문이다.

“자네들은 어디로 가는가?”

다가와 묻는 노인에게 공승우는 일시 갈등을 느꼈다.

호약란과 동행하고는 있지만, 아직 어디로 가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이 노인과 대화를 하려 한다면 그들의 언어가 아닌 심어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공승우를 보며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을 못하나?”

“…….”

“흠, 거참 아쉽군. 자네 정도 되는 인물이 말을 못하니 말일세.”

노인의 말에 공승우는 가만히 노인을 살폈다.

정도를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보았다는 말인데,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보았다면, 노인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방증이 되니.

하지만, 노인에게선 별 특이할 바가 없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만이 나이와는 다르게 깊고 맑다는 정도.

노인은 공승우가 자신을 살피는 바를 느꼈지만, 뭐라 책하지 않고,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나를 경계 하는 것인가?”

경계는 아니다.

“흠. 나는 한상준이라 하네. 그러니까 편하게 한노라고 부르면 되네. 배 염감탱이와 오랜 친구이지.”

대답 없는 공승우에게 노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래저래 돌아다니다가 친구라고 놀러 왔더니 여기로 데려오더군. 늘그막이 술이나 한잔하면서 지내려고 했더니 말일세. 헐헐.”

편하게 웃는 노인을 보던 공승우가 표정을 바로 하고는.

-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곳의 언어를 몰라서…….

심어를 건넸다.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음성에 노인의 깊은 눈동자가 빛을 발한다.

“호오!”

짧은 감탄사를 내고는 공승우를 이리저리 살피던 노인, 한상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자네 몸속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더니, 말도 특이하게 하는구먼!”

-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곳의 언어를 아직 익히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지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헐헐. 예의도 바르군. 저마다 사정이야 다른 법. 내가 이해하고 못하고 할 것이 무어 있겠는가. 그런데 방언이야 있지만, 대륙의 언어는 하나인데, 그것을 모른다면 자네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말이지만, 공승우는 노인의 말에 이채를 그렸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는데, 역시 반응이 달랐다. 게다가.

- 혹, 독고열이란 자를 알고 계십니까?

어쩌면 알지 모를까 대뜸 묻는 공승우.

“독고열? 글쎄? 그가 누군가?”

이 땅 외의 땅이 있다는 것을 알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독고열처럼 방법을 알거나 그를 알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 저를 이곳에 데려온 사람입니다.

“헐. 누군지 모르지만, 그놈도 난 놈이군. 다른 땅에서 사람을 데려오다니 말일세.”

고개를 주억거리는 한상준을 보며 공승우가 급히 묻는다.

-노인장께서는 혹 다른 땅으로 가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나?”

되묻는 한상준을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공승우.

한상준이 말한다.

“당연히 모르지.”

그의 말에 실망이 얼굴에 그려지는 공승우.

- 허면, 어찌?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이곳의 언어를 모른다고. 그러면 자네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사람이니,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의 사람인게지. 이 땅도 있는데, 다른 땅이라고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그야…….

말을 흘리는 공승우를 보며 미소를 그린 한상준이 다시 묻는다.

“그나저나 자네는 어떤 것을 익혔나? 내가 아는 것이 적지 않은데, 아니지. 다른 땅에서 왔으니 모를 수도 있겠구먼. 그러면 다른 거. 저 처자와는 어떤 관계인가?”

한상준의 나중 물음이 가리키는 처자는 호약란이다.

그가 공승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자 볼 듯 안 볼 듯 힐끔거리는 호약란.

한상준의 음성을 들었는지 호약란이 얼른 다른 곳을 본다.

차갑기만 한 그녀, 냉랭한 그녀로 급히 돌아가면서.

- 그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헐헐. 자네는 여러 가지로 재미있군. 참, 이름이 무언가?”

- 공승우라고 합니다.

“공승우? 성이 특이하군.”

- 아, 예. 뭐.


한상준이라 밝힌 노인과 공승우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힐끔거린 호약란의 속마음은 복잡했다.

겉으로는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공승우와 동행해 이곳까지 오면서도 그라는 존재가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남모르게 힐끗거리는 것이 자주요, 이상하리만치 찌르르 울리는 가슴 아림.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다가드는 그의 존재감.

세인들에게 사라국의 마녀라 불리던 자신이다.

차갑고 냉정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그런 자신의 마음속에 생겨난 이 이질적인 감정들 때문에 그녀는 남모르게 힘들어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오로지 무공에만 매달리게 된 그녀의 사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여간, 그런 차에 공승우가 한쪽에 털썩 앉더니 너무도 쉽게 빙기를 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잠깐 보였다가 사라진 것뿐이었지만, 호약란은 공승우가 만들어 낸 것이 빙기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담아와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이니 모를 수가 없다.

그에 바로 일어나 어떻게 네가 그걸 가진 것이냐고 따져 물으려는 찰나 한상준이란 노인이 공승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 멈칫한 것이다.

몸은 멈췄으나, 귀가 기운다.

노인과 그가 무슨 말을 나눌지 궁금하다.

눈은 앞을 보고 있으나, 온 신경은 공승우의 곁에 가 있다.

하지만, 노인의 음성만이 들리고 공승우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자신에게처럼 머리로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음이라.

그렇게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노인이 불현듯 자신을 보면서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노인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뭐라고 말한 거지?’

자신과 그는 어찌 되었든 몸을 섞은 사이이다. 그런 것을 말했을까?

‘그랬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심 뿌득 이를 가는 호약란.

그런 비밀스런 말을 했을까?

호약란도 공승우를 만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하지 않았겠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서운한 감정이 슬쩍 고개를 쳐들지?

퍼뜩 놀란 호약란.

‘뭐야? 설마, 말해주길 바라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벌떡!

몸을 일으킨 호약란이 살기마저 뿌리며 공승우와 한상준에게 걸어왔다.

뚜벅뚜벅.

그리고는 대뜸 말을 뱉어낸다.

“뭐라고 하는 거야?”

차갑던 얼굴이 약간 상기된 채 으르렁거린다.

호약란이 어찌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공승우가 음성을 건넨다.

- 별 특별한 말은 아닙니다.

그러자 호약란이 소리친다.

“그런데 왜 이 노인네가 재미있다고 하는 거야?”

- 예?

“뭐라고 떠들었어?”

커진 그녀의 음성 곁으로 헐헐 하는 웃음소리를 이은 음성이 들린다.

“한노라고 부르게.”

홱 고개를 돌리는 호약란.

그녀의 퍼런 서슬에 한상준이 짐짓 놀라는 척을 한다.

“어이쿠, 젊은 처자의 눈빛이 매섭구먼.”

그런 한상준에게 호약란의 음성이 이어진다.

“쓸데없는 관심을 두면 죽일 테다.”

살기 그득한 음성임에도 한상준의 입가는 웃음을 매단다.

“헐헐. 처자도 재미있구먼.”

재미있다고? 뭘?

확 솟구친 짜증에 호약란이 막 손을 쓰려는데, 그런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는 손이 있다.

피부로 전해져 오르는 찌르르함.

왜 지금 같은 순간에 이런 가슴 울림이 전해지는지.

그게 싫어 호약란은 자신을 잡은 공승우의 손길을 확 뿌리치며 공승우를 향해 재차 소리친다.

“뭐 하는 짓이야?!”

- 이러실 필요 없지 않나요.

“뭐가? 뭘?”

호약란의 발작과도 같은 음성을 들으며 공승우는 생각했다.

누가 보아도 호약란의 과민한 반응이 무엇 때문인지.

하지만, 모르겠다.

그녀가 손을 쓰는 것을 막기는 했는데, 그녀가 따져 물으니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혹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는 그녀에게 조심스럽다. 미안하고.

공승우가 별말이 없자 호약란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거둬진 손을 다시 들어 눈앞에서 자신을 빤히 보는 노인에게 다시 쳐들기도 그렇다.

“흥!”

결국, 몸을 홱 돌리는 호약란.

그러다 돌연 돌아서 한달음에 공승우 앞으로 다가들더니.

“말로 해! 그렇게 머릿속으로 웅얼거리지 말고!”

그리고는 다시 홱 돌아 자신이 있던 자리로 걸어가 털썩 앉아버린다.

괜히 입맛을 다시는 공승우.

그런 공승우를 보며 한상준이 기분 좋게 웃는다.

“헐헐헐. 좋을 때구먼.”

그런 한상준에게 뭐라 말하려다 마는 공승우.

호약란은 한상준을 한차례 째려보더니 또 홱 고개를 돌린다.

한쪽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던 용철이 낮게 중얼거린다.

“뭐 하는 짓들인지. 니미럴.”

물론 아주 작은 목소리, 곁에서도 잘 안 들리게끔 말이다.

그럼에도, 호약란이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노려보자 용철은 갑자기 부산스럽게 움직이더니 용하와 용소, 장여련에게 급히 다가가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앉는다.

“와하하. 그래서. 응? 그래서?”

과장된 웃음과 함께.


방안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냉기류.

그 중심에는 물론 호약란이 있고.

공승우는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말해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알고자 하는 바가 있으니.

앉은 그녀 앞으로 다가선 공승우. 최대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묻는다.

-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한상준이 묻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알아야 할 사항이다.

그의 물음에 호약란이 그를 쳐다본다.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다.

“누가 우리야?”

- 그쪽과 나 그리고 저들.

“왜?”

- 함께 간다고 했으니까요.

공승우의 말에 일시 말이 끊긴 호약란.

지금 느껴진 이질적인 감정. 그것이 또 싫다.

“그쪽이라니! 나도 이름 있어 약란! 호약란!”

말해놓고는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이 아니라는 듯 놀란 눈이 되어버린 호약란.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 이게 뭐야!’

어디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왜 묻지도 않은 이름을 말한 것이냐는 자책을 하는 호약란.

- 아, 약란 씨였군요. 이름이 예쁩니다.

이어지는 공승우의 음성에 호약란이 벌떡 일어나 공승우를 확 밀어버리고는 방을 나가버린다.

별안간 벌어진 일, 호약란이 나간 문을 바라보는 공승우.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그런 그에게 어느새 다가온 한상준이 어깨를 툭툭 치며 웃는다.

“헐헐. 자네들 너무 재밌구먼.”

- 영감님.

“헐헐. 그래, 그렇게 부르게. 헐헐.”

한상준은 매우 기분이 좋은지 헐헐거리며 방을 나섰다.

또 보자는 말을 남기면서.


방을 나선 한상준은 주변을 훑었다.

그가 찾고자 하는 사람은 호약란이었다.

그녀가 남긴 기운의 흐름을 살피던 한상준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배영준이 있는 곳.

호약란은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하겠지만, 배영준이 만류할 것이다.

하지만, 우려할 정도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상준은 생각했다. 호약란 그녀가 방금 보여준 모습에서 차가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바를 느꼈으니 말이다.

“헐헐.”

가볍게 웃은 그는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아닌 통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까칠해진 호약란을 애써 자극하는 대신 친구 배염을 보고자 말이다.

그녀를 상대하게 될 배영준은 곤혹스럽겠지만.

배염이 머무는 방은 공승우 등이 있던 방에서 나와 통로를 따라 쭉 이동해 세 번째 방이었다.

한상준은 인기척을 내지도 않고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서류를 살피던 배염이 한상준을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어떻던가?”

한상준이 씨익 웃으며 배염 앞에 놓인 의자로 걸어가 털썩 앉는다.

“어쩔 것 같나?”

그제야 서류뭉치에서 시선을 돌린 배염이 되묻는다.

“내가 묻지 않았나?”

장난 그만 치라는 듯한 말투이다.

“헐헐. 그는 태제륙의 인물이 아니더군.”

“그래?”

“음. 지닌바 기운이 물과도 같고, 얼음 같기도 해. 아마도 불처럼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상준의 말에 배염이 이채를 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어떤 기운이라도 다 가질 수 있는 자란 말인가?”

그에 한상준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허어!”

나직이 흘러나오는 배염의 탄식.

“그러면 그에게 이을 생각인가?”

진중한 음성으로 묻는 배염에게 한상준이 피식 웃고는 말한다.

“글쎄…….”

“글쎄가 뭔가! 자네 입으로 자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자네를 이을 후계를 찾아 태제륙 전체를 몇 년 동안이나 헤매고 다닌 것이 아닌가? 그렇게 지낸 시간 동안 찾지 못한 후계가 될만한 인재를 오늘 보았다고 좋아한 것도 자네 아닌가?”

“그랬지.”

“그런데?”

“그가 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뭘 그래선가.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이지.”

“흠.”

너무도 간단히 말하는 한상준의 태도에 배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배염. 지금 세인들은 그가 남주상단의 주인이라는 것만을 알지, 또 다른 신분이 있다는 바는 누구도 모르고 있다. 아니, 눈앞의 노인 한상준만을 빼고.

또한, 배염은 한상준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지인이다.

한상준이 누구라는 것이 세상이 알려지면 무척이나 시끄러워질 것이다.

하여간.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들은 어찌할 텐가? 이번 전쟁도 그렇고 이것저것 도를 넘으려는 기색이 역력한데.”

“뭐, 그들도 다 한마음은 아니니 아직 나설 필요가 없네. 게다가, 어디까지나 절대의 시점이 아닌 이상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모든 것을 바꾸지 그러나?”

배염의 말에 한상준의 눈빛이 더없이 진지해진다.

“안 그래도 그럴 것이네. 바뀌어야지! 세상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도 때가 있는 법이네. 억지로 하려 한다면, 그들과 우리뿐만 아니라 태제륙에서 숨을 쉬는 많은 이들이 휘말려 드네.”

“…….”

배염은 한상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말하는 그들 역시 세상에 드러난 자들은 아니지만, 이미 세상 깊숙한 곳에 들어선 이들이기 때문이다.

더 물어도 같은 말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 배염은 화제를 돌렸다.

“젊은 여인은.”

배염이 운을 떼자 한상준이 관심을 보인다.

“사람들이 사라국의 마녀라 불리는 여인일걸세.”

“그래?”

한상준이 약간 의아하다는 듯 묻자 배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 한상준이 말을 잇는다.

“범상치 않다고 느꼈더니 그런 내막이 있었군.”

“알아보니 그녀에게 죽은 자들은 다 죽을만한 자들이더군. 다만, 그녀의 행보가 잔혹하다 보니 사람들이 마녀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더군.”

배염의 말에 한상준이 그에는 더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묻는다.

“그건 그렇고. 상조국 1황자 호만추에게 전할 물건은 전했나? 그것 때문에 자네가 이곳에 온 것이지 않나?”

“전했네.”

“호. 역시 남주상단일세.”

한상준의 말에 피식 웃은 배염이 말을 잇는다.


@@@@@@@@@@


날이 상당히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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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53 로이엔탈
    작성일
    10.01.01 01:08
    No. 1

    잘 읽었습니다. 오랫만이네요. 감사.
    근데..왜 거의 마지막쯤에 갑자기 본문에 시커멓고 직사각형 모양의 색깔이 칠해진 게 위에 떠서 사라지지 않는군요. 덕분에 내용을 읽을 수가 없었네요. 나만 그런가?? 파폭 사용합니다만...ㅡㅡ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땅꾼
    작성일
    10.01.04 12:14
    No. 2

    건필 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풍물장터
    작성일
    10.01.09 09:31
    No. 3

    오랜만에 올리셧네요..
    저도 오랜만메 와서 잘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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