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연재수 :
112 회
조회수 :
656,336
추천수 :
1,156
글자수 :
1,206,384

작성
09.12.31 23:52
조회
2,631
추천
9
글자
41쪽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7

DUMMY

7.


“호만추는 그것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위용을 선보이게 될 걸세.”

“헐헐.”


§


상조국 1황자 호만추의 곁에는 그의 보좌관을 비롯하여 검수단 1개 단과 창기병 1개 군 만이 포진해 있다.

5개 단의 검수단 중 1개단, 10개 군의 창기병 중 1개 군 만이 호만추의 호위를 겸하고 있었지만, 호만추는 개의치 않았다.

푸른빛을 띤 갑옷과 투구. 남주상단주인 배염이 건네준 청마갑(靑魔鉀)과 청마투(靑魔套)란 이름을 지닌 물건을 몸에 두른 그이기에 적은 병력만을 주변에 배치한 것이다. 물론, 전장의 상황이 전면적 충돌이라 상대적으로 전력이 부족한 상조국으로써는 전력의 대부분을 쏟아 부어야만 되기도 했지만.

호만추를 보좌하는 이는 염용장 석호로 사라국 상용장 강주호와 격돌하는 석진의 동생이었다. 올해 42세의 나이인 그는 다소 초조한 눈빛으로 전장과 호만추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1황자님, 사라국 귀갑병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정녕, 이정도의 전력만으로도 괜찮겠습니까?”

1황자 호만추는 담담한 눈빛으로 석호를 바라봤다.

“물론, 괜찮다.”

“배염이 건네준 갑주가 특상의 마황석으로 만든 것이라지만, 보다 경계를 강화하시는 것이…….”

호만추가 석호의 말을 끊는다.

“자네가 걱정하는 바는 잘 아네. 하지만,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아. 지금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라국이 보유한 전력은 확실히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바를 잘 알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나 하나 때문에 전력을 빼내어 돌린다면, 균열이 발생할 것은 뻔한 일.”

“하지만.”

“배염이 말하지 않았던가. 능히 보여줄 것이라고. 내가 이 청마갑을 입어보니 그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

청마갑을 입고 청마투를 쓰는 순간, 그 갑주를 걸친 자의 지닌바 내력을 수배로 올려 주는 것뿐 아니라, 마황석을 함유한 무기에서 전해지는 공격 또한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다고 배염이 전했다.

이 청마갑에 함유된 마황석은 원산지인 진황국에서 조차 구하기 어려운 특상급의 것으로 성검사 급인 호만추의 무력을 월등하게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청마갑의 효능엔 바람의 기운과 벼락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으니 지닌바 내력을 운용하면 청마갑에 내제 된 그 기운들을 끌어 쓸 수도 있고 말이다.

“내가 아는 강황은 귀갑병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야. 그는 오랜 경험을 지닌 무장이니, 우세한 전력을 바탕으로 적의 머리를 쳐 보다 빠른 결과를 도출하려고 할 것일세.”

“그러하다면 더욱 위험한 것이지 않습니까?”

“위험은 하지. 하지만, 그렇기에 적의 의도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 강황은 내게 이 청마갑이 있다는 바를 모르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우리 기갑전차와 창기병은?”

호만추의 여유에 걱정이 깃든 석호, 그가 가볍게 숨을 고르고 말을 잇는다.

“기갑전차는 진격보단의 후미를 지원하며 적 후미에 포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창기병은 전격의 좌우로 돌아 적 기갑전차의 측면을 파고들고자 이동 중입니다. 다만, 적의 간섭이 심해 진격이 늦어지고는 있습니다.”

“흠. 예상한 바로군. 이대로 격돌을 지속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에 석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승리를 장담하기가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렇겠지.”

말하는 호만추는 여전히 여유롭다.

석호는 그런 호만추를 보며 무엇이 그를 저리 여유롭게 만드는지 의아함마저 들었다.

그런 그에게 옅게 미소를 그린 호만추가 말을 건넨다.

“보좌관.”

“예, 황자님.”

“배염이 내게 이 청마갑과 또 하나를 주었다네.”

“예?”

“후후. 곧 보게 될 걸세.”

“……예.”

호만추와 석호가 대화를 나누는 곳은 전장의 상황이 훤히 내다보이는 구릉이다.

호구평야가 방대한 평지임은 분명하지만, 곳곳에 이처럼 다른 지형보다 높은 지대가 존재한다. 해서, 상조국이나 사라국의 수뇌는 이러한 지형을 근거로 삼아 모든 전황을 지휘하는 중이었다.

그런 구릉을 둘러싼 상조국의 검수단과 창기병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어 각자 맡은 방향으로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1황자이자 현 군력의 총사령관인 호만추를 지켜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근방까지 접근해 든 적을 여전히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귀갑병(鬼鉀兵).

사라국의 특화병인 그들. 현재 이 전장에 속한 귀갑병의 수는 60명이다. 그들 모두가 적 상조국의 1황자 호만추를 제거하고자 그가 머무는 구릉으로 접근하는 중이다.

현재 이곳의 귀갑병을 이끄는 이는 정영이란 자로 용장 신분이 아닌 성검사로써 존재하는 자이다.

귀갑병을 이끄는 자를 귀수(鬼首)라 부르며 사라국의 귀수는 총 5인으로 정영은 그들 중 1인이다.

정영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린다.

그에 그 주변으로 은폐한 귀갑병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스륵.

가볍게 내려가는 정영의 손길을 따라 귀갑병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더디게 내려진 정영의 손이지만, 그에 반응해 귀갑병들의 움직임은 은밀하면서도 무척이나 빨랐다.

스스스슥.


잔뜩 긴장한 채 전방을 주시하는 상조국 검수단의 눈앞.

확 트인 평야이건만 불쑥 솟는 무언가가 바로 앞에서 나타날 때까지 검수단원은 그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다. 지금도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피부를 저미는 살기가 아니었다면, 무언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에는 사라국 귀갑병이 입은 갑주에 그 비밀이 이었다.

귀갑병의 갑주는 상급 마황석을 함유하여 그 특성이 모든 사물을 굴절시키는 바에 있었다.

주변의 풍경을 굴절시켜 그 본체의 모습을 숨기는 갑주.

해서 그들의 움직임은 귀신과도 같다 하여 귀갑병이라 명명된 것이다.

알고도 그 공격을 막기가 어려운 귀갑병.

“헉!”

검수단원은 깜짝 놀라 무기를 쥔 손에 힘을 가득 싣고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베려 하였다.

하지만, 처음의 놀람으로 그 반응이 늦어졌고, 귀갑병 일개인의 무력은 상조국 검수단원의 무력보다 상위에 있었다.

“커억!”

섬뜩한 감촉이 목 언저리로 전해지더니 미치도록 뜨거운 고통이 순식간에 온몸을 잠식해 든다.

손에 들렸던 검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손과 다른 손이 황급히 목으로 다가와 감싸지만, 분수처럼 솟구치는 붉은 핏물을 감당하지 못한다.

“끄르르.”

목과 입으로 피를 뿜던 검수단원의 신체가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쿵.

바닥에 등판을 대고 쓰러진 검수단원의 몸뚱이가 푸들거리는 시점.

사라국의 귀갑병들이 저마다 상조국 검수단원과 창기병을 무너뜨리고 빠르게 진격하기 시작한다.

“저, 적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지만, 그의 외침은 쏟아지는 비명에 묻혀 사그라질 뿐이다.

호만추를 호위코자 남은 검수단과 창기병의 수는 500명이 넘는다.

만 단위의 전력에 비하면 별것 아니겠지만, 단 한 사람을 호위하는 바로 치자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기실 1개 단씩의 검수단과 창기병의 수가 500까지는 아니지만, 석호의 명에 더 많은 인원이 배치된 것이다.

그런 것이 처음 한 번의 격돌에서 60이 넘는 수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수는 여전히 늘어만 가고.

갑작스러운 적습에 석호는 병기를 손에 쥐고 다급한 눈빛으로 호만추를 바라봤다.

“황자님!”

몸을 피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던 석호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몸을 일으키는 호만추를 보고는 일순 굳어진다.

“아니 됩니다!”

석호는 호만추의 의도를 간파하고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성검사급에 염용장인 자신의 눈으로도 적 귀갑병의 움직임을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은 호만추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바를 의미한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그가 전장으로 나서려 한다는 것을 석호는 막아야만 했다. 비록 호만추가 지시한 사항이 있다 해도 말이다.

그런 석호를 가만히 바라보는 호만추.

50이 넘은 그이지만, 지금 보이는 눈빛은 젊디젊은 용사의 눈빛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한 손에 들었던 투구, 청마투를 머리에 쓰는 호만추.

철컥.

소리가 들려오고는 투구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뚫린 눈 주변에서 순간적으로 푸른빛이 뻗어 나온다.

직후 호만추가 나직하나 단호하게 말한다.

“석 보좌관. 이 청마갑의 효능은 내가 이미 검증했네. 이번엔 자네가 한 번 보게나.”

“화, 황자님!”

석호는 호만추를 만류하고자 급한 마음에 그의 팔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석호의 손이 닿기도 전에 호만추의 신형은 활을 떠난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헛!”

놀라는 석호. 막 보여준 호만추의 움직임은 그가 이전에 알던 그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보다 몇 배나 빠른 움직임.

그리고 전해지는 박력과 압박감.

“…….”

석호가 일순 말을 잃고 전방을 주시하는 시점.

파죽지세로 검수단과 창기병을 쓰러뜨리며 진격하던 적 사라국 귀갑병 속으로 파고든 호만추의 손길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휘릉거리는 손길에 따라 풍압이 일고 내려치는 공세에 속을 태우는 벼락이 깃든다.

사물을 굴절시키는 귀갑병의 갑옷이라지만, 직격되는 풍압과 벼락의 기운에서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크악!”

그동안 상대의 입에서만 쏟아지던 비명이 귀갑병 그들에게서도 쏟아지기 시작한다.

퍼걱. 퍼석. 콰릉.

호만추의 손길에 따라 눈만이 번뜩이던 귀갑병들이 바닥으로 널브러지고 그들의 내력을 바탕으로 작동하던 갑옷의 효능이 다해 본신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호만추의 손길에 즉사치 않은 귀갑병이라고 할지라도 내력의 운용이 끊기자 갑옷을 걸친 모습을 드러냈고, 짧은 동안 심하게 당하며 쩔쩔맸던 검수단과 창기병의 무기가 그들을 향해 흉포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거칠 것 없이 나아가던 정영의 눈동자가 한껏 치떠진다.

호만추가 성검사급의 인물임은 잘 아는 사항. 하지만, 자신과 귀갑병들의 합공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의 목을 벨 것이라 확신했었다.

정영 역시 성검사급의 능력을 지닌 존재.

그가 놀랄 정도로 호만추의 공세는 파괴적이었으니.

‘어떻게?’

게다가 놀라운 것은 호만추가 너무도 수월하게 자신들을 집어낸다는 것이다.

분명히 눈으로는 찾기 어려운 바는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존재를 콕 짚어내어 주살한다는 것은.

‘지금은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정영은 부푸는 의문을 애써 지우며 호만추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그가 손수 나서주었으니 목적을 이룰 시간은 줄은 셈이지 않은가.

그와 맞춰 다른 귀갑병들 역시 호만추를 향해 움직인다.

고조되는 긴장감.

이곳에서 정영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한 것처럼, 전장의 중심에서 창날을 거세게 휘두르던 사라국 상용장 강주호에게도 이변이 일어났다.

그와 격돌한 상조국 상용장 석진은 연방 수세에 몰려 있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곧 바닥에 쓰러질 듯 보였기에 강주호는 더욱 힘을 내어 석호를 몰아붙였다.

석진의 창날과 충돌한 강주호의 창이 석진의 창대를 밀어내고 허공을 선회하여 재차 내리 찍히려는 찰나. 어디선가 다가든 압력에 그는 급히 창을 회수했다.

쩡.

“음.”

회수해 휘두른 창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이 작지 않다.

‘누구냐?’

급히 시선을 돌려 자신을 공격한 자를 노려보니 옅은 푸른빛을 띤 갑주와 투구를 쓴 자가 석호를 지나쳐 재차 자신을 공격해 든다.

적의 손에 들린 창대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

전해지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아무리 낮게 잡는다 해도 성검사 기용장급 이상이다.

‘어디서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자들이다.

이렇듯 갑자기 모습을 드러낼 리는 없으니 처음부터 전장에 섞여 있었을 것이다.

흠칫.

강주호는 전방의 적을 노려보다 후면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살짝 떨었다.

‘뒤에도?!’

하나가 아니다. 둘이다. 아니 그만한 기세를 지닌 자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

“차앗!”

앞으로 성큼 나서 전면의 적에게 창을 휘두른 강주호가 퉁기듯 물러서는 적을 따라붙으며 주변을 빠르게 훑는다.

그동안 전력의 우세를 보이던 자신의 기마전단에 균열이 이는 것이 보인다. 그때.

휘릉.

뒤에서 전해지는 압박에 급히 창을 돌려막은 강주호.

쩡!

‘음.’

역시 보통이 아니다.

재차 창을 휘둘러 공세를 물린 강주호.

얼핏 보기에는 전세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그의 눈에 비친 전황이 그러했지만, 왜인지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이것들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적 상위의 무력.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균열은 곳 여기저기로 퍼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리되면 전황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자신에게 공격해 드는 적들이 기마전단과 진격보단 속에서 살상을 시작하면, 적의 전력이 편승하여 거세게 밀어붙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전력은 무너지는 것이 겹칠 것이고, 결국 이번 전투에서 질 수도 있다.

막아야 한다.

“으라핫!”

강주호의 입에서 거친 기합이 터져나간다.


전황을 주시하던 사라국 1황자 강황의 눈동자가 커진다.

강주호가 느낀 것처럼 전황의 변동을 그도 느낀 것이다.

예상한 것처럼 상조국의 환요병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강주호와 그의 기마전단을 공격해 들었다.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이 보이는 힘이 생각지 못한 우위에 있다.

“지단!”

곁에서 강황을 보좌하는 염용장 지단이 급히 다가든다.

“검수단과 창기병을 중앙으로!”

“예!”

그도 보았기에 강황의 뜻을 바로 알았다.

전황의 중심에서 이는 균열을 막아야 한다는 바를.

지단의 지시에 격렬한 충돌이 이는 중심으로 사라국의 검수단과 창기병이 우르르 쏟아지듯 파고든다.

그러자 상조국의 진형에도 변형이 인다.

상조국은 전황의 중심으로 병력을 증감하는 대신 우회하던 속도를 높여 빠르게 중심을 벗어난다.

그들의 일차 목표는 후미의 기갑전차이다.

적 기갑전차 대열이 무너지면 아군 기갑전차의 진격속도와 공격력이 집중된다.

“지단, 방패군과 연노병을 돌려 우회하는 적을 치도록!”

“예!”

다시 지단의 지시가 떨어지고 기갑전차와 맞춰 진격하던 방패군과 연노병의 대열이 바뀌어 측면으로 돌아선다.

그들의 손에서 떠난 화살이 우회하는 상조국 전력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다.


사라국 귀갑병을 상대로 엄청난 무력을 보이는 호만추를 일견한 석호가 눈을 빛낸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호만추가 자신에게 했던 지시가 어딘지 불안하다고 여겼던 그였건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호만추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확연히 느껴진다.

“좋아!”

주먹을 꾹 쥔 석호가 기갑전차와 자신들의 연노병에게 지시를 내린다.

곧 그들의 포문과 연노에서 퓨웅, 퓨푸푸푸 소리를 내며 응집된 내력의 덩어리와 화살들이 적 연노병이 자리한 곳으로 쏟아져 내린다.

석호의 눈이 호만추를 찾는다.

호만추는 여전한 무력으로 적 귀갑병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그에게 공격해 든 적 귀갑병. 눈으로 일일이 확인이 어렵지만 거세 파도와 같음은 느껴진다. 그럼에도, 호만추는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매섭고 사납게 움직인다.

호만추의 호위를 위한 검수단과 창기병 곳곳에서 일던 무너짐은 어느새 멈춰 있다.

호만추 주위로 이는 격돌의 폭도 조금씩 작아진다.

호만추의 움직임이 멈추면 그가 지시한 바대로 아군의 기마전단과 진격보단을 일시에 뒤로 물린다.

그와 동시에 기갑전차와 연노병의 무력을 중앙으로 집중하고 측면으로 우회했던 창기병들을 돌려 합공을 실시한다.

뒤로 물렸던 기마전단이 말머리를 돌리고, 진격보단의 전력이 몸을 돌려 총 공세를 펼친다.

중앙을 무너뜨리고 환요병과 다른 전력들의 진격 속도를 높여 적 수뇌부를 급습한다.

다만, 적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으니 공격의 어우러지는 시간이 최대의 난제이다.

호만추가 얼마만큼 빠르게 사라국 귀갑병들을 무력화시키느냐에 따라 상조국이 펼치는 진형의 이득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대치 이상이다.

“좋아, 좋아!”

석호는 곧 벌어질 전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연방 호기롭게 외쳤다.


전장은 더욱 치열해지고, 평야에 누워가는 전사들의 수는 자꾸만 늘어간다.

평야를 진득하게 적시는 붉은 핏물과 대기를 울려 퍼지는 거친 충돌음, 비명과 고함이 섞여 그 구분이 모호해지고, 들불처럼 뜨겁고 빠르게 번지는 전사들의 열기가 생과 사를 넘어 광폭하게 휘돈다.

“차앗!”

자신이 지닌 무기에 온 힘을 실어 적을 베고, 사방에서 질러 드는 공격에 몸 곳곳이 난자된다.

하나를 죽이면 다른 하나가 눈에 들어차고, 자신이 죽인 자의 뒤에 자신을 죽일 자가 달려든다.

사라국과 상조국 양측 모두 일만이 넘는 병력이 평야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횡주포를 운용하던 력사 호장수들도 주포에서 벗어나 손에 무기를 쥐고 전장으로 파고든다.

거칠게 밀려드는 파도처럼 전장 곳곳에 파장이 번지고, 사력을 다해 휘두르는 병장기에 육신이 뎅겅뎅겅 잘려나간다.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는 오로지 죽이려는 마음만이 내비치고,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사고가 끊길 때까지 멈추려 들지 않는다.

넓게 번지는 비릿함, 저마다 뿜어내는 광기와 열기가 정점으로 치달아 오른다.


시간이 흘렀다.

한껏 고조되었던 치열함의 시간.

그리고 지금은 그 치열함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상조국 1황자 호만추. 무(武)에 극에 다다른 것처럼 거칠 것 없이 전장을 누비고 다니고, 인상을 잔뜩 찡그린 사라국 1황자 강황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뿌드득.

이가 갈리고 사지가 떨린다.

그런 강황에게 지단의 조심스런 음성이 전해진다.

“황자님…….”

꽈득 더욱 강하게 쥐어진 강황의 주먹. 지단의 입이 닫힌다.

“전력을 뒤로 물리도록.”

하고 싶지 않은 명령을 내리는 강황.

기울기 시작한 전세를 뒤집을 방도가 지금은 없다.

호만추를 죽이고자 움직였던 귀갑병은 막대한 피해를 당한 채 물러난 지 오래다. 그들에겐 임무도 중하지만, 그들이 걸친 갑주 역시 중하다.

사물을 굴절시키는 갑주가 적의 손에 들어가 역으로 이용되는 것은 막기도 해야겠지만, 그 가치가 상당하여 손실을 더는 늘일 수 없다. 게다가 귀갑병 하나를 양성하고자 들어가는 수고는 일반 전사들에 비해 월등히 많이 든다.

귀갑병, 60이나 되는 수에서 이미 반수 이상이 호만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끈적이는 핏빛 평야로 스러졌다. 그런 호만추에게 진득한 살기로 공격해 든 귀수 정영 역시 상처를 입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재로썬 귀갑병은 호만추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뒤로 물렸다. 아무 이득이 없으니.

이미 죽어 평야에 몸을 눕힌 귀갑병들의 갑주는 잠시 후 자체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후퇴하는 귀갑병들이 손을 썼다. 그 와중에 몇의 귀갑병이 더 희생되었지만, 그들 역시 폭발해 사라질 것이다.

귀갑병이 물러나자 호만추는 전장의 중심으로 돌진했다.

호만추에게 전해진 청마갑, 그에 비해 성능은 떨어지지만, 내력증폭과 바람의 속성을 지닌 청마부갑(靑魔副鉀)과 청마부투(靑魔副套). 그것들을 걸친 환요병들.

전장의 흐름은 급변하기 시작했고, 지금 사라국 1황자 강황은 후퇴를 결정했다.

살아남은 사라국의 전력은 사라국 최남단의 성인 자공성(紫珙城)으로 이동할 것이다.

교두보로 사용할 목적이었던 자공성이 이제는 방어진으로 수성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지만.

자공성은 성벽 외성이 자공이란 돌로 만들어진 성으로 호구평야에서 1만 2천단 떨어진 거리에 존재하는 성이다. 자공은 자주 빛을 내는 돌로 일반 돌보다 그 강도가 우수하지만, 비용 면에서 배는 들기에 어지간한 성에는 축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나 자공성의 지리적 특성과 그 효용을 생각하여 다소 무리하여 지어진 것이다.

해서 강황은 자공성에 들어가 다음 진격을 준비할 속셈이다.

상조국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지만, 자공성은 그들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


사라국과 상조국의 접경지대인 정주 호구평야에서 두 나라 간의 치열한 전쟁이 치러지는 시점. 진황국으로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들었다.

아니, 진황국 처지에서 보면 그는 손님이 아니라 죽여도 시원치 않을 철천지원수이다.

하지만, 그런 원수를 눈앞에 두고 진황국 누구도 감히 나서지는 못한다.

찾아든 이가 절대의 성검사라 칭해지는 마염국 전대군황인 우길청이니 말이다.

유세하와 우석 간의 일로 진황국에서 마염국으로 사신단을 급히 파견했다.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이니 마염국의 의도는 알 수가 없다.

그렇건만 전대 군황 우길청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진황국 군황부에 질식할 듯한 긴장감을 몰아왔다.

진황국 군황 철기광과 황자 철기손은 여러 용장과 신하들을 대동해 나황성 입구까지 나와 우길청을 직접 맞아들였다. 어쩔 수 없이.

“전대 군황을 뵈옵니다.”

패전국, 현재로서는 속국이나 다름없는 진황국이니 예를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강녕하신가.”

매부리코 위에 각각 크기가 다른 우길청의 눈동자가 묘하게 일렁이는 빛을 발한다.

그도 한 나라의 군황을 대함에 예를 보이기는 하지만, 저 아래로 보는 바는 누구도 느낄 수 있음이다. 그런 우길청의 눈동자가 발하는 빛은 조소와 책망, 멸시가 담겨 있다.

“내 손자 녀석이 이번에 신세를 졌다고 하더군.”

우길청의 말에 철기광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듯 직접적으로 드러낼 줄이야.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한 줄기 땀방울이 이마에서 솟는 철기광.

곁에 서 있는 철기손의 주먹이 꽈득 쥐어지며 극한의 긴장이 흐른다.

그런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우길청이 ‘훗.’ 소리를 내며 웃고는 말을 잇는다.

“그렇게 긴장들 하지 말게. 철없는 손자 녀석이 이번에 매운맛을 보았으니 좀 나아지지 않겠나. 내 이번에 진황국에 들린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닐세.”

그에 철기광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시다면?”

우길청이 답한다.

“우석이 비록 특급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성검사들 중 상위의 실력을 지닌 바는 철 군황께서도 아실 것이네.”

그에 철기광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우길청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 우석을 가볍게 제압했다고 들었네. 관심이 일더란 말이지.”

그에 철기광은 다소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그렸지만, 철기손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건만…….’

자신이 이곳으로 데려온 유세하는 원코자 하는 바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그 하나만의 무력은 분명히 월등하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눈앞의 우길청은 절대의 능력을 지녔다. 대륙에서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자는 아직 전무하다.

우길청이 지금 말한 바로 보아 그는 유세하와 충돌을 만들 것이다.

분명히 그럴 작정으로 왔다.

우길청과 유세하가 부딪혀 유세하가 이기든 지든 아직은 안 된다.

이기면, 우석과 벌어졌던 충돌 정도는 일도 아닐 만큼 커다란 사안이 되어 마염국과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진다면, 자신이 오랜 시간 들여왔던 노력이 채 피기도 전에 사그라질 수도 있다.

유세하가 폐인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철기손은 서둘러 나섰다.

“전대 군황께선 우선 안으로 드셔서…….”

그와 유세하와의 충돌을 어떻게 해서든 막을 생각으로 우길청을 유도하려던 철기손은 갑자기 뻗어 나오는 숨 막히는 살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후후.”

가볍게 미소를 그리고는 있으나, 우길청의 전신에서는 막대한 기파가 줄기줄기 뻗어나가고 있다.

“아닐세. 여기서 그를 보도록 하지.”

단호한 우길청의 음성.

우길청은 우석과 충돌을 일으킨 자를 이곳에서 응징할 셈이다.

나황성의 입구, 수많은 진황국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전 패전국으로서 철기광이 우길청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처럼 그들에게 좌절을 주고자 말이다.


방에서 가만히 명상을 하던 유세하는 전신을 압박하는 강렬함에 두 눈을 번쩍 떴다.

“호!”

이전의 세상에서도 쉽게 느껴보지 못한 강렬함이다.

자신이 맞수로 여긴 공승우에게서 느꼈던 바보다도 오히려 그 존재감이 크고 거세다.

“철기손, 그자의 말처럼 이곳엔 내가 원하던 것들도 있군.”

스륵 몸을 일으키는 유세하.

터벅터벅 발길을 옮겨 나황성의 성문, 광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기파를 쏘아내던 우길청의 얼굴에 이채가 떠오른다.

자신이 쏘아낸 기파에 주변 모두가 얼굴색이 변할 정도로 답답해한다.

그런데 기파의 일부가 반탄력에 퉁겨지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보통은 아니라는 건가.’

피식. 한쪽 입술이 말려 올라간다.

우길청의 신분은 마염국의 전대 군황.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적령기(赤靈氣)를 이은 팔룡선무회의 여덟 수장 중 1인.

대륙에서 월등히 강한 자 중 하나이다.

비록 생각 이상이기는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우길청의 얼굴에는 처음과 같은 여유만이 감돌 뿐이다.


유세하는 양소전을 나와 내성인 나황궁을 벗어났다.

넓게 트인 길을 따라 저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모인 곳이 보인다.

여러 인물 중 눈에 띄는 철기손과 철기광. 그리고 노인 한 사람.

유세하의 시선은 노인에게 고정됐다.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 온몸의 피가 거칠게 뛰는 것이 느껴진다.

긴장감과 기대의 흥분이 끓어오른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급하지 않았다.

일정한 속도로 저벅저벅 나아갈 뿐.

다가드는 유세하를 바라보는 우길청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저자인가 보군.”

나직한 그의 음성에 철기손의 가슴이 내려앉는다.

이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우길청이 마음먹고 자신이 준비하는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은 채 본신 그대로인 유세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 벌어질 두 사람 간의 충돌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그저 우길청의 손에 유세하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 철기손의 귀로 우길청의 음성이 들린다.

“자네들은 잠시 물러나 주시겠나?”

물러서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말투, 형식적인 그의 말에 사람들이 분분히 우길청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철기손도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몸을 빼낸다.

오랜 시간 들인 공이 무너질 위기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금은 없다. 그리고 아직 공승우라는 존재가 이곳 태제륙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나마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우길청은 그 자리에 서서 유세하가 다가들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 어른 열 걸음 정도 거리에서 우뚝 마주 선 유세하와 우길청.

“자네로군.”

간단한 우길청의 음성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다.

손자인 우석에게 상처를 입힌 죽어 마땅한 놈.

감히 내게 굴하지 않는 시건방진 놈.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하는 호기심.

뻐근한 육신에 활력을 넣어줄 대상 등등.

그런 우길청의 음성에 유세하가 비릿하게 웃는다.

“훗. 쥐새끼처럼 생겼군.”

유세하의 음성이 흐른 순간 장내에 싸한 냉기가 퍼진다.

어느 누가 감히 절대의 성검사로 칭하는 우길청을 향해 이처럼 막말을 할 수 있을까.

우길청의 성정이 그다지 정대하지 않다는 바를 아는 철기손은 고개를 돌려 외면까지 하고 만다.

“후후. 예가 많이 부족한 자로세.”

웃기는 하지만, 우길청의 두 눈에 살기가 감돈다.

“호감은 가지만, 그런 버르장머리는…….”

전대 군황이란 신분에 노기를 누르며 한마디쯤 더 해주려던 우길청.

그런 그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유세하가 득달같이 공격해 들었으니 말이다.

용형보(龍形步). 용이 거대한 기파를 품고 장대하게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듯 움직인다 하여 붙여진 보법.

용형보를 풀어낸 유세하, 두 사람 간의 어른 열 걸음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충분히 좁힐 수 있는 거리.

이어진 섬전수(閃電手). 번쩍하고 땅으로 내리꽂히는 전격처럼 쾌속하고 강렬한 공세.

“!”

우길청의 두 눈에 언뜻 놀람이 스친다.

애송이라고 판단한 자의 움직임이 예상을 벗어난 것보다도 그가 펼치는 공세가 어딘지 팔룡과 겹쳐져서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팔종령기 중 적령기(赤靈氣)를 지닌 우길청. 그 성취는 마음이 일기도 전에 발하는 절대의 경지.

그중 붉은 용이 핏물을 흘리며 나아가는 듯하다 하여 적룡혈보(赤龍血步)라 칭해진 절기가 스르륵 풀어진다.

스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중앙에 유세하가 질러낸 손이 있다.

기습을 가했건만 유세하의 거센 공격은 허공을 쳤을 뿐, 득은 없었다.

그래도 유세하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듯.

허공을 맴돌던 손을 돌려 한점으로 향한 유세하의 손끝에서 건천일지공(乾天一指功)이 뿜어져 나갔다.

핑.

작은 소리만이 주변으로 없는 듯 번지며 피처럼 붉은 기운을 스멀스멀 뿌리기 시작하는 우길청이 선 자리로 매섭게 파고들었다.

가공할 연환공격.

고개를 돌려 외면했던 철기손의 시선은 어느새 두 사람의 격돌에 박혀 든다.

“제법!”

허나, 유세하의 공격은 여전히 우길청의 옷깃도 스치지 못한다.

게다가 발을 놀려 슬쩍슬쩍 피하기만 하던 우길청이 손을 불쑥 내미니.

적령혈장(赤靈血掌). 온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듯 화악 번지는 기운이 유세하를 덮어버린다. 하지만.

꽈드득. 무언가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우길청이 뿜어낸 장력이 벌어지며 이마에 핏대가 선 유세하가 튀어나온다.

후왕!

이어 내질러진 유세하의 주먹이 우길청의 안면에 다가든다.

휘릭 오른손을 돌려 주먹을 걷어낸 우길청. 이어 왼손 주먹을 말아 쥐어 유세하의 측면에 꽂으니 유세하가 급히 물러섰다가 빙그르르 돌면서 오른 발뒤축을 차나온다.

우길청이 휘청 뒤로 몸을 젖혀 발뒤축을 흘리니 어느새 돌아온 유세하의 왼 발등이 얼굴 위에서 아래로 꽂혀 든다.

쾅!

우길청의 팔뚝이 유세하의 발등을 밀어낸다.

굳어진 우길청의 눈빛.

이건 생각 이상 정도가 아니다.

자신처럼 팔룡의 수장급은 미치지 못하지만, 팔룡선무회에서도 상위 무력임은 분명하다.

‘어디서 이런 놈이?’

자신의 적령기 오 할 이상은 내보여야 할 듯하다.

“괘씸한!”

일갈을 내지른 우길청의 기도가 일변한다.

스멀거리던 붉은 기운이 일시에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그 여파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들 중 눈과 귀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자가 생겨난다.

철기손은 급히 철기광을 보호하며 소리친다.

“물러나라! 빨리!”

그의 음성에 급급히 몸을 빼내는 사람들.

삽시간에 나황성 성문 주변의 넓은 공간에 우길청과 유세하만 남는다.

몇몇 쓰러진 이들은 어쩔 수 없다.

주변이 어떻게 달라지든 상관없는 두 사람.

우길청의 공세가 이어진다.

급격히 거리를 좁힌 우길청의 손길이 유세하의 전신을 압박해 든다.

적령기의 기운을 실어 일수에 수십 번의 타격을 퍼붓는 적령수타(赤靈手打)가 풀어지고 유세하는 선운비뢰장(仙雲飛雷掌)을 풀어 우길청의 공세에 대응한다.

콰과과광!

손과 손이 부딪히건만 폭탄이 터지듯 주변으로 충격파가 번져간다.

대기가 심하게 일렁이고 성문 주변 바닥이 뒤집힌다.

슈와악. 쾅!

“윽!”

짧은 신음이 흐르고 한 사람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난다.

스윽 입가의 핏기를 닦아내는 유세하.

그의 눈동자가 뜨겁게 타오른다.

이글거리며 피어나는 투기.

선운비뢰장을 뚫고 유세하의 가슴을 친 적령수타.

그 여파가 전신으로 휘돌았지만, 유세하는 더욱 나서며 우길청을 공격해 든다.

표표히 그리고 빠르게 우길청에게 파고드는 유세하. 옛 곤륜의 절기이자 대표했던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을 풀어내며 건천일지공(乾天一指功)을 쉼 없이 퍼부으며 계속 전진한다.

손을 휘돌려 건천일지공을 밀어내며 한 차례 적령혈장(赤靈血掌)을 뿜어내고는 몸을 꼬아 혈장을 빗겨내고 다가든 유세하의 정수리에 적령각산(赤靈脚刪)을 찍어내는 우길청.

콰앙!

격한 충돌음이 터지고 빠르게 다가 든 유세하의 신형이 재차 뒤로 주르르륵 밀려지고 만다.

우길청의 눈매가 사나워진다.

이만큼이나 공격했건만 유세하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덤벼드니 노기가 치솟는 것이다.

그가 먼저 유세하에게 파고든다.

이 한 수에 끝을 내겠다는 듯 그 위세가 어마어마하다.

반 정도만 끌어냈던 적령기를 증폭해 풀어내는 우길청.

곁에서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 압박감이 거대하다.

유세하가 지금껏 상대하기도 벅찼던 우길청이다. 그런 그의 내력이 더욱 가해지니 유세하로써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꽈득. 두 주먹을 움켜쥔 유세하.

우길청과 격돌하니 그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임은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빙살강기에 당해 자신을 관조할 수 있었던 유세하.

그는 분명히 이전보다 강한 힘을 손에 쥐었다.

곤륜의 무(武)를 이었지만, 흡정마공(吸精魔功)을 기초로 내력을 쌓았던 그이다. 하지만, 바탕은 분명한 곤륜의 무이다.

곤륜의 상청무상신공(上淸無上神功). 그 거대한 공부가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다 지닌바 내력의 극을 보여야만 풀어낼 수 있는 태청신권(太淸神拳)이 함께 드러난다. 한 주먹에 산을 허물 수 있다고 전해지던 무력이다.

하지만, 우길청이 먼저 풀어낸 적룡권만첨(赤龍拳卍詹) 역시 적령기를 극으로 운용한 절기.

이처럼 절기와 절기가 부딪히면 무공의 이치와 지닌바 내력에 의해 그 승패가 갈리기 마련.

푸아앙!

두 사람의 내기가 충돌하며 주변으로 거대한 압력이 폭풍처럼 번져나간다.

뒤집힌 바닥의 돌들이 휙휙 날아 뒹굴고, 멀찍이 떨어졌던 사람들이 태풍에 밀린 조각배처럼 휘말린다.

성곽의 한쪽이 압력에 밀려 움푹 으깨지더니 그 끝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던 진황국의 성기인 은조기(銀鳥旗)가 뚝 부러져 해자 쪽으로 곤두박질 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충격파는 나황성의 성문까지 밀어버리더니 이내 성벽 한쪽과 함께 와르르 박살을 내고 만다.

돌가루들이 휘날리며 뿌연 막이 온통 뒤집고,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한데 어우러진다.

그렇게 격한 일렁임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자리.

우길청이 서 있는 자리에서 휘앙 광풍이 몰아치더니 주변의 뿌연 연기 막을 일시에 몰아내 버린다.

우뚝 서 있는 우길청.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유세하.

꿈틀꿈틀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며 울컥 핏물을 게워내는 유세하를 보니 그 상태가 과히 좋지 않아 보인다.

우길청은 그런 유세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호흡을 가다듬는다.

“후우-.”

깊게 가라앉은 우길청의 눈동자.

처음엔 자신의 손자를 농락한 놈을 평생 기어 다니게 할 심산으로 찾아왔다가, 충돌이 이는 와중 죽여겠다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소 과하게 손을 썼다.

그런데 꿈틀거리면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유세하를 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

‘저놈을 이용하면.’

자신이 계획한 일. 아들인 우마염이나 손자들은 솔직히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유세하를 겪었다.

무력은 기대 이상. 심성은 자신의 뜻을 따를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건 상관없다. 직접 다루지 않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상태가 나아지면 자신을 찾아와 오늘처럼 또 덤벼들지도 모른다.

‘기꺼이.’

받아준다. 그때도 또 지금처럼 유세하를 바닥에 눕히는 것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슬쩍 뒤로 물러서 유세하로 하여금 자신이 바라는 태제륙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스멀거린다.

“훗.”

가볍지만 만족스러운 웃음. 결정된 것이다.

유세하를 죽이는 것을 미루기로.

우길청은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엉망으로 변해버린 나황성의 앞마당.

굳건히 자리했던 성문이며 성벽들이 흉물스럽게 무너져 있다.

이 정도 경고면 충분하리라.

바동거리는 유세하를 버려둔 채 저 앞에 쓰러져 기침을 해대는 철기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기묘한 정적 사이로 우길청의 뚜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만이 감돈다.

그리고.

“철 군황께 폐를 끼쳤군.”

그 말 한마디뿐이다.

철기광은 좋지 않은 안색으로 겨우 대답한다.

“괘, 괘념치 마시기를…….”

당장 달려들어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에 가볍게 미소를 그린 우길청이 몸을 돌린다.

조금씩 철기광에서 멀어지던 우길청.

어느 순간 훅 하고 꺼지듯 사라지고 만다.

우길청이 사라지고 그때까지도 그를 노려보던 유세하가 풀썩 쓰러진다.

철기광 곁을 지키던 철기손이 급히 뛰어가 유세하를 살피고는 소리 지른다.

“서둘러 상의관(上醫官)을 불러와라!”

상의관은 성내 최고 의원을 말한다.

그만큼 유세하의 상세가 심각한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마염국으로 향했던 사신단이 돌아왔다.

마염국 사자와 함께.

마염국은 우석의 일을 빌미로 진황국 군황부에 자신들의 사신을 파견하여 견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시 우석의 일과 같이 마염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일을 사전에 막겠다는 뜻이라 했지만, 이는 명백한 간접 통치를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사사건건 간섭할 것이며, 마염국에 이득이 되지 않은 일은 어떤 식의로든 뒤틀어 버리려 할 것이다.

진황국 군황 철기광의 근심이 또 하나 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철기손은 그런 철기광에게 조만간 이런 상황을 벗어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우길청과의 격돌로 정신을 잃었던 유세하가 깨어나 철기손을 보며 한 한마디의 말로 말미암아서 말이다.

“철기손. 힘이 필요하다!”

유세하의 말에 철기손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유세하가 힘을 요구했다. 그에는 철기손이 요구하는바 역시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


상조국과 사라국의 전쟁의 여파가 정주를 비켜가자 공승우 등은 남주상단의 정주지점을 나섰다.

호약란과 용철 등 모두와 함께 다시 길을 나선 것이다.

다만, 일행이 하나 더 늘었다.

남주상단주의 벗이라고 밝혔던 노인 한상준이 그이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배염과 배영준.

이번 전쟁이 비켜가고 사람들 사이에선 안도와 함께 수군거림이 인다. 결과를 놓고 본다면 모두 이변이라 떠든다. 배영준의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공승우 일행이 저만치 가자 배염이 몸을 돌린다.

그에게 배영준은 묻는다.

“아버님께서는 혹 상황이 이리될 것을 예상하셨습니까?”

“후후.”

가볍게 미소 짓는 배염의 표정에서 듣지 않아도 배영준은 답을 받았다.

‘그랬군!’

이제야 배영준은 배염이 정주 상인들을 거둔 이유를 깨달았다.

전장의 여파는 마을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배염은 약간의 호의로 별 피해도 없이 이곳 상인들의 신의를 얻어냈다. 그건 이후 이곳으로의 상행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시!’

남주상단의 주인. 대륙의 모든 상단 들 중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의 선견이다.

배염이 배영준에게 말한다.

“상인에게 가장 중한 것은 이득이다. 그러한 이득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이 상단을 이끄는 자의 몫이지.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회는 오는 법이다. 너는 좀 더 넓고 멀리 보는 바를 깨우치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며칠이 지났다.

은근슬쩍 일행에 합류해 호약란의 살 떨리는 눈총을 받았지만, 그 특유의 ‘헐헐.’ 하는 웃음으로 대처하며 이제는 호약란을 제한 모두와 친해져 버린 한상준.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데다가 거리감마저 느껴지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일행이 되고 말았다.

한상준이 합류하면서 일행에겐 마차와 말이 생겼다.

한상준의 벗인 남주상단주 배염이 그들에게 내어 준 것이다.

지금도 마차 안에선 용소와 용하, 장여련과 함께 한상준은 재미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듯, 그리고 재치 있는 언사를 지닌 탓에 한상준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어린 용소와 용하,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장여련에겐 여흥이 아닐 수 없었다.

용철은 그들의 마차를 몰았으며, 공승우와 호약란은 각자 말에 올라 마차의 속도에 맞춰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들려오는 한상준의 음성에 가볍게 미소를 그리던 공승우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오른다.

그런 일행들을 향해 다가드는 무엇이 있음을 느낀 것이다.

말고삐를 채며 앞으로 나서는 공승우.

만약 위험이 다가든다면 막을 생각으로 말이다.

이곳 태제륙, 특히 전쟁이 발한 지역에는 망독군과 같은 무리뿐만 아니라 여러 위험요인이 있다.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손을 들어 용철에게 마차의 속도를 늦추게 한 공승우.

그의 시선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빠르게 다가드는 무수한 무리들 역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잔뜩 낭패한 모습의 군인이었다.

머리에서 흘렀던 피는 얼굴에 딱딱한 흔적을 남겨놓았고, 손에 든 검은 반 토막으로 잘려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급한 호흡을 뱉어내는 군인. 그가 공승우에게 다가들며 말한다.

“도, 도와주십시오.”

그 한마디를 하고는 풀썩 쓰러져 버리고 마는 군인.

그는 사라국 무장 난중이었다.


@@@@@@@@@@


2009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얼마 안 남은 시간, 올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요. ^^*

아쉬운 일들일랑 얼른 떨쳐내시고 새롭게 다가든 날을 맞아 웃음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2010년, 내일.

오늘과 다른 내일이, 오늘보다 즐겁고 행복한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


氣高萬丈님께 불끈 힘주어 응원합니다.

내년, 아니 내일. 이제 조금이 지나면 분명히 즐거운 일들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웅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2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9 +8 11.10.21 1,646 14 35쪽
111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8 +2 11.10.21 982 7 32쪽
110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7 +3 11.10.21 1,216 8 32쪽
109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6 +6 11.04.19 1,566 13 42쪽
10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5 +8 11.03.09 1,543 12 43쪽
10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4 +10 11.01.31 1,510 12 50쪽
10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3 +8 10.12.12 1,501 16 44쪽
10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2 +7 10.10.29 1,692 15 46쪽
104 영웅담(英雄譚-이계편) 격류(激流) 7-1 +9 10.09.01 1,886 14 44쪽
103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10 +7 10.08.19 1,994 9 37쪽
102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9 +7 10.07.29 1,932 12 38쪽
101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8 +11 10.07.06 1,921 10 44쪽
100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7 +9 10.06.24 1,954 9 40쪽
99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6 +10 10.06.09 2,106 8 39쪽
9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5 +8 10.05.31 2,088 10 41쪽
9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4 +9 10.05.20 2,112 9 39쪽
9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3 +7 10.05.18 2,014 9 31쪽
9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2 +8 10.05.12 2,252 9 32쪽
94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1 +9 10.04.14 2,410 7 28쪽
93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9 +5 10.04.14 2,327 8 24쪽
92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8 +11 10.03.25 2,631 8 55쪽
»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7 +9 09.12.31 2,632 9 41쪽
90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6 +3 09.12.31 2,547 9 48쪽
89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5 +9 09.10.30 2,837 9 43쪽
8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4 +8 09.10.22 2,791 11 45쪽
8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3 +6 09.09.28 2,933 9 47쪽
8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2 +7 09.09.11 3,134 8 31쪽
8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1 +5 09.09.07 4,035 7 48쪽
84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1 +9 09.08.12 3,741 9 40쪽
83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0 +3 09.08.12 3,249 9 3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