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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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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연재수 :
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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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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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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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39쪽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4

DUMMY

4.


“동남쪽으로 말을 타고 이동하시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음.”

일만 단이면 대략 15킬로미터 정도 된다.

철호는 유세하를 한 번 보고는 정보원에게 다시 물었다.

“적갑무사들의 동향은?”

“그들은 사라국 군세에 섞이지 않은 채 말에 올라 따로 움직입니다. 접근이 어려워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이동 대형으로 보아 두 개의 대로 구분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닌 무기들은 기본적으로 마상에 유용한 창을 소지하고 각자 검, 도 등을 패용하고 있습니다.”

“마황석이 함유된 무기던가?”

“그러리라 판단됩니다.”

“흐음.”

철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숲에 시선을 둔 채 오연히 서 있던 유세하가 불쑥 묻는다.

“말은 어디 있지?”

그에 정보원은.

“옙! 산자락 아래에 동료가 대기 시켜 두었습니다!”

우렁우렁하게 대답하고는 얼굴이 빨개진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치게 주눅이 들어 대답했다는 바를 느끼고는 말이다.

씨익 입가에 미소를 그린 유세하가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철호가 그에게 묻는다.

“유공, 어찌하실 의향이십니까?”

여전히 산 아래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유세하가 말을 받는다.

“뭘?”

“상황을 좀 더 살피고서 움직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언제 붙을 건데.”

“예?”

철호가 잘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자 유세하의 걸음이 뚝 멈춘다.

“철호라고 했지?”

“예.”

“귀찮게 할 거면 돌아가라.”

“예?”

또 반문을 하자, 유세하가 몸을 돌려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진득한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너부터 죽여 버리기 전에.”

“!…….”

철호는 기가 찼다.

그래도 자신은 한 나라의 자왕이지 않은가. 울컥한 마음이 드는 순간, 누군가 자신의 팔을 가만히 잡는 것을 느낀다.

통기문을 지나면서 헝클어진 몸을 추스른 철화영이었다.

철호가 자신을 바라보자 철화영이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유공께서는 저희와 함께 움직이셔야 합니다.”

당찬 그녀의 말에 유세하의 이마에 골이 파인다.

철화영의 음성을 듣자니 짜증이 난다.

유세하가 풍기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졌지만, 철화영은 물러서지 않는다.

“진황국은 이제야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되어갑니다. 거기에 유공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효군의 정보로 보아 적갑무사의 수가 200이 넘습니다. 어찌 아무런 대책 없이 그곳으로 가려 하시는 것인지요.”

“대책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훗.”

“…….”

유세하가 철화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철호를 지나 그 뒤에 서 있는 네 명을 주욱 훑어보고는 입을 연다.

“철기손이 말했지. 너희를 대동하라고. 내 말이 틀렸나?”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 잔말 말고 따라와. 그리고.”

“…….”

“한 번만 더 짜증나게 하면 너라고 해도 가만두지 않겠다.”

서슬이 퍼런 유세하의 음성에 철화영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한다. 자신에게 쏘아진 살기에 살짝 내상까지 입은 듯하다.

그러한 차에 기용장 사유봉의 자제이자 이곳에 자리한 성검사 중 가장 젊은 사독호가 눈가에 살기를 담은 채 철화영 곁으로 움직이며 말한다.

“아무리 그대가 귀빈의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군요.”

사독호는 언제나 철화영을 바라보는 사내 중 하나이다.

그에게 철화영은 여신이다.

여신, 낭패해 보이는 철화영을 감쌀 기회라 생각한 그.

이 기회에 확실히 그녀의 시야에 들어가리라 다짐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유세하를 겪어본 바가 없다.

함께 온 단기수와 황철은 유세하가 철기손을 후려치며, 나황궁의 벽면을 맨손으로 부술 때, 그 모습을 보았다. 그의 무지막지함을.

그리고 우길청과 격돌할 때도 멀리서 지켜보았다.

당시 유세하가 비록 우길청에게 패했지만, 자신들은 열이 모여도 그런 유세하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바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유세하에게 달려들려는 사독호를 보는 단기수와 황철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내심 바라던 바이니 말이다.

철화영이 당황하여 사독호를 바라본다.

“나서지 마세요.”

그녀의 딱딱한 음성에 사독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공주. 하지만, 저자가…….”

열이 받으니 공(公)이라 칭해야 한다는 바도 잊고 말이다.

사독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뒷목을 억센 손아귀가 와락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크억!”

뒷목을 타고 전해지는 고통을 이어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자 놀란 사독호가 신음을 낸다.

두 발이 대롱대롱 공중에 떠서 주욱 뒤로 딸려가는 사독호.

그런 사독호의 귓전에 얼굴을 가져간 유세하.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랬지!”

라고 말하며, 쥐어 잡은 사독호를 휙 돌려 숲 속으로 패대기친다.

우지끈! 쿠웅.

“커어…….”

저만치 숲에서 사독호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신음이 들린다.

일행 모두는 놀라 눈을 부릅떴다.

설마 진짜로 던져버릴 줄은. 아니, 사독호 역시 성검사의 등급, 능력과 힘을 지닌 이건만 저리도 쉽게 다루리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린 표정을 그리는 일행들을 비릿하게 쓸어 본 유세하가 몸을 돌린다.

그런 유세하에게 철화영이 급히 입을 연다.

“유공, 잠시만.”

그에 유세하가 다시 살기를 피워낸다.

철화영이 서둘러 말한다.

“다른 것은 이유를 달지 않겠습니다. 다만, 처음 약속하신 바대로 함께 움직여 주십시오.”

몸을 돌린 유세하.

“너!”

그의 살기가 더욱 짙어진다.

철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깊이 고개 숙인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런 철화영을 보며 유세하가 얼굴을 찡그린다.

귓가로 나지수의 음성이 아른거린다.

오라버니…….

주먹이 꽉 쥐어지며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뭉클 피어오른다.

하지만.

“제길!”

한 마디 뱉어낸 유세하가 획 몸을 돌리더니 숲 한쪽으로 걸아가서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를 후려친다.

쿠웅!

단 한 방에 쩌저적 갈라지며 쓰러지는 거목.

콰과과 소리를 내며 주변 다른 나무들과 엉켜들다가 쿵하고 땅바닥에 나뒹군다.

일행들의 눈에 박혀 드는 그 모습이 전율스럽다.

일시 피어난 소음과 먼지가 휘돈다.

철화영은 잠시 기다렸다.

유세하로부터 이어지는 음성이 없자, 가만히 몸을 세웠다.

그가 저 앞에 있다. 무언가에 상당히 분한 모습이다.

이상하게 마음이…… 아린다.

‘뭘까…….’

문득 의문을 품었지만,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털어 내고는 황철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말한다.

“사 검사를.”

더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황철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되는지 눈으로 물을 뿐.

철화영은 유세하를 한 번 바라보고는 황철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유세하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자신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고 아니, 묵과해 주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생각이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연히 틀리지도 않기는 하다.

유세하의 속내.

‘왜 자꾸만…….’

철화영과 나지수가 겹쳐 보이는지 모르겠다.


얼마 후.

유세하와 철화영 그리고 일행은 말에 올라 앞으로 내달렸다.

그들을 인도하는 효군 정보원들을 따라서.

숲에 내던져 나뒹군 사독호 역시 그들에 섞여 있다.

유세하가 죽일 생각이 없었기도 하지만, 성검사는 성검사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던져진 정도의 고통으로 흔들릴 육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독호는 입가로 가는 핏줄기를 그려냈다.

내상 때문이 아니라, 분해 씹어버린 입술이 터진 까닭이다.

‘언제고 죽여 버릴 테다!’

독심을 품은 그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


사라국의 일황자 강황은 자신들과 떨어져 이동하는 붉은 갑옷의 무사들을 일견했다.

“흠.”

그들이 있어 자공성에서 수성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은 물론, 역으로 상조국 군사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적갑무사 200명.

그들은 확실히 강했다.

상조국 환요병들이 적갑무사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자 날개를 단 것처럼 이리저리 전장을 누비던 상조국 일황자 호만추도 후퇴를 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추격전을 시작했다.

이 기회에 상조국 군사력을 확실히 뭉개놓아야 그들의 수도성인 수영성(獸影城)을 치기가 수월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상조국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예전의 눈 아래로 보았던 나라가 아니었다.

환요병과 호만추의 무력, 횡주포와 기갑전차, 기마전단을 운용하는 전투력은 사라국 못지않았던 것이다.

만약, 적갑무사 수가 지금의 두 배만 되었어도 전쟁은 사라국의 승리로 매듭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부족하다.

그리고 적갑무사들은 사라국 군사들과 전혀 섞이질 않았다.

그것은 그들을 포함해 전략을 운용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아쉬움이 짙어진다.

“성주.”

강황이 자신과 나란히 말을 몰아가는 자공성주 기요환을 부른다.

“예, 황자님.”

적갑무사들의 선두를 일견한 강황이 입을 연다.

“저들은 누구겠습니까?”

그 점은 기요환도 궁금한 바이다.

“알보고는 있습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마치 태제륙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습니다.”

“흠. 성주, 우리가 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잘하는 일이겠습니까?”

강황의 말에 기요한의 눈빛이 진중해진다.

“지금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그렇겠지요. 참. 벽라성에서 장여섭 상용장이 다른 두 상용장과 함께 병력을 동원하여 전선으로 이동 중이라지요.”

“예. 군황께서 그들을 움직였다 들었습니다.”

기요환이 기꺼운 듯 말하자 강황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후후. 그들, 속 꽤나 쓰리겠습니다.”

“중심에서 편하게 살아왔으니 이번에 흙 좀 묻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 말 참 멋지구려.”

강황이 시원스럽게 웃자, 기요환도 나직이 웃음을 짓는다.

사라국 일황자 강황이 시선을 돌린다.

시원하게 펄럭이는 그들의 깃발, 사자기(獅子旗)가 곧게 뻗친 아래로 대규모 병력이 지축을 울리며 전진하는 모습을 보니 장대함이 밀려온다.

“좋군!”

느낌이 상당히 좋다.

이대로 상조국 수도성인 수영성까지 성난 사자처럼 밀어붙일 생각을 하니 절로 흥이 솟는다.


그들과 일정거리 떨어진 채 이동 중인 적갑무사. 화룡대(火龍隊).

처음 강황에게 자신들이 돕겠다는 뜻을 보인 화룡 5대 대주 황철영은 새로 합류한 3대 대주 홍만수와 진영의 중간에서 비교적 느긋하게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3대주, 화룡께서는 어떠십니까?”

그에 홍만수가 가볍게 웃고는 답한다.

“후후. 늘 같지요.”

“이로써 화룡대가 그늘이 아닌 태양 아래로 나서는 것이겠지요.”

“물론이지요. 그동안 팔룡선무회의 간섭에 숨죽여 지냈는데, 이제야 그것을 깨고 나서는 것이니 화룡께서도 상당히 고무되신 듯하더군요.”

두 사람 모두 대주 급인지라 서로 공대를 한다.

그러던 중 황철영이 전방을 주시하며 입을 연다.

“아, 오늘은 이쯤에 숙영지를 삼으려 드는군요.”

저 앞쪽으로 전진하던 사라국의 군세가 멈춰 서더니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아직 날은 밝지만, 만 단위를 넘어선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동 중 멈춰 진영을 구축한다는 것은 적이 멀지 않은 곳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황철영의 말에 홍만수가 화룡대의 이동을 중지시키며 말을 받는다.

“그나저나 상조국 전력이 생각 이상입니다.”

그에 황철영이 씨익 웃으며 답한다.

“그래 봐야 일개 군사일 뿐이지요.”

“그건 그렇지요. 후후.”

가볍게 웃은 홍만수가 소리친다.

“이곳에 주둔지를 조성한다!”

그에 화룡대 부대주들이 복명하고는 대원들에게 지시한다.

화룡대가 필요한 보급 물자는 사라국에서 충당해주니 그들은 그저 말과 필요한 무기들만 관리하면 된다.

화룡대원 몇몇이 사라국 진영 쪽으로 이동한다.

간이 천막을 비롯한 음식과 필요 물자를 조달하고자.

그렇게 밤이 되어갔다.

내일이나 모레쯤. 대규모 격전이 예상되니 오늘 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글거리는 횃불이 곳곳에 세워진 사라국의 진영이 구축된 곳은 숲길이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펼쳐진 넓은 평야지대다. 언덕과 숲이 진영 앞쪽에 있었다면 사라국의 초병 상당수가 나와 있겠지만, 이미 언덕을 지나와서인지 언덕 쪽을 향한 감시인원은 그 수가 작았다.

그리고 지금, 감시를 위해 언덕에 나왔던 사라국 군사들 모두는 숨이 끊어져 언덕 뒤편 한쪽에 쏠려 있었다.

언덕에 납작 엎드린 두 인영. 검은 갑주를 걸친 탓에 잘 보이지 않는 그들은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말라 있었다.

가까이서나 들릴 정도로 속삭이는 두 사람은 진황국 성검사 황철과 난영이었다.

“휴우. 엄청난 군세입니다.”

평상시에도 난영은 황철을 향해 존대했다.

황철이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그보다 빨리 성검사의 등급을 받았고, 강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겨우 일곱 명으로 저들과 붙겠다는 생각은 미친 짓이야.”

황철도 사라국의 위용에 기가 질린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유세하의 명령에 이미 사라국 초병들을 제거했으니, 일은 이미 시작되어 구르는 중이다.

지금 뒤로 달려나가 저 멀리 사라지지 않는다면, 교대병이 나서면 그들의 존재가 발각될 여지는 충분했다. 교대해서 진영으로 돌아갈 군사가 없으니 말이다.

몸을 빼내려면 교대병이 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뿐이다.

“돌아가자.”

“예.”

그들은 최대한 은밀하게 몸을 빼내 다른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황철과 난영이 돌아오자 철호가 묻는다.

“어떻습니까?”

그가 비록 자왕의 신분이라고는 하나, 상용장의 자제이자 성검사인 그들을 막대할 수는 없었다.

“어두워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이만 이상이라고 생각됩니다.”

황철의 대답에 철호의 안색이 굳어진다.

“흠.”

“헌데, 자왕님…….”

황철이 말끝을 흘리며 묻자 철호가 그를 바라본다.

황철이 말을 잇는다.

“이건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됩니다.”

“…….”

철호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기에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비록 적갑무사들을 노리고 온 것이지만, 격돌이 일어난다면, 사라국 군사들이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 철화영이 나선다.

“우리는 이곳에 저들과 전쟁을 벌여 이기고자 온 것이 아닙니다. 유공께서는 힘을 가늠하고자 함이고, 우리는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 실전을 경험하고자 온 것입니다.”

그에 황철이.

“하지만, 공주. 저 많은 군대와 실전 경험이라니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말이 실전이지 이건 죽기 십상이지 않습니까?”

“실전은 죽음과 늘 가깝습니다. 황 검사께서는 설마 죽음이 두려워 몸을 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모하단 말입니다. 무모하다고요!”

황철의 말은 절규에 가깝다.

여기서 적들과 부딪힌다면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필히 죽으리라.

그렇게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지금까지 고생 고생한 것이 아니다.

그런 황철의 귀로 한 마디가 들린다.

“병신.”

나직하지만 진득한 비웃음이 실린 음성. 유세하다.

그에 황철이 도끼눈을 뜨고 유세하를 노려본다.

아무리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지만, 이처럼 모욕적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뭐라 하시었소?”

그에 바닥에 앉았던 유세하가 스륵 몸을 일으키며 답한다.

“왜? 그 말은 듣기 싫은가?”

“나는 진황국의 성검사요. 장차 진황국을 이끌어갈…….”

유세하가 황철의 말을 자른다.

“그러니까 병신이지.”

“뭐, 뭐라!”

황철의 몸에서 화악 살기가 돋자 철호가 급히 둘 사이로 파고든다.

“지금 뭣들 하는 것입니까? 적을 눈앞에 두고!”

그의 말에 황철이 꽈악 쥐어진 두 주먹을 부르르 떤다.

“오늘의 모욕 잊지 않겠소!”

끝내 유세하를 향해 한 마디를 뱉지만.

“지랄하네.”

라는 냉소적인 말에 치떠진 두 눈에 핏줄기만 늘어나고 만다.

“이, 이!”

끝내 참기 어려웠던지 황철이 막 자신의 병기인 검을 쥐어 뽑으려 할 때. 이번에도 철화영이 나선다.

“무모하게 달려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 말에 황철의 시선이 확 그녀에게로 돌려진다.

비록 늘 여신과 같이 생각해온 철화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가 편할 때뿐이다. 지금처럼 위기 상황이라면 여신이고 뭐고, 내가 먼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니 말이다.

무모하지 않은 방법이 있다면 진즉에 말할 것이지, 여러 명이 보는 데서 사람을 우습게 만드느냐는 눈빛을 가득 담은 채 철화영을 노려보는 황철.

그에게 철화영의 음성이 이어진다.

“우리가 부딪히고자 하는 상대는 사라국이 아닙니다. 그들을 돕는다는 적갑무사들이지. 효군의 정보라면, 적갑무사들은 전투 시가 아니라면, 늘 따로 움직이는 특성을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진영을 구축하여 머물 때 역시 제일 후미에서 그들만의 구역을 만들어 활동합니다.”

“그래서요?”

여전히 황철의 음성은 삐딱하다. 유세하의 모욕적인 말과 왠지 자신을 무시하는 듯 보는 철화영의 눈빛이 더럽게 기분 나쁘다.

“유공께서 적갑무사들 틈으로 들어가 그들을 흔들 예정입니다. 그러면 적갑무사뿐만이 아니라 사라국에서도 소요가 일겠지요. 적의 습격이라 판단하고 움직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국 군사는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런다고 보시는 거요?”

“적갑무사들이 사라국의 개입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고, 장담할 수 있다는 거요?”

못마땅하다.

“적갑무사들은 강자들이니까요. 게다가 그들은 사라국이 좋아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를 달고 함께 하는 것뿐이란 판단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단 한 사람 때문에 발한 소요는 그들의 힘으로 잡으려 들 것이고, 유공은 우리가 물러선 곳까지 그들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적갑무사를 맞아 싸웁니다.”

“아니면?”

“아니면 사라국 군사를 포함한 그들 전부와 싸우는 거죠.”

당연한 것 아니냐는 철화영의 말에 황철이 가가 차다는 듯 헛바람을 낸다.

“허-. 참.”

그의 말이 이어진다.

“그게 무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오?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끌끌하니 혀까지 찬다.

그런 황철의 모습에 유세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유세하는 지금 철화영이 말한 바를 이미 들었다.

철화영이 숙고하고 나서 그에게 설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세하는 그녀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적갑무사라는 자들과 붙을 셈이고, 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을뿐더러 귀찮으면 몸을 빼내 사라질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함께 온 일행이 죽든 살든 상관없이.

그런데 황철이란 자가 철화영을 대하는 것을 보니 왠지 화가 난다.

눈에 은은한 살기를 품은 유세하가 철화영의 옆으로 움직이더니 황철에게 말한다.

“너 같은 새끼가 무사라니 꼴사납군.”

채앵!

그 말에 황철은 기어이 검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엇?”

황철은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유세하가 없자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는.

“커억!”

이전 사독호와 마찬가지로 유세하의 손아귀에 뒷목을 잡히고 만다.

“병신새끼.”

그 말을 뒤로 황철의 몸이 휙 돌려지더니 그의 머리가 땅바닥에 퍼걱하니 꽂혀 든다.

일시 머리로 땅을 딛고 선 황철. 그의 등판을 유세하가 걷어찬다.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황철.

“끄으으.”

고통과 몽롱한 정신에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사독호를 이어 성검사 급의 무력을 지닌 황철마저 유세하의 한수조차 감당하지 못함을 보는 다른 일행들은 질린 표정을 그렸다.

그들을 쓰윽 훑은 유세하가 입을 연다.

“여자보다 못한 새끼들.”

하고는 이동 전 철기손이 건넨 도를 허리에 차더니 언덕을 넘어 움직여 든다.

그런 유세하에게 급히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는 철화영.

유세하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힌 지 잠시.

철화영은 유세하의 손목을 놓았고, 유세하는 유유히 적갑무사들을 향해 움직여갔다.

그의 모습이 어둠에 묻히자 철화영이 주먹을 꾹 쥐고는 말한다.

“모두 유공과 약속한 장소로 이동해 싸울 준비를 하세요.”


유세하는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적진을 향해 간다고 보기에는 그의 발걸음이 너무도 여유로웠다.

화룡대 후방 측 감시에 나선 대원 둘이 어둠에 묻혀 다가드는 유세하를 발견한다.

단 한 사람뿐이고, 살기도 느껴지지 않기에 그들은 그저 후방 탐색을 나선 사라국 군사라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니 두 명의 화룡대원은 다가드는 유세하를 막아선다.

‘응?’

그들은 먼저, 다가든 자가 사라국 군사들이 걸친 짙은 곤색 갑주가 아님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검은색이든 짙은 곤색이든 어둠 속에서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디 소속인가?”

화룡대원의 질문에 유세하가 피식 웃는다.

“나?”

짧은 반문에 화룡대원의 눈썹이 위로 솟는다.

한주먹꺼리도 안 되는 사라국 군사 따위가 자신들 화룡대에게 하는 언사치고는 시건방지다 생각하며 인상을 와락 구긴다.

“이 자식이!”

화룡대원 중 하나가 유세하를 후려칠 기세로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린다.

“후후.”

그런 화룡대원에게 나직이 웃어준 유세하.

순간 그의 눈빛이 지독히도 차갑게 빛난다.

슈왁!

한 줄기 빛살이 어둠에 선을 긋는다.

주먹을 들어 올린 화룡대원이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고, 옆의 화룡대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짧은 반문을 던진 화룡대원이 스르르 옆의 동료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 순간 동료의 얼굴에서 가슴을 지나 사타구니까지 사선으로 쩍 벌어지더니 추와악 핏물을 뿜어낸다.

“헛!”

얼굴이며 몸에 뿌려지는 뜨겁고 비릿한 핏물에 기겁한 화룡대원이 급히 무기를 잡으며 고개를 획 돌리는 순간.

다시 한 번 빛살이 어둠을 가르고 그의 머리가 둥실 허공으로 떠오른다.

쉬악. 퓨. 퓨부부부.

둥실 떠오른 머리 아래. 매끈하게 잘린 목에서 핏물이 터진 둑에서 물살이 쏟아져 나오듯 뿜어진다.

저만치 앞에서 화룡대원 둘과 새로 나타난 한 사내를 무심히 보던 동료 화룡대원들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며 두 눈을 치뜬다.

“뭐, 뭐야. 저거?”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지켜보던 화룡대원들의 두 눈에 살기가 차오른다.

“감히!”

달랑 혼자의 몸으로 화룡대에 달려들 위인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다.

일시에 십여 명의 화룡대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방금 자신의 동료 둘을 단칼에 베어버린 상대를 향해 매섭게 질러 든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간단한 것을 잊고 있다.

성검사에 준하는 실력을 지닌 그들 화룡대 개개인.

그런 두 사람을 상대가 너무도 쉽게 쪼개 버렸다는 것을.


후방에서 소란이 일고 대원 하나가 급히 다가들자 모닥불 가에 앉아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황철영이 슬쩍 시선을 돌리고선 묻는다.

“뭔가?”

그의 물음에 빠르게 다가든 대원이 답한다.

“누군가 후방에 나타나 대원들과 충돌하였습니다.”

“충돌? 인원은?”

“한 사람입니다.”

“뭐? 한 사람?”

기가 찬다는 표정을 그리는 황철영. 그뿐만 아니라 곁에 앉은 홍만수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황철영이 귀찮다는 듯 말한다.

“미친놈이군. 빨리 처리해.”

“예!”

보고를 마친 대원이 황철영 곁에 있던 부대주 두 명을 대동하여 후방으로 사라진다.

그런 그들을 보며 황철영이 피식거린다.

“웃기는 일도 있군. 화룡대에 달랑 혼자 치고 들어온 놈이 있다니.”

혼자 하는 말이었지만, 그에 동조하는 홍만수가 말을 잇는다.

“훗. 그렇군요. 그래도 어떤 놈인지는 상당히 궁금하군요.”

“하하. 그래 봤자 그놈. 사지가 잘려 끌려 올 테니 술이나 마저 드시지요.”

황철영의 말에 홍만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내가 궁금한 것은 오래 참지 못하는 성미라.”

라고 말하며 후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황철영이 짐짓 경고를 담아 말한다.

“홍 대주님. 빨리 안 오시면 내가 다 마셔버릴 겁니다.”

저만치 걸어간 홍만수가 껄껄 웃는다.

“그러면 재미없습니다.”

잦아지는 홍만수의 목소리는 유쾌하기 그지없다.

그런 홍만수의 음성을 듣는 황철영이 피식 미소를 그리다가 문득 인상을 굳힌다.

‘뭐지…….’

무언가 상당히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은.


§


츄왁! 촤아아악!

두 번의 칼질이 어둠을 가르고 흘러간 칼끝을 따라 핏물이 대기를 물들인다.

슈왁!

아래에서 위로 그어진 도의 흐름에 쩌적 갈라져 좌우로 퉁기듯 날아가는 육신.

그 틈으로 냉기가 철철 흐르는 눈빛을 한 사내가 씨익 미소를 그린다.

사내가 그어 올렸던 도를 내리며 꼿꼿하게 허리를 편다.

웅대한 기상과 범접하기 어려운 살기를 발산하는 그.

땅바닥에 그 끝을 살짝 디딘 칼날엔 또르르 핏방울이 흘러 대지로 스며든다.

사내가 든 도는 말끔한데 주변은 빨갛게 물들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육신의 조각들은 아직도 꿈틀거리며 마지막 생명을 잡으려 잔 경련을 일으킨다.

츠츠츠.

사내의 몸에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기가 피어오른다.

뭐 하는 놈이냐는 생각으로 가볍게 제압하러 나선 십여 명의 화룡대원 중 반수 이상이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을 채웠다.

살기를 뿌리는 적은 단 하나이지만, 그를 보는 화룡대 개개인은 기가 질린 듯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

현 화룡인 단철심이나 와 있다면 이해할까. 누구도 화룡대원을 상대로 단칼에 그들을 주검으로 만들 수 없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스멀거리는 공포를 심어주기 시작하는 상대.

화룡대원 중 하나가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는 묻는다.

“누구냐? 너는?”

하지만, 사내, 유세하는 그들에게 일일이 대답해줄 마음이 없다.

“좀……. 싱겁군.”

내심 강자들이라 기대하고 부딪힌 것이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목표로 하는 자는 자신을 쓰러뜨린 적룡 우길청. 누구도 당할 수 없다는 절대의 성검사라 불리는 그가 목표이다 보니, 일반 성검사에 발을 내민 수준의 무력을 지닌 화룡대원들로는 성이 차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의 기준에 말이다.

“안 올 거냐?”

유세하가 나직이 말하자 그 말을 듣는 화룡대원들이 오싹하니 등줄기로 서늘함이 화악 지나감을 느끼며 부르르 떤다.

하지만.

꾸욱! 어금니를 다문 그들은 서로 바라보고는 일시에 몸을 날린다.

그리고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을 느낀 나머지 화룡대원들도 유세하를 포위하듯 발 빠르게 움직이고, 그들 중 일부는 먼저 공격에 들어간 동료의 뒤를 따라 스스슥 발을 놀리며 공격에 가담한다.

소란이 일자 사라국 군영 측에서도 소요가 일더니 그들의 군세 중 일부, 기갑전차 두 기와 연노병(連弩兵) 일부가 격돌이 일어난 진영으로 빠르게 움직여 온다.

단 한 사람으로 시작한 소요가 불거져 전쟁터에서나 일어날 법한 기운이 번져난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발하는 살기로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흥분을 돋는다.

“차앗!”

화룡대원 하나의 외침을 따라 그의 손에 들린 검이 허공을 매끈하게 잘라간다.

쩡!

“크으!”

신음에 이어 찌지직 검날에 금이 가더니 와작 부서져 허공으로 뿌려지는 순간 밀고 들어온 도의 시퍼런 날이 화룡대원의 이마를 쪼개버린다.

촤악!

갈라지는 화룡대원의 이마 아래 치떠진 두 눈의 검은자가 불신과 공포를 담아 위로 말려 올라가더니 하얀 바탕만을 남기고 쿵하니 무너진다.

후드득 땅바닥에 뇌수를 흘리는 그의 몸이 바르르 떨어 울린다.

누군가 동료의 죽음에 분개해 득달같이 유세하를 향해 질러 든다.

“죽어랏!”

그에 한 사람을 베고 지나간 유세하가 홱 몸을 돌리더니 벼락같이 움직여 마구 달려드는 화룡대를 향해 도를 뿌린다.

슈왁 한 번의 흐름에 질러 들던 화룡대원의 오른팔이 어깨에서 떨어져 날아가고, 이어 휘둘러진 도에 갸각하니 섬뜩한 소리를 남기며 목뼈가 말끔하니 잘려나간다.

머리를 잃고도 우뚝 선 화룡대원을 스치듯 나아간 유세하가 전방의 다른 화룡대의 허리를 두 쪽 내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돌아 또 다른 화룡대원의 몸뚱이를 사선으로 갈라버리고서, 다시 몸을 돌려 측면으로 파고들던 화룡대원의 검을 쳐내며 흐트러진 그의 등판에서 옆구리까지 단번에 그어버린다.

“크악!”

끔찍한 비명이 흐르는 동안에도 유세하는 멈추지 않고 다른 화룡대원을 향해 몸을 날렸고, 그의 손에 들린, 여러 사람의 피를 머금었다고 보기엔 이질적으로 매끈한 도는 화룡대원의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일직선으로 흐름을 자아낸다.

쩌억. 쿵!

철퍼덕 무너진 화룡대원의 몸뚱이.

원을 그리듯 유세하를 포위한 화룡대.

그 원 안에서 성난 맹수처럼 마구 피를 부리는 유세하.

촤악! 촤악!

유세하의 도가 대기를 가를 때마다 여지없이 피가 뿌려지고, 그를 에워 쌓던 원은 점점 넓혀져만 간다.

‘이게 도대체?!’

보고 내용에 따라 먼저 격돌 장소로 이동한 부대주들은 벌어진 참상에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치뜨다가 이내 매섭게 눈을 빛내고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모두 물러서라!”

부대주 중 한 사람의 외침에 화룡대원들이 공격을 멈추며 몸을 빼낸다.

그 와중에도 두 명의 화룡대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하지만, 화룡대는 공격하는 대신 좀 더 넓은 원을 그린 채 물러섰다.

부대주 중 하나, 이도가 저벅저벅 앞으로 나서 유세하를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소리친다.

“뭐 하는 놈이냐?”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음성이 아닌 칼날이었다.

“헉!”

단숨에 거리를 좁혀 파고든 도(刀). 급히 자신의 검을 뻗어 질러오는 도를 막아내는 이도.

쩌엉!

“허억!”

자신의 검날을 파고드는 도의 힘에 기함을 질러내고는 급히 상체를 뒤로 젖힌다.

슈왁!

그 순간 검신을 두 쪽 낸 도가 그의 코앞을 지나가고, 동행한 부대주가 유세하를 공격하는 순간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 이도는 급한 숨을 토해낸다.

‘헉, 허억. 죽, 죽을 뻔…….’

얼굴에 실핏줄이 터진 채 한숨을 돌리려던 이도는 어느새 눈앞에 다가든 적의 도에 후다닥 뒤로 몸을 빼낸다. 사력을 다한 움직임이다.

스극. 그럼에도, 허벅지가 갈라져 피가 솟는다.

“크윽!”

고통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지지만 이도의 눈만은 심하게 흔들리며 다가드는 도에 고정된다.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쩡!

공간을 떨어 울리는 굉음이 눈앞에서 터지며 자신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것을 느낀다.

“헉헉.”

급히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리자 굳은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는 3대 대주 홍만수의 옆모습이 보인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 이도가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자신을 도와 적을 막았던 동료 부대주는 저 앞에서 땅바닥에 널브러져 부들거리고 그 앞에 오연히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차갑고도 비릿한 눈동자를 보니 소름이 오싹 돋는다.

‘도대체…….’

저렇듯 잔혹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지닌 자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이도는 다시 홍만수를 바라봤다.

홍만수의 얼굴도 굳을 대로 굳어 있다.

힐끗 보니 도를 쥔 홍만수의 손이 가늘게 떤다.

“!”

화룡 3대 대주 홍만수.

‘대주님도 저 사내를 감당하지 못한단 말이야?’

이도는 믿을 수 없었다.

화룡대의 대주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감히 넘보기 어려운 무력을 지닌 화룡 단철심 다음으로 강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그런 대주조차 저 앞의 사내에게 밀린다면.

홍만수는 이도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지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했다.

도를 쥔 손을 타고 찌르르 울리는 충격.

주변에 널브러진 것은 모두 화룡대원의 시체. 그 중 부대주도 있다.

사내는 핏물에 흠뻑 빠진 터에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아니다. 홍만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사내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엔 출혈이 너무 클 듯하다.

지금도 화룡대원 상당수가 죽어나갔지 않은가.

‘사라국의 기갑전차 몇 대가 왔지. 그렇다면…….’

왼쪽을 돌아보니 그그긍 소리를 내며 다가든 기갑전차 두 대가 주포의 방향을 사내 쪽으로 돌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연노병들이 시위에 쇠뇌를 거는 것도 보이고.

‘좋아!’

생각을 마친 그가 크게 외친다.

“원진을 풀고 후방으로!”

그의 외침에 화룡대가 일사불란하게 뒤로 빠진다.

“주포!”

홍만수가 외치자 연노병들이 시위를 바짝 당긴다.

그에 맞춰 기갑전차의 주포에도 서서히 탑승자인 일등장수의 내력이 뭉쳐 들기 시작한다.

예상하고는 다르다.

화룡대는 사라국 군세의 개입을 탐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뒤집어 3대주 홍만수는 적극 활용할 기세다.

그에는 유세하의 강함이 너무 크게 다가들었기 때문이다.

“발(發)!”

홍만수가 크게 외치자, 연노의 쇠뇌가 먼저 허공을 가른다.

이미 사라국 군사들과 화룡대와는 공조가 이뤄지니 명령의 실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

퓨파파파파.

일시에 날아오른 쇠뇌가 하늘 가득 솟더니 긴 포물선을 그리며 유세하가 자리한 땅바닥에 거꾸로 내리꽂히기 시작한다.

푸북. 푸부부북.

수많은 화살이 유세하를 비롯한 그 주변을 까마득히 메웠다.

홍만수는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주시했다.

사내는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으로 받아냈을 뿐.

자신은 그럴 수 없다.

몸으로 받겠다는 것은 곧 그대로 화살에 꿰어 죽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홍만수의 커진 눈이 더 할 수 없이 커지더니 버럭 외친다.

“주포! 쏴! 쏘라고!”

홍만수의 눈에 들어온 유세하.

유세하의 전면에 막혀 허공에 뜬 수많은 화살.

비릿하게 웃는 유세하는 몸에서 발하는 기만으로 화살들을 막아낸 것이다.

곧, 그의 몸 앞에서 부르르 떠는 화살들이 힘을 잃고 땅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순간 기갑전차의 주포에서 응집된 내력이 푸앙 하고 쏘아져 나갔다.

두 대의 기갑전차에서 발한 두 발의 포성.

유세하의 시선이 손에 쥔 도(刀)로 향한다.


“유공. 이도는 광시도(狂弑刀)란 이름을 가집니다.”

“훗. 이름이 재미있군.”

“광시도는 초특급의 마황석을 함유한 무기로 폭(爆)의 성질을 지닙니다. 또한, 유공의 내력이라면 그 응집된 힘으로 적 횡주포(橫主砲)의 공격도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횡주포?”

“유공계서 살던 곳의 자주포(自走砲)와 유사하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호.”


광시도(狂弑刀).

처음 철기손이 건네줄 땐 그저 그랬다.

하지만, 오늘 직접 써보니 마음에 쏙 든다.

경도뿐만 아니라, 베어낸 자의 피가 도에 일절 묻어나지 않는다.

항상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저 베는 것이 아닌 다른 효능을 써 볼 참이다.

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휘우우웅. 크우우.

유세하의 내력이 흘러들자 광시도는 사나운 울림을 토해냈다.

쩌엉. 쩌정!

부딪히는 것도 없건만 광시도에 뭉쳐 든 기운은 거대한 돌벽을 단번에 쪼개듯 소리를 냈다.

히죽.

입고리가 살짝 말린 유세하의 웃음.

아래로 늘어뜨렸던 광시도를 들어 올린다.

기갑전차에서 쏘아진 기폭(氣爆)을 맞아.

지이이이.

쿠와왕!

유세하가 우뚝 섰던 자리에 엄청난 폭발이 일고 미친 바람이 땅거죽을 뒤집어 주변을 휩쓸어 버린다.

지켜보던 홍만수는 내력을 돋아 뚫어지게 쳐다봤다.

기갑전차의 기폭은 인간의 육신으로 막을 성질이 아니다.

‘화룡이시라면…….’

단철심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홍만수의 귀로 통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으화하하하!”

소리는 폭발이 일어난 저 앞 너머에서다.

“서, 설마…….”

홍만수는 기폭을 맞은 상대가 멀쩡히 살아서 웃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윽고 거칠었던 바람이 가라앉으며 육안으로 전방을 확인할 수 있을 때.

다시 한 번 음성이 들려왔다.

“병신새끼들!”

조금 전까지 화룡대를 농락했던 사내의 외침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또 화룡의 맥, 그 자긍심을 박박 긁어 깊은 상처를 던진다.

병신새끼들.

병신새끼…….

사내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는 만큼 그가 남긴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판다.

홍만수의 눈썹이 역팔자로 확 꺾인다.

이대로 화룡의 자긍심을 묻을 수는 없다.

잔뜩 노한 홍만수가 이도를 노려보며 소리친다.

“너는 즉시 황 대주에게 상황을 알려라.”

그러면서 몸을 홱 돌린다. 이도가 급히 묻는다.

“대주께선?”

“저놈을 죽일 테다!”

“하지만, 대주님…….”

이도도 보았다.

기갑전차의 주포도 죽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 상대를 어찌.

“그럼? 이대로 보내란 말이더냐!”

홍만수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이도가 와락 위축된다.

화룡대가 만들어진 이래 오늘 같은 날은 없었다.

아니, 앞으로도 없어야 한다.

그늘이 아닌 태양 아래 서서 만인을 굽어보려 한다면.

위상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은 등을 돌린 채 사라져가는 자를 잡아야 한다. 반드시!

이도가 아무 말도 못하자 홍만수는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며 크게 외친다.

“말을 가져와!”

그가 외차자 화룡대원 하나가 급히 홍만수에게 말 한 필을 건넨다.

팍 하니 바닥을 차고 말에 오른 홍만수가 말 옆구리에 꽂혔던 장창을 뽑아들며 외친다.

“3대는 모두 말에 올라 나를 따라 적을 섬멸한다!”

사라국과 동조하는 화룡대의 수는 200. 상조국과 전투 중 사망한 자들이 대략 마흔이 넘는다.

그들 중 오늘 또 서른 가까이 죽어나갔다.

죽은 자들은 3대와 5대가 섞인 수.

하지만, 여전히 화룡3대의 인원은 적지 않다.

그들 모두가 각자 말을 잡아타고 저만치 앞서나가는 홍만수의 뒤를 따른다.

유세하의 위용이야 생각할수록 몸서리쳐지지만, 그들은 화룡대다.

두두두두두.

때 아닌 지축이 울며 기백의 무사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몰아쳐 달려 나간다.

이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화룡3대가 몰아쳐 가자 5대에 속한 대원들 사이에 술렁임이 인다.

하지만, 이도의 외침에 그들은 서둘러 전열을 정비하고 명령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이도는 급히 발을 놀렸다.

베어 고통스러운 허벅지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5대주 황철영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서둘러 3대주 홍만수의 뒤를 따라야 한다.


§


철화영과 나머지 일행은 유세하가 화룡대에 뛰어들어 광시도를 휘두를 때, 대략 삼천 단(段) 떨어진 거리로 이동해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은 열다섯.

철화영, 철호, 단기수와 황철, 난영, 사독호 이렇게 여섯과 지원하고자 나선 효군 아홉 명이 그들이다.

그들 모두는 마상에 올라 장창을 꼭 쥔 채 긴장감 어린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단기수의 낮은 음성이 고요함을 가른다.

“정말 올까?”

그는 유세하가 적진에 고립되어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용장의 자제들도 유사한 생각이다.

철호 역시 비관적인 생각을 품었다.

오직 철화영만이 신뢰가 담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할 뿐.

“유공은. 오십니다.”

잔잔한 그녀의 음성에는 믿음이 가득하지만, 일행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때.

첨병으로 나섰던 효군 둘이 급히 말을 몰아온다.

그들의 안색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철호가 말을 몰아 나선다.

그 앞으로 빠르게 달려와 고삐를 잡아채 말의 투레질을 달래며 효군 하나가 급히 말한다.

“옵니다!”


@@@@@@@@@@


아우 배가 고파요-.

점심시간.

조금 전 회사동료 넷이서 짜장면 사다리 타기를 했드랬지요.

음화하하.

꽝 나왔습니다!


^^*

점심 맛나게 드시고요.

3일 연휴 즐겁게 지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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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6 +3 09.12.31 2,546 9 48쪽
89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5 +9 09.10.30 2,837 9 43쪽
8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4 +8 09.10.22 2,791 11 45쪽
8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3 +6 09.09.28 2,933 9 47쪽
8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2 +7 09.09.11 3,134 8 31쪽
8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1 +5 09.09.07 4,035 7 48쪽
84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1 +9 09.08.12 3,741 9 40쪽
83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0 +3 09.08.12 3,248 9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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