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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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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연재수 :
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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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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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24쪽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9

DUMMY

9.


그런 공승우의 귀로 휘산영의 음성이 들려온다.

“아이. 이거 너무 좋다.”

은근히 많이 마셨나 보다. 휘산영의 눈은 풀어졌고, 몸도 흐느적거린다.

바로 그때, 주변에서 술을 마시던 사내들이 일제히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려 온다.

사내들은 언제 술을 마셨느냐는 듯 두 눈이 번뜩인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실력은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공승우가 얼른 휘산영을 바라본다.

그녀 역시 지닌바 무력이 상당하다. 지금 달려드는 사내들 정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뿐이다.

사내들이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들고 있음에도.

“쩝.”

공승우는 가볍게 입맛을 다시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남과 동시에 휘산영을 향해 질러 드는 사내들 틈으로 불쑥 들어가더니 사내들이 ‘어?’ 하는 사이에 그들의 턱과 배, 가슴을 후려쳐 저만치 날려버렸다.

쿠당탕 소리를 내며 사내 셋이 나뒹굴고, 공승우는 거의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질러오던 사내들 틈으로 재차 파고들었다.

파고들며 어깨로 한 사내를 밀어버리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발뒤축으로 측면 사내의 안면을 후려쳤다.

돌아가는 몸 그대로 조금 더 돌아 상체를 숙이며 남은 한 사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으니.

“컥!”

하는 신음을 뱉고는 눈을 까뒤집으며 그 자리에 고꾸라진다.

순식간에 여섯의 사내가 떨어져 나갔다.

그 수이면 마구 달려들던 사내들 대부분이다.

멈칫.

나머지 사내 셋이 질린 표정으로 멈추더니 주춤 물러선다.

공승우가 그런 그들을 노려보자, 사내들이 우왁 소리를 지르더니 몸을 돌려 냅다 도망쳐 버린다.

이어 나른한 음성이 들려온다.

“뭐야, 저것들.”

휘산영의 음성이다.

여전히 귀찮다는 듯.

공승우는 그녀의 음성을 듣고 밖으로 나가버린 호약란을 떠올렸다.

그녀의 능력으로 보아 따라나간 것이 분명한 사내들에게 어찌 되지는 않겠지만, 걱정은 된다.

곧, 공승우가 탁 하니 바닥을 한 번 차고는 밖으로 쏘아져 간다.

그가 사라지자 나른한 표정을 그리던 휘산영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쳇. 귀찮은데.”

라고 투덜대고는 쓰러져 버둥거리는 사내들에게 다가가 대뜸 발등으로 걷어찬다.

퍼걱.

“쿠억.”

퍽. 퍼벅. 퍼버벅.

널브러진 사내들을 후려 차고는 시원한 표정을 그리는 휘산영.

“어이, 혹시 너희 나를 노리고 온 거냐?”

사내들은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흐응. 하여간 예쁜 것은 알아서는.”

퍽. 퍼버벅.


급히 밖으로 나선 공승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 사내들을 번갈아 후려치는 호약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인정사정없는 발길질.

“쩝.”

공승우가 입맛을 다신다.


§


“뭐라고?”

길현은 짜증이 난 눈빛으로 자신에게 보고하는 사내를 노려본다.

“이것들이 진짜!”

자중하라고 말해뒀다.

사라국 남동쪽 해안선 마을 중 하나인 티루에서 난장을 치던 망독군들을 후려 이곳으로 데려온 길현이다.

당시 어딘가에서 가해진 압력 때문에 사라국 국경 측 이곳저곳에서 몰려들어 자기들끼리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라 꽤 거칠고 다른 어디의 망독군보다 강한 망독군 수령과 그 휘하 부하들 여섯을 처리할 때 참혹함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감히 자신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 기어이 일을 벌였다.

‘잡것들!’

내심 이를 간 길현이 수하에게 묻는다.

“자세히 말해봐.”

그에 수하가 부지런히 입을 놀린다.

오늘 마차 한 대와 몇몇 일행이 장포숙관으로 들어섰는데, 그 중 여인이 셋 있었으며, 모두 미인이었다는 것.

그들을 발견한 망독군 하나가 황덕상단으로 돌아와 떠벌렸고, 좀이 쑤시고 회가 동한 십여 명의 망독군들이 장포숙관으로 들어가 그곳 주인과 점원들을 협박한 다음 그곳 화화주에 혼몽환(混懜丸)이라는 약물을 탔다는 것.

약물 효과가 돌 때 즈음 돼서 그들을 덮쳤다가 오히려 된통 깨지고 지금 몽땅 잡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잡혔다고? 그것도 전부? 이런 후레자식들이!”

길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상부의 명령을 받아 황덕상단을 움직여 옥차를 취급하는 다른 두 상단을 흔들어야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솔직히 망독군들이야 그들의 시야를 가릴 목적에 불과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문제를 만들면 임무수행에 지장을 주게 된다.

일이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되니 열이 확 솟는다.

“가자!”

버럭 소리친 길현.

수하는 삐질 땀을 흘리며, 최대한 저 자세로 그의 앞에 서서 부지런히 발을 놀린다.

수하를 뒤따르는 길현.

‘혼몽환을 푼 화화주를 마셨는데도 멀쩡하다? 보통 놈들은 아니겠군.’

혼몽환은 구하기 쉬운 만큼 그다지 약효가 강하지는 않다.

간단히 말해 력사 급의 능력을 지닌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혼몽환을 독한 화화주에 섞었다면 그 효능이 배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열 명이 넘는 사내들, 그것도 망독군 아니랄까 봐 잔혹한 녀석들을 모두 후려 잡아두고 있다니.

‘그들에게 력사급 인물이 여럿이거나, 성검사급 하나 정도는 있다는 말이겠군.’

생각을 정리한 길현이 수하를 채근하자 망독군 수하는 아예 뛰듯이 빠르게 나아갔다.

뒤따르는 길현은 그들 조직에서 사용하는 표식 하나를 남겼다.

혹여 일이 커지는 것을 미리 방비하고자 함이다.


장포숙관에 가까이 다가가니 앞 건물 1층에서 퍽퍽 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수하와 함께 온 길현의 인상이 더욱 구겨진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길현.

의외의 광경에 살짝 이채를 그린다.

‘저자는?!’

지금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높이 들려진 망독군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인물은 길현도 익히 아는 얼굴이다.

이곳 장포숙관의 주인인 연곽이다. 그의 부모를 따라 대를 이어 장포숙관을 물려받아 운영한 지 근 30년이나 된 인물.

그가 얼굴이 벌게져서는 온 힘을 다해 망독군의 엉덩이에 몽둥이를 내리치고 있다.

퍽. 퍼걱.

“크왁!”

“크어.”

몽둥이가 꽂힐 때마다 망독군의 엉덩이는 아래로 축 내려갔다가 반사적으로 있는 힘껏 튀어 올라 부르르 떤다.

그 엉덩이에 다시 몽둥이가 꽂히고.

“잠깐!”

길현은 은은한 내력을 실어 외쳤다.

이 정도면 연곽 정도 인물의 내부에 진동을 전하기엔 충분했다.

“힉.”

과연, 놀란 연곽이 움찔하니 몽둥이질을 멈춘다.

그러자 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다.

“어? 뭐 하는 거예요? 그것들이 여길 엉망으로 만든 거 보상 안 받을 거예요?”

얻어맞아 나뒹군 것이지만, 원인은 분명히 그들에게 있는 건 맞다.

그러면서 연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다.

연곽은 가슴의 기복이 안정되는 것을 느끼고는 소리친 자를 한 번 보고 여인, 휘산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녀석들 중 저놈하고 저놈, 그렇게 이곳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휘산영이 반색을 그린다.

“호오. 그래요?!”

그녀가 몸을 돌려 길현을 바라본다.

휘산영, 옷차림이 특이하고도 과감하지만, 깜찍하고 예쁘다.

‘흐음.’

길현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눈이 확 깨일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이 더 있고, 그 옆에 사내 하나가 있다.

‘냉기가 흐르지만, 과연 망독군 놈들이 꿈틀거릴 만큼 아름답군. 헌데, 일행이 조금 더 있다고 했는데?’

그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길현.

그가 앞으로 나서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깜찍한 여인에게 다가간다.

“내 수하들이 실수했군.”

바로 하대를 하자 깜찍한 여인 휘산영의 눈매가 살짝 치켜진다.

“이 아저씨가 개념이 없네.”

그녀의 음성, 길현은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뻐끔거린다.

그러다가 버럭 화를 내려는 순간 휘산영이 몸을 움츠리며.

“승우 오라버니-.”

뭔가 야릇하기까지 한 비음의 음성을 흘린다.

길현은 그에 여인이 믿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고, 부름을 받은 공승우는 또 입맛을 다시고 만다.

“휴-.”

공승우가 한숨을 쉬며 다가오자 길현의 눈에 노기가 떠오른다.

별 존재감이 없는 사내. 들어서면서도 여인들의 기세만 느껴졌지, 사내는 있는 둥 마는 둥이었는데, 그가 나서니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존심이 팍 상했다.

“이것들이 정말!”

결국, 화가 치밀어 손을 번쩍 드는 길현.

그 앞으로 무언가 히끗한 것이 불쑥 나타난다.

‘어?’

많이 보았던 물체. 주먹이다. 물론, 자신의 것은 아니다.

길현은 시야를 꽉 메우는 주먹을 보며 순간 이게 뭔가를 생각했지만, 짧게 끊기고 만다.

“!”

그대로 있다가는 낭패를 당할 정도이다.

“우왁!”

길현은 다급하게 외치며 급히 양팔을 들어 안면을 보호했다.

파각!

다행히 눈앞에 드러난 주먹에서 코뼈는 보호했지만, 밀려드는 힘은 해소하지 못했다.

급히 몸을 뒤로 퉁기듯 돌리는 길현.

바닥을 차고 빙글빙글 돌아 밀려든 힘을 뿌리칠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처럼 되었다면 말이다.

고개와 몸은 이미 바닥에서 떠올라 뒤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 속도가 좀 이상하다.

‘어라?’

길현이 의아함을 느끼는 동안 무언가 가까이 다가듦이 느껴지더니, 쾅 소리와 함께 뒤통수로 엄청난 충격이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크으으.”

바닥에 뒤통수를 부딪치고는 꼴사납게 데구르르 구르다 철퍼덕 엎어지고 마는 길현.

움찔. 길현은 한차례 미동을 하더니.

“씨벌!”

하고 고함치고는 벌떡 일어난다.

일어남과 동시에 자신이 지닌 모든 기운을 끌어올리는 그.

그때 마침 일이 있다고 나갔던 한상준이 들어오다 그 장면을 목격한다.

‘저 기운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길현이 내뿜는 기운이 무엇인지 안다.

‘화룡?!’

길현의 기운은 팔룡선무회 중 화룡 일맥이 지니는 기운, 그중에서 화룡을 보좌하는 화룡오대에 속한 자들이 지니는 기운이다.

‘저 정도면 부대주급이련가? 저자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이지?’

한상준은 누군가를 만나고 오는 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해야만 할 일이 있기에 그들을 만나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왔다. 더불어 몇몇 정보도 얻고 말이다.

그 얻은 정보에는 자신에게서 시간을 빼앗아간 그에 관련된 사항도 있고, 그와 뜻을 맞추어 움직이는 자들의 정보도 있다.

한상준에게 정보를 전해주는 이는 태제륙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다.

물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뒤에서 오시하는 팔룡선무회에 속한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을 용천백령수(龍天伯領守)라 부른다.

용천백령수는 일월룡(日月龍)의 힘.

60의 용천백령대(龍天伯領隊)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령환대(領宦隊)는 3개 대로 구성되어 각종 정보를 취급한다.

용천백령수의 수장을 령수(領守)라 부르며 그 아래로 10인의 령사(領使)가 존재한다. 령사는 각기 6명의 령환(領宦)을 부리며, 그 령환이야말로 실무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령환의 아래로 용천백령수를 구성하는 이들을 모두 령도(領徒)라 부른다.

한상준은 령환을 만나 필요한 정보를 얻어왔다.

그 중 화룡의 움직임도 들어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화룡오대에 속한 자를 만난 것은 의외였다.

‘화룡오대 중 3대와 5대가 자공성으로 이동했다고 하더니 이곳에서도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말인가?’

한상준은 이전처럼 나서지 않은 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기운을 있는 데로 끌어올린 길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비록 지금은 망독군들을 이끌고 황덕상단에 들어와 있지만, 자신은 화룡오대 그 중에도 4대의 부대주이다.

태제륙에 존재하는 여러 성검사급의 능력을 지닌 자신이다.

누구에게도 이런 취급은 받아보지 못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게 하다니.

화가 치민 길현은 상대가 자신을 쉽게 후려쳤다는 바를 망각했다.

그저 자신이 너무 방심을 했다고만 여길 뿐.

“너 이 자식! 죽여 버릴 테다!”

으르렁거리는 길현의 모습에 공승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태제륙에 오게 된 후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보고 싶은 이들은 보지도 못하고, 호약란과는 뜻하지 않은 관계를 맺어 미안함이 가득하다. 말로 소통하는 것은 아직 요원하고, 문화도 환경도 달라 한국에서와는 달리 어색하기만 하다.

나라 간의 전쟁이 있고, 생명을 빼앗고자 무기를 휘두르는 이들은 자연스러울 정도로 많다.

망독군이라는 잔혹하고 후안무치한 자들이 종횡하고, 그런 자들을 그대로 두는 나라의 위정자, 군황부에 존재하는 자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망독군.’

길현이라는 자가 오기 전에 휘산영은 자신들을 덮치려던 자들을 마구 후려쳐 그들이 티루 지방에서 온 망독군임을 알아냈다.

사라국과 상조국의 국경부근에 존재하던 망독군들이 쫓기듯 티루로 이동했고, 그렇게 모인 망독군들을 길현이란 자와 그의 수하 몇이 와서 손아귀에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곳 다린으로 이동해 황덕상단에 들어갔다고 하니.

그 이상의 정보는 없지만, 휘산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물산국의 지영군이 있으니 말이다. 하여간.

공승우는 태제륙에 와서 이미 망독군과 몇 번 마주쳤다.

곤도에서 당시 마녀로 불렸던 호약란과 만날 때도 망독군이 있었고, 회암산에서도 그들을 만났다. 용철과 장여련에게서 망독군들에 대해 전해들을 때 공승우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화가 나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 또 망독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부들거리는 망독군들이야 지금도 줄기차게 맞고 있다. 휘산영이 장포숙관 주인 연곽에게 어서 치라고 종용해 퍽퍽거리고, 덩달아 부스스 일어났던 용철이 아직 술에서 덜 깬 채 팔을 걷어붙인 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몽둥이질을 도와주고 있다.

‘캬하하.’ 하고 웃으면서 말이다.

공승우는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뿌리는 망독군 수장을 본다.

꽈득.

주먹을 꽉 쥔 공승우.

일단.

“맞고 하자.”

제법 그럴듯한 발음이다. 휘산영과의 언어습득 교육이 가져온 결과.

말을 마친 공승우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린다.

길현은 벼락같이 다가드는 공승우를 보며 두 주먹을 우득 쥔다.

상대가 빠르다는 것은 이미 경험했다.

강하다고 인정하지 않지만, 경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벌어진 상황을 가볍게 생각하고 가져오지 않은 검이 아쉽다.

단번에 베어버려야 속이 시원할 텐데 하고 말이다.

공승우가 다가들 공간을 향해 길현이 자신의 내력을 쏟아 부은 주먹을 횡으로 질러간다. 정확히 다가들 공승우의 얼굴을 노린 일격이다.

부앙.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나는 소리가 섬뜩하다.

하지만, 공승우는 아까처럼 적당히 해줄 마음이 없다. 상대가 망독군임을 알았으니.

빠르게 다가들다가 급히 멈춰 길현의 주먹을 흘리고는 상체를 살짝 숙였다가 올려세우며 그의 빈 옆구리를 후려친다.

퍼억!

“커어!”

왼쪽 옆구리로 파고드는 충격에 길현의 두 눈이 치떠진다.

더불어 바닥에 딛던 두 발이 떨어지며 몸이 떠오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도 왼쪽으로 꺾이고 일시적으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만큼 단 한 방이었지만, 전해지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공중에 뜬 길현. 그의 안면으로 재차 히끗한 것이 파고든다.

쾅!

마치 속이 빈 나무 합판을 후려쳐 울리는 소리처럼 길현의 안면이 울어대고, 그의 몸뚱이는 뒤로 날아가 장포숙관의 벽면에 처박혀 든다.

쿵. 쿠둥.

부딪혀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길현.

그의 몸에서 잔경련이 일어 부들거린다.

그것을 보며 한상준이 속으로 혀를 찬다.

‘쯔, 화룡오대 부대주 정도로는 역시 안 되는군.’

새로 수령이 된 길현이 한 방에 나자빠지자 함께 온 수하 둘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떤다. 길현은 그들의 기준에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능력자다. 그런 길현을 저리 만들었다는 건.

공승우가 그들을 쳐다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급히 움직여 이미 머리를 박은 동료 곁에 쿵 소리를 내며 머리를 박는다.

“얼쑤!”

그에 신이 난 용철이 후다닥 뛰어가 새로 합류한 그들의 엉덩이에 몽둥이를 내리친다.

퍼걱!

“크오-.”

퍼억!

“커어억!”

용철도 망독군은 싫다. 아주.


휘산영은 쥐었던 주먹을 풀며 자세를 바로 한 공승우를 보며 활짝 웃는다.

이전보다 더 깊은 호감을 두 눈에 담은 채.


§


장포숙관으로 방수(邦手)들이 들어왔다.

방수는 나라에서 염폐를 받는 자로 배정된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자들이다. 한국에서와 비교한다면 경찰 유사하다 하겠다.

방수 열 명이 들어서고 방수관 하나가 다가와 연곽에게 상황을 묻는다.

하나같이 엉덩이에 핏물이 밴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십여 명의 사내들이 망독군이라는 말에 방수들이 서둘러 그들을 한데 묶더니 줄줄이 끌어내 간다.

망독군은 평민의 독(毒)이다.

그러니 방수들은 후에 어찌하든 당장은 망독군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모두 방수청(邦手廳)으로 압송이다.

그리고 이 일은 곧 황덕상단으로도 전해졌다.


상단 내원 깊숙한 집무실.

황덕상단주 황수곤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허. 숙관에서 횡포를 부리다 떡이 되어 방수청으로 실려 갔다고?”

“예, 아버님.”

“허. 허허. 뭐 하는 짓들인지?”

자신을 도와 긴상단과 요하상단을 흔들겠다더니, 이건 시작도 하기 전에 말썽이나 만들었다.

자신에게 이 일이 알려진 것을 보면, 다른 두 상단에도 알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반 평민에게도 알려지고 다린 지역의 유지들에게도 알려질 것이다.

거기서 황덕상단이 망독군을 데리고 있다는 말이라도 퍼지면.

“관아, 다른 놈들은? 다른 놈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

황수곤의 다급함이 서린 음성에 황관이 답한다.

“모두 상단에서 내보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다행히 길현과 함께 온 자들 몇몇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 수가 적지 않음에도 용케 빠르게 처리했다.

“흠. 그들에게도 이 일이 알려져서는 좋을 것이 없겠지. 하지만, 방수청에 끌려간 자들이 우리 상단에 들어왔었다고 입이라도 벌리면.”

“이미 방수령에게 언질을 건넸습니다.”

황관의 말에 그제야 황수곤이 한숨을 내쉰다.

“후-. 잘했구나. 허나, 이제는 어쩐다?”

옥차, 독점의 야욕을 그는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다.

계획대로라면 망독군들은 티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와 긴상단과 요하상단의 상행을 방해하고, 그들에게 피해를 입혀가는 것으로 위장할 것이며, 그 틈에 황덕상단이 주춤한 물자 조달을 인계받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나가 시작되고, 길현이 그들의 힘을 더해 두 상단을 더욱 압박하거나 은밀하게 작업해 황덕상단의 입지를 굳혀나가 결국 다린의 유지와 군황부로부터 독점권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사라국의 군황부는 그들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으니, 황덕상단은 명분만 만들어 두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명분의 시작이 되어줄 망독군들이 삐걱거리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 황수곤에게 황관이 말을 잇는다.

“아버님, 길현을 대신해 한 사람이 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황수곤이 얼른 묻는다.

“그들이더냐?”

“예. 잠시 후면 도착한다고…….”

그런 황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불쑥 그들이 앉아있는 집무실로 들어섰다.

20대 후반의 잘생긴 외모, 얇은 입술에서 어딘지 냉정함이 느껴지는 사내, 화룡4대 대주 적성찬이 그이다. 적성찬은 화룡일맥에서도 현재 화룡인 단철심의 다음을 이을 두 명 중 한 명이다.

적성찬은 집무실로 들어서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성찬이라고 합니다. 굳이 누구라고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음성이 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맑지도 않았다.

게다가 다가가는 것이 꺼려질 기도를 흘리는 적성찬.

황수곤이 일어나 인사를 받는다.

“상단주 황수곤이오. 물론 말씀 안 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말끝을 일부러 흐리자 적성찬이 씨익 웃는다.

“방수청에 들어간 망독군들은 알아서 처리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이렇게 만든 자들 역시 적당히 손을 봐줄 생각이고요. 황단주님과 처음의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니, 근심은 덜어 놓으시지요.”

말하며 허리 양쪽에 하나씩 달린 도집을 툭툭 쳐 보이는 적성찬.

그에 황수곤이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그야 물론이지요.”

황수곤의 시선이 적성찬의 쌍도로 흐른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황수곤. 긴장이 되어서 그렇다.

뽑히지도 않은 쌍도에서 흘러나오는 예기는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바다.

황수곤의 시선을 느꼈는지 적성찬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내 도는 적연(赤燃)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적성찬의 도, 적연쌍도(赤燃雙刀). 특급의 마황석을 함유하고 시전자의 내력을 증폭시키며, 불의 속성을 뿌려 상대를 베어내는 도.

그가 화룡4대의 대주가 되면서 단철심에게 받은 무기이다.

이후 그의 실력에 지대한 보탬이 되어준 도.

“조만간, 적연에 그자들의 목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자들이라 하면?”

“장포숙관에서 내 수하들이 신세 진 자들 말입니다. 게다가 나를 번거롭게까지 했으니 그 대가는 받아야지요.”

“아, 예.”

황수곤은 괜히 목이 쭈뼛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늘하게.


다음 날.

공승우 일행은 장포숙관에서 나와 소정항(紹汀港)을 향해 방향을 잡고 이동을 시작했다.

마차 한 대와 말 두 필이 함께 움직이는 그들. 두 필의 말엔 각각 공승우와 호약란이 타고 있다.

전날 숙관에서 소란이 있었지만, 일행 중 한상준을 빼고는 그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망독군과 관계되어 한차례 드잡이가 벌어졌다고만 생각할 뿐.

한상준은 여전히 어자석 용철의 옆에 앉아 스치듯 지나치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화룡이 움직인다. 그렇다면, 적룡도 움직이고 있을 터. 그에 대립하는 황룡과 해룡도 움직일 것이고. 음……. 다른 이들은 아직 인가? 아니, 청룡은 이미 움직였다고 봐야 하겠지. 흐름은? 나머지 용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태제륙이 들썩이겠군.’

아직은 가시화되지 않은 일들이다. 아직은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던 한상준의 눈매가 꿈틀거린다.

‘화룡대. 역시 왔군.’

화룡 단철심의 전투력. 화룡5대.

팔룡선무회 내에서는 간단히 화룡대라 일컬어지는 그들은 총 600명이고, 그 중 2대는 200명, 2대를 제한 나머지 1대에서 5대까지 각 100명씩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없지.’

슬쩍 공승우를 바라보니 그도 누군가 다가드는 것을 느끼는지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내 마차 앞길을 막는 자들.

5명.

그 중 허리 양쪽에 하나씩 도를 찬 인물.

매끈하게 잘생긴 적성찬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연다.

“어떻게 죽여줄까?”

직후 일시에 화악 번지는 적성찬의 기운이 마차를 집어삼키자 말들이 놀라 날뛰기 시작한다.


§


다린의 방수청에 사단이 일어났다.

전날 잡혀온 망독군들 십여 명이 모두 주검으로 변해버린 탓이다.

방수청의 옥사를 지키던 방수들은 그들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

진득한 피비린내가 풍겨와 옥사를 살피니 이미 망독군들 모두 목을 잃고 바닥에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깔끔하게 한 번에 잘린 수급.

망설임도 거칠 것도 없이 질러낸 솜씨다.

그리고 함께 잡혔던 길현이 사라졌다.

옥사에 끌려올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그.

당연히 무기 역시 소지하지 않았다.

그가 망독군들을 죽이고 달아난 것은 아니다.

누군가 옥사로 들어가 그만 빼돌리고 나머지를 처리한 것이 분명했다.

방수청은 범인을 잡고자 비상을 걸고 긴급하게 움직였다.

다린 전역이 시끄러워졌지만, 방수청의 방수들은 어떤 흔적도 찾아내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계속.


@@@@@@@@@@


벌써 4월 중순이네요.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가는 헐레벌떡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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