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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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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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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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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40쪽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7

DUMMY

7.


용익조가 부리를 세워 깃털을 쪼는 모습을 뒤로 당환을 따라 넓은 길을 걷는 단홍상.

수십 채의 집을 한울타리 안에 모아놓아 마치 작은 마을 하나가 자리한 것처럼 넓은 적룡의 가옥. 이곳 용화채에 적염당의 두 개 당이 상주하니 그 크기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하지만, 넓기는 정말 넓다.

그렇게 중앙 가장 크고 웅장한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들어가시지요.”

당환이 가볍게 고개 숙이며 단홍상을 안으로 들인다.

마주 인사를 건넨 단홍상이 당환을 뒤로 두고 들어서자 문 안쪽으로 잘 꾸며진 정원이 보이고, 그 한쪽으로는 작은 인공호수가 보인다.

정원을 가로질러 인공호수 중앙에 만들어진 정자로 이어지는 교각을 건너자 정자 아래에서 차를 마시던 노인이 다가든 단홍상에게 웃음을 보인다.

“어서 오게.”

그에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단홍상.

“어르신,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허허. 나야 다를 것이 없지. 그래, 오늘 자네가 온 것을 보니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닌가 보군.”

“…….”

단홍상이 말을 주저하자 가볍게 웃으며 노인이 손짓을 건넨다.

“앉게.”

“예.”

단홍상은 노인의 앞에 공손히 앉아 잠시 기다렸다.

가는 입술과 눈매, 한쪽 눈이 다른 눈에 비해 작고 끝이 아래로 삐죽하게 솟은 매부리코의 주인, 적룡 우길청.

“어려워 말고 말하게.”

우길청의 온화한 음성을 들음에도 단홍상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눈앞의 노인은 세인들에게 절대의 성검사로만 알려졌지만, 일월룡이 행방불명이 된 지금, 실질적으로 팔룡선무회 내에서 가장 입지가 큰 인물이다. 게다가, 저 보이는 겉모습 안쪽으로는 잔혹함과 거대한 욕망을 품고 있음이니.

단홍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화룡께서 진행하는 일에 몇 가지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변수라.”

가만히 우길청을 살피는 단홍상.

‘역시. 이미 모든 바를 아는군. 그럼에도, 내게 묻는다는 건…….’

우길청은 가장 강성한 세력을 지닌 인물이다. 화룡대의 일이 틀어진 바를 그의 정보대인 비홍(秘紅)을 통해 들었으리라.

이는 자신을 떠보려는 것이 분명하다.

“예, 옥차에 소양각을 풀어 유통하려던 바가 동해 상에서 괴 선단의 습격으로 무산되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로 인하여 사라국을 돕던 화룡3대가 전멸했습니다.”

“허허. 그리되었군. 화룡께서 상심이 크겠어.”

“예.”

“흐음.”

가만히 턱을 쓰다듬는 우길청.

그러길 잠깐. 그가 다시 입을 연다.

“동해의 일은 해룡이 끼어든 것일 테지만, 화룡3대를 전멸시킨 자들은 감이 오질 않는군. 그래, 화룡께서는 어찌하신다고 하던가?”

“사라국 상용장인 염마철이란 자를 통해 군선을 융통하여 재차 출항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본인께선 직접 상조국과의 전투에 개입하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후후. 화가 많이 나신게로구먼.”

“…….”

단홍상의 침묵에 가볍게 웃은 우길청.

“그건 그렇고, 마침 자네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어떤 일이옵니까?”

“청룡의 딸이 설빙궁의 생존자와 만나 북해도로 이동한다는 바를 들었는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한 표정을 그리는 단홍상 그러나 속으로는 놀라고 있다.

‘청룡일맥에도 손을 뻗어 놓은 것이군. 실로 무서운 분이시다.’

예전 팔룡선무회 회합 때 청룡이 자신의 딸로 하여금 그 임무를 수행케 하겠다고 했지만, 그 경과는 아직 누구에게도 밝힌 바가 없다.

그럼에도, 적룡인 우길청이 이를 안다는 것은 청룡 일맥에서도 꽤 인망 있는 자를 손에 쥐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의 정보대인 지영군을 남모르게 후볐다는 것인데.

하여간.

우길청의 말이 이어진다.

“설빙궁의 생존자는 사라국의 마녀라 불리던 여인일세. 지금 청룡의 딸과 함께 북해도로 가고 있지. 자네가 가서 그 아이들을 네게 데려오게.”

“그 말씀은……?”

“굳이 살아 있지는 않아도 괜찮네.”

“!”

단홍상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간다.

왜 그 여인들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 그녀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는 청룡 일맥을 흔드는 초석을 다지기 위함이리라.

자신했던 일을 흩트리고, 청룡의 후계자를 제거하여 청룡을 격동으로 몰아 결국에는 그를 죽이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같은 팔룡 내에서 적룡의 의지에 반하는 이들을 한둘씩 제거하기로 이미 계획을 세웠음이 분명하다.

적룡과 가장 반목하는 황룡이 아닌 청룡을 우선으로 잡은 것은 명분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또한, 황룡의 세력인 용무대(龍武隊)의 건재도 한몫할 것이고, 그래서 청룡이 먼저이다.

황룡과 해룡, 청룡은 분명히 적룡과 뜻이 다르다. 팔룡선무회 회합에서도 드러났지만, 그 이전에 이들 셋의 일월룡을 향한 존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룡이야 오래전부터 적룡을 좇아 움직였으니, 남은 팔룡은 묵룡과 백룡, 비룡이리라. 아니, 아마도 묵룡은 이미 적룡과 한뜻일 것이다.

그것이 화룡의 판단이다.

백룡과 비룡은 모두 여인이다.

순백의 면사로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백룡,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비룡.

두 여인이 누구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 팔룡간의 세력은 한쪽으로 기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표면에 드러나면, 팔룡들의 전쟁이 일어난다.

태제륙 각 나라 간의 전쟁과는 다른 은밀하면서도 격렬한.

그게 아니라면, 나라 간의 전쟁에 그들의 힘을 싣는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이 일월룡의 부재로부터 시작됐다.

누군가의 암습에 죽음을 당했다는 설이 유력한 일월룡.

그 누군가가 누구일 것이라는 건 짐작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사항이다.

아직은.

“잡아 바치겠습니다!”

단홍상이 결연한 음성으로 답하자 우길청이 호방하게 웃는다.

“하하. 과연 화룡께 이은 피는 뜨겁군. 수호적 다섯을 붙여줄 터이니 다녀오게.”

“!”

수호적(守護赤)은 적룡만을 위해 존재하는 측근.

개개인의 무력이 각 팔룡들에 버금간다고 전해지는 이들로 수장인 적비(赤秘) 아래로 20인이 존재한다.

그들 중 다섯이라면.

단홍상이 깊이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화룡 일맥은 자신에게 넘어온다.

적룡이 자신에게 수호적을 내어주어 지원한다면, 경쟁자인 적성찬이 아무리 발악을 한다고 해도 화룡의 맥을 이을 수 없다.

적룡의 인정을 받는 자.

단홍상은 일월룡이 사라진 지금. 팔룡 아니, 태제륙에서 가장 강성한 존재는 적룡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기회일 뿐이다. 이 기회를 결과로 만들려면 청룡의 딸과 설빙궁의 생존자를 적룡에게 데려와야 한다.

단홍상의 두 주먹이 힘껏 쥐어진다. 그의 각오와 함께.

그를 보며 적룡 우길청이 입가에 미소를 그려낸다.


으슬으슬.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휘산영이 주변을 둘러본다.

“왜?”

호약란이 묻자 휘산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한다.

“갑자기 싸늘해서.”

“싸늘? 아무렇지도 않은데.”

“…….”

월선은 여전히 별 탈 없이 바다를 가르며 북해도로 나아간다.

북해도가 가까워지면서 바다의 일렁임이 생기고 대기는 조금씩 차가워지고는 있지만, 휘산영처럼 무공을 지닌 이들이 싸늘하다고 느낄 만큼은 아니다.

“기분 탓인가 봐.”

휘산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호약란이 걱정을 담은 눈으로 말한다.

“선실에 내려가서 좀 쉬어.”

“아무래도 그래야 하려나.”

그러면서 힐끗 돌아본다.

언제부터 죽이 맞았는지 공승우와 사혼, 만혼은 각자 낚싯대를 하나씩 쥐고 연방 바다로 줄을 늘어뜨린다.

월선이 비록 쾌속선이 아니라 다소 느리게 나아간다고 해도 가만히 멈춘 것도 아닌데 무슨 물고기를 낚겠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을 건네고는.

“쳇. 바보들.”

하며 몸을 돌린다.

‘좀 쉬어야겠다.’

휘산영이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내려가는 것을 보며 가볍게 웃은 호약란이 공승우 곁으로 다가간다.

“뭐, 잡혀요?”

공승우가 피식 웃는다.

“아니.”

낚싯대를 드리운 것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공승우도 뭔가를 잡겠다는 뚜렷함은 없었다. 그저 배가 지나는 바다를 보는 것이 좋았다.

반면, 바다에 잠긴 낚싯줄 끝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사혼은 달랐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아가씨 몸통만 한 걸 잡아 올릴 테니까.”

공승우가 들어보니 이 근방 해역엔 예전 한국 동해에서 잡아 올리던 다랑어처럼 청색 등판에 크고 통통한 유선형으로 붉은 살점을 지닌 물고기가 있다고 했다.

이름이 청배어(靑背魚)라고 했던가.

이 청배어는 움직이는 먹이만 잡는지라 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배에서 잡는 것이 제격이라 했다.

게다가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고 하니 한 마리만 낚기 시작하면 줄줄이 끌어올릴 수 있다 한다.

사혼의 자신 있는 말에 호약란은 그저 가만히 웃는다.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 사라국의 마녀라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사혼과 만혼은 특히.

그들에게 한상준은 호약란의 과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약란이 공승우를 향한 마음을 연 그때부터, 그녀는 사라국의 마녀라는 포장을 찢은 것이니 말이다.

호약란이 그리 웃자 사혼이 헤벌쭉 입을 벌린다.

잘하면 침까지 흘릴 지경이다.

하진, 그동안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옷만 입고 다니던 호약란이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옷으로 갈아입었으니. 비록 하늘거리는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었지만, 그녀의 매끈한 다리 곡선은 그 어느 때보다 매혹적이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손에 쥐어진 낚싯대가 확 당겨진다.

“헛!”

놀란 사혼이 얼른 움켜쥐자 늘어졌던 줄과 대가 지잉 울리듯 크게 휜다.

“왔다, 왔어!”

눈에 활력이 차오른 사혼이 왼발로 바닥을 힘껏 디디며 버티기 시작한다.

한번에 확 당겨버리면 줄이나 낚싯대가 부러져 나갈 수 있기에 당기고 풀고를 반복해 지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신나게 말한 사혼.

그러던 중 만혼도.

“나도 왔다!”

고 소리쳤고, 공승우 역시.

“옷!”

하며 손에 힘을 바짝 쥐었다.

그러자 호약란이 공승우 곁에 바짝 붙어 함께 즐거워한다.

사혼과 만혼이 그 모습을 보더니 순간 힘이 쭉 빠지는 듯하더니 더욱 눈을 빛낸다.

반드시 자기가 먼저 낚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


북항(北港).

북해도의 하나뿐인 항구이다.

예전 설빙궁이 존재할 당시엔 이곳 북항 역시 사라국의 소정항 못지않게 번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그때의 번화(繁華)는 찾아볼 수가 없다.

월선에서 내린 호약란은 회한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10여 년 만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녀의 사부인 방수용과 함께 숨죽이고 벗어났던 항구.

당시의 혼란함이 그녀의 시야에 잡히는 듯하다.

설빙궁이 괴멸되었다는 소문은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북항을 휩쓸었고, 그녀와 방수용이 항구를 벗어나고자 찾아들었을 때는 상당수가 터전을 버리고 바다를 건넌 후였다.

소문과 함께 항구에 터를 잡았던 몇몇 사람들이 죽어나간 후였으니.

호약란의 쓸쓸한 눈빛이 항구를 흐르는 동안 그녀 곁으로 다가든 공승우가 가만히 손을 잡아준다.

호약란의 시선이 자신의 손으로 향하고 이어 공승우의 얼굴, 그의 눈으로 흐른다.

눈매와 입가가 그리는 부드러운 미소가 보인다.

그에 살짝 물기 어린 눈을 가만히 감으며 호약란이 공승우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살며시 그에게 기댄다.

도망치듯 떠났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머리를 아니 마음을 기댈 사람이 있다. 심장에 차오르는 따스함에 굳었던 마음을 살며시 녹이는 호약란.

그런 두 사람의 뒤에서 휘산영이 눈을 치뜨고 있다.

‘이젠 염장질도 도가 터 가는 군!’

북해도를 다시 찾아온 호약란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바를 짐작하기에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하는 짓은 마음에 안 든다.

호약란과 공승우 서로의 마음을 느낀 다음부터 자신은 그저 멀찍이 거리를 벌려 청룡에게서 전해진 명령만 완수할 뿐이라고 다짐했지만, 휑하니 비어가는 느낌은 가슴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눌러야만 진정이 될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는 그 느낌이 뭔지 알겠지만, 그러기에 더욱 마음에 안 든다.

그런 휘산영 곁으로 다가든 사혼.

“나도 여기.”

하면서 팔과 어깨를 쓰윽 내민다.

휘산영에게 기대라는 몸짓이다.

“호. 그으래?!”

하고 반색하는 휘산영.

그녀의 반응에 사혼이 빠르게 만혼을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에 만혼은 뭐 씹은 표정을 그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킨다.

“뭐?”

사혼이 씨익 입가에 승자의 미소를 단 채 되물어도 만혼은 손가락을 흔들어대며 열심히 무언가를 가리키기만 한다.

그제야 이상한 느낌을 받은 사혼.

휙 소리 나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 휘산영의 주먹이 작렬한다.

퍼걱!

“꾸억!”

저만치 나동그라지는 사혼.

희미해지는 의식 속으로 휘산영의 날카로운 음성이 파고든다.

“뒤지려고!”

귀엽고 상큼한 외모와는 너무도 안 어울리는 거친 그녀의 음성에 만혼이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괜히 나한테도 튈라. 떠그널.’


공승우 일행은 오늘은 북항에서 보내고 내일 설리라는 마을로 이동하기로 했다.

예전의 북항이라면 설빙궁으로 가고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설빙궁을 찾는 이가 아무도 없기도 하고,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항구인지라 무리였다.

설빙궁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얼음산, 설두산(雪頭山)과 그 줄기를 넘으려면 아무리 무공을 몸에 지닌 이라 하더라도 산행 준비를 해야만 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설리에 가면 그나마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하니.

소정항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는 북항.

서늘한 주변을 둘러보던 일행은 일박 장소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사라국의 또 다른 항구인 정요항(頂要港)으로 여섯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요항은 사라국 북부에 있는 항구로 주로 북해도를 오가는 항구였으나, 북해도의 북항처럼 성세가 이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뱃길을 이동수단으로 삼아 움직이는 이들이 있어 북항보다는 나은 편이었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거친 사내들이 모여들어 항구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삭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요항에도 대표급으로 치는 술집 하나가 있다.

해린(海鱗)이란 이름을 지닌 술집. 이곳의 주인은 서른 후반의 여인으로 거친 사내들이 모여들 즈음 술집을 인수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농염하고 끈적이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매혹적인 여인, 남들에게 소이로 불리는 그녀는 나이에 비해 젊고 탱글탱글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해린의 주렴을 걷으며 여섯 사내가 차례로 들어선다.

묵직한 느낌이 드는 여섯 사내의 등장에 벌써 해린의 곳곳을 차지해 술판을 벌이던 사내들의 시선이 일시 모여든다.

하지만, 여자도 아니고 시커먼 사내들인지라 곧 관심을 끊고 각자 마시던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완전히 들어선 여섯 사내는 장내를 가볍게 훑어보더니 한쪽 자리로 걸어가 앉는다.

그런 사내들에게 해린의 주인 소이가 얼굴 가득 웃음을 걸고 다가든다.

“어머. 어디서 오신 분들이래? 못 보던 얼굴이네요?”

그에 여섯 사내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사내, 단홍상이 소이의 풍만한 가슴을 보고 씨익 웃으며 답한다.

“그건 알 것 없고. 술과 간단한 음식이나 내와.”

자신보다 젊은 사내가 대뜸 반말하는데도 소이는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잇는다.

“에이-. 너무 딱딱하시다.”

하면서 슬쩍 다가가 가슴을 흔드니 단홍상의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눈앞에서 출렁이는 수밀도 짙은 한 쌍의 과육.

꿀꺽.

크게 들리진 않았지만 단홍상의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넘어간다.

그런 단홍상을 보며 더욱 짙은 미소를 날리는 소이.

“나 여기 앉아도 될까?”

그에 단홍상이 슬쩍 일행을 살피니 그들은 자신과 이 여인이 무얼 하든 관심도 없어 보인다.

“아이-.”

소이가 끈적이는 음성으로 채근하자 단홍상이 시선을 돌려 소이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관능이 줄기줄기 단홍상을 자극한다.

“어, 어. 앉아.”

그러자 활짝 웃으며 털썩 앉는 소이.

그녀가 저쪽에서 술 심부름을 들던 아가씨를 향해 소리친다.

“은희야, 여기.”

소이의 음성에 고개를 돌리는 20대 초반의 아가씨.

단홍상은 그 아가씨의 얼굴을 보는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아름다웠다.

막 피어난 붉은 장미처럼 화려하고 매혹적인 미모.

단홍상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선다.

그런 단홍상의 손을 잡아 다시 앉히는 소이.

“아이-. 어딜 봐.”

몸이 배배 꼬일 만큼 유혹적인 음성에 정신을 돌리는 단홍상.

“흠흠.”

멋쩍게 기침을 흘리는 그.

소이가 손을 뻗어 단홍상의 허벅지를 슬쩍 잡는다.

‘헛.’

단지 손이 닿았을 뿐인데 묘한 쾌감을 느낀 단홍상.

소이가 묻는다.

“그런데 어디서 온 거야?”

이미 말을 놓았지만, 단홍상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 그건 알 것 없다고 했잖아. 술이나 줘.”

“치이-, 그러시든지.”

새침하게 말을 받은 소이가 다가든 은희라는 아가씨에게 술과 안주 몇을 시킨다.

소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리는 은희의 눈빛이 일시 번뜩였다가 사라진다.

여섯 사내.

화룡의 후계라 자처하는 단홍상과 그를 도와 휘산영과 호약란을 확보하려 나선 수호적 다섯.

수호적 다섯 중 임시 수장 격인 마흔 후반의 사내, 노혼.

그가 비릿한 눈빛으로 단홍상과 소이를 보더니 시선을 해린의 내부로 돌린다.

여느 술집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어딘지 이질적인 기운이 섞여 있지만, 위협을 줄 만한 것은 없다.

사내들에게서 풍기는 느낌이 거칠기는 하지만, 이들 모두가 달려들어도 수호적 한 사람도 감당치 못할 수준이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인가?’

노혼은 그 해린에 대한 이질감을 뒤로 물리고 적룡 우길청이 단홍상 모르게 전한 말을 곱씹는다.

설빙궁의 후인을 확보하면 빙괴 채굴장을 알아내라는 것과 단홍상을 격전 중에 죽는 것처럼 처리하라는 말.

채굴장은 적룡이 빙괴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고, 단홍상을 죽이려는 것은 화룡과 청룡을 격돌하게 하려는 것이다.

빙괴의 소유.

청룡 휘정은 십여 년 전 설빙궁의 혈사가 적룡의 입김에서 일어난 일이라 가닥을 잡았다. 그렇다면 그가 당시 설빙궁이 보유했던 빙괴를 모두 가져갔을 터인데 어째서 채굴장을 알아내려 하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노혼은 소이의 손길과 그녀를 더듬으려 드는 단홍상을 내심 한심하다는 듯 보다가 시선을 돌려 버렸다.

북해도에 들어가 휘산영을 확보하면 죽을 목숨이다.

단홍상이 화룡의 후계로 실력을 키워왔다고는 하지만, 수호적 다섯을 한꺼번에 감당하지는 못한다.

‘마지막 여흥이나 즐겨라.’

씨익 그려지는 노혼의 미소를 보지 못한 단홍상은 소이의 매혹에 빠져 입가가 벌어질 뿐이다.


“하악!”

후끈한 열기로 가득한 방, 그 침상에 남녀 한 쌍이 벌거벗은 육신을 땀으로 번들거린 채 격하게 움직인다.

누운 사내의 몸 위로 탱글탱글한 둔부를 들썩이는 군살 없는 몸매의 여인. 잘록한 허리와는 대비되는 풍만한 가슴이 그녀의 움직임을 타고 위아래로 출렁인다.

반쯤 벌어진 여인의 입술 사이로 교성이 흐르고, 그 아래 놓인 사내는 여인의 엉덩이를 꽉 움켜쥔 채 숨을 헐떡인다.

“허윽. 당신, 정말 죽여주는군.”

사내의 음성에 여인이 고혹적인 눈매 아래로 달뜬 소리를 낸다.

“하아. 학. 좋아.”

그 소리 때문이려나, 사내는 급한 숨을 내쉰다.

“크으. 이제, 모, 못 참겠어!”

일순 경직되는 사내.

그에 따라 여인의 허리가 뒤로 휘고 출렁거리던 긴 머리카락이 곡선을 그리며 넘어간다.

방안은 여전히 후끈함으로 가득하다.


다소 지친 듯 보이는 단홍상의 팔을 베고 곁에 누운 소이가 단홍상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자기, 뭐 하는 사람이야?”

친근하기 짝이 없는 음성.

이미 충분한 만족을 느낀 단홍상이 피식 웃으며 답한다.

“뭐 하기는. 칼 쓰는 사람이지.”

“어머! 그럼 성검사?”

태제륙의 일반인이 보기에 칼을 쓰는 이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성검사이다. 각 나라 군황부와 깊은 연관을 맺은 지고한 신분.

동경을 담고 반짝이는 눈빛의 소이를 본 단홍상은 마음이 한없이 풀어진다. 지금 순간만큼은 그동안 품었던 어느 여인보다 이 여인이 사랑스럽다.

“그렇다고 보면 돼.”

그러자 소이가 갸웃거린다.

“사라국에 자기 같은 성검사가 있었나?”

“훗. 너는 사라국의 성검사를 모두 알아?”

“아니.”

“그런데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

그에 소이가 새치름한 표정을 그린다.

서른 후반의 나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

단홍상의 아래에서 또다시 불끈하는 것이 느껴진다.

“피-. 내가 이 장사 하루 이틀 한 줄 알아.”

삐친 듯한 음성에 단홍상이 자신의 팔에 기댄 소이의 머리를 와락 당겨 안아 가슴에 묻는다.

“한 번 더 할까?”

기대에 찬 음성에 소이가 단홍상의 옆구리를 꼬집어 틈을 내고는 빠져나온다.

“짐승!”

짐짓 싫은 듯 내는 음성이지만 그것이 또 확 당겨진다.

“이리와!”

벌떡 몸을 세우더니 소이를 와락 껴안는 단홍상.

“아이-. 왜 이래 정말!”

말과는 달리 단홍상의 손길에 감겨오는 소이.

식었던 열기가 들불처럼 번져나기 시작한다.


§


소이가 단홍상이 잠든 방안을 나서자 그녀를 기다리던 여인 은희가 못마땅한 표정을 그린다.

“이래야만 되나요?”

그러자 소이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어때서?”

“한 맥의 주인 되는 사람이 틈만 나면 아무 남자하고나 몸을 섞으니 하는 말이에요.”

따가운 질책에 소이가 ‘호호.’ 가볍게 웃고는.

“네가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너도 한번 해 볼래?”

질색하며 한발 물러서는 은희.

“됐고요! 짐작하신 대로 화룡의 새끼예요.”

그에 김빠졌다는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한 소이.

“다른 놈들은 적룡의 쫄따구?”

“예. 그것도 수호적이에요.”

“호오! 저것들이 이곳엔 무슨 일로 온 거지?”

“그걸 알아보려고 새끼 화룡하고 뒹군 거 아닌가요?”

냉랭하게 말하고는 몸을 돌리는 은희.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소이가 못마땅한 음성을 던진다.

“어? 너 갈수록 말이 거침없다. 네 말대로 나는 일맥의 주인이야.”

“흥. 퍽이나.”

“저것이!”

꽉 쥔 주먹을 드는 소이. 하지만, 곳 피식 웃으며 손을 내린다.

“에휴. 내가 저걸 뭐가 좋다고 키웠는지.”

“흥이네요.”

어긋나는 듯하지만, 애잔함이 숨겨진 음성.

은희는 소이가 왜 이런 삶을 사는지 잘 알지만, 그래서 더 속이 상했다.

그래서 그녀는 소이의 삶을 이렇게 만든 그를 증오했다.

더불어 사내라는 존재까지.

소이와 은희.

그녀들이 말한 일맥. 팔룡선무회의 비룡일맥이 이들이다.

소이의 본명은 반능려. 38세로 현 비룡인 그녀.

그리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은희. 지은희는 비룡의 후계이다.

앞서 가는 지은희의 귀로 반능려의 음성이 들린다.

“청룡이 설빙궁의 생존자를 찾았을 거야. 적룡 늙다리가 수호적을 화룡 새끼와 함께 이곳으로 보낸 것은 북해도로 넘어가 수작을 부릴 생각일 테고. 그렇지?”

“아시네요.”

“치-. 까칠하기는. 은희야.”

“왜요?”

“우리도 가자.”

그에 앞서 가던 지은희의 걸음이 우뚝 멈춘다.

“왜? 싫어?”

장난치듯 묻는 반능령의 음성에 지은희의 어깨가 살짝 떨려 든다.

난잡하기까지는 아니지만, 일맥의 주인으로서는 과한 남성 편력을 드러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왔던 반능려.

그녀가 과거를 버리고 이제 앞으로 나서려 한다는 걸 가자는 말 한 마디로 느꼈다.

“정말인가요?”

지은희가 되묻는다.

“그래.”

반능려가 담담히 말하자 몸을 돌린 지은희가 다가와 덥석 안겨든다.

“고마워요.”

“…….”

“정말로…….”

품에 안겨 가는 떨림을 그려내는 지은희의 머리를 쓰다듬는 반능려.

“바보.”

라고 한마디 하고는 꽉 끌어안는다.


다음 날. 단홍상은 아쉬운 눈으로 반능려를 한참을 보다가 저만치 가버린 수호적의 뒤를 따라 몸을 돌렸다.

그는 죽어도 모를 것이다.

지난밤을 자신과 뜨겁게 보낸 여인이 팔룡선무회의 비룡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절대로 북해도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가려 했을 테지만, 그건 단홍상의 생각일 뿐이다.

단홍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소 헤실헤실한 미소를 그리던 반능려의 입가에 위엄이 내려선다.

“지금 바로. 이곳을 정리한다.”

그에 어느새 그녀의 뒤로 나타난 여인과 사내들이 일사불란하게 대답한다.

“명 받듭니다!”

지은희와 해린 여기저기에 퍼져 술을 마시던 사내들.

그들 모두가 비룡 일맥의 식구들이었던 것이다.

“비선대(飛璇隊) 1대를 북해도로 부르고, 3대는 테제륙으로 퍼져 정보를 모아라. 2대는 황룡, 청룡께 접선을 시도하고 적룡, 화룡, 묵룡의 움직임을 살펴라.”

추상같은 반능려의 명령에 그녀의 뒤에 시립한 이들이 깊이 부복한다.


§


북해도 설리.

이따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드문드문 하얀 눈발이 섞여 있다.

이곳도 북항처럼 이전 같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공승우 일행이 찾아가는 곳은 하궁사라는 사냥꾼이 사는 통나무집이다.

북해도에 존재하는 동물 중 설두산 깊숙한 곳에 사는 설호(雪虎)를 노리는 자로 지금까지 한 마리의 설호를 잡은 경험이 있는 자이다.

설호는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눈처럼 하얀 털을 지녀서 그 가죽이 상당한 고가로 팔리고 있다. 다만, 매우 위험한 동물이라는 거.

그래서 어중간한 사냥꾼은 설호를 잡으려 들지 못한다.

잡기는커녕 오히려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에 물리거나 강렬한 앞발에 차여 죽기 십상이니 말이다.

사냥만으로 삼십 년을 살아온 49세 하궁사. 원래 이름이 궁사였는지 그가 활을 잘 쏘아서 궁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모두가 그를 하궁사로 부른다.

그의 도움을 얻어 공승우 일행은 설두산을 넘을 생각이다.

“후. 북해도라더니 정말 싸늘해.”

휘산영이 두터운 털옷을 여미며 하는 말에 사혼과 만혼이 연방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들보다도 어린 휘산영이지만, 그녀의 까칠함에 두 손 두 발을 휘두른 그들은 무조건 휘산영의 말에 수긍하고 지나갔다.

일월룡인 한상준이 그들을 도우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과 지금 보이는 태도와는 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사혼, 만혼 오라버니.”

게다가 가끔 이렇듯 나긋하게 불러주면 어찌 그리 기분이 짠한지.

“응, 왜?”

눈을 빛내며 휘산영을 바라보는 사혼과 만혼.

“그 하궁사라는 사람.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

“줄 거야.”

“그래?”

“그가 원하는 거를 내줄 생각이거든.”

“원하는 거?”

휘산영이 호기심을 담아 궁금함을 묻자, 만혼이 등 뒤에 매던 보퉁이 하나를 꺼내 든다.

“이거야.”

“그게 뭔데?”

“활.”

“활?”

“응. 모장궁(矛裝弓)이라고 마황석이 제법 들어간 활이지. 그가 설호를 노리는 사냥꾼이라는 말을 듣고 준비해 두었어.”

“오호. 어디서?”

“응?”

“그거 어디서 났냐고?”

“아, 이거. 내가 이래 보여도 령사 아니냐. 이 정도 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음화하하!”

과장되게 웃는 만혼을 보며 휘산영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낸다.

분명히 한상준이 용천백령수의 령사 둘이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 했지만, 사혼과 만혼이 하는 양을 보면 령사라는 믿음이 가질 않아서 말이다.

일월룡에게 용천백령수가 있다면 청룡에겐 청마대(靑馬隊)가 있다. 전투 기마대로 단 2개의 대뿐이지만, 기동력과 전투력은 상당히 뛰어난 무력집단이다. 그런 대를 이끄는 대주. 령사는 그 대주의 위치와 같다고 생각해왔다.

휘산영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자 크게 웃던 만혼이.

“어 왜?”

하고 반문한다.

결국, 고개를 젓는 휘산영.

‘굳이 지금 판단할 필요가 없겠지. 위기가 닥치면 그때 능력이 보일 테니까.’

몸을 돌려 걸어가는 휘산영의 뒤로 만혼의 음성이 이어진다.

“아, 그러니까 뭐?”


일행들이 하궁사의 통나무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이 다 되어갈 때 즈음이다.

“휴. 이 집인가?”

어둑해지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사혼이 시선을 돌려 통나무집을 바라본다.

불빛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안에 사람이 있나 보다.

“계십니까?”

크게 묻는 사혼의 음성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서는 한 사람.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 반을 뒤덮은 제법 큰 덩치의 사내가 일행을 휘둘러보고는 고개를 삐딱하게 젖힌다.

“누구슈?”

귀찮다는 기색이 완연하다.

사혼이 웃으며 말을 받는다.

“하궁사라는 분이십니까?”

“누구냐니까?”

“아하하. 나는 사혼이라고 합니다.”

“사혼이 누군데?”

“제가…….”

“그러니까 니가 누구냐고?”

“…….”

사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이 텁석부리 사내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 분명하다.

‘이 자식을 그냥 콱!’

마음이야 그렇지만, 일단 아쉬운 것은 자신들이니.

“아하하. 뭐,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아저씨의 도움을 받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제야 고개를 삐딱삐딱 돌리며 일행을 살피는 하궁사. 공승우, 휘산영을 지나 호약란을 힐끗 보며 설핏설핏 표정 변화를 가지기는 하지만, 음성은 여전히 어깃장이다.

“나 같은 사냥꾼에게 도움이라……. 할 짓 없는 것들이군.”

하고는 몸을 돌려 버린다.

울컥하는 사혼.

그런 사혼을 제치며 만혼이 나선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불쑥 내미는 보퉁이.

들어가려던 하궁사가 멈칫하니 뒤를 돌아본다.

“뭔데?”

“활. 모장궁.”

몸을 홱 완전히 돌리며 한달음에 다가든 하궁사가 만혼이 내민 보퉁이를 낚아채려 한다.

얼른 뒤로 물리는 만혼.

만혼이 씨익 웃자 하궁사의 인상이 와락 구겨진다.

모장궁은 1급 마황석이 녹아든 것으로 일반인이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무기이다. 하궁사처럼 사냥으로 살아가는 이라면 더욱 탐내는 물건.

만혼이 득이 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우리는 설두산을 넘어 설빙궁으로 갈 예정입니다만.”

그에 하궁사의 일그러짐이 더욱 짙어진다.

“그따위 뭉그러진 곳엔 뭐 하러 가려는지 모르지만, 일없다.”

덥석 받아들일 줄 알았더니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자 만혼이 고개를 갸웃한다.

“어라? 이게 아닌데?”

그때 호약란이 앞으로 나선다.

가만히 하궁사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하궁사.

호약란이 정중히 말한다.

“저는 호약란이라 합니다. 설빙궁에 꼭 가야만 하는.”

그녀의 음성에 하궁사의 몸에 잔 떨림이 인다.

북해도는 호약란의 고향이다.

추운 지방인 북해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북해도의 많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이 어부거나 하궁사처럼 사냥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북해도의 패자였던 설빙궁에 연결이 되어 있었고, 하궁사 역시 그런 이 중 하나이다.

그리고 북해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설빙궁의 소공녀를 안다.

설빙궁에서 주기적으로 행해지던 행사에 북해도에 적을 둔 사람들은 한두 번씩은 찾아들었으니까.

“설마 했는데…….”

십여 년 전, 보았던 어린 소녀의 얼굴.

그 흔적이 호약란의 얼굴에서 보이기에 긴가민가했던 하궁사.

그녀가 이름을 밝히자 이제는 확연히 알겠다.

“소공녀님…….”

오랜 시간이 지났다.

설빙궁이 사라지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몰살되고서 오늘이 올 때까지.

이후 대부분의 북해도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떠나갔다.

당시 하궁사는 서른 후반. 다른 지역으로 떠나 새롭게 출발하는 것에 크게 어려움이 없는 나이였지만, 그는 북해도를 떠나지 않았다.

사냥하며 사는지라 그냥그냥 사는 것엔 큰 어려움이 없었기도 하지만, 당시의 소궁주였던 호동파, 호약란의 아버지에게 구명을 입었기 때문이다.

설호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진정 소공녀님이십니까?”

사혼과 만혼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적이 언제이냐는 듯한 하궁사의 태도.

사혼과 만혼은 일이 묘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봤다.

호약란도 적이 놀랐다.

자신을, 이전 설빙궁이 존재할 당시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에.

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설빙궁.

그래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진다.

“이제 소공녀라는 말은 부질없지요.”

다가들어 와락 호약란의 손을 잡는 하궁사.

그에 움찔하는 호약란.

하지만, 덥수룩한 수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손을 빼지 않는다.

“살아계셨군요. 살아계셨어!”

하궁사의 큰 목소리만이 차가워지는 어둑한 하늘위로 물결친다.


타닥타닥.

벽난로를 뜨겁게 달구는 열기가 두꺼운 나무토막을 달구는 방안은 상당히 따듯했다.

하궁사가 일행에게 내놓은 따듯한 차 한 잔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하궁사의 안타까운 물음에 호약란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뭐라고 얘기를 할 것인가.

복수를 위해 마녀로 살아왔다고.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주저하는 그녀의 표정을 읽은 하궁사가 얼른 손사래를 친다.

“아, 아닙니다. 이놈의 입이 주책없이.”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혈사 아래 살아남아 지금까지 왔다면.

하궁사가 얼른 말을 돌린다.

“이 일행 전부가 설두산을 넘으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누추하지만, 이곳에서 몸을 좀 녹이고 계십시오.”

“예.”

호약란이 가만히 대답한다.

활짝 웃고는 고개를 돌리는 하궁사.

그가 만혼에게 손을 내밀자 만혼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하궁사가 말한다.

“줘.”

“예?”

“그거.”

“!”

하궁사가 원하는 것이 모장궁임을 눈치챈 만혼.

호약란을 대하는 태도에 주지 않고도 잘 넘기려니 했는데, 이놈의 텁석부리는 그게 아닌가 보다.

“쳇.”

혀를 차며 보퉁이를 내미는 만혼.

주기 싫어 살짝 내민 손끝에서 하궁사가 보퉁이를 확 낚아챈다.

“씁!”

하는 말을 던져주고.


§


공승우와 일행은 하궁사를 따라 설두산을 올랐다.

두터운 털옷은 북항에서 구해 입었으니 산행에 필요한 물품만을 챙겨 산을 오른 것이다.

고기를 말린 식량과 후끈 열기를 북돋는 도수 높은 술, 눈바람을 막아주는 망토와 무릎까지 오는 가죽 신발.

인원별로 준비한 모포까지.

그렇게 준비하니 가짓수는 얼마 안 되지만, 부피는 상당했다.

짐들을 세 등분으로 나눠 사혼과 만혼 그리고 공승우가 등에 짊어졌다.

산을 오르는 내내 투덜거리는 사혼과 만혼.

령사를 이렇게 부려먹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호소하기도 하지만, 휘산영의 냉랭한 한마디에 꼬리를 내린다.

“연약한 여자들이 메어야겠어?”

허. 누가 연약하다는 말인가.

반박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저 가볍게 웃으며 짐을 짊어지는 공승우 때문에 말을 삼킬 수밖에. 일월룡께서 그를 도우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꽁하지는 않을 텐데.

솔직히 공승우를 보면 그저 사람 좋은 미소는 그릴 줄 알지만,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도 않은데.

“쳇!”

사혼이 혀를 차보지만, 그뿐이다.


설두산은 높았다.

중턱까지 오르니 매서운 바람이 뺨을 때리고 지나가 저절로 털옷을 여미게 하였다.

가장 앞서던 하궁사가 일행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여기부터는 설호의 영역이다. 그놈이 언제 어디서 불쑥 나올지 모르니 모두 조심하도록.”

어제 호약란에게 자신이 어떻게 호동파의 도움을 받고 설호를 잡았는지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는 자신이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를 들어 모두에게 편하게 말을 놓았다. 물론, 호약란에게는 깍듯이 존칭을 했지만.

하궁사가 공승우와 그의 곁에 바짝 붙어서 산을 오르는 호약란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저놈은 뭐지?’

분위기로 보아 보통 사이는 아닌 듯한데.

다소 무거운 짐을 거뜬히 들고 오르는 것을 보면 약해 빠진 놈은 아닌데, 그렇다고 설호가 나타나면 그가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쩝.”

가볍게 입맛을 다신 하궁사가 손에 쥔 모궁사를 슬쩍 들어 본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느낌. 모궁사 전용 화살이 담긴 듬직한 활통.

력사급이나 시위를 당길 수 있다던 모궁사이지만, 하궁사는 완력만으로 그 시위를 당겨냈다.

그도 보통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하여간, 이 모궁사만 있으면 그 사납고 위험한 설호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하궁사.

‘이번에 설호를 잡으면 소공녀님 외투 한 벌 만들어야겠다.’

내심 설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그이다.

그렇게 일행이 산 중턱에서 조금 더 올라 산허리를 타고 돌아 움직이던 시점.

만혼과 사혼의 눈빛이 일변했다.

사혼은 등에 멘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가장 앞선 하궁사를 넘어 그 앞으로 몸을 날렸고, 만혼은 바로 뒤에 가서 떡하니 자리 잡고 내력을 풀어냈다.

“뭐, 뭐 하는 거…….”

하궁사가 두 사내의 행동에 막 뭐라고 하려던 순간.

저 모퉁이에서 여섯 사내가 모습이 드러났다.

“더럽게 춥네!”

가장 앞선 사내, 다른 이들보다 젊은 그가 침을 바닥에 찍 뱉으면서 다가든다.

“빨리 와야 할 거 아냐!”

버럭 지르는 소리에 하궁사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간다.

“누, 누구냐……요?”

크게 지르던 하궁사의 음성이 끝에 가선 줄어들고 만다.

사내들이 내뿜는 살기가 그의 전신을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사혼과 만혼의 얼굴에는 슬금슬금 웃음이 피어난다.

일행에게 령사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와중에 도우미들이 여섯이나 나타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사혼과 만혼을 제대로 도와줄 마음이 없었다.

투덜거리던 젊은 사내와는 달리 다섯 사내 중 셋이 아무 경고 없이 바닥을 차고 일행을 덮쳐왔다.

앞 두 사내가 사혼과 만혼에게 각각 날카로운 검 끝을 질러 낸다.

검 면을 타고 내기가 이글거리는 것을 보니, 이 또한 마황석이 함유된 무기임이 분명하다.

공승우 일행의 앞을 막아선 사내들. 화룡 일맥의 단홍상과 적룡의 수호적들. 그들의 목적은 두 여인, 휘산영과 호약란에 있다.

그녀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그냥 죽여 버리든지.

한번 부딪혀보고 판단할 것이다.

사혼과 만혼은 적이 검으로 찔러 옴에도 맨손으로 그들을 막아갔고, 그 틈에 수호적 한 사내가 그들의 머리 위를 넘어 휘산영에게 질러든다.

휘산영과 호약란은 적이 갑자기 들이닥쳤는데도 별 긴장감이 없다.

하물며 바로 눈앞까지 치고 들었는데도.

“흥.”

휘산영의 냉랭한 콧소리가 흐르자 지척에 이른 수호적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감히 수호적을 뭐로 보고!

라는 눈빛에 씰룩이는 입가, 그는 휘산영을 그냥 죽이기로 마음을 바꾼다. 적룡의 명에 죽여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씨익 말려가던 수호적의 귓가로.

슈아왁! 무언가 격하게 밀려드는 소리가 들린다.

무시하기엔 피부에 이는 따끔거림이 심상치 않다.

급히 시선을 돌리다 기함을 지르는 수호적.

“헛!”

휘산영을 질러가던 검을 돌려 순식간에 질러든 하얀빛 무리를 막아간다.

쩡!

“크윽!”

질러오던 길을 역으로 퉁겨 날아가는 수호적.

검 면을 때린 빛 무리에서 퍼진 힘을 허공에 뜬 수호적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밀려나 날아간다.

쿠웅!

저만치에 처박히는 수호적.


쨍. 차장. 하며 수호적의 검이 사혼, 만혼의 팔뚝에 막혀 금속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내지른 검을 통해 느껴지는 반발력에 일시 몸을 뒤로 물린 수호적 2인.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동료 수호적이 날아간다.

경각심이 든다.

이 무리의 구성이 심상치 않다.

자신들은 적룡의 최측근 호위인 만큼 강하다.

다른 팔룡들의 어느 무력집단보다.

헌데, 쉽게 생각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공격을 무리 없이 막아내는 것은 물론 퉁기듯 날려버리기까지 하다니.

“물러서.”

낮은 음성이 들리자 사혼과 만혼을 공격했던 수호적 둘이 빠르게 몸을 빼낸다.

“쳇.”

사혼이 그런 둘을 노려보며 아쉬운 소리를 낸다.

“아직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내빼면 안 되잖아.”

하는 말에 수호적의 임시 수장 노혼의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뭐야, 이것들?’


@@@@@@@@@@


에고고.

어제 마신 술이 덜 깼나 봅니다.

손에 잔 경련이…….

회식이었거든요. ^^.


16강에 올랐습니다.

23일 새벽에 눈비비고 일어난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소리쳐 환호하지 못했다는 것.

그저 말아 쥔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치거나, 벌떡 일어나 “예. 예-.” 입만 뻐끔거렸거든요.

끝나갈 때는 속이 오그라들 정도로 조마조마했지요.

하하.

이번 토요일. 그때는 좀 소리쳐도 되겠지요. ^^*


氣高萬丈님.

제가 사는 곳으로 와주신다면 삼겹살 쏘겠습니다.

물론 쐬주도.

음화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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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4 +9 10.05.20 2,111 9 39쪽
9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3 +7 10.05.18 2,014 9 31쪽
9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2 +8 10.05.12 2,252 9 32쪽
94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팔룡전(八龍戰) 6-1 +9 10.04.14 2,410 7 28쪽
93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9 +5 10.04.14 2,326 8 24쪽
92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8 +11 10.03.25 2,630 8 55쪽
91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7 +9 09.12.31 2,631 9 41쪽
90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6 +3 09.12.31 2,546 9 48쪽
89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5 +9 09.10.30 2,837 9 43쪽
88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4 +8 09.10.22 2,791 11 45쪽
87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3 +6 09.09.28 2,933 9 47쪽
86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2 +7 09.09.11 3,134 8 31쪽
85 영웅담(英雄譚-이계편) 태제륙(太帝陸) 5-1 +5 09.09.07 4,035 7 48쪽
84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1 +9 09.08.12 3,741 9 40쪽
83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0 +3 09.08.12 3,248 9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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