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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님의 서재입니다.

영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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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작품등록일 :
2011.10.21 16:16
최근연재일 :
2011.10.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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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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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9쪽

영웅담(英雄譚-현세편) 균열(龜裂) 4-10

DUMMY

10


“후-.”

정찬욱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는 시점 인터폰을 통해 누군가 자신들을 찾아왔다는 알림이 있었다.

“누구지?”

정찬욱의 의아함은 모두의 생각이었다.

독고열이 나간 지 채 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자신들을 찾아왔다고 하니 드는 생각이다.

이용과 야천 요원 둘이 그 사람들을 맞으러 움직였다.

어차피 이곳에서 자신들을 찾을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독고열이 말한 앞으로 함께하게 될 사람들뿐.

이용은 그들 중 누군가 온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의 일은 정부에서 주관하는 바이니.

그렇게 이용이 방문객을 맞으러 나간 지 5분이나 지났을까.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오자 공승우가 방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

방문객이 누군지 알게 되자 공승우는 반가움과 어떻게 라는 의문이 함께 들었다.

방문객도 한눈에 공승우를 알아보고 만면에 웃음을 가득 채우며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그가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공승우도 웃음을 짓는다.

“그렇군요.”

공승우와 마주한 그는 북한 항공육전여단 소속 상위 림충석이었다.

이전 신궁을 회수하고자 함께 움직였던 그와 다시 만난 것이다. 이전에도 북한 특유의 어투가 없어 편하게 들린 음성이다.

“어찌 된 것인가요?”

공승우는 바로 궁금한 바를 물었다.

북한이 이번 작전에 개입한 것과 림충석이 이곳에 온 바를 함께 묶어 물은 것이고, 림충석은 부연 설명이 없더라도 공승우가 묻는 요지가 무언지 알 수 있었다.

“대외적이지, 그리고 개인적이고,”

대외적이라 함은 이용 등이 유추한 바와 같이 대전 사태로 말미암은 국가적 움직임일 것이고, 개인적이라 함은.

“자네가 올 것이라 직감했지.”

“하하. 그렇군요.”

“신궁은 잘 가지고 있나?”

그것 때문에 함께 움직였으니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이번에 가지고 왔습니다.”

“오호! 그런가?”

“신궁에 기록된 바를 모두 해석했고, 어찌 사용하는 지까지 밝혀냈습니다. 이제 써보면 되는 일이지요.”

“그랬군. 뭐라 기록되어 있던가?”

지금 림충석의 물음은 어찌 보면 예민한 것이겠지만, 공승우는 개의치 않았다. 밝힌다고 해가 될 사항도 아니고 신궁을 손에 쥐여주어도 아무나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이다.

“신궁의 활대엔 현 중국의 영토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쟝성은 물론 네이멍구 자치구의 일부 영토까지 고구려의 복속이었다는 기록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밝혀도 쉽게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고요.”

“그렇겠지.”

“보시겠습니까?”

“그래 주겠나?”

공승우는 자신의 짐에서 짙은 갈색의 긴 주머니를 빼서 그 안에 든 길이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물건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작지만 굴곡이 매끄러운 활이다.

“시위가 없는 활이군?”

그에 공승우가 웃으며 말한다.

“예. 이것은 시위도 화살도 필요치 않은 활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림충석.

“쏠 수나 있나?”

“물론이지요.”

“거참?”

두 사람은 자신들만 반갑게 대화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일행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이거 내가 반가워서 다른 분들께 실례했군.”

얼굴을 살짝 굳히고 예를 갖추는 림충석.

“저는 항공육전여단 소속 상위 림충석입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같은 소속 홍노열 소위와 김삼 소위입니다.”

그에 홍노열과 김삼이 공승우에게 먼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방안의 일행들에게 인사를 한다.

“홍노열입네다. 반갑습네다. 동무들.”

“김삼입네다.”

두 사람 모두 공승우와는 안면이 있기에 그리 어색한 모습이 아니었다.

현실상 적국의 사람들을 대함에도 말이다.

그에는 신궁 회수를 위해 함께 움직였던 바가 크게 작용함이었다.

한국은 적국일지라도 공승우는 적이 아니니 말이다.

그들을 말을 이어 림충석이 말한다.

“이번 작전에 저희 항공육전여단에서 스무 명을 파견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지시에 따라 이동할 예정입니다.”

그에 이용이 대표로 나서서 말을 받는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대외적으로 제가 야천을 대표합니다. 이 사람들은 야천 밀영 중 상급 요원들이고…….”

이용이 공승우와 정찬욱을 보며 살짝 망설이자 림충석이 먼저 말한다.

“그것이면 됐습니다. 대외적인 것은 말입니다.”

이용의 입장에서는 림충석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공승우와 정찬욱의 신분을 밝히기가 꺼렸는데, 이용이 먼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니.

그때 정찬욱이 나서서 림충석에게 손을 내민다.

“정찬욱이올시다!”

림충석이 짐짓 놀라는 표정을 그린다.

“헛! 그러십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림충석입니다. 잘 지내봅시다.”

“하하. 그나마 누구보다 화통해서 좋네.”

하며 이용을 쳐다보는 정찬욱. 그에 림충석이 살며시 미소를 그린다.

그가 보기에 행동이 다소 가벼워 보이기는 하나 정찬욱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음을 파악한 것이다. 게다가 그의 성격도 살짝.

그렇게 새로이 합류한 이들과의 대화는 이용이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삼십 분이 더 지날 무렵 독고열과 몇몇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섰다.

매끄러운 민머리를 지닌 네 명의 건장한 사내들. 비록 승복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그들이 소림의 사대금강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들어선 네 명, 남자 셋과 여자 한 사람.

그들이 무당의 인물들로 50대 초반의 사내가 현천검 화영도장이고, 30대 초반의 두 사내가 12전사 중 두환과 장초군이란 인물이며 20대 중반의 여인이 왕소정이다.

사대금강을 비롯한 무인들에게서는 은근한 기운이 흘러나와 그들이 막 실내로 들어섰을 때는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독고열이 나서 그런 침묵을 깨기 전까지 말이다.

“하하. 이로써 이번 작전을 수행할 인물들이 모두 모였군요. 발생한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이왕 모였으니 동료로서 서로 조화를 이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을 가득 머금고 하는 말이라 잠시간 냉각되었던 분위기가 다소 풀려나갔다.

이용이 나서서 현천검 화영도장에게 인사를 건넨다.

중국 상호 무인들에겐 배분이 있으니 현천검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야천 백팔무장 이용입니다. 현천검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화영도장이 말한다.

“오는 길에 듣기는 했지만, 야천이라는 곳이 그리 대단한 곳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이번 기회에 안계를 넓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중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아래로 대하는 듯한 말투이다.

기실 중국 측 무인들에게 야천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적천궁이 한 짓은 그들도 단죄를 가해야 한다는 명분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할 일이지 타국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닌 듯했다.

무당과 소림, 중국 무림의 양대 기둥.

그들은 적천궁 정도는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는 중소문파 정도로만 여기는 듯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모른 채 말이다.

하여간, 화영도장의 인사를 뒤로 나머지 사대금강과 12전사들도 이용과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늘어난 일행으로 말미암아 실내가 좁아지자 독고열은 그들 모두를 이끌고 장소를 이동했다.

더 넓은 장소. 뭐 기실 장소의 좁은 것보다는 일행의 어색함을 덜고자 움직인 것이다.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말이다.


베이징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공승우 등이 만날 무렵, 한국의 청와대에서도 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대통령 조상국과 야천 천주 미르한 그리고 미래당 총재 한이필이 그들이다.

이번 대전의 사건에 한이필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자신의 정치적 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복구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사상자를 비롯한 모든 피해구분을 조사하고 있으며 그 보상 정도는 곧 책정하여 공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이필의 음성이다.

굳이 이번 일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아도 되련만, 그 안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을 터였다.

“한 총재께서 애쓰시는군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각하.”

미르한, 한지우가 그에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이번 사태에 미래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서 참 다행입니다.”

묘한 여운을 담긴 음성이다.

그 속에 담긴 뜻을 모르지 않으련만 한이필 역시 미소로 미르한을 대한다.

“모든 일이야 천주께서 하셨지요. 저야 그저 조그만 일을 할 뿐입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적천궁과 연계까지 추진한 그였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한 모습이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다 아는 일인데도 말이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조상국이 먼저 입을 연다.

“천주, 중국 측이 제시한 바를 그대로 수용해도 괜찮겠소?”

이번 대전 사건을 처리하는바, 중국은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었다.

그에 중국은 자국의 경제, 기술 활동에서 상당 부분을 한국 기업에 위탁하겠다고 했으며, 옛 발해와 고구려의 영토를 두고 흐르는 역사적 시점을 명확하고 정당하게 처리하겠다는 바와 간도영유권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전해왔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 진행형일 뿐이지 반드시 그런 결과를 만들겠다는 확답이 아니다.

이목이 쏠려 있는 동안에는 한국의 처지에서 일을 추진하는 듯하겠지만, 업무 처리에 시간을 들일 것이며, 후에 교묘히 말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함이니, 이는 누가 옳다 그르다는 판다보다는 어떤 선택이 이득을 가져오느냐에 따른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미르한이 말을 잇는다.

“그들에게서 더 나올 말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제시한 바가 결과가 되게끔 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겠지요. 한 가지 추가사항이라면.”

“어떤?”

“중국 영토에 한국 특구를 지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싶습니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과 앞으로 진출하게 될 모든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중국이 행하는 일을 더 빠르게 잡아내고자 말입니다.”

그에 조상국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지 않을 텐데.”

“그렇겠지요. 그래도 기회는 이번입니다. 여기 계신 한 총재께서 도와주시면 더욱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조상국이 한이필을 바라본다.

웃으며 말을 잇는 한이필.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내심과 다른 말을 하는 한이필이다.

그의 말에 모두가 살며시 미소를 그린다.

속내를 포장한 미소를.


§


독고열이 이끄는 일행의 행보는 빨랐다.

어디서 어떤 정보를 얻는지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다.

공승우를 포함한 모든 일행은 베이징을 떠나 남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지점은 후난성(湖南省:호남성) 천저우(郴州:침주)이다.

천저우는 후난성과 광둥성의 접경지대로 총 면적의 60% 이상이 산림지대인 곳이며, 광물자원이 풍부한 그곳은 비철금속의 도시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일행은 베이징에서 톈진까지 육로로 이동하고 톈진의 군사지역에서 CH-47 일명 치누크라 불리는 수송헬기를 타고 움직였다.

중국 정부에서 전격 지원하는 작전인지라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두두두두.

육중한 로터의 회전소리가 들려오는 헬기 내부에서 공승우는 생각에 잠겼다.

독고열에 관한 의문이었다.

지금처럼 빠른 움직임을 보면 중국에서는 이미 적천궁의 본진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미리 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었고, 독고열이 교관급인 중교이라고는 하지만 그 행사하는 범위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작전의 총 책임자 위치라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언뜻언뜻 보이는 독고열의 눈빛엔 어떤 열망에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공승우는 너무도 신경이 쓰였다.

공승우의 곁엔 정찬욱과 림충석이 함께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긴장감이 덜한 것인지 배짱이 두둑한 것인지 그다지 긴장한 빛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은 죽이 착착 맞아 때론 큰 소리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찬욱이 주로 말하고 림충석이 듣는 식인데, 그 이야기의 내용은 뱀프와 같은 조직의 이야기였다.

“호오! 그거 좋군요!”

림충석이 눈을 빛내며 정찬욱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조직엔 야밤의 세계가 있는 데 말이죠. 그게 또 아주 죽여준다 이거 아닙니까. 와하하.”

야밤이란 야한 밤을 줄여서 하는 말인데, 그 내용을 듣는 림충석은 엉덩이까지 들썩거릴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꼭 한 번 가는 겁니다!”

림충석이 다짐하듯 말하자 정찬욱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며 공승우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흠, 초련이가 뭐라고 하려나?”

독고열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고 짐짓 걱정스럽다는 듯한 말이다.

그에 정찬욱이 주먹을 꾸욱 쥐며 말한다.

“물론! 모르게 해야지. 와하하!”

그런 정찬욱을 보며 림충석이 연방 고개를 끄덕인다.

공승우의 입가에 다시 피식거리는 미소가 걸린다.

“쉽지 않을 텐데?”

그에 정찬욱과 림충석이 공승우를 노려본다.

“젠장! 너 자꾸 초 칠레? 한참 신나는구만!”

“그러게!”

공승우가 졌다는 듯 손을 흔든다.

“이, 예, 예.”

그런 공승우에게 따가운 눈총을 쏟아 붇던 정찬욱과 림충석은 야밤에 초점을 맞춰 다시 흥겹게 대화를 이어간다.

반면, 중국 측 인물들은 독고열을 제하고는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들 생각 속의 적천궁은 비록 중소문파일 뿐이지만, 들은 정보로 자신들이 잡아야 할 유성현이란 자만큼은 쉽게 볼 사람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곳에 그와 직접 손을 나눈 이는 없었지만, 독고열이 진중하게 경고했고, 또 출발 전 그들의 사문에서도 독고열이 한 말과 유사한 말을 듣고 왔기 때문에 말이다.

적천궁 궁주 활불 유성현.

사마(邪魔)의 우두머리가 있다면 그일 것이라는.


후난성 천저우.

우거진 수림에 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암자가 한 채 자리한다. 그나마 암자가 툭 튀어나온 바위산에 세워졌기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암자의 뒤편으로 수림과 너무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장원이 있다. 누구도 이 외진 곳에 장원을 지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장소이다.

이곳이 적천궁의 본진이다.

겉모습은 승려들이 수련하여야 할 암자임이 분명하지만, 그 내부엔 불교에 관한 구조물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대신 그곳 내부엔 지련수목원 지하에 존재했던 중앙통제실처럼 수 대의 모니터와 첨단 장비가 갖춰져 있었다.

각각의 모니터 화면엔 적천궁 장원에서 반경 50㎞를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감시.

암자에 있는 인물들은 감시를 위한 적천궁도들이었다.

다만, 지금 잠시도 쉬지 않고 눈을 돌리는 적천궁도들과는 대조적인 두 사람이 그곳에 있다.

소궁주인 유세하와 대사저인 나지수이다.

“그들이 하늘로 떠서 오고 있다던데, 상수(翔樹)에 들어갈까?”

나지수의 물음이다.

그에 유세하가 차갑게 웃는다.

“후후. 들어가겠지.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을 대비해 만든 마을이 상수이니까.”

상수, 마을을 중심으로 우거진 수림이 빙빙 돌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상수엔 이곳 수림 속에 지어진 장원보다 더욱 크고 웅대한 장원 한 채가 자리한다.

옛 고대로 돌아온 듯한 풍경을 자아내는 장원.

수십 채의 전각과 그 전각들 사이에 넓은 대지를 아우르는 연무장.

작은 인공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팔각정.

언뜻 보기엔 공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풍경을 지니고 있다.

다만, 다른 것은 장원 외곽으로 상당수의 차량을 채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전각과 전각들 사이엔 곳곳을 비추는 CCTV카메라가 있다는 점.

그리고 경직되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까지.

그런 상수의 모습은 이곳 암자의 모니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유세하의 말에 나지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한 줄기 불안이 머물러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두었다가 암자의 밖으로 나왔다. 밖은 우거진 수림 사이사이로 햇빛이 지면에 닿고 있었지만, 그 양이 매우 적어 전체적으로 어둡기만 하다.

그렇게 걸어 바위산의 끝머리로 걸어간 두 사람.

냉기를 흘리며 앞쪽으로 시선을 둔 유세하를 바라보던 나지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요즘 사부님께 불려간 호법들께서 그 이후로 안보이던데, 혹 알고 있어?”

그녀의 물음에 유세하가 시선을 돌린다.

“알지.”

“뭐야?”

불려간 호법 중엔 그녀의 아비도 있다. 딱히 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죽었다.”

“응, 뭐?”

차가운 유세하의 음성에 나지수가 깜짝 놀란다.

죽다니. 왜?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궁주에게 불려간 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럴 수가? 아니야! 아니지?”

나지수는 유세하에게 바짝 다가들어 그의 팔을 잡았다.

평소의 그녀라면 보이지 않을 행동이다. 그리고 유세하가 이런 식의 농담을 할 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이다.

유세하가 대답 없이 차갑게 바라보기만 하자 나지수의 손에 힘이 빠져버린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유세하의 팔을 놓은 나지수가 중얼거린다.

“죽다니? 왜?”

그런 나지수에게 유세하가 말한다.

“마황석.”

“?”

“그 돌 때문이지.”

그러고 보니 최근 유세하에게 풍기는 기운이 더욱 차가워졌다.

이전에도 냉혹한 성격이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만은 달랐다고 생각하는 그녀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말해줘.”

그에 유세하가 나지수의 시선을 외면하며 몸을 돌린다.

그에 두 주먹을 꾸욱 쥐는 나지수.

“말해줘!”

다소 커진 그녀의 음성.

그리고 그녀는 기다렸다.

한 5분이나 지났을까, 유세하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때까지 나지수는 힘겹게 기다렸다. 단 5분이었지만.

“궁주와 나 그리고 너까지 세 사람이 흡정공(吸精功)을 익혔지. 그리고 마황석은 흡정공을 단번에 몇 단계 상승시키는 마물이지. 궁주는 마황석을 이용해 호법들의 내력을 모두 빨아먹었다. 그렇게 상상치 못할 만큼 거대해져 가고 있지.”

그리고 보니 유세하가 유성현은 궁주라 칭한다. 그의 성정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도 들지만, 지금 유세하의 음성은 남을 대하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호법들이 모두 사라지면 다음은 나와 너다.”

“!”

나지수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사부에 대한 존경심이 없기에는 그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나지수의 귓가로 유세하의 음성이 들린다.

“내가 이곳에 나와 있는 이유는 아직 궁주를 막을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껏 궁주의 먹이로 전락할 생각은 없거든.”

“…….”

둘 사이로 침묵이 흐른다.

유세하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깟 돌 하나 때문에.

그들이 익힌 흡정공은 고대의 흡정공과는 많이 달랐다.

고대엔 타인의 내력을 바로 빨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이어진 흡정공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지닌 흡정공은 한때 혈마라 불렸던 이세중의 것이다. 그 당시 이세중이 중원의 무인들을 피해 도주하는 와중 전해진 것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이 유실된 상태에서 전해졌기에 흡정공은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양이 한정되어 있었고, 빨아들인다고 해도 그것 중 30% 정도만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타인의 것 전부를 빨아내지도 못했다.

해서 이전 정찬욱이란 인물이 흡정공을 운용했다는 말에 지대한 관심을 두기도 했던 것이다. 아직 정찬욱이 지닌 능력이 자신들이 익힌 흡정공의 주인인 이세중의 것임을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하여간, 그런 흡정공이 마황석이란 돌로 말미암아 고대의 흡정공과 같은 효능을 지니게 되었다니.

“그 돌은 대체 뭐야?”

나지수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유세하가 훗 하고 웃고는 답한다.

“마물이라고 했을 텐데.”

“오라버니.”

나지수가 유세하를 부른다.

그에 다시 피식거린 유세하가 말을 잇는다.

“벽천마라진을 구성한 물질이 마황석임을 너도 알 것이다. 그런 마황석을 쓰고자 한다면 특별한 언어를 익혀야만 하지. 그 언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다만, 한국말과 유사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하여간 그런 언어를 익히고 나서 마황석을 손에 들고 구결을 외우듯 내력을 집어넣으면 발동하게 되지. 내력을 받아먹은 마황석은 다시 내력을 집어넣은 자에게 몇 배나 강한 힘을 건넨다. 궁주는 그렇게 강해진 거다.”

“…….”

“그리고 얼마 전, 처음 궁주에게 마황석을 건넨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노인?”

“20여 년 전 그때도, 지금도 다를 바 없는. 하지만, 나는 그가 노인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그자의 눈빛은 어딘가 낯설지가 않아.”

“…….”



충돌(衝突).




공승우를 태운 치누크 헬기는 무사히 천저우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바로 군용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임시 숙소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곳은, 호텔처럼 숙박에 편리한 곳은 아니었지만, 지내기엔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장소였다. 물론 보안도 유지되고 말이다.

그렇게 일행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게끔 조치를 마친 독고열은 홀로 자신의 숙소로 이동했다.

거실이 딸린 숙소에 들어선 독고열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상부에 상황보고를 건넸다.

통화연결 음이 들리자 독고열의 입이 열린다.

“일은 계획대로 돌아갑니다.”

- 상수라고 했던가?

“예. 잠입한 첩자가 보내온 바로는 그곳이 분명합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도 유성현의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설혹 상수가 아니더라도 그 근방임에는 분명합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음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 이번 일은 시간이 중요하네. 적천궁 때문에 우리나라가 참 우스워졌어. 세계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하네.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나저나 자네의 정보력은 여전하군.

“하하. 과찬이십니다. 적천궁은 예전부터 주시하던 곳이라 대응이 빨랐을 뿐입니다.”

- 아니야. 자네가 그래준 덕분에 한결 수월하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독고열은 휴대전화를 끊고 거실 한쪽에 놓인 소파로 걸어가 몸을 깊숙이 묻었다.

가볍게 숨을 돌린 독고열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가만히 바라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번뜩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물건은 하나의 돌이었다.

가만히 소파 앞 테이블에 돌을 내려놓는 독고열.

이어 세 개를 품에서 더 꺼내더니 먼저 내려놓은 돌 옆에 나란히 놓는다. 마황석이다.

“마라진 덕분에 공간을 열 힘은 차고 남는다.”

내려놓은 마황석이 일순 확 하고 빛을 발했다가 서서히 사그라진다.

“훗.”

독고열은 빛을 발하는 마황석을 보고 뭐가 우스운지 웃음을 흘렸다.

“족쇄인지 모르고 너무 무리하는군.”

냉소를 흘린 독고열은 마황석을 다시 품 안에 갈무리했다.

노인, 독고열, 마한석 그도 아니면 다른 이름.

어찌 되었던 그 모두가 한 사람이었다.

20여 년 전 유성현을 방문해 마황석을 건넨 노인이 그고, 대군구 참모장으로 분해 적천궁의 주변을 맴돌고, 다시 노인으로 돌아와 하나의 마황석을 건넨 그.

유성현으로 하여금 마황석을 사용해 그의 흡정공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알려준 그.

그리고 공승우 일행을 이끌고 유성현에게 다가가는 지금의 독고열.

공간을 연다고 했다.

그 하나를 이루고자 그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고, 그 결실이 맺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의 눈가엔 그동안 꾹 눌러 놓았던 열망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와 같은 눈빛이다.

“이곳에서 무려 20년이 넘었다. 지금 돌아가면 나만 나이를 먹었겠군. 형님보다 나이 든 동생이라. 하하.”

열망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가만히 눈을 감는 독고열.

“유성현은 그릇이 깨져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세하와 공승우라는 자. 그리고 정찬욱까지…….”

지금은 그가 계획한 바대로 흘러가고 있다.

‘유성현은 상수에서 무인들의 내력을 흡취하려 들 것이다. 허나, 마황석은 한계가 있지. 그 한계를 알려 주지 않았으니 유성현은 끝도 모르고 갈취하려 들 것이고, 결국 응축된 힘이 폭발하여 온몸이 찢겨 흩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힘에 빠진 유성현은 멈추지 못할 것일 테니 말이야.’

잠시 고민을 하는 독고열.

‘공승우, 정찬욱과 유세하. 그들을 다른 무인들보다 상수에 한발 늦게 도착하게끔 하여야 하는데…….’

고민하던 그의 눈가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군!”

‘유세하는 상수에 있지 않고 적천궁의 본진에 있으니 그 둘을 그리로 보내면 되겠군. 이후, 다시 그들도 상수로 불러들이던지 유성현을 본진으로 보내면 되니까 말이야.’

“가만있어보자…….”

독고열은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유성현은 상수의 수십 채의 전각들 중 한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엔 비쩍 말라버린 시신 두 구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크흐흐. 이 힘!”

광기를 뿜는 눈동자, 유성현의 몸 주위로 세차게 이글거리는 기운.

그동안 호법들에게서 빨아들인 내력이 그의 몸을 웃돌며 시위하듯 흐른다.

“크흐흐.”

나직이 웃으며 두 주먹을 꽉 쥐자 소용돌이치듯 휘돌던 기운이 일시에 유성현의 몸으로 쑤욱 빨려들어 간다.

온몸을 가득 채우는 충만감에 유성현의 입가에 씨익 냉소가 맺힌다.

“오너라! 내가 너희의 힘을 모두 가져주마! 와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유성현.

그의 웃음이 전각을 벗어나 상수 전체로 퍼져갔지만, 일체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재 상수에 포진한 적천궁 궁도들 역시 궁주인 유성현이 이전 같지 않다는 바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숨죽이는 것이다. 괜히 나섰다가 궁주의 눈에 찍히기라도 하면 죽는다는 소리가 상수를 휑하니 돌 정도로 말이다.

한차례 광소를 흘린 유성현, 그의 눈빛이 본래의 색을 찾아간다.

“사지(死地)를 찾아 들어오는 너희를 반겨주마. 내 기꺼이 너희 것들을 품어주마! 기다려라! 나를 우습게 본 이 나라를 짓밟고, 나를 이처럼 내몬 놈들의 땅을 짓이겨주겠다. 온 세상이 내 힘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으하하하!”

그의 광오한 음성에 맞춰 전각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여기 와서는 따로 움직이라는 말씀입니까?”

이용의 물음에 독고열이 고개를 끄덕인다.

“적진에 침투 중인 정보원에게서 유성현과 유세하, 그 부자가 따로 떨어져 있다는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우리로서는 둘 중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관계인지라 부득이 팀을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지만, 어째서?”

이용은 독고열이 팀을 나눈 바를 이해 못 하겠다는 바를 내비쳤다.

독고열은 공승우와 정찬욱, 그리고 림충석과 그의 수하들을 한 조로 편성하고 나머지 인원을 다른 조로 편성했다.

여기서 이용은 독고열이 야천 인원을 둘로 나눈 바와 어째서 공승우와 정찬욱이냐는 의문이 든 것이다.

지금까지 이동하는 도중 공승우와 정찬욱의 실체가 보일만한 행동을 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독고열은 그 두 사람을 정확히 집어내 조를 나누었다. 우연으로 보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아, 야천분들 중 저 두 분을 따로 편성한 바는 림 상위를 나눔에 있어서입니다. 림 상위의 항공육전여단이 유세하가 있다는 곳, 그러니까 산악과 우거진 수림에서 전투에 능하니 한 조로 나눠야 하고, 나눠진다고 하더라도 야천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과 소통이 되어야 하니 저 두 분을 한 조에 편성한 것입니다.”

그렇듯 하긴 하다만.

이용이 재차 무어라 말하려 들 때, 공승우가 가만히 눈짓을 보냈다.

독고열은 확실히 수상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가 의도하는바 속으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공승우와 정찬욱이 제격이다.

그들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만한 힘이 있으니 말이다.

공승우의 눈짓을 받은 이용이 불만이 담긴 음성으로 말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에 독고열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간다.

그가 화영도장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어간다.

“무당과 소림에서 지원 병력이 상수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내일 여러분이 상수에 도착할 즈음 그들도 도착할 것입니다.”

“음.”

“도장께서는 사대금강분들과 유성현을 잡는 것에만 전력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성현 그자의 무공이 예사롭지 않으니 방심하면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음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독고열의 말에 화영도장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중교께선 그리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본 도장과 여기 사대금강이라면 유성현 그자 하나 잡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군 병력도 투입된다고 하셨습니까?”

말투가 좋지 않은 것이 독고열이 자신들을 무시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에 독고열이 정중히 말한다.

“예. 적천궁 본진인 상수엔 무인들이 있겠지만, 그들이라고 무장하고 있지 말라는 정보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화영도장과 사대금강분들의 임무가 중요합니다. 군 그리고 무당과 소림의 지원 병력이 상수에 닿기 전에 유성현을 잡거나 고립시켜야 하니 말입니다. 해서, 그리 말씀드리는 것이니 도장께서 언짢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

그제야 화영도장이 굳어진 얼굴을 푼다.

도(道)보다는 무(武)에 치중한 그다.

화영도장, 그는 무가 강하기는 하겠지만, 수양은 높지 않다는 바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독고열의 설명과 지시가 이어졌다.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각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저마다 시간을 가졌다.

이용이 공승우에게 묻는다.

“괜찮겠습니까?”

공승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상수라는 곳이 어쩐지 마음에 걸립니다.”

잠시 말을 끊었던 공승우가 이용을 부른다.

“지부장님.”

“예.”

“화영도장과 사대금강. 그들은 공명심이 강하니 상수에 도착하면 전면에 서려 할 것입니다. 지부장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대로 지켜보시고 유성현과의 충돌을 최대한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성현이 강하기 때문입니까?”

“그것보다는 독고열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했듯이 지원 병력이 상수로 치고 들어 올 터이니, 지부장님과 야천분들은 적당한 선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유성현을 우리 손으로 잡으면 좋겠지만, 그것으로 얻는 공명보다는 여러분들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이건 특무지인으로서 하는 말이니 지켜주십시오.”

명령이란 말이다.

이용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하겠습니다.”

공승우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한다.

“이동할 시간이군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특무지인께서도 조심하십시오.”

“예.”

서로 손을 맞잡고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는 그들.

곧, 공승우와 정찬욱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선다.

방 밖에는 림충석과 홍노열, 김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대기 중인 항공육전여단 스무 명의 정예가 기다리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


상수(翔樹).

이용은 공승우의 말을 좇아 일행의 중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수림 사이로 저 앞에 상수가 보인다.

고대 문명이지 않을까 싶은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이곳의 인원은 이용을 포함한 야천 요원 일곱과 화영도장을 위시한 무당의 인원 넷, 소림의 사대금강 넷. 그리고 독고열. 그렇게 총 16명이다.

예상대로 일행의 지휘는 화영도장이 나서서 하고 있다.

“소정이와 두환, 초군이는 측면으로 들어가 적들의 시선을 끌어라. 야천분들께서도 이 아이들을 도와주시오.”

화영도장의 말에 이용이 고개를 끄덕인다.

독고열에게 시선을 돌린 화영도장.

“지원이 도착할 시간이 대략 10분 남았다고 했습니까?”

독고열이 답한다.

“예. 그리고 미리 말씀드렸듯이 상수라는 마을은 적천궁의 요새입니다. 어디서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니 신중하게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럼 지금부터 나와 사대금강은 바로 유성현을 잡겠소.”

마치 이미 일이 끝난 듯한 말투이다.

독고열은 내심 조소를 보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화영도장의 저만한 자신감이 오히려 자신의 계획에 일조할 것임이 분명하니 말이다.

독고열이 고개를 끄덕이자, 화영도장은 사대금강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일시에 몸을 날렸다.

고대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만, 소림의 불영선하보(佛影仙霞步)와 무당의 제운종(梯雲縱)이 그들에게서 펼쳐지니 순식간에 점으로 화해 전각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지켜보던 이용은 내심 침음을 삼켰다.

‘과연…….’

큰 소리 칠만은 하다.

그런 그에게 무당 12전사 중 하나인 장초군의 음성이 들려온다.

“뒤를 부탁합니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장초군의 뒤를 따라 왕소정과 두환도 바짝 따른다.

그들의 목표는 사주감시에 임한 적천궁도들이다.

먼저 움직인 화영도장 등의 측면으로 무당이 움직이자 이용도 야천 요원들에게 눈짓을 보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야천 요원들 역시 무를 익힌 무인이지만, 지금 그들의 손엔 총기가 들려 있다. 지금은 무를 겨루는 친선이 아니다.

적을 제압하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전장이다.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노린다. 그런 면에서 총기는 매우 유용하다.

야천 요원들까지 모두 달려 나가자 홀로 남은 독고열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지원 병력을 기다려 선발대와 합류하기까지 그의 임무는 후방지원이다.

10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지원 병력이 도착하더라도 그들은 적천궁도들과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화영도장이 어떤 상태에 빠지든 그들과 조우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후후.”

한차례 낮은 웃음을 흘린 독고열이 움직인다.

팟 소리를 남기고 자리에서 벗어나는 독고열. 그의 움직임. 그 역시 범상치 않은 무공을 몸에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적이다!”

경종이 울리고 사방에서 적천궁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들의 손에도 총기가 들려있다.

빠르게 달려오는 무당 12전사 세 명을 향해 적천궁도는 난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빗살처럼 움직이는 장초군 등에게 총탄이 박혀들 기미가 보이진 않는다.

그들에게서도 제운종의 묘가 여실히 드러난다.

조용하던 상수의 전각에 일시에 쩌렁쩌렁한 총성이 울리고, 낮게 가라앉았던 대기가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장초군 등의 후방으로 달려가던 야천 요원들이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기고 응사하기 시작한다.

곧 그들에게도 적천궁도의 총탄이 퍼부어진다.

피융. 피슝.

총탄들이 얼굴을 스치며 섬뜩한 소음을 남긴다.

빗발치는 총탄.

말 그대로 난사(亂射), 제대로 겨누지 않고 쏘아지는 총탄이다.

이용은 오히려 그 틈을 노렸다.

“점사!”

정조준하라는 말이다.

이용의 명령이 떨어지자 야천 요원들은 귓불에 적의 총탄이 흘러가 실핏줄을 만들어내도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피융!

한 발.

피융, 피융.

이어지는 한 발 한발에 몸을 드러낸 적천궁도들이 앞으로 꼬꾸라진다.

그 덕에 총탄세례를 뚫고 진격하던 장초군 등에게 더 여유로움이 건네진다.

그들이 어느 한 점에서 산개하더니 각자 적들의 포진 속으로 몸을 섞어간다.

“크악!”

“으아악!”

곧 비명이 울리고 그곳에서 시뻘건 핏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장초군 등은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빠르게 적을 베고 다시 빠르게 몸을 빼낸다. 그들도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이니 한순간의 방심으로 바닥을 뒹구는 고깃덩어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전방을 주시하던 이용.

“이동!”

다시 들리는 이용의 명령에 야천요원들이 여전히 쏟아지는 총탄에 맞서 응사하며 빠르게 전진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전각에 있던 적천궁도들이 빠르게 다가드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다.’

이용은 공승우의 명대로 행동했다.

곧 있으면 지원 병력이 도착한다. 그때까지 자신들의 임무는 시선 교란이다. 화영도장 등이 유성현을 잡을 시간을 주고자 하는.

“엄폐!”

다시 들리는 이용의 음성에 맞춰 야천요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편, 유세하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던 공승우 일행은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에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우거진 수림 사이로 은밀하게 감춰진 건물들을 발견한 것도 그때이다.

곧바로 림충석은 침투를 명했다.

명령을 받은 항공육전여단 스무 명은 몸을 낮추며 빠르게 진격했다.

감시용 카메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이들이 주의한 것은 트랩이다.

함정.

그리고 또 한 가지.

항공육전여단이 침투를 시작할 때 먼저 움직인 두 사람.

그들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승우와 정찬욱은 우거진 수림 사이를 평지를 달리듯 슈숙 소리만을 남진 채 파고들었다.

두 사람이 항공육전여단의 길을 열 것이다.

이곳으로 이동하는 와중 공승우와 림충석이 조율한 작전이다.

림충석은 기실 가능할까 하는 불신의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눈으로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공승우와 정찬욱의 움직임은 일반 사람이 생각할 범주가 아니었다.


수림 속 암자에서 상수의 상황을 관찰하던 유세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유세하를 보고 의아함을 눈에 담는 나지수.

그녀에게 하는 말인지 혼자 하는 말인지 유세하가 중얼거린다.

“후후. 왔군.”

차갑기만 하던 얼굴에 묘한 미소까지 걸린다.

유세하는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도(刀)를 손에 쥐고 암자를 나섰다.

“오라버니?”

그런 유세하를 따라 나지수도 몸을 움직였고, 그 순간 암자의 적천궁도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시 카메라에 수십의 적들이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잘 보이던 카메라가 일순 지지직거리며 꺼지는 것까지 말이다.

“16방위 적! 10, 9방위!”

암자의 적천궁도들은 각 구역에 포진한 전투요원들에게 지시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적천궁 전투요원들은 항공육전여단의 숨은 칼을 맞게 될 것이다. 일부러 적을 끌어내고자 카메라에 몸을 드러냈다는 바를 모르는 적천궁도들은 항공육전여단의 능력을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며 이동하던 공승우가 어느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한다.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잊을 수 없는 기운.

“!”

송지환을 죽음으로 몰고 자신과 격돌하여 위중한 상처를 남긴 자.

‘기다려라!’

공승우는 힐끗 정찬욱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바닥을 차고 몸을 빼냈다.

정찬욱이라면 큰 위험이 없을 것이다.

이미 몸 안에 가득 찬 내력에 야천에서 창천무까지 이어받았다.

야천 십영을 웃도는 힘을 지닌 그이다.

그라면 자신이 빠져도 림충석과의 작전을 훌륭히 마무리할 것이다.

쉐에엑!

공승우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의 등에 매단 신궁만이 그를 따라 움직인다.


@@@@@@@@@@


정찬욱 : 느루 아저씨, 정말 이따위로 띄엄띄엄 연재할 거유?

느루 : 아하하. 그게 그러니까…….

정찬욱 : 됐고! 도대체 이번엔 왜 이렇게 늦은 겁니까?

느루 : 4월부터 9월까지는 일이 좀…….

정찬욱 : 참나! 누군 일 안 하고 사나!

느루 : 아하하…….

정찬욱 : …….

느루 : …….

정찬욱 : 뭐, 좋시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갈 테니 앞으로 똑바로 합시다. 응!

느루 : 뭐, 그렇기는 하지만…….

정찬욱 : 똑바로 하시오- 응!

느루 : 아, 네, 네. 그래도 이번에 하나 더 있는지라. 다음 편으로.

정찬욱 : …….

느루 : …….

정찬욱 : 두고 봅니다!

느루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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