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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3
최근연재일 :
2024.06.13 18:00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724
추천수 :
3
글자수 :
124,550

작성
24.05.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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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Episode 2. 탑 (14)

DUMMY

지범은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지범은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지만, 지쳤다. 포기에 대해 수없이 생각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탑을 클리어하지 못한다고 해서 질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그에게 찬사를 보낼 수도 있다.

홀로 탑을 공략하려 시도했고, 실제로 대부분을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비난을 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었다.

신입 프레데터의 무리한 공략으로 탑의 공략을 위해 파견되어야 하는 이들이 하나의 탑에 발이 묶여 있다. 게다가 클리어도 못했으니 대중의 비판과 비난이 말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지범은 그들에 관해 생각했다.


지범을 믿고 탑에 홀로 들어갈 수 있게 도움을 준 손승혁.

무대책으로 무기도 없이 탑에 들어가려던 지범에게 검을 빌려준 김민현.

분명 탑의 밖에서 병력을 투입할 여건이 존재함에도 지범의 말만을 신뢰하고 탑에 따로 병력을 파견치 않은 정현기.


“이제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난 탑을 클리어한다.”


지범의 말이 맞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것들은 그의 뇌에 맺힌 허상일 뿐.

탑을 클리어하고 나간다면 모든 것이 지범의 업적이 될 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왜 탑을 혼자 오르고 있지··· ···?’


지범은 자신의 행동에 회의감을 느꼈다.

막무가내였다. 폭력적인 말로 하자면, 멍청했고, 우둔했다.

왜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잊었다.

그는 탑을 클리어하면 그만이었고, 본 목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던 도중 지범은 잠깐 멎어섰다.

잠깐··· ···. 멈춰선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허억··· ···헉.”


마침내 완전히 지쳐 버린 것이다.

지범은 털썩 계단 중턱에 걸터앉았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전지의 힘을 가지고 있던 지범은 자신의 몸 상태를 꿰 보았다. 그리곤 얼마 되지 않아 결론을 도출했다.

이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았다. 숨을 간헐적으로 내쉬고, 심장을 직접 운용하고, 눈을 깜빡이는 것만이 지범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으며, 이 이상의 행동을 했다가는 근육이 끊기고, 뼈가 부러질 것이며, 혈관이 터질 것이다.

사실 이미 그런 상태인 것 같았다.

지범은 돌출된 계단에 등을 누였다. 그리고 꽉 막힌 우주를 바라보며 바로 직전에 있던 청룡과의 마지막 전투를 회상했다.


*


지범은 이미 닳아 부러질 것 같은 검을 쥐었다. 거기에 더해 전신을 활자로 뒤덮어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투우웅!


마지막 화룡점정으로는 청룡이 활자를 충전하던 목 부분을 노리기 위해 전력으로 하늘을 날았다. 비행 활자가 없음에도 훌륭한 높이였다.

지범의 검이 청룡의 목에 닿기 직전. 말 그대로 지척에 도달했을 때, 야위어 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청룡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지범의 두 눈에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결과는 어찌 보면 뻔했다.


청룡의 여의주가 전 세계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활자의 파랑을 일으켰고, 그 결과 강제로 적귀에게 받은 물방울이 발현돼 지범의 전신을 보호했다. 덕분에 약간의 힘은 상쇄할 수 있었지만 그 물방울이 막아내는 것엔 한계가 명확했다.

결국 보호막은 여지없이 뚫리고 말았고, 지범은 여의주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지범의 전지가 자동으로 발동되듯 그의 오른손이 가볍게 청룡의 모가지를 스쳤다.


피슈우우욱!


이미 늙고 야윈 청룡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강한 일격이었다.

그의 목에서 붉은 강혈이 줄기차게 낙하했고, 그 혈흔은 4층에 존재하는 지구를 모두 덮을 만큼 많았다. 덕분에 청룡의 체내 에너지를 빨아먹으며 그것을 활자로 바꾸어 퍼붓던 여의주는 힘의 원천을 잃고 빛나던 광휘를 잃었다.


후우우웅!


다한 기력에 더해 피칠갑을 뒤덮어 쓴 청룡은 반전의 여지없이 허공에 정지했다.

무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범과 달리 청룡은 무중력에 몸을 맡겼다.


‘토룡(土龍)··· ···.’


지렁이를 다르게 이르는 말로, 지금의 청룡에게 저 별칭 말고는 붙일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범이 새로이 하나 이름을 제작해 주었다.


*


“쿨럭!”


지범은 상념에서 빠르게 도망쳐 나왔다. 이제 상념을 떠올리는 것조차 지범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지나야 현실에서 세 시간이 흐르는 것일까.

지범은 이미 이틀 하고도 반나절을 탑 내부에서 지냈다. 식량은 없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고, 잠은 자지 않았지만 피로하지 않았다.

오로지 탑을 공략하기 위해 최적화된 로봇이 된 것 같았다. 지범은 애써 가장 편하게 몸을 움직였다.


‘외로워··· ···, 춥고, 고독해.’


지범에겐 이제 오한이 몰려왔다.

체내에 운용할 에너지가 모두 떨어졌음을 방증했다. 애써 몸을 움직이기 위해 뒤척여도 봤으나 의미를 손실한 행위일 뿐이었다.

이제 그는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지범의 전지와 추측으로 예상하건대, 결국 정현기를 비롯한 어태커들은 지범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모한 후 그를 발견할 것이다.

희망은 없다. 그를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


지범은 떨리는 손으로 검집에 제 손을 들이 밀었다.

반절밖에 남지 않은 검이 지범의 손과 공명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검은 지범을 포기하지 않았다.


카가각··· ···.


지범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지며 검도 따라 계단의 돌출부를 둔탁하게 긁었다.


턱.


검을 옅게 쥔 지범의 손이 계단 바닥을 내리 찍었다.


“움직여··· ···.”


이젠 목소리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다.

단 세 음절을 꺼냈을 뿐인데 온몸이 아파왔다. 그런 상황에 무슨 검을 매개로 멀쩡히 일어나 저 억겁의 계단을 오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지범은 저 자신의 내면세계 구석진 곳에 숨은 자신의 자신감을 일깨웠다.


할 수 있다고, 움직이라고, 여기서 쓰러질 수 없다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이미 칠공분혈은 시작되었고, 뼈는 개미가 부딪히면 아스라질 것 같았다.

근육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고, 뇌는 더 이상 생각을 하길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꺾이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의지였다. 그에겐 확실한 신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의협심도 없고, 세상을 주무르겠다는 원대한 권력욕도 부재한다. 물욕마저 지범은 탐내지 않았다.

그저··· ···.


‘살고 싶을 뿐이야.’


의지란 전신의 표상이다.

모든 신체 기관은 의지를 기반해 움직인다. 의지가 없으면 뇌는 생각하지 않고, 근육은 나태해진다. 골자는 이 모든 것을 움직이길 거부한다.


“의지만 있으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아.”


카각!


거기에 지범의 전지가 자신의 몸을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방법을 갈구했다. 성과가 있는 것일까.

뼛가루가 다시 골격으로 회귀했다. 혈관은 더 검질겨져 서로를 붙들었고, 근육은 어설프게나마 서로에게 서로의 기관을 의탁했다.


“제발 움직여··· ···!”


그럼에도 화합의 여지는 트이지 않은 것인가.

몸은 제각기 다른 부분만을 운영했고, 결국 지범은 계단에 나자빠져 몇 계단 뒤로 훌쩍 밀려났다.

목적지가 멀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끝은 멀어 보였고, 계단은 늘어났다.


“움직이라고오오오오!”


지범의 한 서린 호통에 기관이 협응했다.


턱!


역사적인 한 걸음과 함께 지범의 상태는 계속해서 호전되었다. 몇 걸음 내딛고는 지범은 재차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은 회복이 더뎠다.

더디다는 건, 확실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범은 땅을 딛고, 걸음을 딛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지범에겐 몸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행동이었다.

움직이는 과정이, 그 모든 절차가 지범에겐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끝나지 않는 계단을 올랐다.


“후···.”


어느새 지범은 짧아진 검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내 검을 검집으로 들이민 지범이 이제 허리를 작게 굽혀 걸을 수 있었고, 조금의 시간이 경과하자 이젠 평범하게 걸을 수 있는 지경까지 되었다.

종국엔 달리기가 가능해져 계단을 두세 칸씩 뛰는 것조차 가능했다.


하지만 탑주의 장난일까.

계단은 오르고 올라도 끝을 드러낼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

지범의 기력이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는 반면 5층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러닝머신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툭.


그때, 모든 전기가 끊어진 건물의 내부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해졌다.

본디 우주란 그런 곳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드문드문 존재하는 별이 검은 도화지의 우주를 꾸민다.

하지만 이것은 달랐다.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빛이, 별빛이 제 수명을 모두 다해 꺼진 것 같았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지범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 앞에 ‘존재했던’ 계단을 오르는 것뿐이었다. 허나 희미한 불빛이 있을 때조차 보이지 않던 이 억겁의 끝이, 고작 소등만으로 그 의미를 가지기엔 한계가 있었다.


‘오른다··· ···. 올라서 이 탑을 끝낸다.’


오직 그 일념 하나로 지범은 탑을 올랐다.

여전히 우주는 방대했고, 믿을 것은 자신뿐이었다.


화악!


소등됐던 4층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진 건 그때였다.


“여긴··· ···.”


지범이 독어를 읊조렸다.

의문을 가득 품은 단 두 어절과 맺어지지 못한 끝맺음이었다.


[그렇게 경계할 건 없단다.]


지범의 주의를 끈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그녀’를 마주하자 이질적인 기시감을 느꼈다.

이질적 기시감.

세상에 이보다 모순(矛盾)적인 말이 또 있을까. 지범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흰 대리석 바닥과 흰 탁자. 흰 소파가 지범을 반겼다. 이 흰 세상에서 유일하게 희지 않고 검은 것이 있었으니.


“탑주··· ···.”


이 황색 탑의 탑주.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차나 한잔하자고.]


지범이 그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반으로 조각난 검을 역수로 취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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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pisode 2. 탑 (2) 24.05.15 2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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