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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3
최근연재일 :
2024.06.13 18:00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718
추천수 :
3
글자수 :
124,550

작성
24.05.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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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isode 2. 탑 (5)

DUMMY

검신에 질척하게 들러붙은 핏덩이가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향해 강하했다.

검에서 피를 덜어낸 지범이 정면을 응시하곤 입을 열었다.


“그만 나와. 비겁하게 뒤에 숨어서 인형들 내세우지 말고.”


지범은 괴이한 말을 했다.

문장 자체가 괴아하다기 보다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에서 다가오는 어색함이 더 강했다.

지금 이곳에 그의 말을 듣고 답해 줄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그의 입에서 언어가 나오는 일은 없어야 했다.

분명 그랬다.


“이래도 반응이 없네.”


아까보다 더 무뎌진 검날을 힘차게 휘두른 지범이 첨언했다.


“너도 여기 있는 게 썩 좋진 않을 텐데?”


한 번의 휘두름에 여섯의 생명이 그 생을 마감했다.

지범은 그것에 멈추지 않았다. 주먹에 기운을 실어 말의 머리를 세게 후리고, 발을 통해 말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죽지 못해 살아있는 말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중후한 음성이 말 무리의 뒤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납셨네.”


그것이 길을 걷자 말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지며 마치 모세의 기적이 연상되었다.

마침내 그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앞발은 무엇이든 찢어발기겠다는 듯한 날카로운 발톱이 장식되어 있었고, 아가리에서 드러낸 이빨은 가히 날카로움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 삐죽 솟은 털은 바늘과도 같았다. 회백색의 털로 뒤덮인 온몸에 중간중간 검정 줄무늬가 점철되며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그것의 이름은.


“흑호.”


재앙의 시초. 종말의 선구자 등등 많은 악칭(惡稱)으로 불리며 인세의 부정을 상징하는 흑호였다.

흑호는 등장과 동시에 제 모습을 인간으로 변형시켰다.

검은 머리와 긴 머리를 하고 누더기를 걸친 인간의 형상이었다.

지범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용케도 알아냈군. 지금껏 이 탑에 들어온 어떤 이들도 나와 대화는커녕, 싸우기에만 급급했는데 말이야.]


“내가 알고 있는 게 좀 많아서.”


지범이 으스대듯 말하자 흑호가 기롱했다.


[인정하지. 1층을 뚫고 2층으로 올라온 건 역대 등반자 중에서도 유일무이하다.]


“역대? 아니, 그것보다 등반자?”


흑호의 왼쪽 눈썹이 꿈틀했다.


[이건 또 신선하군.]


“묻는 말에나 답해.”


흑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조소했다. 명백한 비웃음의 의도였다.


[그렇게 공격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검도, 너도, 더 이상 싸울 상태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과연 흑호의 짐작대로였다.

검날은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져 제 기능을 해내기 힘든 상황이었고, 지범도 지칠 대로 지쳤다.

그에 반해 흑호는 급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긴 했지만 여전히 쌩쌩해 보였고, 그의 주변에는 말들의 비호가 삼엄했고, 심지어는 하늘과 땅마저 저것의 편을 들었다.

말 그대로 2층 전체가 지범의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결국 어찌할 방도가 없던 지범은 검을 들어 바닥에 꽂았다.


푸욱!


검어진 바닥에 김민현의 칼이 꽂혔다.

꽤나 제대로 박힌 듯한 검을 두고 지범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전투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충분하다.]


그에 상응하듯 흑호가 주변 말을 모두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여전히 멀기는 매한가지였다만, 둘의 순발력이라면 언제든 서로가 서로를 흔적도 없이 절멸케 할 수 있는, 그만한 거리였다.


“왜지?”


단 두 음절이었지만 둘 사이에 의미가 전달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음절들이었다.


[네게서 지고의 기운이 느껴져서 말이다.]


“’지고의 기운’?”


[설마 아직 그들의 존재 여부도 꿰뚫지 못했는가.]


“질문에 답해.”


[네 질문이 뭐였지? 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말이야.]


“넌 어디서 온 거야.”


[그것부터 시작인가.]


흑호의 시선이 지범에게로 고정되었다.


[얼마나 거슬러 올라야 할지 모르겠군.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난 탑에 갇혔다. 이 탑이었지.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주에게서 길러졌다. 그렇게 큰 불만은 없었다. 탑주는 나를 정성껏 보살펴 줬고, 난 따스한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으니까.]


“탑주··· ···.”


지범이 나지막이 되뇌었다. 흑호는 그런 지범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내가 성체가 되던 때. 탑주는 나를 1층에 버렸다. 지금 와 돌아보면 버렸다고 해야 할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때도 어두웠냐?”


[아니, 반대였다. 너무 과하게 밝고, 맑았지.]


“그럼 왜 지금은 1층 꼴이··· ···.”


지범은 말꼬리를 흘렸고, 흑호는 그런 지범의 말을 잇듯 받았다.


[탑의 1층에서 나는 유일한 포식자였다. 나머지는 내게 피식자에 불과했지. 흔히 말하는 초식 동물이었다. 내가 그곳의 유일한 포식자였다는 것은, 1층에는 본디 포식자가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지범이 고개를 까딱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난 그곳에서 소외를 느꼈다.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것과는 많이 달랐지.]


포식자에게 피식자는, 그저 먹이.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고깃덩어리에게 소외를 느낀다는 것은, 인간이 밥을 먹을 때 밥풀의 군집을 보고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과 크게 진배없었다.


[난 사냥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야생의 본능을 깨우친 적도, 본능을 깨우는 훈련도 한 적 없었다. 그저 조금 더 날카로운 성격을 소유한 피식자였다.]


흑호의 시선이 공허한 하늘을 향했다.


[하지만 피식자들은 여전히 나를 무서워했고, 그랬기에 나는 홀로 목에 사슬을 묶고, 마침 1층에 동봉되어 있던 감옥에 스스로 수감되었다.]


지범은 자신이 한창 전투를 치를 때 그가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내 몸에서 나온 연기는 소외와 고독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것에 닿은 모든 생명과 비생명을 잠식했다. 그렇게 1층은 지금과 같은 꼴이 되었다.]


“그럼 왜 남은 것이 늑대뿐이지?”


[이 연기에 적응한 종은 많았다. 그들은 저들의 힘을 모아 나름의 생태를 구축했고, 그렇게 내 불온한 감정의 전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생태계를 구축했다.]


흑호의 시선이 이번에는 오염된 말의 무리에게 향했다.


[그들이 구축해 놓은 생태를 망가뜨린 건, 너와 같은, 하지만 결코 같진 않은 족속들이었다.]


흑호의 날카로운 발톱이 지범의 가슴을 향했다.


[그들은 중무장을 하고 나서서 1층의 생태를 모조리 박살냈고, 그렇게 한 종족이 종말을 겪고 나서야 나는 나섰다.]


“결국 너 하나가 이 탑의 침략을 막아냈다는 뜻이네.”


[그래. 난 그 과정에서 야성을 되찾아갔다. 비로소 세 번째가 되었을 때, 모든 종족은 종말을 겪아야만 했고, 난 그런 나에게 회의감을 느꼈다.]


“그때 남은 종족이 늑대였던 건가.”


[그래. 이 빌어먹을 족쇄는 한 종족이 멸망을 당하고 나서야 풀리더군.]


“족쇄라면, 너의 목을 옭아맸던 그 족쇄를 말하는 건가.”


[맞다. 아무튼, ‘두려움을 먹고 사는 늑대’가 마지막 1층의 종족이었다. 너는 그 마지막 종족을 멸절시켰고. 사과는 필요 없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은 종족인 이유는 가장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가장 두려웠기 때문이었으니까.]


두려움을 먹고 사는 늑대가 두려움이라니. 모순적이었다.


[나는 그 등반자들을 죽일수록 본능을 일깨웠고, 그들의 지식을 습득했다. 많은 이들의 지식을 습득한 나는, 이제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그 집합체가··· ···.”


[그래. 이 탑의 본질은 탑 자체가 아니다. 뒤에 뒷배가 있다.]


“뒷배··· ···?”


[아직 자세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이 탑 뒤에 뭔가 있다. 아니, 이 탑뿐만이 아니다. 탑 자체에 비밀이 있다.]


“이제야 네 이야기의 요지를 알겠네. 함께하자는 거냐?”


[아주 잠깐이겠지만 말이다. 너는 너 자신에 대한 정보를, 난 저 뒷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거다.]


“이전에 받았다던 공격은 뭐지? 나와 같되, 같지 않다는 건 또 무슨 말이냐.”


[너희의 말로 하면, 국적이 다르다는 뜻이다.]


국적이 다르다는 것은, 이 탑이 다른 나라에서 몇 번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하는 것보다 큰 여파를 불러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지범은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그것보다, 내가 ‘지고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건 무슨 말이냐?”


[내가 알아낸 바로는. 이 세계의 이면에는 지고를 타고난 네 존재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지(全智)다.]


“전지··· ···.”


지범에겐 너무도 익숙한 단어였다.

할머니가 살아있을 적부터 계속해서 들어오던 이야기니까.


[하나의 파편이 너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근거는?”


[없다. 지금부터 이 오묘한 기운을 알아 가야겠지.]


“그래, 뭐.”


뜻밖의 동료를 얻은 지범이 3층으로 향하기 위해 검을 뽑은 순간.

공간이 구겨지며 일그러졌다.


“무··· ···뭐야?”


순간 당황한 지범이 검을 집었지만, 검은 처음부터 환영이었던 것처럼 멀어졌다.

지범이 손을 뻗어 보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크라악!]


뒤에서는 흑호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지범이 뒤를 돌자 일그러진 공간이 흑호의 목을 잡아 숨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이를 좌시할 수만 없던 지범은 손으로 일그러진 공간을 다시 펴려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엔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내 흑호의 입가엔 피거품이 물렸다.

흑호의 시선이 지범에게 향했다. 그리곤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저 한 사람만을 위하였던 것이구나.

마지막으로 흑호가 없는 힘까지 쥐어짜며 지범에게 유언을 남겼다.


[인지해라··· ···. 이 세계의 뒤엔 우리의 생각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 전지의 파편이여··· ···.]


그 말을 끝으로 흑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구겨졌던 공간이 다시 원상태로 복귀되었고,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호의 죽음 때문일까. 그가 오염시켰던 세상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층은 다시 푸르름과 평화를 되찾았다.

죽었던 생명은 부활했다. 아니, 죽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밤이었던 하늘은 푸른 낮이 되었고, 황폐화되었던 땅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지범은 애써 검을 뽑고 3층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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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pisode 2. 탑 (3) 24.05.16 20 0 10쪽
8 Episode 2. 탑 (2) 24.05.15 21 0 10쪽
7 Episode 2. 탑 (1) 24.05.14 2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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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pisode 1. 시작 (3) 24.05.09 4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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