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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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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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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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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악의 몰락 (4)

DUMMY

무수히 많은 생명의 불씨 중 하나가 꺼졌다.

그리 특출나지 않았던 불씨였다. 그는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죽었었다.

암이었다. 젊은 나이에 대처를 잘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곳에서 눈을 떴다.

도착한 곳은 폭신한 구름 위였다.


‘구름이 이렇게 폭신했나.’


누군가 그를 데리러 왔다.

꿈인가 싶었다. 사후세계인 것도 같았다.


“들어가라.”


자신을 안내해 준 검은 복면인이 건물의 안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그는 망설임없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실상은···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이곳은 사후세계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끔찍한 고통을 합리화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생전의 기억은 지워졌다. 이름도 잊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무엇을 함께했는지, 모든 기억이 불에 탄 종이처럼 재가 되어 날아갔다.

감정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감정과 반비례하여 그의 살생 능력은 증가했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의 명을 받들어 영혼을 죽이는 암살자가 되었다.

수많은 생명을 죽였다. 아니, 생명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이들을 죽이고 다녔다.

이미 한 번 죽은 이들. 자신의 신에게 방해가 되는 이들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감정이 사라진 남자는 자신의 신께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크허어어억!”


그리고 그런 자신의 신이, 자신을 방패 삼았다.

지원군이었다.

달에서 흘러나온 무수히 많은 셀리노프의 주민들이 이 세계를 파괴할 듯이 달려 들었다.


[나도 지금부터 시작이야.]


“컥··· ···. 셀리노프 님··· ···.”


[이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제 그만 뒈져도 될 것 같아.]


감정이 사라진 셀리노프의 수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며 그대로 절명함과 동시에 소멸했다.


“저 미친 놈이··· ···.”


많은 영혼들과 많은 인간의 죽음을 겪었다.

심지어는 많은 생명을 죽였다.

죽음에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저 앞에 있는 쓰레기에 의해 부정당했다.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수하를 방패로 내세워 총알받이를 한다는 게 생소했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카가가각!


누군가가 땅을 긁으며 가스페르의 다리를 노렸다.

성벽을 지키고 있던 근위대는 이미 전멸한지 오래다.

남은 것은 왕비의 편을 들고 있던 근위대뿐.

이 마저도 사라진 것을 보아 왕비와 1왕자를 따라 둘을 쫓으러 간 것이 분명했다.

지원을 해야 함이 분명했지만 가스페르에겐 그만한 여력이 남아돌지 않는다.


“크윽!”


가스페르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하늘로 날아 활을 쏘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처리가 아닌 제압이었기에 최대한 다리를 노려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명료히 오판이었다.

놈들에게는 감정이 없다.

‘고통’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회로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다리가 찢어지는 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고 가스페르를 덮쳤다.


‘이전에 나와 맞붙었던 놈들과는 달라.’


아니 같다.

같은 복장에, 비슷한 성인 남성의 건장한 체격. 무기는 제각각이었으나 무기에 새겨진 달 무늬가 그들이 셀리노프의 정예병임을 가스페르의 머릿속에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오직 하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감정의 부재.

이전에 복면을 쓰고 있던 놈들은 명백히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통을 느꼈고, 비명을 질렀다. 당황까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놈들은 다르다.

절대 이들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걸 써야 이 상황을 잠시나마··· ···.’


가스페르가 화살 하나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놈들의 가운데에 던졌다.

훈련된 정예답게 겨우 던져진 느린 화살은 맞지 않았다.

결국 화살은 바닥에 박히고 말았다.


[정신줄을 놓은 거냐? 왜 쏘지를 않고 던져서 낭비를 하고 그래?]


멀리서 셀리노프의 조롱이 들렸지만 가스페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펑.”


바닥에 박힌 화살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정확히 셀리노프의 정예 모두를 정지시켰다.


[뭐야? 움직여 이 새끼들아!]


셀리노프의 격 담긴 호통에도 정예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30분만에 끝낼까? 내가 이거 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아이템 정보>


이름: 퍼즈 화살(pause arrow)

등급: B

설명: 활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자부하는 신이 만든 화살. 화살의 범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한 시간 동안 제자리에 멈추게 된다.


“서프라이즈?”


[까다롭네. 한 시간? 한 시간 동안 뭘 할 수 있길래 그런 도박을 한 거지? 저 화살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보려면 네가 나를 한 시간만에 처바르는 것밖에는 없는데?]


“그거면 충분하지.”


가스페르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 박혀 있던 화살들이 일제히 셀리노프의 날개를 봉인하고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이거 풀어! 미친 놈이.]


셀리노프의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가스페르가 「광휘의 발걸음」을 발현해 하늘로 순식간에 튀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바닥처럼 딛고는 아래로 활을 조준했다.

마침내, 「총격포화」가 발현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고유격 발현, 「총격포화」”


중력에 의해 아래로 추락하듯 떨어진 여덟 발의 화살이 일제히 셀리노프를 향했다.


콰과가가각!


분명하게 들려오는 화살이 박힌 흙바닥의 소리.


‘응? 흙바닥?’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셀리노프가 아니었다.

멈춰 있던 복면인. 셀리노프의 정예병이었다.


“언제?”


[언제긴, 처음부터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가스페르가 황급히 화살을 조준했지만.

한 발짝 느렸다.

이미 셀리노프의 화살은 가스페르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공중이라 피하기에도, 맞받아치기에도 적절치 않았다.

그때, 가스페르의 화살이 빛나며 어떤 목소리가 가스페르의 ‘내면’에서 들려왔다.


[활을 앞으로 내밀어.]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가스페르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활을 앞으로 내밀었고, 디오스 마노의 마지막 걸작이 서늘한 은빛 기운과 따스한 금빛 기운을 동시에 뱉으며 울부짖었다.

그 기운에 셀리노프의 화살은 바스라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좀 죽어라! 이 바퀴벌레 같은 새끼야!]


“너 새끼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 안 죽어.”


[지독하네. 생포는 물 건너갔고, 죽이는 수밖에 없나?]


“저용 부리지 마. 여기서 죽는 건 너뿐이야.”


[시체를 들고 가면 그분께서 좋아하시겠지? 그럼 난 다시 촌갑이 될 수 있어··· ···.]


“그놈의··· ···.”


가스페르가 순식간에 셀리노프의 뒤를 잡고 정예병에게서 빼앗은 단도를 휘둘러 오른쪽 날개 하나를 베어 버렸다.


[크아아아악!]


격 담긴 샤우팅이 가스페르의 귀를 괴롭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자 셀리노프도 검을 꺼내 가스페르의 어깻죽지를 길게 베었다.


“크흑!”


피 토하는 어깨를 붙잡으며 물러났다.


[방금까지는 어느 정도 생포해 갈 마음이 있었는데.]


셀리노프가 가진 격의 위력과 상상력의 양이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잘렸던 날개는 달빛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그의 눈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가 담겼다.


끼긱. 끽.


아직 퍼즈 화살에 10분의 지속 시간이 남았지만 셀리노프의 상승하는 상상력이 그들을 깨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지속 시간의 한계를 뚫지는 못하는 듯 발은 떼지 못하고 상체만 조금씩 움직일 뿐이었다.


[확실히 저거 위력이 강하긴 하네.]


저들이 완전히 깨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 가스페르가 최후이자 최선의 수를 쓰기 시작했다.


“야, 어차피 이 전투 끝나면 둘 중 하나는 죽을 텐데. 마지막으로 얘기나 한 번 더 할까?”


시간 끌기였다(?)


[한가로운 건지, 사태 파악을 못하는 건지.]


“조금만 들어줘 봐.”


가스페르의 호소에 셀리노프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왜 내가 너의 존재를 알고, 네가 가진 상상력의 양이 나보다 훨씬 많았는데도 이렇게 무분별하게 ‘허용 상상력’을 늘려 왔을까? 내가 멍청해서? 이렇게까지 번질 줄 몰라서?”


셀리노프가 천천히 장검에 달빛을 충전했다.


“난 그렇게 멍청하고 안일하지 않아.”


띠링!


시스템의 메시지 알림이 도착했다.


“내가 너의 신언까지 개방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격을 발현하고,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이유는··· ···.”


가스페르가 입이 찢어질 듯 길게 늘어난 섬뜩한 입꼬리를 보였다.


“이 ‘신’을 부르기 위해서는 이 정도가 최소치기 때문이야. 다른 이유는 없어. 억지로 끄집어내자면, 내가 너를 최소한으로 붙잡을 시간이 필요했달까? 워낙 까다로운 신이거든.”


가스페르의 몸 전체가 환하게 빛나며 등에 화살통과 견갑이 걸메었다.


[배후 성주(星主)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계약 체결입니까. 성주님?”


[물론이지. 내 아주 기특한 후손아.]


무수히 많은 상상력의 폭발로 시스템이 행성에 천천히 구현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스템 허가 구역이 열립니다.]

[스트리머가 행성 ‘헤랴’에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신명을 밝히지 않은 다수의 신이 채널에 입장합니다.]


시스템의 구현.

엄연히 가스페르의 계획에서는 벗어난 시나리오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가스페르였다.


“성주님. 일단 피오렐라 쪽으로 지원해 주십시오. 이 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큼큼. 자신감 봐라. 일단 잠깐.]


목을 가다듬은 헤랴 행성의 시조 허완이 저 하늘에서 보고 있을 신들에게 말했다.


[반갑다. 나는 얼마 전에 위인에서 신으로 승격된 허완이다. 내 신격이나 이명은 지금 말하기엔 빡세고. 거기 하늘에서 보고 있을 신들아. 특히 해의 신들, 긴장해라. 내가 곧 너희들을 꺾고 유일한 해의 신이 될 테니까.]


아직 시스템의 구현이 느려 신들의 메시지는 들리지 않는 모양.

그리곤 아래로 고개를 떨궈 셀리노프를 응시했다.

그러자 셀리노프의 몸이 절로 굳었다.


[이게··· ···, 진짜··· ··· 신.]

[이 경우 없는 새끼가. 감히 우리 후손을 건드려?]


진짜 반격의 시작이었다.


[빌런 주제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과하잖아.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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