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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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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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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가스페르 (3)

DUMMY

“처단? 처단 같은 소리 하네.”

“맘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이찬이라는 사람의 위치만 말해 주시면 여동생도 돌려 드리고, 여기서 깔끔하게 물러가겠습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내가 왜?”


하지만 가스페르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시치미 떼지 마시죠.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다 알고 왔다는 양반이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나 봐?”


격장지계를 펼쳐 보았지만 상대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 먼저 이름부터 밝히죠. 제 이름은—“

“필요 없고, 피오렐라 어딨어?”

“이런,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분이셨··· ···.”


남자가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눈 앞으로 구두 바닥이 날아왔다.

남자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가스페르의 발차기를 피했다.

가스페르의 발차기와 동시에 복면인들이 가스페르를 덮치려 했지만, 이를 남자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아뇨 아뇨. 저희에겐 아직 대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필요 없다니까. 피오렐라를 데려오지 않으면—“

“아 잠시만요. 지금 저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셨다가는··· ··· 여동생 분이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그러니까 좀···, 예의 바르게 행동하시라구요.”


한순간에 남자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퍼져가며 태도 또한 백팔십 도 달라졌다.


“통성명부터 하자. 셀리노프다. 네 이름은 가스페르겠지?”


가스페르가 다시 활을 쥐는 시늉을 하자 셀리노프가 날아 오던 활을 낚아 부숴버렸다.


“아니, 통성명 하자는 게 그렇게 어려워, 이 씨발아?”

“언행이 거치네.”

“예의 바르게 굴라니까? 네 여동생이 갈기갈기 찢기는 걸 보기 싫으면?”


가스페르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꿇어.”

“뭐?”

“꿇으라고 개새끼야.”


셀리노프는 말과 동시에 가스페르의 정강이를 신발 앞부분으로 있는 힘껏 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가스페르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신께서 널 생포하든 시체로 가져오든 하라고 명하셨다. 신께서는 생포를 바라셨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시체가 편하긴 하거든. 중간에 발악할 여지도 없고 말이야.”


셀리노프가 옆의 복면인에게서 장도를 건네받아 천으로 슬쩍 묻은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혹시 알아? 지금 이 피가 네 여동생의 것일지?”


가스페르가 가진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다가왔지만 피오렐라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은 채 참고 또 참았다.


“이제 네 여동생의 곁으로 보내 줄게. 꼭 가면 안부 전해라.”


도의 날카로운 날이 가스페르의 머리 위로 내려쳐지기 직전.

가스페르와 무언가가 동시에 움직였다.

그 무언가는 빛을 뿜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

그리고 가스페르는 그 정체를 단번에 알아 챌 수 있었다.

그건 분명 화살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피오렐라에게 건네 준 은빛의 섬광 화살.


“크윽!”


이명과 함께 눈이 멀어 버린 셀리노프가 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크악!”

“크어어억!”


그러나 애꿎은 자신의 부하들만 죽어나갈 뿐 가스페르의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풀을 짓밟는 소리까지도.


“어디냐! 이 씨발··· ···!”


천천히 귀에서 들려오던 이명이 멎었고, 다시 기감을 높인 셀리노프가 가스페르의 흔적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끄드드득!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아직 시력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셀리노프는 소리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숙여라! 목표물이 활시위를 당겼다! 숙이고 있으면 맞추지 못할 것이야!”


다급히 명령을 내린 셀리노프가 황급히 나무 뒤로 숨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왜 내가 앞에서 공격할 거라 생각하는 거지?”

“뭐?”

“난 이제 내 동료와 가족을 잃지 않기로 다짐했어. 겨우 너 따위에게 따위 무너지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가스페르는 자신이 가진 최대 위력의 격을 발현해 적들에게 무자비하게 퍼부었다.


“고유격 발현. 「총격포화」.”


콰과가각!


화살로 이루어진 비가 쏟아지며 인근에 피 웅덩이를 생성했다.


“크아아아악!”


고통스러운 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셀리노프는 빠르게 미리 위치를 지정한 「행간이동」을 타고 도망쳐 버렸다.

단 한 번의 격으로 마흔 가까이 되던 적을 모두 처리한 가스페르가 웅덩이를 밟으며 착지했다.


“피오렐라! 어딨어!”


가스페르가 애타게 피오렐라를 찾았다.

분명 그 은빛 화살은 자신이 피오렐라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 부근에 피오렐라가 있다는 것이었다.


“오빠··· ···?”


가스페르는 작지만 분명하고도 명확한 소리를 들었다.


“피오렐라!”


빼꼼 나무에서 얼굴을 내민 피오렐라가 가스페르를 인지하자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 가스페르의 품에 안겼다.


“나··· ··· 나 진짜 무서웠어.”

“그래. 집에 가자. 다행이다, 다행이야.”


피오렐라를 품은 가스페르가 혹여 깰까 조심히, 그러나 빠르게 「광휘의 발걸음」을 발현해 성채의 앞으로 도착했다.


“문을 열어라.”

“왕자님!”


문지기들이 애타게 가스페르를 불렀으나 가스페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빨리 문 열어.”

“아··· ···알겠습니다!”


아주 늦은 새벽. 성채의 문이 열렸고, 가스페르는 빠르게 궁을 향했다.

문지기의 허가가 너무 늦다고 생각한 가스페르는 빠르게 담을 넘어 궁으로 들어왔다.


“주치의! 피오렐라의 주치의는 어디에 있나!”


목청을 한껏 높여 부르자 피오렐라의 주치의가 백의를 입은 채 나타났다.

방금 일어났는지 비몽사몽한 눈치였다.


“어서 아이를 치료해.”


피오렐라를 받아 든 주치의가 빠르게 자신의 진료실로 향했다.


“아버지.”


지금까지 밤을 샌 것인지 입구에 나타난 제퍼가 가스페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하다. 아들.”


그 목소리에 가스페르는 문득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아들로 불린 것이 언제일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뗐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맙다. 날이 늦었구나. 어서 들어가 쉬어라.”

“예. 아버지도 들어가 쉬십시오.”


순식간에 격을 발현 후 상승한 가스페르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제퍼는 잠깐 가스페르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왕의 자격에 맞지 않는 경박한 발걸음으로 피오렐라에게 향했다.


“피오렐라아아아아!”


***


제 방 침대에 털썩 누운 가스페르가 곰곰이 생각했다.


《관념》과 《관념》을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관념》과 《현실》을 이동하는 데는 최상급 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상력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가스페르가 생각하는 가설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 이찬의 옆에 붙어서 이동하는 것을 몰래 따라왔다.”


라는 것.

《관념》에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도출해 낼 수 있는 결론이었다.

갑자기 가스페르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깐. 그렇다는 건.’


가스페르를 데려다 준 이찬이 다음으로 향한 것은 아마 이노의 행성일 것이다.

피식 웃은 가스페르가 도로 침대에 누웠다.


‘우리 일행 중에 이노가 제일 강했는데. 어떻게 할 수 있으면 해 보라지.’


그렇게 가스페르는 온몸을 씻은 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참으로 긴 1년이었다.’


***


헤랴의 정 반대편 대도시 헤랴-D에서는 환한 항성이 헤랴를 비추고 있었다. 그 대도시의 중심에서 한 대화가 벌어졌다.


“영주님. 폐하께서 친필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


영주라 불린 이의 명으로 하수인이 편지를 뜯어 요약해 읽었다.


“가스페르가 돌아왔다. 너희 어머니에게도 같은 연락을 보냈으니 조속히 수도로 복귀 바란다.”


갑자기 짧은 숨을 들이키며 하수인이 말을 멈추자 영주가 독촉했다.


“어서 읽으라 하지 않았느냐.”

“예.”


목소리를 가다듬은 하수인이 남은 편지의 행을 마저 읽었다.


“다음주 이 시간. 후계를 가스페르에게 수여하는 수여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


그 말을 들은 영주가 곁에 있던 화살을 집어 던져 하수인의 머리에 꽂았다.


“··· ···.”


단말마도 내뱉지 못한 채 쓰러진 하수인을 흘겨 본 영주가 나지막이 홀로 뇌까렸다.


“어머니를 뵈어야겠군.”


***


헤랴-D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지역.


“왕후시여. 왕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이리 주거라.”


편지를 받은 왕후가 그 내용을 읽더니 호방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작자가 드디어 노망이 난 모양이로구나. 손수 편지까지 써 주시고.”


받아 든 편지를 갈갈이 찢어발긴 왕후가 외투를 걸쳤다.


“아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한 1왕자와 왕후가 빠르게 왕을 알현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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