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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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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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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페르 (8)

DUMMY

그 ‘대사건’이 있은 후 전 행성은 혼돈에 빠졌다.


“2왕자께서 돌아가셨다는데?”

“책봉식 때부터 어딘가 이상하시긴 했는데 죽을 병이었다고?”

“세상이 어떻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


창창한 장래를 촉망받던 사람.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사람.

역대 최고의 왕으로 평가받을 것 같던 사람.

그런 사람이 왕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로 말이다.

그런 소식이 헤랴 전역에 퍼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너무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그런

미래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런데 또··· ···.”

“또 뭐?”

“책봉식 날 있었던 2왕자님의 상태를 보면 말일세··· ···.”


그날 있었던 일들은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분위기였다.


“그 얘긴 그만하세.”


한창 얘기 중인 무리를 중재한 건 한 대장장이였다.


“아, 예 알겠습니다.”


이 도시권은 물론, 행성 전역에 말로는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조용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디오스 마노(Dios mano).

세간에서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뭐든지 제작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 다 했으면 이만 가게. 내 나이가 들어 꼴사납게 누군가 앞에 있는 것을 싫어하네.”

“아··· ···알겠습니다.”


***


“장례를 준비해라.”


제퍼가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그게··· ···.”


그러나 신하들은 어영부영하는 중이었다.


“뭣 하느냐. 어서 장례를 준비하라지 않느냐!”

“저··· ···그게··· ···.”


우물쭈물하는 신하를 대신해 1왕자가 앞에 나섰다.


“미천한 백성들과 관리들이 2왕자의 사인(死因)을 밝혀 달라는 요구를 하는 중입니다.”

“’미천한’은 빼지.”

“아, 죄송합니다.”


늘 무표정에 은은한 신비로움 마저도 느껴질 만큼 자신의 기분을 잘 드러내지 않는 국왕 제퍼가 지금 미세하게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세간에는 2왕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


쾅!


왕좌를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려 친 제퍼가 이제는 명백하고도 과한 분노를 드러냈다.


“뭐라? 내가 지금 2왕자에 대한 오욕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 내 명한다. 장례는 두 번째 사안이다. 2왕자가 자결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최초 유포자를 잡아 오라. 장례는 그 이후다.”


신하들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당장!”


제퍼의 호통이 떨어지고 나서야 신하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할 일을 찾아 시작했다.


“잠깐. 아들아.”

“예?”

“너는 여기 남거라.”

“알겠습니다.”


신하들과 나가려던 1왕자를 왕비가 잡았다.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저들도 당신이 보살펴야 할 백성 아닙니까.”

“떨어지시오. 왕비.”


왕의 말에도 왕비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떨어지라 하지 않았소? 왕비마저 내 명을 어긴—“

“잠시만요.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퍼의 귀에 자신의 입을 살포시 옮긴 왕비가 속삭였다.


“2왕자의 죽음엔 저와 1왕자가 깊게 관여해 있습니다.”


왕비가 천천히 왕의 얼굴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제퍼의 얼굴을 본 왕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당신의 이런 얼굴을 보고 싶었다고.’


당황에 잠식된 얼굴.

배신감에 절망한 얼굴.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마주한 얼굴.

복합적인 얼굴들이 모두 하나같이 같은 질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입이 이어 받았다.


“왜 죽였지?”

“꽤나 담담하시네요. 본디 성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이라, 그런 게 어렵나?”

“내 질문에 답하라. 왜 죽였지?”


제퍼는 조금 더 진중해지고··· ··· 가라앉았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1왕자가 왕이 되는 것을 바랐을 뿐.”

“겨우 그딴 이유로··· ···! 내 당장—“

“아 잠시만요. 혹여나 저희 둘을 처리하실 생각이라면, 조금 더 신중해지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더 신중하란 말인가? 내 아들을 죽이고 역모를 저지르는 둘을 내 처리하지 않으면 어찌하리오?”


왕비가 조소를 머금었지만, 분노로 자신의 시야를 메운 제퍼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지금 저희 둘을 처리하면 왕의 후계는 거의 없다시피 하단 말입니다. 1왕자가 없어지면, 그리고 그를 보좌할 제가 없어지면, 왕은 누가 계승합니까? 실종된 4왕자가, 술에 찌든 3왕자가 하리까?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피오렐라가 합니까?”


왕비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하시란 말입니다. 무엇이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인지.”


그 말을 끝으로 1왕자와 왕비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무도 남지 않은 쓸쓸한 전당에는 쓸쓸함과는 전혀 맞지 않는 한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1왕자의 후계 책봉식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이는 원칙을 고수하던 신하들 측에서도 인정되어 받아 들여졌다.

세간에는 ‘1왕자가 후계로 책봉되었다’라는 두루뭉술하고도 불확실한 소문만이 나돌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세상에는 2왕자가 부담감에 이기지 못해 자결하는 것으로 하시죠.”

“그대는 나를 지금 적으로 돌리려는 겐가? 내게 명령 하지 말게.”

“순순히 말 들으시는 것이 좋을 텐데요. 1왕자가 왕위 계승을 포기하면 더 아쉬운 것은 폐하이실 겁니다.”


예상치 못한 후계 문제에 직면한 제퍼가 분노를 억눌렀다.


“알겠네.”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복종하듯 허한 제퍼가 속으로 울분을 토했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말씀하시죠.”

“아직 1왕자는 죽은 2왕자에 비해 통솔력이나 리더십이 부족하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 대동소이할 터.”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헤랴-D로 가라. 가서 경력을 쌓아. 정확히 1년 이후, 왕위를 넘겨 주겠다.”

“분부대로 합죠.”


모든 것이 계획대로라는 듯. 씨익 기분 더러운 미소를 지은 왕비가 제퍼의 조건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1왕자는 나라를 통치하기 위한 경력을 쌓겠다는 명목 하에, 왕비는 그런 1왕자를 돕겠다는 허울뿐인 명목 하에 계획은 시행되었다.

그렇게 1년을 거의 마쳤을 때쯤.


“오빠가 돌아오게 된 거야.”


모든 이야기를 들은 가스페르가 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없던 사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

“응··· ···.”

“그래. 고마워.”


피오렐라의 머리를 한번 줴흔들 듯 흔든 가스페르가 밖으로 나가려했다.


“잠시만.”


그런 가스페르를 붙잡은 피오렐라가 가스페르에게 다가갔다.


“오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 늘 조심해. 그리고 이 얘기는—“

“우리끼리의 비밀?”


피오렐라가 고개를 세로로 격하게 움직였다.


“고마워. 잘 자.”


***


“피오렐라의 말이 맞아.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게다가 가스페르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제마저 남아있었다.


‘그때 피오렐라를 납치했던 놈들··· ···.’


분명 《관념》에서 넘어온 이들이었다.

악재와 악재가 겹겹이 쌓이며 가중되고 있었다.


‘그나마 호재인 건.’


그 악랄한 왕비와 1왕자가 얌전히 왕이 되는 것을 두고 보진 않았다는 것.


“그럼 내가 왕이 되는 수밖에 없는 거야··· ···?”


직시하기 힘든 현실을 받아 들이고 남은 것은.


‘이렇게 된 거 해 보자.’


굳은 결심뿐이었다.


다음 날.


“간밤에 잘 잤느냐.”


이른 아침부터 왕비가 가스페르의 방에 찾아왔다.

누가 봐도 수상한 물병을 가지고.


“그럼요. 어머니는 평안하셨습니까?”

“물론이다.”


피오렐라의 이야기를 들은 후로 어쩐지 혼자만 더 어색해진 느낌이었다.


“잠시 안으로 드시죠.”

“그럼, 실례 좀 하겠다.”


이후로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교육은 잘 듣고 있는지, 훈련하는 데 힘든 건 없는지와 같은 빈말뿐인 대화가 이어졌다.


“어머니 근데 이곳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부모자식 간에 무슨 일이 있어야 올 수 있더냐. 이 어미는 서운하구나.”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되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왕비가 슬쩍 물이 가득 찬 물병을 탁자에 올려 놓았다.


“실제로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예?”

“한잔 할 테냐?”


비슷한 패턴이다.

왕비가 2왕자를 망친 과정.

게다가 공식적인 책봉식이 보름 남은 시점이라는 것까지도.


“따라 주시면 마시겠습니다.”


그러자 왕비가 찻잔에 가득 물을 따라 가스페르에게 건넸다.


“마시거라. 달달하니 기운 날 것이야.”


가스페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럼 뭐, 맛있게 먹겠습니다.”


가스페르가 언제 고민했냐는 듯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가스페르의 고개가 위를 향한 틈을 타 왕비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순진한 녀석.’


띠링!


어딘가에서, 특히 가스페르의 뒤에서 작지 않게 시대 배경과 맞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왕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잘 마셨습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이따 뵙겠습니다.”

“그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거라.”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가스페르가 자리에 주저 앉았다.


“와, 죽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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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가스페르 (2) 23.12.24 4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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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가월의 밤 (4) 23.12.17 69 0 10쪽
73 가월의 밤 (3) 23.12.15 60 0 9쪽
72 가월의 밤 (2) 23.12.13 8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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