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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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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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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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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페르 (4)

DUMMY

고요한 방 안.

왕좌와 형태가 비슷한 의자에 앉은 누군가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기다린 지 약 20분째.

주저 없이 벌컥 문이 열리며 1왕자가 들어왔다.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약속 시간에 늦어 놓고 말이 많구나. 잠깐 있어 보거라.”

“제가 국왕이 될 거라고 단언하지 않으셨습니까!”

“좀 가만히 있어 보래도! 어미가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죄··· ···죄송합니다. 잠깐 흥분했습니다.”

“일 년간 사라진 4왕자가··· ··· 1왕자를 대신해 왕위 계승자에 올랐다라··· ···.”


입을 가린 채 쿡쿡 조소한 왕비가 이내 대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핫! 가스페르 이 영악한 놈. 어떻게 왕을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오프.”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1왕자, 제오프 반 아이데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우리··· ··· 2왕자에게 했던 것과 유사하게 하면··· ··· 더할 나위 없이 괜찮지 않으련?”


그 말에 제오프가 미소를 짓고는 꿇은 무릎을 피고 앞으로 나와 왕비의 앞에 섰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그딴 방법으로는 놈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어려울 텐데?”


열린 창의 사이로 찬 바람이 훌훌 불어왔다.


“누··· ··· 누구냐!”


왕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그 남자의 접근을 거부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것을 무시한 채 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경비병! 경—”

“경비병은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할 거야.”

“뭐?”


1왕자가 다급히 나가 경비병을 부르기 위해 문을 벌컥 열어젖혔으나 양 옆으로 보이는 것은 붉은 피로 물들여진 카펫과 시체로 이루어진 산이 있을 뿐이었다.


“무··· ··· 무슨!”

“어이 거기, 앉지.”


남자의 한 마디에 얼어붙은 1왕자가 천천히 왕비의 옆에 앉았다.

그에 맞춰 왕좌에서 왕비를 쫓아 낸 남자가 그곳에 앉아 왕명을 하달하듯 말했다.


“이제야 좀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된 것 같네.”

“용건이 무엇이냐··· ···!”

“반말은 역시 듣기 거북하네. 존댓말로 하지.”

“난 이 나라의 왕비다! 내가 존대를 해야 할 대상은 왕뿐! 너 따위에게 존대하지 않을 것—!”

“아, 잠깐잠깐, 아까까지 신랄하게 까던 거 왕 아니었어? 역시 인간의 이중성은 두렵다니까. 그렇지 않니?”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말에 입이 턱 막힌 왕비가 황급히 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너희들이 2왕자인지 뭔지에게 했던 방법이나 결과에는 관심 없어. 결과는 뭐 산에 질러진 불처럼 뻔하지.”

“어차피 다 같은··· ··· 인간 아닙니까?”


1왕자가 미련한 질문을 내뱉었다.


“아직도 이런 아둔한 소리를 하네? 아직도 모르겠니? 놈은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여기서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간 내 신께서 나를 엄벌에 처하실 수도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고.”


남자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천천히 일어나 왕비와 1왕자의 주위를 배회했다.


“가스페르 그 놈은 이제 인간이라 불리지 못 해. 그러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지. 거기, 잠깐 편지 좀?”


1왕자가 다급히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편지를 꼼꼼히 읽어 보던 남자가 쿡쿡 웃었다.


“역시 ‘그 얘기’는 생략해 놓은 건가.”

“’그 얘기’라면··· ···?”

“알 거 없다니까. 너무 시시콜콜 캐묻지 마.”

“아··· ··· 알겠습니다.”


다시 왕좌에 앉은 남자가 팔걸이를 콱 움켜쥐더니 팔걸이의 일부를 뜯어 버렸다.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 본 1왕자와 왕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아, 알겠다. 너희랑 내가 힘을 합치면 될걸? 너희는 그토록 원하던 권력을 얻고, 난 내 신의 총애를 받고!”


왕좌에서 한번 더 일어난 남자가 팔을 위로 벌리더니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는 1왕자와 왕비를 마주보았다.


“어때, 솔깃하지 않아?”


그때, 왕비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뭘 믿고 당신과 손을 잡지?”

“이런이런, 아직 교육이 덜 됐나?”


왕비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아니다. 소신 있고 좋네. 이게 더 믿음직스럽지. 질문이 뭐라고? 아 너네가 나를 어떻게 믿냐고?”


말과 동시에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순간 낮이었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남자의 뒤로 보름달이 생겨났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평민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밤으로 바뀌었어!”

“종말이다. 종말이야··· ···!”


그들의 혼란스러운 듯한 소리가 이 현상이 허구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때, 이 정도면 증명이 되었나?”


남자의 뒤로 은빛의 보름달이 화하게 퍼졌고, 남자의 얼굴이 소름 끼치게 뒤틀렸다. 일각에서는 저런 걸 두고 ‘웃는다’라고 했던가.

<올림포스> 달의 신 ‘밤을 비추는 서광’의 주민 셀리노프가 이 방에 비춰진 보름달의 달빛처럼 환하게 자신의 야망을 드러냈다.


***


“아버지, 솔직하게 말해 보십쇼. 제가 후계로 지목된 이유가 대체 뭡니까? 큰 형님이 일은 백만 배 더 잘하시지 않습니까!”


가스페르가 회의실로 향하는 제퍼를 붙잡으며 꼬치꼬치 물었다.


“아니,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한테 왕위를 넘긴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 안되는 짓을 저지른 게 네 아비이자 이 나라의, 이 행성의 왕이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잡담은 그만. 회의장이다.”


강제로 입을 닫은 가스페르가 제퍼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왕을 알현합니다.”


길게 늘어진 상의 끝에서부터 신하들이 왕을 받들었다.


“다들 고생하네.”


가볍게 아침 인사를 한 제퍼가 진짜 왕좌에 앉았다.

가스페르는 비서의 신분으로 회의에 참석했기에 제퍼의 옆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회의 안건은 뭔가?”


제퍼가 가스페르에게 신호를 주자 가스페르가 책자를 넘겨 오늘의 회의 안건을 읊었다.


“가스페르의··· ··· 왕위 계승에··· ··· 관한 안건입니다.”

“하하, 신입 비서라 말을 좀 더듬는군.”


신하들이 애써 멋쩍은 웃음을 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목을 가다듬은 제퍼가 본격적으로 신하들에게 질문했다.


“큼큼, 그럼 본격적으로 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네. 가스페르의 후계자 선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제퍼의 옆에 바로 가스페르가 있었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신이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패기 넘치는 신하가 의견을 냈다.


“오, 좋네. 한 번 말해 보게.”

“신의 미천한 식견으로는 어째서 가스페르 왕자님을 후계로 책봉하셨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패기와 용기를 두루두루 갖춘 신하가 한 마디 내뱉자 이에 따라 다른 신하들도 그 의견에 거들기 시작했다.


“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1왕자님께서는 대도시를 거느리시며 타 행성 대비 엄청난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2왕자를 제외하면··· ···.”

“잠깐, 2왕자 이야기는 꺼내지 말지.”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에 가스페르도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제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에 아니, 최근도 아니지. 바로 어제 있던 일이다. 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신하들이 제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 새벽. 피오렐라가 의문의 복면인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었다.”


장내가 일순 차갑게 식었다.


“그··· ··· 그게 사실입니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서 찾으러 가야··· ···”

“아직 짐의 말이 끝나지 않았네.”


다시 모든 신하들이 침묵했다.


“그런 피오렐라를 구출한 것은 다름 아닌 가스페르였다네. 내 자랑스러운 아들은 많은 병력이 한 번에 나타나면 이목을 끌 것이라며 단신으로 적진에 침투해 모든 적을 도살하고 피오렐라를 구출해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네. 아직도 잘 모르겠는가?”


가스페르의 눈빛이 당혹으로 물들었지만 제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근 며칠간 내 아들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온 것을 알고 있네. 왕을 협박했다느니, 작당 모의를 했다느니 하는 말들 말일세. 나를 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네, 허나 내 아들을 욕하는 말들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하네. 아 물론, 여기 있는 신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길 바라네.”


뜨끔한 것 같은 신하가 몇몇 가스페르의 눈에 띄었다.

가스페르가 눈에서 불을 뿜었다.


‘저 새끼들이··· ···.’


제퍼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하들을 한 번 훑어 보고는 가스페르로부터 종이를 하나 받아 이야기했다.


“이처럼 가스페르는 왕의 이름에 걸맞는 책임감. 부하를 생각하는 통솔력. 역대 왕에게 밀리지 않는 빼어난 전투 능력까지. 어느 하나 빼 놓을 것이 없네. 나 제퍼 반 아이데는 위와 같은 이유로, 4왕자 가스페르 반 아이데를 후계로 임명할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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