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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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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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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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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페르 (6)

DUMMY

피오렐라가 그날의 심사를 털어놓았다.


“오빠가 ‘괴수 대멸종’사건 때문에 옆 행성으로 갔을 때쯤이야.”


그러자 가스페르의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관념》에서 모은 상상력에 의한 것이었다.


***


이는 한때 2왕자가 살아있을 시절.


“왕비를 알현합니다.”

“그래, 아들아. 후계로 지목된 것을 축하한다.”

“별말씀을요. 믿고 맡겨 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봐야 뭐 하겠니. 책봉식에서나 그런 말 하려무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온 2왕자의 어머니, 왕비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빌어먹을 그 놈이 결국··· ···.”


왕비가 머리를 짚으며 의자 등에 기대었다.


“어떻게 합니까. 어머니! 결국 그놈이 후계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네 아우다. 그놈이라니.”


왕비가 오기 전부터 그녀의 집무실에 앉아 있던 1왕자가 벌떡 일어나 짜증을 냈지만, 왕비의 한 마디에 긁힌 듯 빠득 이를 간 1왕자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깊이 고뇌할 것 없다. 이 어미가 다 계획을 준비해 뒀으니.”

“정말··· ···, 어머니만 믿으면 되는 겁니까?”

“내가 이리도 허투루 아들을 키웠던가?”


화들짝 놀란 1왕자가 말을 정정했다.


“아, 아닙니다. 어머니만을 믿겠습니다.”

“그래. 나만 믿거라. 다른 이들의 말을 아예 원천 처단하는 것이 네 팔랑귀에도 이로울 것이다.”


일 년 전과 지금이 전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책봉식 날. 누구도 모를 반전을 기할 것이다.”

“보름 뒤로군요.”


1왕자가 누구도 듣지 못할, 심지어는 앞에 왕비조차 듣지 못할 작은 조소를 터뜨렸다.


다음날 아침도 아닌 새벽에 2왕자가 기상했다.

책봉식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어쩐지 잠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끄으으응!”


시원한 기지개를 펴자 정신이 또렷해졌고, 그에 따라 하루 루틴을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푸흐흐흥!


말의 콧소리가 아직 볕도 들지 않은 새벽 한가운데 울려 퍼졌다.


“흣차!”


말에 올라탐과 동시에 등뒤에서 활을 뽑아 든 2왕자가 말을 출발시키고는 활시위를 길게 늘어뜨렸다.


다그닥! 다그닥!


달리는 말이 과하게 흔들렸지만 2왕자는 아랑곳 않고 화살을 손에서 놓았다.


쉬이이익!


강하게 들려오는 바람 가르는 소리에 주변 자연 생물들이 경계를 드러냈다.


팍!


2왕자의 화살이 과녁 중앙에서 살짝 빗겨 갔고, 그럼에도 말을 타는 도중에 그런 정확도가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또··· ···, 또.”


그러나 2왕자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했던 것일 게 분명했다.

2왕자의 머릿속에는 ‘그날’의 광경이 아른거렸다.

자신의 동생인 4왕자 가스페르가 말을 타며 과녁의 정 중앙을 맞추는 모습 말이다.


“아들아.”


그때,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2왕자가 말에서 내려 왕비를 맞이했다.


“왕비를 알현합니다.”

“공식석상도 아닌데, 편하게 대하거라.”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네 시간 개념이 흐려진 건 아니고?”


정신을 차리자 이미 중천에 떠 있는 해가 보였다.

바닥에는 무수히 꽂힌 화살들이 지나가는 이의 진로를 방해했다.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말을 이끌고 마구간으로 들어 가려던 2왕자를 왕비가 붙잡았다.


“아들아.”

“예?”


그러자 다시 2왕자가 뒤를 돌아 어머니의 앞에 섰다.


“이거, 마시거라.”


왕비가 제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을 건넸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머니 드십시오.”

“너 주려고 가져온 것이다. 부담 갖지 말고 마시거라.”


왕비의 간곡한 부탁에 2왕자는 그것을 한 모금에 들이 마셨다.


“음. 달달하고 맛있군요.”

“자주 놀러 올 터이니 부담 갖지 말거라.”

“물론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2왕자가 마구간에 말을 놓고 집무실로 떠났다.


또 다음날.


자신의 집무실에서 제퍼가 준 업무를 하던 2왕자가 피곤한 듯 눈을 비볐다.


‘너무 일찍 일어났나.’


의구심에 침대에서 한숨 잠을 청한 2왕자가 약 세 시간 뒤 깨어나자 과하게 각성된 느낌을 받았다.


‘역시 잠 부족이었나 보네.’


또 어느새 벌써 열흘이 흘렀다.


어찌 하루하루가 갈수록 더 피로해지는 느낌을 받은 2왕자가 회의실로 이동하던 도중 앞에 이상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구십니까?”


복도 끝에서 마주친 남자에게 신변을 물었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흐릿흐릿한 시야 때문에 그 형체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신원을 밝히십시오!”


한 번 더 재촉해 보았으나 남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2왕자는 어딘가 괴이한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흐린 것은 피차일반이었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자가 착용한 착장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왕실 복장··· ···?”


그가 아침마다 환복하는 왕실 복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깨닫자 마법처럼 점점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2왕자가 마침내 남자의 정체를 알아채는 데 성공했다.


“가스페르··· ···?”


얼마전 옆 행성으로의 여정을 결심한 가스페르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감옥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였기에 더욱이 그랬다.


“가스페르··· ···!”

품에 들고 있던 모든 서류를 내팽개친 채 가스페르를 향해 달려간 2왕자가 그런 가스페르를 꽉 안았다. 아니, 정확히는 안으려 했다.

가스페르를 향해 다가가던 2왕자는 가스페르가 제대로 보이는 거리가 되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형··· ···님··· ···?”


피칠갑을 한 채로 왼 눈알은 파여 심연의 어둠만을 담고 있었다.

왕실의 전통 복장은 피에 절여져 사탄의 옷처럼 보였다.

당장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나타나자 2왕자는 순간 얼어버렸다. 허나 2왕자는 정신을 차리고 가스페르를 안았다.

그러나 가스페르는 어느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악!”


가스페르의 것 아니, 남성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고성이 가스페르의 입에서 터졌다.

고성에 번뜩 정신이 든 2왕자가 안고 있던 가스페르를 놓고 바라보자 그곳에 가스페르는커녕 궁을 청소하던 어린 여 청소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2왕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 ···무슨··· ···!”


급 두려워진 가스페르가 다급히 떨어진 서류들을 챙길 틈도 없이 달아났다.


‘대체 무슨 일이야!’


식은 땀을 뻘뻘 흘리던 가스페르가 누군가와 길 모퉁이에서 부딪쳤다.


“으악!”


그러나 넘어진 것은 2왕자뿐이었다.


“괜찮으냐?”


이 궁에서 자신을 반말로 부를 수 있는 이는 단 셋뿐이다. 왕과 자신의 형인 1왕자 그리고. 지금 2왕자의 앞에 있는 왕비.


“어··· ···어머니!”


당황에 찌들어 우왕좌왕하는 2왕자가 왕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뭔가 이상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십니까··· ···?”

“이 어미가 무얼 알겠느냐. 하지만 위로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마침 내 방이 부근이니 이곳으로 들어 가자꾸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린 2왕자가 왕비의 방에 들어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차 한잔 마시겠느냐.”

“예, ··· ···.”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상황에 왕비가 차를 타는 도중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 차다. 편히 마시거라.”

“감사합니다··· ···.”


그가 왕비의 권유로 매일 먹는 차와 같은 것이었다.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 없단다. 그저 조금의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아 데리고 온 것뿐이다.”

“감사합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를 받아 마시고 삼십 분 뒤, 안식을 찾자 이성적인 2왕자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후,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늘 조심해라.”


꾸벅 인사를 마친 2왕자가 왕비의 방에서 떠났고, 그에 따라 왕비가 경비병들도 모두 바깥으로 보내자 비로소 탁자의 밑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효과가 확실한가 보군요.”


1왕자였다.


“어쩜. 이 어미가 이리 어려이 구해 온 것을 그리 의심 가득한 투로 말할 수 있느냐.”

“죄송합니다.”

“되었다. 그만큼 좋다는 거 아니겠느냐.”

“이제 다른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이게 끝이다.”

“예?”

“환각을 유발하는 차. 그것을 매일 주다 보면 취임식 날에는 아예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이야. 그렇다면 자연스레 취임식을 망칠 테고, 이후 모든 만행을 드러내며 네가 다시 후계 자리를 되찾아 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역시 어머니 현명하십니다.”


지금과 전혀 바뀌지 않은 두 사람이 재차 검증에 검증을 거쳤다.


“매일 새벽마다 차를 주고 있다. 설탕을 과하게 넣었기에 아무 의심 없이 마셨지. 허나 이는 예사 차가 아니기에 2왕자는 이를 이기지 못하고 취임식을 망치게 될 것이다.”


이에 1왕자가 거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


그런 1왕자의 말을 왕비가 받아 마저 이야기했다.


“왕이 자식 관리를 소홀히 했던 탓이지.”


***


어찌저찌 침상에 도착한 2왕자가 쓰러지듯 엎어져 잠에 들었고, 점점 수면 시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파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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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가월의 밤 (2) 23.12.13 8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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