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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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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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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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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가스페르 (11)

DUMMY

깡! 깡! 깡!


두드리는 소리가 수차례 발생했다.


치이이익!


뜨거운 물체를 찬물에 집어넣어 식힌다.

가스페르는 모든 세계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진풍경을 관람하고 있었다.


“거기 뒤에 철 좀 주게.”


제련에 몰두한 탓인지 디오스 마노가 가스페르를 대하는 말투가 달라졌지만 가스페르는 개의치 않았다.

외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조수 역할을 자처할 뿐이었다.


“내 이름은 메타르 바스너다. 이름부터 철이었지.”


뜬금 디오스 마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난 고아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지. 그렇게 배가 고파 길가에서 쓰러졌다. 그런 나를 구해 준 사람이 대장장이였다. 나를 거두어 키워 주셨지. 이름과 성도 그 사람에게서 따 온 거야. 덕분에 난 자연스럽게 대장장이가 되었고, 다행히 난 거기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 짓는 디오스 마노를 보니 어쩐지 가스페르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난 행성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어 있었다. 제자도 몇 받았지. 지금은 다 다른 곳으로 흩어지긴 했다만, 개의치 않았다. 대장장이는 무기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깡! 깡! 깡!


여전히 금속음이 울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별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어.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느끼긴 했지만 그들은 진짜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었거든.”


디오스 마노의 얼굴에서 ‘기쁨’이라는 감정이 사라졌다.


“담담하게 몇십 년을 또 무기만 만드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나 일 년 전부터 급격히 노쇠하기 시작했다. 내 피로를 막고 있던 둑이 무너진 것이지. 난 그 밀려오는 피로의 파도를 막아낼 수 없었다. 덕분에 완전히 앓아 누웠고, 그제서야 부모님의 죽음이 실감되더구나. 허나 세상은 날 가만두지 않았어. 집을 나갔던 제자들이 후환이 되었다. 내가 노쇠한 틈을 타 무기들과 비법을 전부 가져갔다. 물론 무기는 쓸 곳도 없었고, 비법은 모든 것이 내 머리에 있었다.”


디오스 마노는 이제 더 이상 이 세계에 미련이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분개했던 것은, 허망함 때문이었다. 아버지처럼 다른 이들을 도왔고, 그에 따른 값이 있을 줄 알았다. 미련하게도. 그렇게 나는 이제 이 망치를 잡지 않기로 다짐했다.”


디오스 마노가 사정없이 내리치던 망치를 꽉 쥐었다.


“이제 무기를 만드는 것에는 진절머리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용히 죽을 생각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자네가 찾아왔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하마터면 내 마지막을 초라한 나뭇잎 정도로 장식할 뻔했어.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장식품이 될 것이네.”


디오스 마노가 제련이 거의 마무리된 인시터애로우를 집었다.


“완전히 이어 붙이는 것은 실패했지만··· ···.”


몇 가지의 조각을 제하고는 전부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뭉친 인시터애로우를 보며 가스페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십니다··· ···.”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네.”

“예? 그렇다면··· ···.”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하네. 따로 가야 할 곳이 있어.”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내가 가야 해. ‘그놈’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받아 주지도 않아. 혹여나 자네 무기가 걱정되는 것이라면 내가 직접 가져갈 테니 걱정 말게나.”


가스페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외출 준비를 하던 디오스 마노가 피식 웃었다.


“며칠 동안은 무기가 없을 테니, 따라오게.”


디오스 마노가 걸쇠를 풀어 문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가스페르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정도 무기는 <태극>의 야철신조차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으니까.


“내가 만든 무기들의 창고일세. 많이 도난을 당했다 해도 부족하진 않지. 마음에 드는 무기로 양껏 챙겨가도 좋아.”


휘황찬란한 무기들의 나열을 보며 가스페르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여기 열쇠를 두고 가겠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인사는 무슨··· ···.”


미련없이 등을 보이는 디오스 마노를 지켜보던 가스페르가 다시 무기고로 눈을 돌렸다.


“이건··· ···.”


가스페르가 무심결에 자신이 쓰던 것과는 형태가 다른 활 하나를 집었다. 그러자 시스템이 무기에 호환하기 시작했다.


<아이템 정보>


이름: 막강지궁(莫强之弓)

등급: 미정(未定)

설명: 디오스 마노가 어떤 활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활. 디오스 마노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따로 화살의 구비가 필요하며, 부서지지 않는다. 덕분에 《관념》에서도 이의 모조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스페르는 고민없이 막강지궁을 챙겼다.

옆에 있던 화살통은 덤으로 등에 매고 걸쇠를 걸어 잠근 후 은밀하게 궁으로 복귀했다.


다음날이 되고 가스페르는 어머니가 준 차를 마시고 이어 포션을 마셨다. 그리곤 그 공방에 대해 생각했다.


‘그나저나··· ···거기.’


가스페르를 문전박대했던 그곳을 자세히 알고 싶어진 가스페르가 다시 활과 화살을 챙겨 그곳으로 향했다.

점점 그곳에 가까워지자 같이 시끌벅적한 소리도 가까워졌다.

도착한 공방엔 어딘가 익숙한 복장이 가스페르를 맞이했다.


왕실 근위대였다.

가스페르가 황급히 모자를 눌러쓰곤 근위대 일행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뭔가를 하고 있습니까?”

“예, 지금 무기를 정비하러 공방에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근데 어딘가 익숙한데 저희 어디서 봤던가요?”


하필 눈치가 빠른 근위대를 만나 버렸다.


“초··· ···초면입니다.”

“아 그렇군요. 뒤에 줄 서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와 미친 들킬 뻔했네.’


밝은 회색빛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근위대를 가스페르가 눈에 담았다.

그때, 가스페르의 뒤로 다른 근위대가 줄을 섰다. 그리곤 방금 공방에서 나온 동기에게 물었다.


“뭐 수리했냐?”

“나 창이랑 방패.”

“좋냐?”

“좋지. 보여 줘?”


슬쩍 근위대가 거리를 벌리더니 창을 횡으로 잡고 휘둘렀다.

가스페르는 애써 무시하며 시야를 앞으로 고정했다. 하지만 그런 가스페르의 노력이 무색하게 창이 순식간에 검정 챙모자를 날려 버렸다.

그러자 가스페르의 금빛 장발이 샤랄라 흘러내렸고, 왕실 근위대 중에 저 사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와··· ···왕자님?”


줄을 서고 있던 근위대도, 기술을 시연하고 고쳐진 장비에 만족하던 근위대도, 심지어 이와 아무 연관도 없는 지나가던 백성도 모두 일제히 무릎을 굽혔다.


“4왕자님을 뵙습니다!”


우렁찬 소리에 공방에 있던 이들도 일제히 나와 무릎을 굽혔다.


“일··· ···일어나, 일어나 제발.”


근위대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가스페르의 앞에 다가왔다.


“빨리 얘네 좀 일으켜 봐요!”


그러자 근엄한 표정이던 근위대 대장 또한 무릎을 굽혔다.


“4왕자님을 뵙습니다.”

“아니 일어나라고!”


가스페르의 호통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근위대의 대장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모두가 일어서 정자세를 유지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니, 그. 어··· ···.”


가스페르가 얼버무리자 근위대 대장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근위대에게 명했다.


“왕자님께서 우리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러 오신 것 같다.”

“아니에요··· ···.”


가스페르의 말을 못 들은 대장이 계속 이야기했다.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멀쩡히 장비만 수리하고 가도록. 그리고 왕자님은 이리.”

“어? 어어··· ···.”


가스페르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려던 대장이 가스페르의 말에 멈춰 섰다.


“아니 나도 장비 수리하러 왔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먼저 수리하십시오.”


강제로 가스페르를 공방 안쪽까지 데려다 놓은 근위대가 인사를 건네고 물러났다.


‘오히려 잘 됐어.’


“왕··· ···왕자님?”


어제 자신을 응대하던 상담원이 당황한 듯 버벅거렸다.


“디오스 마노를 불러 주겠나?”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자칭 디오스 마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여전히 더러운 사람이었다.


“4왕자님이십니까?”

“그래. 내가 가스페르다.”


그러자 자칭 디오스 마노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왜, 디오스 마노에게 반말을 하니 열받나?”


자칭 디오스 마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넌 열받을 자격이 없어. 디오스 마노가 아니잖아. 가짜 주제에 진짜 행세하느라 고생이 많다.”

“뭐··· ···.”

“디오스 마노의 집 나간 제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예 거짓말은 아니니까 저렇게 간판을 달아 놓은 모양이지? 넌 자기 자신을 진정한 그 사람의 후예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디오스 마노의 제자가 뒷걸음질쳤다.


“난 진짜다··· ···.”

“천만에. 넌 그냥 집 나간 쓰레기일 뿐이야. 그런 짓은 그만 둬.”


가스페르가 제자를 뒤로 두고 제자의 공방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겉보기엔 평범한 공방이었지만 저 깊숙한 곳에 다른 문이 있었다.

가스페르가 그곳으로 걸어가 문을 열려던 순간.


허억허억.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다가온 디오스 마노의 제자가 가스페르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무리··· ··· 왕자님이셔도··· ··· 허억, 여기는 열어 보실 수 없습니다.”

“아, 그래?”


그러자 가스페르가 바깥으로 나가 근위대 대장에게 명했다.


“여기 자세히 조사해서 나한테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가스페르는 예상치 못한 큰 수확을 얻고 유유히 그곳을 떠날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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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악의 몰락 (1) 24.01.21 6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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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가스페르 (9) 24.01.10 30 0 9쪽
83 가스페르 (8) 24.01.07 4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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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가스페르 (6) 24.01.03 42 0 10쪽
80 가스페르 (5) 23.12.31 43 0 10쪽
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6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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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가월의 밤 (4) 23.12.17 69 0 10쪽
73 가월의 밤 (3) 23.12.15 60 0 9쪽
72 가월의 밤 (2) 23.12.13 8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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