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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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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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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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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페르 (1)

DUMMY

때는 지구의 시간으로 8개월 전.


타닷.


「광휘의 발걸음」을 통해 자신의 행성 헤랴에 도착한 가스페르가 제 고향의 공기를 만끽하며 왕궁으로 들어갔다.

궁을 지키던 문지기들은 늘 그랬듯 왕궁에 무단으로 들어가려는 외부인을 막아 섰다.


“여긴 왕궁입니다. 함부로 출입이 불가합니다.”


그러자 궁 앞에 선 남자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며칠 없었다고 벌써 외부인 취급하기야?”


그제서야 문지기 둘은 낯선 외부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가··· ··· 가스페르 왕자님?”

“기억은 하는구나? 서운할 뻔했잖아.”

“자,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어깨를 으쓱한 가스페르가 궁 앞에서 밖으로 나올 누군가를 기다렸다.


“가스페르으으으으!”


멀고도 긴 복도에서 누군가 목청이 찢어져라 울부짖으며 궁 밖으로 나와 가스페르에게 안겼다.


“많이 기다렸어?”


가스페르의 하나뿐인 늦둥이 여동생인 피오렐라 반 아이데였다.


“대체 어디에 있던 건지. 1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구나.”

“아버지.”


피오렐라를 뒤로 한 채 가스페르는 아버지, 제퍼 반 아이데에게 목례를 건넸다.


“어머니는··· ···?”

“너희 엄마는 잠깐 나가셨다. 연락을 보내 놓았으니, 금방 돌아올 게다.”


가스페르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 실감 나지 않아 이것저것 제퍼에게 물었다.


“형들은 어디 가셨습니까?”

“각자 자기 영지를 다스리러 이미 떠났다. 남은 왕자는 너뿐이다.”


가스페르는 새삼 자신이 없던 사이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체감했다.


“형량은 진작에 끝났을 텐데 왜 돌아오지 않은 것이더냐.”


순간 가스페르는 집에서 떠나오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했다.


“아버지,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바로 옆 아닙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 ···.”


그게 부자간의 마지막 대화였다. 사실 대화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이후 가스페르는 페케니아의 지하 감옥에서 형을 치렀고, 도중에 이찬에 의해서 구출된 후 일련의 사건들을 겪었다.


“일단 방에 들어가 쉬어도 되겠습니까?”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제퍼가 하수인을 불러 가스페르를 방으로 안내하게 했다.


“이곳입니다.”


가스페르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는 방문을 열었다.

자신이 없던 시간 동안 쌓였을 먼지를 들이 마시지 않기 위해서였다.


“응?”


가스페르의 예상과는 달리 방은 광이 날 정도로 반짝였다.


“가스페르께서 떠나시고 국왕의 지시 아래 하루도 빠짐없이 방을 청소했습니다.”


가스페르는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일평생 저 작자는 나를 싫어한다고 믿었는데. 들어가 봐. 난 쉬어야겠어.”

“예, 편히 쉬십시오.”


끼이익!


청소를 열심히 했어도 침대의 노화는 어찌할 수 없었는지 가스페르가 침대에 몸을 누이자 씨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가스페르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 집에 왔구나.”


드디어 집에 온 것을 실감한 가스페르였다.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가스페르는 이 수줍은 노크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몇 날 며칠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문이 마찰음을 내며 뒤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도 돼··· ···?”


피오렐라의 수줍은 목소리가 가련히 가스페르의 귀로 흘렀고, 가스페르는 흔쾌히 이를 허락했다.


“물론이지.”


‘우다다다’ 소리가 들리는 듯 달린 피오렐라가 가스페르의 품에 안겼다.


“잘 지냈어?”

“심심했어. 오빠는 갑자기 사라지고, 다른 오빠들은 놀아 주지도 않고, 그러다가 또 셋 다 어디로 사라지고. 내가 정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1년 동안 한 거라고는 읽기도 싫은 책 읽기랑 이상한 것도 공부하고 놀 시간도 없었다고··· ···!”


1년치 억울함을 푸는 피오렐라의 투정을 가스페르는 묵묵히 들어 주었다.


“그러니까··· ···.”

“앞으로 어디 안 갈 테니까 마음껏 놀자.”


해맑게 웃는 피오렐라를 보며 가스페르는 정말 오랜만에 편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오빠 근데, 이건 뭐야?”


잠깐 한눈판 사이 피오렐라가 가스페르의 책상 위에 놓인 활과 화살을 집었다.


“이거 활 아니야?”

“맞아. 옆에 있는 건 화살.”

“나 화살 하나 가져도 돼?”

“그래,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봐.”


피오렐라는 화살통에서 망설임 없이 한 화살을 집어 올렸다.

은빛의 화살촉을 가진 화살이었다.


“그건 빛나는 화살이야. 화살이 벽이나 땅에 닿으면 빛을 내면서 이걸 보고 있는 상대의 눈을 멀게 하는 용도지. 함부로 벽이나 땅에 던지면 절대 안 돼.”

“알겠어.”

“자, 같은 걸로 하나 더 줄게.”

“오예!”


은색의 화살을 받고 신난 피오렐라를 보며 가스페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화살을 꼭 쥔 채 달려 와 가스페르의 품 안에 안겼다.


“잘 자.”


피오렐라는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가스페르의 눈도 눈꺼풀에 무게 추를 달아 놓은 듯 닫혔다.


“으어어어··· ···.”


가슴이 눌리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난 가스페르가 고개를 들어 밑을 내려다 보았다.

피오렐라가 자신이 준 은빛 화살을 쥔 채 곤히 자는 모습을 보며 한층 더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똑똑.


그런 적막을 깨는 노크 소리에 가스페르는 피오렐라를 살포시 침대에 올려 놓았다.


“접니다. 왕자님.”


방금 방의 안내를 담당했던 하수인이 찾아온 것이다.


“무슨 일이야?”

“왕의 어명이십니다. 집무실로 오라고 하십니다.”

“알겠다.”


다시 겉옷을 걸치고 집무실로 향하려던 가스페르가 뒤를 돌아 하수인에게 말했다.


“피오렐라를 방으로 데려다 줘. 피오렐라가 깨기 전에 돌아 올게.”

“알겠습니다.”


***


똑똑똑.


“들어 오게.”


끼이익.


문의 경첩에서 녹슨 소리가 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급진 나무로 된 책상에 앉아 안경을 쓰고 작업 서류를 결재 중인 가스페르의 아버지이자 헤랴의 국왕인 제파 반 아이데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앉아라.”


결재를 멈추고 푹신한 소파에 앉은 제파가 가스페르에게 건너편 자리를 권했다.

가스페르는 영문을 모른 채 제파의 건너편에 앉았다.

제파와 가스페르를 나누는 다탁에는 다과와 커피가 놓여 있었다.


“한잔하지.”

“예.”


후룹.


나지막이 커피 마시는 소리와.


파사삭.


쿠키를 으스러뜨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적막을 장식했다.


"그··· ···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 아닙니까?"


결국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가스페르였다.


"맞다."

"근데 왜 말씀을··· ···."


가스페르는 말 끝을 흐렸지만 제퍼는 개의치 않았다.


"본론부터 말할까, 서론부터 차근히 말할까."


제퍼로부터 의외의 이지선다가 주어졌고.


"서론부터 천천히 말씀하시죠.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시려는 모양인데."


가스페르는 후자를 택했다.


"그래, 천천히 서론부터 말하지. 먼저, 1왕자는 헤랴-D로 갔다."


헤랴-D는 행성 헤랴 중 가장 발달하고 번화가인 곳이었다.

말 그대로 수도.


"큰형님 답습니다."

"2왕자는 아주 먼 여행을 떠났다."


가스페르는 그 말을 듣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아주 먼··· ··· 여행이라고 하면··· ···."


행성 하나를 다스리는 국가의 체제인 경우, 여행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 결국 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핏줄은 핏줄이군. 같은 이야기에 이리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니."


그런 나라에서 '아주 먼 여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형님께서요··· ···?"


가스페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물론 그럴 만했다.


알프레드 반 아이데.

그는 형제로서는 사 형제, 남매로서는 오 남매 중 차기 국왕으로 항상 아니, 거의 확정적으로 거론되는 왕자였다.

1왕자는 똑똑했으나 특유의 팔랑귀로 일을 하나씩 망치는 습성이 있었다.

3왕자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술에 찌들어 방에서 하루하루를 방탕하게 살았다.

4왕자는 아직 성숙하지 못 했다.

피오렐라는 너무 어렸다.


그런 다섯의 남매 중 국왕으로는 2왕자가 제격이었다.

똑똑했고, 현명했다. 세상 모두가 그를 현인으로 불렀다. 오죽하면 왕자보다 현인으로 유명했을 정도였다.

헤랴의 정치가들은 2왕자인 알프레드 반 아이데가 국왕이 된다면 나라가 평탄해지고 모두가 풍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사··· ··· 사인은."


믿지 못 할 일에 말까지 더듬게 된 가스페르가 제퍼에게 2왕자의 사인을 물었다.


"별거 아니었다. 돌연사였지."


제파가 이런 이야기에 너무도 둔감해진 것은, 아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늘 일찍 일어난 알프레드가 업무를 보기 위해 집무실로 향하던 길에 돌연 심정지가 발생했고, 빠르게 의무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은 죽었다.


가스페르는 그제서야 2왕자의 거처를 지날 때 느낀 어두운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서론이 긴 것 같군요. 이제 본론을 꺼내 주시죠. 제가 뭘 하면 됩니까. 큰형님을 도와 나라를 다스립니까? 저 멀리 헤랴의 반대편에 가서 영지를 다스립니까?"

"국왕이 되어라."


국왕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 여섯 음절이 세상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예? 잘못 들었—."

"아니, 제대로 들었다. 국왕이 되어 이 행성을 이끌거라."


제퍼는 벙찐 가스페르를 뒤로하고 집무실의 결제 자료를 한껏 들고는 다탁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 놓았다.


"앞으로 세 시간을 줄 테니 이 자료를 선별해 결재하거라."

"예?"


그 말을 끝으로 제퍼는 집무실을 떠났다.


"아니··· ···."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에 가스페르는 결국 결재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착잡한 심정을 가득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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