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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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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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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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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월의 밤 (2)

DUMMY

짓밟힌 행동자가 아직 자신은 숨이 붙어있음을 증명하듯 오른손에 쥔 검을 놓지 않았다.


[하등한 버러지가.]


던켈 드래곤이 한 번 더 바닥을 내려치자 이제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찌그러졌다.

동시에 다시 한번 시스템의 안내가 등장했다.


[참석자의 90%가 상상력 제공에 동의했습니다.]


“크.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흥. 상상력이 너무 과했다.]


던켈 드래곤이 짜증난다는 듯 실증을 냈지만 그에 따른 반발이 거세게 이어졌다.


[그럼 상상력을 받질 말던가!]

[지가 좋다고 받아놓고 지랄을 해라.]


몰아치는 신언에 아윤이 고통을 호소했다.


“아으. 진짜 더럽게 시끄럽네.”


다행히 신들의 신언에 묻혀 사라졌다.


“던켈 드래곤 님께서는 거기서 여유롭게 멸망을 즐기시며 천천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이제 저희는 다른 행성으로 가시죠.”


스크린의 잡음과 함께 넘어간 다른 행성.

그곳의 상황도 이전 행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행성에 가실 분 계십니까?”


그 후로도 세 행성을 더 워프하며 많은 것들을 죽이고 부쉈다.


“어느덧 오늘의 마지막 희곡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희곡’이라 부르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세상을 멸망시켜갔다.


[잠깐.]


뒤에서 사회자의 말을 끊는 누군가의 말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가녀린 목소리의 여인이 사회자에게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왜 지구에 연회장을 두었지?]


‘이번’이라는 말로써 추측하건대 이 연회는 한두 번 열린 유희 따위가 아니라 신의 만족도도 높이면서 동시에 행동자를 처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질문이 언제 나올지 고대하고 있던 참입니다.”


사회자는 능숙히 여인의 질문을 받아쳤다.


“맞습니다. 본디 저희는 가장 처음 멸망시킨 행성에 연회장을 두어 외부의 간섭을 막았죠.”


[서두가 길다.]


여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저희도 유명한 행성에 이것을 두고 싶었습니다. 단지 ‘허용 상상력’이 부족한 터라 잡다한 행성을 멸망시킨 뒤 모은 상상력과 저희 주최측의 상상력을 더해 연회장을 지었죠.”


사회자가 한 손을 자신의 가장 앞쪽 테이블로 옮겼다.


“저희가 지구라는 가장 유명한 행성에 연회장을 둘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이분 덕분입니다.”


사회자가 누군가를 무대 위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찬이 이 연회에서 가장 예의 주시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전학생··· ···!”

“저희는 약 팔 개월간 이분을 보조하며 지구의 ‘허용 상상력’을 마구마구 주워다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전학생이 거만한 자세로 신들을 경시했다.

여느 때처럼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덕분에 저희는 이곳에 연회장을 짓고도 남아 돌 만큼의 상상력을 수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끝인가? 겨우 행성 몇 개 멸망시키려고 우리를 부른 것은 아닐 텐데.]


사회자와 주최측을 향한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자신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이 연회는 한없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한껏 격양되어 있었던 분위기가 한층 가라앉았다.

일단 말을 듣고 화내려는 모양이었다.


“저희는 시스템을 비롯한 관념의 암묵적 허가에 따라.”


그 뒤에 나올 말은 이찬과 아윤의 심장을 철렁하게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지구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뭐?”


아윤이 무의식적으로 반발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찬은 다급히 몰아닥칠 상상력에 대비했지만, 이미 연회장은 이전에 격양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즐겁게 고양된 신들의 기운이 아윤과 이찬을 덮쳤다.


[이야. 시스템 이 새끼들 드디어 정신 차렸네!]

[지구 상상력 이제 마음껏 먹어 치울 수 있겠군. 하하하!]


20이 넘어가는 숫자의 신이 즐거움에 취하니 사회자로서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짝! 짝! 짝!


그때, 신들을 진정시키는 박수 세 번이 울려 퍼졌고, 그 박수의 주인은 전학생이었다.

사회자가 전학생에게 감사의 의미를 표하고는 신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지구에는 특별한 직업으로 위장한 일부 행동자들이 무수히 많이 숨어 있습니다.”


이찬이 뜨끔했다.


“개중에는 팔 개월 전 《관념》을 양껏 흔들고 떠난 행동자도 몸을 숨기고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반드시! 그들의 흔적도 남아서는 안 됩니다.”


[하, 우릴 뭘로 보고.]


“하나 더 당부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지구에는 상상력으로 규정되어 있는 힘은 많지만 ‘허용 상상력’은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작은 행성 중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저희 주최측은 여러분의 격을 최대한 억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억제가 무슨 뜻이지?]


“일단 기본적으로는 격의 개수를 4개로 제한할 생각입니다.”


사회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모두 부인하듯 많은 반발이 일었다. 허나 이것은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았다.

이어진 폭탄 같은 제약에 신들의 머리엔 분노라는 감정이 내려가고 의문이라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상상력도 본래의 3할로 제한. 주민을 보내면 격의 위력을 참작해 4할로 증진할 계획입니다.”


때로는 명백한 비난과 경시보다는 침묵이 백 배, 천 배는 무서운 법이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사회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주최측의 폭탄 선언이 끝난 뒤.

행성을 멸망시키고 돌아온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분께 많은 반발을 일으킬 걸 말입니다.”


[근데 왜—]


아무리 신언이 생명체에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한들 주최측의 막대한 상상력이 담긴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사회자의 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묘하게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이찬과 아윤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있었다.

그때.


[아이 씨발! 뭐 하자는 거냐?]


첫 번째 행성의 멸망을 주도한 던켈 드래곤이 자신이 없던 틈에 일어난 전후 사정을 듣고는 분노하며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는 중앙에 난 통로를 밟으며 사회자에게 도달했다.


[지구에게 쌓인 우리의 원한을 몰라서 이러는 거냐? 뭐? 3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반토막도 아니고 3할?]


어느새 무대 위로 올라간 던켈 드래곤이 사회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신들은 이 상황이 즐거운지, 아니면 이이를 제기하는 던켈 드래곤을 응원하는지 모를 조소를 담았다.


“하··· ··· 멍청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니.”


[뭐? 말투가 바뀌었다? 반말을 찍찍 싸대고 있—]


콰아아아앙!


연회장의 천장에 믿을 수 없이 거대한 원형의 구멍이 뚫리며 던켈 드래곤을 짓뭉갰다.


[끄··· ··· 어억··· ···]


누군가가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은빛의 광선. 그래 그건 마치.


“달빛··· ···.”


달빛 같아 보였다.


“그러게 상대를 잘 봐가면서 덤벼야지. 신께서 노하셨잖아.”


[끄흐··· ···꺼··· ··· 이 씨발 새끼가··· ···.]


던켈 드래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소멸했다.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 사회자가 무언가를 끄적이고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던켈 드래곤은 자신이 행성에서 밟아 죽였던 행동자와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신들은 간만에 느끼는 압도적 공포에 어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아직··· ··· 이의 있는 분 계십니까?”


신들이 느끼기에 직전까진 더없이 온화했던 미소가 지금은 협박에 준하는 살인적인 미소가 되어 있었다.


“사흘 뒤. 이곳에서 지구의 존망을 결정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뒤로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멸망하는 세계가 비춰졌다. 마치 그것이 지구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말이다.


“하··· ···.”


품에 백호양을 품은 이찬이 착잡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학생의 정체를 파악하고, 위험하다 판단되면 빠르게 처리하려고 했던 이찬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이득은 충분했다.


“그래도 연회의 목적이랑 목표를 알게 됐잖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


아윤이 얻은 것을 근거로 들며 이찬을 위로했다.


“그래. 천만다행이지.”


게다가 또 하나 얻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곳 연회에 있던 모든 신들은 하신 혹은 초급 지신이었기에 잘만 한다면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또 하나의 호재는.


“놈들이 제 힘을 3할밖에 내지 못한다는 거겠지.”

“왜 3할로 확정해? 주민을 보낼 수도 있는 거잖아.”

“신들은 오만하고, 쾌락을 추구해. 결코 주민을 보낼 리 없지. 사흘 뒤에 재개되는 연회에서 신들은 결국 주최측의 의견에 동의할 거야.”

“근데 왜 사흘이야? 하루나 이틀이면 안 되는 건가?”

“신들은 대부분 자신이 옳다고 믿어. 하루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겠지. 그리고 이틀째에는 주최측을 부정할 거야. 그들에게 따져볼 생각도 하겠지. 그때 문득 생각이 나는 거야.”

“뭐가?”

“아까 죽은 그 던켈 드래곤이.”

“그럼 걔네는··· ··· 본보기로 그 신을 죽였단 말이야?”

“그렇지. 마지막으로 인정하는 시기. 그때가 딱 사흘째인 거야.”


짝. 짝. 짝.


단 세 번의 박수 소리가 이찬과 아윤의 뒤에서 울렸다.


이찬이 아윤과 백호양을 보호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전학생이 어깨에 쥐를 얹어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집으로 도망가.”

“뭐? 너는 어떻게 하려고··· ···.”

“빨리!”


이찬이 바람처럼 전학생에게 달려들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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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가월의 밤 (3) 23.12.15 6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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