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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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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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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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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월의 밤 (5)

DUMMY

마침내 사흘이 경과했다.

아윤은 사흘간 깨지 않았다. 아니, 깰 수 없었던 것일 테다.

지구의 ‘허용 상상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격을 발현했기에 이는 정해진 결과일 터.

어쩔 수 없이 이찬은 백호양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데려가는 것이 낫다 생각도 해 봤으나 혹여나 전투가 발생하면 호양을 지키며 싸울 자신이 없었기에 아윤의 어머니께 백호양의 관리를 부탁드렸다.

그렇게 홀로 연회장을 향하는 길.


후우우우웅!


맞은 편에서 시린 겨울 바람이 불었다.

결코 평범한 바람은 아니었다.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미세하게 느껴지는 상상력이 이찬을 자극했다.


지구를 멸망시키게 두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한 이찬이 다시 한 번 골목의 앞에 섰다.

사흘전 이곳에 왔을 때보다 곱절은 큰 상상력이 이찬을 닥쳤다.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기파.

그런 기파를 뚫고 도착한 곳에는 문을 두드리며 열불을 토해내는 신들이 있었다.


[이것 열어라!]

[우리를 푸대접하다니! 부끄러운 줄 모르느냐!]

[너희들이 홀대할 만한 존재는 죽어도 아니다!]


신언의 파동이 그를 덮쳤다.


“아! 아!”


그때 들려온 마이크를 잡고 그 성능을 시험하는 소리.


“반갑습니다. 신 여러분들.”


[지금이 인사할 때인가!]

[문을 열어라!]


“흠흠, 많이 흥분하셨네요. 사흘전의 일은 모두 잊으신 겁니까?”


사회자의 목소리가 어두침침하게 깔리자 신들이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내적으로 물러선 것도 맞고, 실제로 그 기에 눌려 한 발짝 뒤로 움직인 것도 맞다.


“진정들 하시고요. 곧 열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쿠구구구구구!


대문이 뒤로 젖히며 마침내 연회장의 모습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반갑습니다. 지구의 멀망에 동조하신 여러분. 여러분은 이 지구를 삼키고 새로운 신 아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실 겁니다!”


폭발적인 호응을 들으며 이찬을 비롯한 신들이 각자의 자리에 착석했다.


[그래! 저래야 할 맛이 나지.]

[우리는 복 받은 거야! 다른 놈들은 이런 기회 잡을 꿈도 못 꿔.]


“역시나 저희의 예상대로 모든 신께서 이것을 거부하지 않으셨군요. 좋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지구 멸망에 관해 토의하겠습니다.”


그때, 이찬이 손을 번쩍 들었다.


“먼저 물을 것이 있다.”


신언을 흉내내기 위해 최대한 목소리를 내리깔고 목소리에 격을 불어넣으니 하신은 그의 목소리와 신언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얼추 비슷해졌다.


“물으시지요.”


사회자의 허가가 떨어지기 무섭게 이찬이 물었다.


“지구의 행동자는 몇이나 되지? 그리고 그들의 특징이나 거주지에 관한 것은 이야기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오, 저 녀석. 꽤 똑똑하군.]


“꽤나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아쉽게도 지구의 행동자는 딱 하나입니다. 흠, 아마 전 우주를 통틀어서 보아도 행동자는 하나뿐일 겁니다.”


이찬의 눈에 숨길 수 없는 당혹이 어렸지만 누구도 이에 불쾌함들 드러내지는 않았다.


“저희 주최측을 비롯한 여러 신들께서 모든 행동자를 죽여버리셨기 때문입니다.”


[훌륭하군! 우리의 적수가 하나라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몇몇 신의 호방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답이 되었습니까?”


사회자가 이찬을 보았다.


“차고 넘치는군.”


애써 웃음으로 무마한 이찬이 드디어 자신의 적을 특정했다.

세계의 모든 신들과, 이를 묵인한 시스템과 관리성.

이유 모를 정의감이 이찬의 정신을 잠식했고, 이는 자신을 제외한 죽어버린 다른 행동자들의 복수와 귀결되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일단.


“신들께서는 자유로이 지구의 멸망에 관한 의견을 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구의 멸망을 막아야겠지.


“아, 그전에.”


사회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모두의 앞에 계약서가 생성되었다.


“꼼꼼히 정독해 주시고 우측 하단에 서명해 주십시오.”


이찬을 제외하고.


[이딴 조항은 필요 없다!]


가장 먼저 조항을 읽지도 않은 신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대충 읽은 신이 서명 후, 전부를 꼼꼼히 읽은 신들이 마지막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계약서가 빛나며 사회자의 손으로 옮겨 갔다.


“이거 잘 보관해.”

“예.”


그의 신하 중 한 명이 그것을 받들어 무대 뒤로 유유히 사라졌다.


‘놈들은 내가 행동자인 것을 알고 있다.’


애초에 주최측에 서생원이 있기에 자신이 행동자인 것은 특정하고 있었을 터. 그럼에도 이찬이 이를 확신하지 못한 이유는.


‘서생원이라는 놈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허나 이찬에게는 나타나지 않은 계약서가 마침내 이찬의 생각에 확신을 부여했다.


[먼저 질문을 하겠다.]


“좋습니다.”


[보다시피 우리의 숫자는 총 서른이다. 인원의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궁금해지는군.]


사회자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좋습니다. 인원 배분에 관한 문제로군요. 혹시 의견 있으신 분 계십니까?”


[아무래도 지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미합중국을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일리가 있군. 지구의 주요한 시설이 대부분 미국에 몰려 있으니.]


신들의 의견이 미국으로 확정되던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의견이 등장했다.


“서울 모든 신을 몰아 거점으로 삼고 천천히 바깥으로 영역을 넓혀 가지.”


이는 역시나 많은 신들의 빈축을 샀다.


[너무 과하다. 서울을 점령하는 데는 나 하나만 강림해도 다섯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미국도 아니고 대한민국이라니. 게다가 서울, 하하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군.]


이는 이찬의 의견이었고, 이 의견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신들은 자신이 행동자인 줄 모른다.

이들은 대부분이 하신인 데다가 제 본 실력의 이 할도 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 근거가 도출해낸 결과는.

‘내가 놈들을 이길 수 있다’였다.


“혹여 서울에, 행동자나 시스템의 힘을 각성한 자들이 대거 등장하기라도 하면, 그들을 막을 수 있다고 단언하나?”


이찬은 그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반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많아 봤자 셋을 넘지 않을 것이다. 우린 나약하지 않단 말이지.]

[저 녀석도 걱정이 어지간히 과하군.]


어쩔 수 없이 다른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려는 찰나.


[잠깐.]


누군가 이찬을 불렀다.


[너는 무슨 신이지? 이 근방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이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갔다.


[어이! 사회자. 이 녀석 너희 소속인가? 아니라면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카랑카랑한 신언이 연회장을 울렸다.

그 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듯 뒤에서 다른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신언도 아니다. 신도 아닌 주제에 목소리를 위장해 가며 여기 있어야 하는 존재는 아무래도 하나뿐.]


이곳의 넘치는 상상력이라면 분명 자신이 가진 모든 격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찬이 격을 발출하려는 순간.


“아아. 좋습니다. 그럼, 구역을 나누죠.”


[구역을 나눈다면?]


촤라라락!


무대 뒤의 커다란 스크린이 켜지며 지구의 평면 지도가 나타났다.


“마침 지구는 여섯 대륙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연회는 총 서른 명의 신으로 이루어져 있죠. 신 다섯이서 하나의 구역을 맡으면 될 것 같습니다.”


[오오.]

[확실히 똑똑해.]


신들의 은연중에 나타난 감탄이 이찬의 주장에 오히려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저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메리카는 미국의 핵심인 뉴욕을, 아시아는 한국의 핵심인 서울을 공격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군요.”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신이 못마땅한 듯 제 자리로 향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이집트, 유럽은 독··· ···.”


이찬은 탁자 위에 양손을 올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연신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그래도 초석은 다져졌다.


애초에 이 계획이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제 각 구역에 맞는 신들을 배치해야 되겠군요. 먼저 조장을 호명하겠습니다. 호명되신 조장께서는 각자 마음에 드는 네 신을 데리고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회자가 또다시 이찬 쪽을 되돌아 보았다.


“저분께서는 서울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계시니. 따로 서울로 배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들이 침묵을 고수하는 것을 보아 따로 불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각 조의 조장을 호명하겠습니다. 아메리카, 부기맨.”


신명을 부르자 연회장이 진동하는 것은 물론 저 바깥 연회장의 상상력이 닿지 않는 곳까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하신이라고는 하나 신은 신. 신명에 담긴 격이 요동치며 하신이라 한들 결코 이찬이 얕볼 존재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오세아니아, 바바야가. 유럽, 드라큘라. 아프리카, 미라.”


차례대로 신들이 호명되었고, 마침내 이찬이 속한 아시아의 차례가 되었다.

어떤 신이 호명되어도 맞설 수 있다 자신했기에 더욱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서생원.”


이찬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연회장 특별석에 앉아 있던 서생원의 입꼬리가 스르륵 말려 올라가는 것이 이찬의 눈에 들어왔다.


“저··· ···!”


***


그 시각 어느 한 행성에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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