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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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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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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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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2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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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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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악의 몰락 (6)

DUMMY

[나 덕분에 끝냈다?]


허완이 한참동안이나 생색을 냈다.


“예··· ···예에··· ···.”


[이것 봐라? 선조께서 이야기하시는데 건성으로 대답해?]


“선조답게 행동해야 선조 대접을 해 주지··· ···.”


가스페르가 소곤소곤 험담을 했지만 금방 들키고 말았다.


[너 뭐라 그랬냐? 기특한 후손이라는 말은 철회하겠다.]


“아, 아닙니다.”


허완의 몸이 흐릿해진 것은 가스페르의 상상력이 서서히 줄어들 때쯤이었다.


[아, 상상력 너무 많이 썼나··· ···. 수고해라, 다음에 보자.]


“언제쯤 오시렵니까?”


[몰라. 겁나 오래 걸리겠지. 너 때문에 여기 현현하는 데만 내 총 상상력의 2할을 썼으니까.]


“힘들면 또 부르겠습니다. 성주님.”


[부르지 마라. 진짜 너무 힘들다.]


그 말을 끝으로 허완은 다시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어, 나 도착한 거 맞는데?]


“예?”


허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목소리는 명확히 제자리에 남았다.


[아, 망했네.]


“어디 계십니까? 가신 거 아니에요?”


[여기 이제 내 행성이야.]


“녜? 그게 무슨··· ···.”


[난 원래 마땅히 ‘내 행성’이라고 부를 만한 행성이 없었어. 그래서 아는 신한테 얹혀 살고 있었지. 그런데 그 와중에 너에게서 연락이 왔고, 난 사양 않고 너랑 배후 성주 계약을 하고 행성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했지만?”


[여기가 내가 세운 행성인 것 플러스 배후 성주 계약을 한 사람이 내 후손이자 헤랴의 주민이었다는 것까지 해서 내가 이 행성의 신이 된 거네.]


“그럼··· ··· 어떻게 되는데요?”


[이거 이제 내 거야.]


가스페르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고, 육체가 없어 볼 수 없는 허완이 그 시선을 느꼈다.


[아··· ···아니, 나도 이건 좀 당황스럽거든? 난 이 행성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


“그건 됐고요.”


가스페르가 허완의 말을 딱 잘라 끊었다.


“지금 그래서 어디 계시는 거예요?”


‘너의 내면··· ···?’


공교롭게도 이전까지 고막을 울렸던 허완의 웅장하고 상상력 담긴 신언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그런 목소리로 화해 버렸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원래 신은 그릇이나 주민이 사라지면 가장 가까운 다른 주민의 몸으로 들어가거든. 주민이 없으면 이제 본체로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성주님의 그릇이 상상력 제약에 의해 사라지니까? 그게 저한테 옮겨 간 거죠?”


‘그렇지.’


“그럼 본체로 가시면 안 됩니까?”


‘난 본체가 없어··· ···.’


“왜··· ···왜요?”


‘너 내 설화 안 읽어 봤냐.’


“읽어 봤죠. 거의 교과선데.”


‘거기 마지막에 뭐라고 써있디?’


“그분의 몸은 땅으로 스며들어 이 땅을 풍족하게 해 주셨다?”


‘그래! 그거라고.’


“그게 왜요?”


‘원래 사자(死者)나 신은 전해지는 자신의 이야기에 의거해서 자신의 존재격을 만들 수 있어. 그러니까 전설, 역사, 신화, 설화 동화 등등 모든 이야기가 내 몸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거지.’


“그럼 그 설화에 따르면 지금 성주님의 본체는··· ···.”


가스페르가 끝말을 흐렸고, 허완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하··· ··· 그래, 이 땅 어딘가에서 훌륭한 비료가 되었겠지. 그게 벌써 몇천 년 전인데.’


“젠장맞을.”


그때, 가스페르를 부르는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 ···스페르! 가스페르!”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 국왕 제퍼 반 아이데였다.


“아버지?”


제퍼가 한달음에 달려와 가스페르를 안았다.


“괜찮느냐? 다친 곳은 없고?”

“괜찮습니다.”


가스페르의 말이 무색하기 짝이 없게 그의 몸엔 긴 자상이 이곳저곳 돋아나 있었다.


“지금 당장 의무실로 가거라.”

“아니 전 괜찮습니다.”

“가라고 하였다.”

“아니 진짜 괜찮—”

“빨리! 가라고 했다. 국왕으로서의 명이다.”


국왕의 지위를 앞세우니 가스페르도 어쩔 수 없이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이야 너네 아버지 진짜 너를 아끼시나 보다.’


그 말에 제퍼가 흠칫 가스페르 쪽을 바라보았다.


“선조님?”


그리고는 허완을 불렀다.


‘어? 왜 내 목소리가 왜 쟤한테 들리냐?’


“그··· ···그러게요?”

“어디 계십니까, 선조님?”


‘야.’


“예.”


지금만큼은 허완과 가스페르 모두 한 마음이었다.


“튀어어어어!”

‘도망쳐어어어!”


끝까지 말은 맞추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뭐··· ···, 가스페르! 이리 와 보거라. 가스페르!”


점점 흐려지는 제퍼의 말을 무시한 채 가스페르가 의무실로 절뚝거리며 달렸다.


끼이익!


아니, 의무실로 가는 도중 길을 틀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덜컹!


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고, 가스페르는 겨우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야 너 다쳤는데 그렇게 뛰어도 돼?’


“뭐 어때요. 상상력 부자 우리 성주님이 계시는데.”


‘허허. 이거 생각보다 미친놈이었네.’


“속으로 말하셔도 다 들린답니다?”


‘제기랄.’


갑자기 허공에 화살 모양의 무언가가 생기더니 화살촉 부분에 입이 생기며 말을 했다.


‘어우 살 것 같다.’


“성주님?”


‘어 나야.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


시스템 상점을 열어젖힌 허완이 이것저것 두드리더니 가스페르의 손에 직접 얹어 주었다.


‘이거랑··· ···이거랑, 또 이것까지.’


어느새 가스페르의 손엔 무수히 많은 물약과 알약이 쥐어져 있었다.


“이거 다 먹으면 죽는 거 아닙니까?”


‘괜찮아, 괜찮아. 시스템이 파는 건데 위험하겠어?’


“그거 시스템을 너무 과신하시는 것 아닙니까?”


‘몰라 빨리 먹어. 아니면 환불한다?’


허완이 환불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가스페르가 약의 구분 없이 모든 약을 한 번에 털어 넣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화아악!


그러자 기묘한 분홍빛이 가스페르를 감돌며 모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허벅지를 가로질러 거의 떨어져 나갈 것만 같던 다리가 순식간에 수복되어 멀쩡해졌고, 몸 구석구석에 화살이 스쳐 난 흔적과 꽂힌 화살 조각들이 사라져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땀에 절어 있던 전신은 땀이 사라짐과 동시에 향수를 뿌린 것처럼 향긋해졌다.

심지어는.


“옷도 수복해 줘요?”


‘그런 약이 있었을 거야.’


“근데 어떻게 아버지는 성주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고 야, 이거 상징체로도 힘들다. 이따 필요하면 불러, 자고 있게.’


“예. 알겠습니다.”


화살이 서서히 공중으로 분해되더니 이내 허완의 목소리가 끊겼다.


“이야, 드디어.”


허완과의 송신이 꺼져 고요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등장했다.


“내가 지금 당장 의무실로 가라고 했··· ···.”


의무실로 가 치료를 받으라고 잔소리를 하던 제퍼였다. 하지만 그가 본 가스페르는 약 5분전의 만신창이 같던 모습은 없고 방에서 책을 읽을 것만 같은 고상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


가스페르가 씨익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다 저만의 비법이 있습니다.”


뿌듯해하는 가스페르를 보며 어딘가 언짢은 느낌을 받는 제퍼였다.


“그건 됐고, 선조님께서는 어디 가셨느냐?”

“아, 저 그거 물어보려 했는데, 성주님 목소리가 들립니까?”

“귀에 때려 박히듯이 들리던데, 환청이냐?”


제퍼의 질문에 가스페르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했다.


“예, 지금 성주님은 피곤해서 자고 계십니다. 아마 환청 아닐까··· ···.”


하지만 가스페르는 속으로 절대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세뇌하고 있었다.

사실 거짓은 아니었다.

실제로 피곤해서 들어가 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이번엔 가스페르가 제퍼에게 질문했다.


“무엇을 말이냐?”

“많죠. 혼란한 백성들을 잠재울 방법이나 지금껏 몰래 나라를 좀먹고 있던 벌레 놈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려는지 등등.”


제퍼가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했다.

이에 조금은 실증이 난 가스페르가 침대에서 일어난 순간.


“방도는 있다.”


제퍼에게서 해결책의 실마리가 나타났다.


“오. 그게 뭡니까?”

“너다.”

“뭐요?”


너무도 당황스러운 답에 가스페르가 순간적으로 결례를 범했다. 하지만 가스페르도 제퍼도 가스페르의 결례를 언급하지 않았다.

들었던 대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해결책입니까?”

“일단 너는 전 행성에서 민심이 가장 좋은 왕족이다.”

“예.”


가스페르가 계속 해 보라는 듯 긍정했다.


“그리고 넌 조금 있으면 내 후계가 되겠지. 왕이 된다는 소리다.”


가스페르의 동공이 순간 좌우로 수십 번 흔들렸다.


“그··· ···, 그 말은 즉.”


가스페르의 말이 맞다는 듯 제퍼가 가스페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네게 모든 정치를 대리청정할 생각이다.”


***


[셀리노프가 소멸했다.]

[걔가 어디 담당이었더라?]

[그 활잡이.]

[별거 아니네.]

[하지만 한번 밟아 놓을 필요는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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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가스페르 (6) 24.01.03 4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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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가스페르 (4) 23.12.29 54 0 9쪽
78 가스페르 (3) 23.12.27 87 0 9쪽
77 가스페르 (2) 23.12.24 4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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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가월의 밤 (4) 23.12.17 69 0 10쪽
73 가월의 밤 (3) 23.12.15 60 0 9쪽
72 가월의 밤 (2) 23.12.13 8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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