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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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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678
추천수 :
10
글자수 :
128,593

작성
23.05.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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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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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1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1)

DUMMY

정오가 갓 지난 시각.

평소 같으면 재민 엄마는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허둥지둥 외출 준비를 했다.


“재우 어머니시죠? 안녕하세요, 재우 담임입니다. 재우가 학교에서 문제를 좀 일으켰습니다. 전화 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하네요. 늦게라도 좋으니까 오늘 안으로 학교로 꼭 나와 주셨으면 합니다.”


잠결에 받은 탓에 처음에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담임 선생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재우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그녀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

그 어린 것이 혼자서 장갑에 목도리까지 꽁꽁 싸매고 학교에 갔을 텐데.

재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까?


핸드폰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허겁지겁 화장실로 뛰어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부스스한 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얼굴빛이 창백하고, 눈 밑에 그늘이 짙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밤새 가게 일을 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몽둥이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대강 머리만 매만지고 화장실을 나오는데 재민이 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엄마, 어디 가세요?”


미리 준비해둔 말이 없어 그녀는 머뭇거렸다.


재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잠도 못 주무셨잖아요?”


“아니야, 오늘은 새벽에 좀 일찍 들어왔어. 볼일이 있다고 하니까 가게 주인이 일찍 들어가라고 해서. 재민아, 밥은 좀 먹었니?”


“아까 재우 나갈 때 같이 먹었어요. 엄마도 식사하셔야죠?”


“괜찮아, 점심 약속이 있어.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서 너 하던 일 해.”


“할 일이 뭐가 있다고요. 청소하고 설거지는 제가 대강 해놓을 테니까 여유 있게 시간 보내세요. 재우, 저녁도 제가 챙길게요.”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얘가 별말을 다 하네. 엄마, 밥만 먹고 금방 들어올 테니까, 행여 그러지 마라.”


초승달처럼 웃으며 재민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재민이 애써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걸 안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었던 아들의 마음이 지금 새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그녀의 가슴은 열두 갈래로 찢기었다.



✭✭✭



석 달 전, 재민의 수능 시험 날.


그녀는 재우와 함께 시험장 앞에서 재민을 기다렸다.


별다른 표정 없이 시험장을 나서는 재민의 손을 잡고 짜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으로 향했다. 시험 잘 봤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의 말에 잘 모르겠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재민을 보면서 그녀는 마음을 졸였다.


식사를 마치고 두 아들만 달랑 집으로 보내자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아 가게 주인에게 조금 늦겠다고 전화를 했다.


빵집과 슈퍼에 들러 두 아들이 좋아하는 케이크와 과일을 한아름 사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과일 먹으라는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재민은 수능 시험 답을 맞추겠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덩달아 긴장한 표정으로 재우도 형을 따라 들어갔다.


온 신경을 방안의 동정에 빼앗긴 탓에 과일을 깎는 그녀의 손이 자꾸 엇나갔다.


“와!”


함성과 방문을 박차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녀는 과일을 떨어뜨렸다.


앞서서 넘어질 듯 뛰어나온 재우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 형 전부 다해서 아홉 개 틀렸대, 아홉 개. 형 정말 짱이야! 짱!”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정말이니, 재민아 정말이야?”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 벅차고 기뻐서 몸이 깃털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하늘 위로 날아오를 것 같았고,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웃어도 웃어도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두 아들을 품에 안고 돌고 돌고 또 돌았다.


두 아들이 잠들었을 깊은 밤, 그녀는 가게 구석에서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재민이 대학을 보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지난 1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을 아끼고 아껴서 꼬박 모은 돈이 300만 원에 조금 모자랐다.


주변에 물으니 사립대학 등록금으로는 부족할 거라고 했다.


집안 형편을 너무 잘 아는 재민은 고교 시절 내내 무섭도록 공부에 매달렸었다. 오직 사립대학에 안 가기 위해서.


변변한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한 게 그녀는 미안했었다. 동생 재우를 돌보기 위해서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에 와서는 서투른 손으로 집안일을 하고 나서야 아빠의 유품인 낡은 책상에 앉는 재민에게 너무나 미안했었다.


그런 재민의 노력이 빛을 보게 된 게 행복했다. 국립대나 시립대에 들어간다면 지금 통장에 있는 돈만으로도 1년 치 등록금은 얼추 충당이 될 것이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재민의 얼굴빛이 어두웠다. 말수도 적었다. 모른 척하기에는 그녀의 불안감이 너무 컸다.


재민은 얼굴로는 웃음을 짓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가게에 나갈 준비를 하던 손을 멈추고 그녀는 재민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재민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재민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어요.”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어릴 때부터 재민은 거짓말을 할 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민아, 우리 세 식구 절대 비밀이 없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한 거 벌써 잊었어?”


재민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재민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꺼냈다.


“수능 시험이 좀 쉬웠나 봐요. 다른 아이들도 나만큼 잘 봤더라고.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담임 선생님에게 여쭤보니까 과를 바꾸면 시립대는 갈 수 있을 거래요. 왜, 반값 등록금 하는 대학, 엄마도 알지?”


재민은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과를 바꿔야 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고, 우리 엄마 또 걱정이 산더미가 됐네. 자세한 건 아직 몰라요, 성적이 나와 봐야 아는 거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재민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행복한 글 읽기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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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1) 23.05.16 1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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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전쟁 같은 날 (1) 23.05.11 19 0 9쪽
17 17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3) 23.05.10 18 0 12쪽
16 16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2) 23.05.09 19 0 8쪽
15 15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1) 23.05.08 24 0 8쪽
14 14화. SKY 그게 뭐라고 (2) 23.05.06 24 0 10쪽
13 13화. SKY 그게 뭐라고 (1) 23.05.05 23 0 9쪽
12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23.05.03 26 0 16쪽
11 11화. 기념이 될 성적표 (1) 23.05.02 25 0 14쪽
10 10화. 입 없는 얼굴 23.05.01 24 0 13쪽
9 9화. 금쪽같은 내 자식 (2) 23.04.30 26 1 19쪽
8 8화. 금쪽같은 내 자식 (1) 23.04.29 30 1 21쪽
7 7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다 23.04.28 30 1 20쪽
6 6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2) 23.04.27 34 1 16쪽
5 5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1) 23.04.26 3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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