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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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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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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593

작성
23.05.0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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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SKY 그게 뭐라고 (1)

DUMMY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 늦여름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박준우 선생을 에워쌌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는 교실에 비해 족히 5도 이상은 높은 듯했다.


준우는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모니터 화면에는 2학기 개학 후 진행되고 있는 수시모집 면담 스케줄이 떠 있었다.


준우는 수시모집에 지원할 대학을 정하는 면담을 학생하고만 하는 게 아니라 되도록이면 부모님과 함께 했다. 대학입시에 있어서 수능시험 점수가 주요한 전형자료인 정시모집보다 학교 내신과 학교에서의 활동이 전형자료가 되는 수시모집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면담 대부분이 부모님이 학교에 오실 수 있는 저녁 시간에 이루어졌다.


2주째 밤 10시를 넘겨서 퇴근했더니 몸은 철인 3종 경기라도 마친 양 무거웠다. 이럴 때는 잠시 일을 덮고 쉬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9월 초에 그런 호사를 누리는 고삼 담임은 없다.


점심 식사 전에 저녁에 있을 면담 준비를 대강이라도 마무리하고 싶어 꼬르륵 소리도 무시하고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 던져둔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요즘 부쩍 스팸 전화가 많이 걸려 오는 탓에, 준우의 미간에 짜증 가득한 주름이 잡혔다.


041,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망설이다가 연결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은 준우의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막 전화를 끊으려는데, 들릴 듯 말 듯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저, 선우예요.”


“선우, 신선우?”


“예, 선생님. 오랜만에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전화 받기는 괜찮으세요?”


“점심시간이야 괜찮아.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준우는 친구들보다는 두 뼘 정도 작은 키에 선한 눈매로 항상 수줍은 표정을 짓던 선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실은 죄송한 부탁을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죄송한 부탁이라는 말이 귀에 걸렸다.


“제자가 선생한테 죄송할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니, 무슨 부탁인데?”


머뭇머뭇하던 선우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번에 또 수능 시험을 봐요.”


순간 준우의 머리가 멍해졌다. 선우는 작년에 분명히 D 대학에 합격했다.


올해 2월 중순 대학입시 최종 합격자 발표일을 앞둔 어느 날.


선우는 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모집으로 간신히 합격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었다. 삼수까지 한 선우의 합격 소식에 너무 기뻐 준우는 교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었다.


준우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차분하게 말했다.


“그랬구나, 또 시험을 준비했구나. 선우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데 전화하는 데는 어디니?”


“기숙학원이에요, 여기서는 핸드폰을 못 써서요.”


가슴이 징 울렸다. 선우는 1학년, 3학년 담임이었던 준우와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숙학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간 4년을, 기숙학원에서.


“제가 9월 모의고사를 학교에서 보고 싶은데 여기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해서요. 학교 홈페이지에 지원할 방법이 없어서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볼까 전화를 드렸어요.”


“내가 지원해 놓을게. 걱정하지 마라. 힘들겠구나. 건강 조심하고.”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수능시험 끝나고 꼭 찾아뵐게요.”


“그래, 수능시험 잘 보고, 그때 웃는 낯으로 만나자.”


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목울대 아래에 커다란 바윗돌이 얹힌 듯 묵직했다. 코끝까지 먹먹해지는 준우의 눈앞에 선우의 앳된 모습이 어른거렸다.



✭✭✭



3년 전, 수능시험 점수가 발표되던 날.


선우를 앞에 두고 준우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선우야, 선우야, 너 정말 해냈구나. 내가 너 시험 잘 볼 거라고 했지?”


준우의 모습을 보고, 옆 반 담임인 김 선생이 반색을 하며 껴들었다.


“박준우 선생, 선우가 왜요?”


“김 선생님, 이놈이 3학년 들어서 무섭게 공부를 한다고 말씀드린 적 있잖아요. 선생님, 이 녀석 성적표 좀 보세요.”


준우의 입이 귀에 걸렸다.


김 선생님이 선우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거 선우 성적표 맞아? 선우야, 너 이렇게 공부 잘 하지 않잖아? 박 선생이 흥분할 만하구먼.”


주위에 있는 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선우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준우와 선우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선우의 2학년 담임이었던 장 선생이 다가와서 준우에게 물었다.


“박 선생님, 그 정도 점수면 어느 대학 쯤 갈 수 있어요?”


“정확한 건 아이들 점수 분포가 나와야 알겠지만, 예전 같으면 서울에 있는 중위권 대학에는 갈 수 있는 점수야. 선우는 인문대에 가고 싶어 하니까 중위권 대학에는 충분히 합격할 거야.”


“2학년 때 저하고 면담할 때만 해도 수도권 대학에 간신히 갈 수 있는 성적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정말 잘 되었네요.”


볼이 발그레해진 선우는 선생들의 축하 말을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선우의 행복감이 준우의 가슴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준우는 정시면담 일정을 발표하는 것으로 종례를 마쳤다.


면담을 해야 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초조감이 담겨 있었다. 수시모집 면담 일정을 발표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수시모집은 떨어져도 뒤에 정시모집이 있지만, 정시모집에 떨어지면 재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풀 죽은 모습에, 준우는 “1반 파이팅, 1반 파이팅”을 외쳤다.


진학부장인 우 선생이 수능점수 분포자료를 건네며 준우에게 말했다.


“선생님 반 태경이하고, 준영이는 SKY에 갈 수 있을 거 같네요.”


“그래요 ···.”


반에서 1등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해 온, 태경과 준영은 평소 모의고사 점수와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선우야, 너 수능 잘 봤다며? 담임 선생님이 네 얘기 많이 하더라.”


수능시험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던 준우는 우 선생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우 선생 옆에 선우가 서 있었다.


“선우야, 집에 안 갔어?”


“말씀드릴 게 좀 있어서요.”


“그래 이리 좀 앉아라.”


우 선생은 기분 좋게 선우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네 성적표 보고 부모님이 좋아하셨겠다?”


선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우 선생이 간 다음에도 선우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선생님, 죄송한 말씀인데요. 저 재수를 할까 해요.”


놀란 준우의 목소리가 커졌다.


“재수를 해, 왜?”


“어저께 부모님하고 얘기를 했는데요. 재수를 하면 지금 제가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잖아요.”


준우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능성적표를 받자마자 재수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간혹 있다. 대부분 평소 보는 모의고사보다 수능시험을 많이 못 본 경우다. 선우같이 기대보다 월등한 점수를 받은 아이가 재수를 운운한 적은 없었다.


“선우야, 네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도 좋은 대학이야.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선망하는 대학이라고. 그리고 이번에 높은 점수를 받은 건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야 돼. 재수를 해서 이번처럼 시험을 잘 보란 보장도 없잖아.”


“저도 그건 아는데요.”


“그런데?”


선우는 숙인 고개를 더 아래로 떨어뜨리며 우물쭈물 말했다.


“과도 경영학과로 좀 바꾸려고 해요. 그러면 더 낮은 대학에 가야 하잖아요.”


“경영학과? 작가나 기자가 되고 싶다더니 경영학과는 또 뭐야?”


준우는 짐작이 갔다. 대학은 몰라도 전공을 바꾸겠다고 할 때는 부모님의 입김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지금 네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은 싫다고 하시니?”


선우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선우야, 너 정말 재수하고 싶니? 그 지겨운 공부를 또 하고 싶어? 재수라는 건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게 재수야.”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선우가 안쓰러웠다. 준우는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아버지하고 얘기를 좀 해야겠다. 전화해서 나하고 통화하실 수 있는지 여쭤봐라.”


핸드폰을 받아든 선우가 전화번호를 눌렀다.


작가의말

행복한 글 읽기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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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2) 23.05.09 19 0 8쪽
15 15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1) 23.05.08 24 0 8쪽
14 14화. SKY 그게 뭐라고 (2) 23.05.06 24 0 10쪽
» 13화. SKY 그게 뭐라고 (1) 23.05.05 24 0 9쪽
12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23.05.03 27 0 16쪽
11 11화. 기념이 될 성적표 (1) 23.05.02 25 0 14쪽
10 10화. 입 없는 얼굴 23.05.01 24 0 13쪽
9 9화. 금쪽같은 내 자식 (2) 23.04.30 27 1 19쪽
8 8화. 금쪽같은 내 자식 (1) 23.04.29 30 1 21쪽
7 7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다 23.04.28 30 1 20쪽
6 6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2) 23.04.27 34 1 16쪽
5 5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1) 23.04.26 3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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