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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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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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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
추천수 :
10
글자수 :
128,593

작성
23.04.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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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8화. 금쪽같은 내 자식 (1)

DUMMY

“선생님, 선생님, 빨리 교실에 좀 가 보세요.”


필규의 창백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에서 2학년 8반 담임인 채자영 선생은 사고를 직감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자영이 소리쳤다.


“왜, 무슨 일인데?”


주변 선생님들의 놀란 눈길이 쏠렸다.


“재호하고 진수가 싸웠는데 진수 입에서 피가 계속 나요.”


“고등학교 2학년씩이나 된 놈들이 어린애들처럼 또 싸움을 했다고? 너희들은 싸우도록 구경만 했어!”


자영의 쏘아보는 눈초리에 필규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너무 순식간에 주먹이 오고 가서 말릴 틈도 없었어요, 선생님.”


교무실을 나서며 자영이 말했다.


“너희들, 1학기 때 준영이하고 태구하고 싸울 때도 구경만 했었잖아.”


“준영이하고 태구는 장난치다가 싸움으로 번졌다니까요. 그리고 그때 선생님께 하도 벌을 받아서 그다음부터는 장난만 쳐도 아이들이 얼마나 말리는데요.”


“근데 또 싸워! 그때 덜 혼났나 보지, 하여튼 오늘 다들 단단히 혼날 줄 알아.”


자영은 교실이 있는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올랐다.


교실 밖 복도에 아이들이 양떼처럼 모여 있었다. 눈을 부라리며 다가오는 자영을 보고 아이들이 화들짝 길을 열었다.


교실 앞쪽에 책상과 의자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진수는 벽 앞에 털퍼덕 주저앉아 입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런 진수를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분명한 싸움의 흔적이었다.


그런데 진수 바로 앞에 재호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은 의외였다.


진수와 재호가 싸웠다고 하지 않았나?


재호의 팔이 진수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고 있었다. 그 장면만 보아서는, 바닥에라도 넘어져 다친 진수가 걱정스러워서 재호가 안심시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밀치고 자영이 나섰다. 자영을 발견한 진수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재호가 겨드랑이에 팔을 껴서 일으켰다.


입을 막고 있는 진수의 손에 피가 묻어있었다. 선명한 피에 놀란 자영의 목소리가 교실을 쩌렁 울렸다.


“피가 이렇게 났으면 양호실에 가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양호실에 계속 가자고 했는데 진수가 안 간다고 해서요.”


풀 죽은 목소리로 재호가 말했다. 자영이 재호를 쏘아보았다. 재호도 입술이 툭 불거져 있고, 얼굴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선명했다.


재호가 진수를 부축해서 앞섰다. 자영은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필규만 따라오고 나머지는 교실에 가서 수업 준비해.”


날 선 자영의 말에 움찔한 아이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양호실로 들어서는 진수를 보고 양호 선생님이 놀라며 일어섰다.


“이쪽으로 와라, 이쪽으로. 채자영 선생님 반 아이들인가 봐요?”


“매번 사고를 쳐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요 또래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죠 뭐. 혈기 왕성한 놈들에게 하루 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으라고 하니, 쯔쯔쯔. 쪼그만 책상에 갇혀 있다가 움직이다 보니 혈기를 조절 못 해서 그런 걸 채 선생님이 어쩌겠어요.”


“선생님, 이놈들은 장난친 게 아니라 싸운 거예요.”


진수의 입과 턱에 묻은 피를 닦으며 양호 선생님이 말했다.


“친구끼리 좀 참지 그랬니, 너희들 주먹은 거의 무긴데. 자자, 입 좀 한 번 벌려봐라.”


“아아.”


양호 선생님의 손이 닿을 때마다 진수는 얼굴을 찌푸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자영의 상체가 저절로 진수 쪽으로 수그러졌다.


“채 선생, 아무래도 앞니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치과로 바로 보내는 게 좋겠어.”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양호 선생님이 자영을 쳐다봤다. 상처가 크지 않기를 바랐던 자영의 기대는 어긋났다.


“채 선생, 다음 시간 수업 있어?”


“예.”


“그럼 일단 채 선생은 다친 아이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수업에 들어가요. 내가 얘 데리고 치과에 갈게. 사거리에 박치과라고 있는데, 부모님께 바로 오실 수 있으면 그리로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자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치과에서 바로 집으로 보내는 게 낫겠죠?”


양호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장인 이 아이 편에 가방을 챙겨서 보낼게요, 선생님. 필규야, 너는 지금 교실에 가서 진수 가방을 챙겨서 내려와. 그리고 치과까지 진수 부축하고 갔다가 진수 부모님 오시면 돌아와라.”


필규가 대답을 하고 양호실을 나갔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영도 양호실을 나오려는데, 재호가 따라 나오질 않았다.


“재호야, 넌 교실로 가.”


“제가 진수 데리고 병원에 같이 가면 안 돼요?”


“네가?”


머뭇거리는 자영에게 양호 선생님이 말했다.


“채 선생, 얘가, 진수라고 했지? 아무리 애들 싸움이라고 해도 진수 부모님이 보시면 화가 많이 나실 거야. 자식이 다쳤는데, 자식을 때린 아이가 눈에 보이면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으니까 이 아이는 안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양호 선생님 말씀이 옳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재호 너는 수업에 들어갔다가 끝나면 교무실로 와.”


같이 가겠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리는 재호를 자영은 눈을 부라리며 나무랐다. 그래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진수를 보며 재호가 말했다.


“진수야, 미안하다.”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진수가 재호를 올려다보며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입술이 두툼하게 불거져 있어 표정이 우스꽝스러웠다.


수업이 시작된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하는 자영의 뒤에다 대고 재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교무실 앞자리에 있는 최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어가야 하는 반의 자습 감독을 부탁하고, 자영은 진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업을 끝내고 다시 전화를 할까 하다가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버튼을 눌렀다. 또 전화를 받지 않아 막 끊으려는데 연결이 되었다.


“저, 진수 담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진수가 친구하고 싸웠는데 좀 다쳤습니다. 방금 치과로 갔는데 부모님께서 오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진수가요? 많이 다쳤나요? 제 아이가 누구하고 싸울 애가 아닌데, 생전 이런 일이 없던 앤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전화기를 통해 진수 어머니의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도 왜 싸웠는지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 제가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먼저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니, 그럼 진수 혼자 병원에 보내셨다는 말씀이세요. 선생님에게는 학생이 다친 것보다 수업이 중요한가 보죠?”


힐난이 담긴 진수 어머니의 말에 자영은 당황했다.


“진수 혼자 병원에 보낼 리가 있겠어요. 양호 선생님이 같이 가셨습니다.”


“하여튼, 어느 병원이죠?”


“학교 앞 사거리에 박치과라고 있는데 그리로 갔습니다.”


“알겠어요.”


수업이 끝나는 대로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말을 하려는데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자영은 통화 단절음이 들려오는 수화기를 멍하니 들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해서 그런지 자영은 머리 한쪽이 아팠다.


수업을 마치고 재호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간신히 눌렀던 화가 슬금슬금 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재호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왜 싸운 거야?”


“······”


“왜 말이 없어? 친구도 많고, 예의도 바르고 해서 생전 싸움이라고는 안 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를 잘못 본 모양이구나. 왜 싸웠냐니까?”


“······”


“말 안 할 거야?”


“······”


한일자로 꾹 다문 재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자영은 아무 말 하지 않는 재호의 태도에 점점 더 화가 났다. 마음 같아서는 호되게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수업 끝나면 가방 챙겨서 생활지도부실에 가 있어, 알았어?”


“예.”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하고 재호는 교무실을 나갔다.


자영은 학급시간표를 확인했다. 진로 시간이었다. 상담실로 가서 진로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해영과 진표를 교무실로 불렀다.


“내가 너희들을 왜 불렀는지 알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영이는 진수하고 절친이고, 진표 너는 재호하고 절친인 걸로 알고 있는데.”


둘은 말이 없었다. 수긍한다는 뜻이었다.


“아까 진수하고 재호하고 싸울 때 너희들은 어디 있었어?”


해영과 진표가 싸운 것도 아닌데, 자영의 소리는 범인을 조사하는 형사처럼 날카로웠다.


“전 체육복 빌린 거 돌려주려고 옆 반에 갔었어요.”


덤덤하게 대답하는 진표와는 달리 해영은 우물쭈물 말했다.


“전 교실에 있었어요.”


“그럼 해영이 넌, 둘이 왜 싸웠는지 또 얼마나 싸웠는지 다 알겠네. 그리고 진표 너도, 교실에는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 거 아냐?”


다그치는 자영의 말에 둘은 기가 눌렸다.


“내가 뭘 알아야 부모님들께 얘기를 할 거 아냐. 먼저 해영이 너부터 얘기해 봐.”


먼저 자신이 지목된 게 부담스러운지 해영의 표정이 굳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 재호가 진수 신발을 밟아서 그런 거 같아요.”


“뭐, 겨우 신발 밟은 거 때문에 싸웠다고?”


“그게 진수가 진짜 갖고 싶어 했던 신발이거든요. 새 신발을 오늘 처음 신고 왔는데 밟히니까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진수가 재호를 밀쳤나 봐요. 재호가 왜 그러냐고 소리를 치니까, 진수가 주먹으로 재호를 쳤어요.”


“아니, 고등학교 2학년씩이나 된 놈들이 신발 밟힌 거 때문에 싸웠다는 게 말이 돼, 완전 초딩이구만, 초딩.”


자영은 어이가 없었다. 진표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애들이 그러는데요. 진수가 계속 때렸대요. 재호는 맞기만 했대요. 그러다가 딱 한 대 때렸는데 진수가 저렇게 된 거래요.”


“뭘 잘했다고 재호 편을 들어, 너는. 누가 많이 때리고 적게 때린 게 문제가 아니야. 싸움에는 다치게 한 놈이 무조건 잘못한 거야.”


“재호는 열 대도 더 맞았대요. 그리고 싸움도 진수가 시작한 거잖아요. 진수가 많이 다쳤지만 잘못은 진수한테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전.”


“그건 심하게 다친 놈이 없을 때 얘기지. 근데 너하고 다른 놈들은 둘이 그렇게 치고 박고 싸우는데 구경만 했다는 거야?”


해영은 자신을 쏘아보는 자영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왜 안 말렸겠어요. 저도 말리고 애들이 후다닥 끼어들었는데 벌써 진수 입에서 피가 났어요.”


해영은 마치 자기가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알았어, 그만 가 봐. 진로 선생님께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참 진수하고 재호하고는 원래 사이가 안 좋았어?”


“아니요.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친했던 것 같은데, 1학기 때는 한참 동안 짝도 했잖아요.”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도 진수와 재호는 짝이었다. 번호순으로 자리를 정해서 앉는 학급도 있지만, 자영의 반은 2학기 들어서는 앉고 싶은 자리에 자유롭게 앉았다.


화요일이라 자영은 오후 내내 수업이 있었다. 쉬는 시간 때마다 주변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자영에게 걸려온 전화는 없었다.


양호실에 가 보니 양호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창 7교시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진수를 따라 병원에 갔던 필규였다. 진수 상태를 물어보려는데, 필규가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 빨리 교실에 가 보세요.”


“왜?”


“빨리요.”


필규가 자영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앞장서서 복도를 지나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필규 때문에 계단에서 넘어질 뻔했다. 화들짝 놀라 손을 뿌리치며, 자영이 소리를 쳤다.


“뭔데, 이래!”


“진수 어머니가 오셨는데, 지금 교실에서 난리예요.”


필규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진수 어머니가 오셨다는 말에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ㄷ자로 된 복도를 꺾어 돌았다. 복도에 나와 있는 옆 반 선생님과 학생들이 보였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자영을 발견하고 몸을 피하는 그들의 얼굴에 놀란 감정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교실 앞문으로 뛰어드는 자영에게 학급 아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수업 중이었을 텐데,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서 있었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자영은 그 자리에 굳었다. 아이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곳에 장 선생님이 중년 남자의 두 팔을 잡고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기괴한 장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영의 귀에 여자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 깡패 새끼야! 감히 내 아들한테 어따 대고 주먹질이야 주먹질이!”


발악에 가까운 소리에 이어 찰싹 찰싹 때리는 소리가 났다.


진수 어머니였다. 진수 어머니의 하얗게 미친 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앞에 있는 재호의 얼굴이 획획 돌아갔다.


“때리지 말라니까요!”


장 선생님이 잡고 있던 중년 남자의 팔을 밀치고, 진수 어머니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결에 진수 어머니의 손이 장 선생님의 팔을 때렸다.


“이 새끼야, 니가 선생이면 다야.”


밀치는 힘에 잠시 중심을 잃었던 중년 남자가 구둣발을 들어 장 선생님의 허리춤을 내질렀다. 옆구리를 차인 장 선생님이 책상 위로 나동그라졌다.


자영은 그 광경에 기가 질렸다.


“뭐 하시는 거예요!”


귀를 찢는 소리가 났다.


“넌 또 뭐야, 새끼야.”


중년 남자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아이를 향해 또 발을 들었다.


선철이었다. 선철은 구둣발에 가슴팍을 채이고 나동그라졌다.


그것을 본 아이들이 중년 남자를 덮쳤다. 중년 남자와 아이들이 뒤엉켜 교실 바닥을 굴렀다.


짝! 짝!


그때 진수 어머니가 재호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그만 하세요.”


또다시 재호의 뺨을 향해 날아가는 손을 필규가 몸을 날려 막았다.


“그만 하세요.”


“그만 하세요.”


“그만 해요.”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소리쳤다. 아이들의 관자놀이에 분노로 불거진 푸른 정맥들이 선명했다.


진수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필규 앞을 자영이 막아섰다.


장 선생님도 중년 남자와 엉켜있는 아이들을 떼어냈다. 아이들의 기세에 눌려 때리기를 멈췄지만, 진수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표독스러웠다.


“온통 깡패 새끼들만 있는 학교구만, 내가 이 학교하고 선생들 싹 다 가만두나 봐. 진수 외삼촌이 누군지 알아, 검사야 검사!”


자영과 아이들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며, 진수 어머니는 욕설에 가까운 말을 쉼 없이 쏟아냈다.


언제 교실에 왔는지 교감 선생님이 앞으로 나섰다. 진수 어머니는 교감 선생님을 따라 교실을 나가면서도 욕설을 그치지 않았다.


자영은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단짝인 김 선생이었다. 김 선생의 초승달눈이 동그랬다.


자영은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눌러 참았다. 학급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김 선생에 이끌려 교실을 나왔다.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방금 전 복도를 메웠던 술렁거림은 어수선한 기운으로 남아 뒹굴고 있었다.


교무실로 들어서는 자영을 보고 선생님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영 샘, 이젠 괜찮아. 시원한 물 한 잔 줄까?”


김 선생의 그 말에 힘겹게 누르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삼키며 우는 자영의 주위로 선생님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여들었다.


자영은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가서는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어 자습을 시켰다. 평소 같으면 피곤해서 엎어지거나 신나서 낄낄거리며 떠들었을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책을 펼치고 자습을 했다. 곤란한 상황을 겪은 자영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영은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자, 자, 그냥 수업하자. 공부하겠다고 방과 후 수업까지 신청했는데 미안하다.”


자영은 교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괜찮아요, 선생님. 오늘은 그냥 자습해요.”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철민이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교실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말이 들려왔다.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지는 아이들의 말이 자영에게 힘을 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자영의 책상 위에 노란색 메모지가 붙어있었다.


‘채자영 선생님, 수업 마치고 내 자리로 좀 오세요. 교감.’


1층 교무실에 내려가니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학생부장 선생님, 장 선생님, 양호 선생님, 홍영식 선생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자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호 선생님을 보자마자 자영은 진수의 상태를 물었다. 양호 선생님은 진수의 앞니 가운데 하나는 빠지고 하나는 깨져서 이빨 두 개를 임플란트해야 한다는 치과의사의 소견을 전했다.


큰 부상이 아니기를 바랐던 자영의 바람은 무너졌다. 진수의 부상이 심하다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교감 선생님이 싸움이 나게 된 정황을 자영에게 물었다. 자영은 아이들에게 들은 대로 이야기를 했다.


뒤를 이어 장 선생님이 진수 부모님과 몸싸움을 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교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홍영식 선생님이 말했다.


“장 선생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마 저라도 수업 중에 갑자기 들어와서 아이를 때리면 아무리 학부모님이라도 막아섰을 거예요.”


교감 선생님이 말을 받았다.


“그건 홍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을 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감 선생님이 자영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 자리에 홍영식 선생님이 오신 건, 진수의 쌍둥이 동생인 경수가 지금 홍 선생님 반이고, 가해 학생인 재호의 1학년 때 담임이셨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진수 어머니는 학부모 대표로 학교 운영위원을 맡고 계신데, 홍 선생님도 교사 대표 운영위원이셔서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진수 어머니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아 참석하시라고 했습니다. 채자영 선생님, 아까 물어봤을 때는 재호 부모님과 통화를 못 하셨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통화가 되셨나요?”


자영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담겼다.


“죄송합니다, 계속 전화를 걸고 있는데 아직 통화는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저녁 시간이 지나야 통화가 될 겁니다.”


홍 선생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채자영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재호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시는데 근무 중에는 전화를 못 받으시더라고요. 재호가 워낙 순한 아이라서 집에 전화할 일이 없다 보니까 저도 학년말에야 알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자영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채자영 선생님께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제가 깜빡 잊었네요.”


심각한 표정으로 의자 깊숙이 앉아 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아들이 다쳤는데 어느 부모가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 싸움이라 대개의 경우는 화를 가라앉히고 이해를 해주십니다. 그런데 진수 부모님의 경우는 예외일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아까 교장실에서 보여준 모습만 보아서는 부모님끼리의 대화로는 원만히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우선은 재호 아버님께 진심을 다해 사과를 드리라고 하고, 그 해결에 학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홍 선생님이 동의의 뜻을 표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제가 잘못 판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운영위원 회의 때 보면 진수 어머니는 자신의 의사에 반대되는 의견이 나오면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시더라고요. 아마 재호 아버님이 사과를 한다고 해도 쉽게 받아들이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재호네가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학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돕니다. 진수 부모님이 화를 푸신다고 해도 치료비는 재호네에서 부담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이런저런 문제를 담임이신 채 선생님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이번 일에는 교감 선생님이나 학생부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두 선생님의 의견대로 학교가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자영의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자영은 재호 아버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 전화를 부탁드리겠노라고 말했다.


교감 선생님은 내일 양쪽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는 말로 정리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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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1) 23.04.26 3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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