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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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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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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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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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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8화. 전쟁 같은 날 (1)

DUMMY

논술 학원 가는 길에 선오와 도민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김밥집에 들렀다. 도민이 스트레스 확 풀리게 불 맛 나는 라면을 먹자고 해서다.


매운맛에 자신이 없는 선오지만 도민의 부추김에, “그래 나도 정신 번쩍 나게 먹어보지 뭐.”, 하며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불 맛 라면을 먹으면서 연신 냉수를 들이켜는 선오를 보면서 도민이 깔깔대고 웃었다.


김밥집을 나와서 도민이 편의점으로 앞장섰다. 매운 거 먹느라 고생한 선오에게 쭈쭈바를 물렸다.


“이제 좀 살 거 같네.”


선오는 쭈쭈바를 허겁지겁 반 정도 먹고 나서야 매운 입이 진정되는 모양이었다.


“참, 선오야. 너 논술 시험 경쟁률이 몇이라고 했지?”


“K 대학 논술 시험이 88대 1이고, D 대학이 35대 1쯤 돼.”


“그럼 D 대학 논술 시험에 더 신경을 써야겠네. 근데 같은 날에 시험을 본다며, K 대학 논술 시험 끝나고 D 대학에 시간 맞춰 갈 수 있겠어. K 대학에서 D 대학까지 꽤 멀지 않나?”


“내가 누구냐, 방법이 다 있지.”


선오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도민은 표정으로 그 방법을 물었다.


“함부로 가르쳐 줄 수 없는 건데 내가 이 쭈쭈바를 먹어서 가르쳐 준다. 이 형이 울 동생 생각해서 가르쳐 주는 거니까 잘 들어.”


능글능글하게 말하는 선오를 향해 도민은 주먹 쥔 손을 치켜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다. 장난기 넘치는 웃음이 골목길을 채웠다. 웃음 끝에 선오가 말했다.


“K 대학 논술 시험 끝나는 시간이 11시 반이니까, 끝나자마자 눈썹이 휘날리게 달리는 거야. 건물 밖으로 나가면 짠. 내가 재벌 2세면 헬기가 떡하니 대기하고 있겠지. 그런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뭐겠어. 그렇지, 퀵이지 퀵. 퀵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서 부앙 달리면 1시 D 대학 논술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이지.”


도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대단하다 대단해.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작년에 대학 간 사촌 형한테 물어보니까 퀵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더라, 그것도 몰랐냐고 하면서. 예약하지 않으면 그것도 없다고 해서 예약까지 했어. 5만 원 선불 주고.”


“논술 시험 보는 게 무슨 영화 찍는 것도 아닌데 별걸 다해 보는구나. 근데 내일 저녁부터 비 온다고 하던데, 괜찮을까?”


“비 온대?”


멈칫 걸음을 멈춘 선오의 얼굴에 짜증이 담겼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도민의 마음이 불편했다.


“선오야, 걱정 마. 내가 너 시험 잘 보라고 야무진 비옷 하나 사줄게.”


“비옷? 그래 그래. 내가 동생 하나는 잘 뒀단 말이야.”


금방 표정을 밝게 바꾼 선오는 두 손으로 도민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온 둘은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섰다. 둘의 눈길이 자연스레 건너편 건물에 고정되었다.


건물 3층 벽에 큼지막하게 논술 학원 간판이 걸려있었다.


발끝으로 보도 블록을 톡톡 차면서 도민이 말했다.


“주영이는 유레카에 다닌다고 하더라.”


“짜아식, 집에 돈이 많긴 많은가 보네 유레카를 다 다니고.”


“유레카가 논술은 끝내준다잖아. 거기가 비싸긴 해도 거기 다녀서 재수할 돈 굳으면 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논술 학원 가겠다고 집에다 이백만 원 가까운 돈을 어떻게 달라니, 수시 원서 접수하는데 오십만 원 썼고, 또 정시 원서 접수도 해야 하는데. 합격하면 등록금은 또 얼마고.”


횡단보도 신호가 녹색등으로 바뀌었다.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던 둘은 녹색등이 깜빡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길을 건넜다.


학원 강의실로 들어서는 선오와 도민의 눈이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을 보고 부엉이 눈처럼 커졌다. 강의실 뒷자리로 가는 선오를 도민이 호들갑스럽게 꾹꾹 찔렀다.


“희정이 왔다, 희정이 왔어.”


“그럼 안 오길 바랐냐. 들리겠다, 목소리 좀 낮춰.”


가방에서 논술 교재를 꺼내는 선오의 팔을 잡아끌며 도민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전화해도 안 받는다며, 희정이 오늘 오는 거 알았어?”


“네 여친이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으셔.”


“내 절친이 죽고 못 사는 여자니까 그러지. 그럼 내가 너한테 아무 관심도 없으면 좋겠냐?”


“응.”


도민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화장실 갈 때하고 올 때가 다르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네. 언제는 희정이 꼬시는 거 도와달라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황급히 손을 뻗어 도민의 입을 막으며 선오가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추라니까.”


도민이 입술 사이로 혀를 삐쭉 내밀며 입을 막고 있는 선오의 손을 핥았다.


“아이 더러워, 너 진짜.”


“난 찝찌름한 게 좋은데.”


잠시 후, 강의실 안은 수강생들로 들어찼다.


강의를 들으면서, 모의 논술 답안지를 쓰면서 선오는 자주 희정을 쳐다봤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에 희정은 논술 시험을 쳤다. 특히 일요일에 논술 시험을 본 학교는 희정이 가고 싶어 하는 E 대학이었다.


수능 시험을 마치고 가채점한 점수가 E 대학에 합격하기에는 모자란 점수라서 정시에는 지원하기 힘들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논술 시험을 잘 보아야 한다고 했었다.


일요일 저녁이 되었는데도 희정에게서 아무 연락이 안 왔다.


선오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희정에게 전화를 했다.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배터리가 없는 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밤늦게 또 전화를 했다. 여전히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다음날, 희정은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논술 시험을 망친 것이다.



논술 수업을 마치고 학원 문을 나서자마자 도민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학원 문을 들어섰을 때는 화창한 오후였는데, 어느새 인적이 드문 밤이 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도민이 말했다.


“별이라고 셀 게 없네. 하늘에 뭔 별이 이렇게 없냐. 저렇게 제자리에서 반짝이는 건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며?”


학원 안을 들여다보던 선오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오야, 오늘은 나 먼저 갈게. 희정이 나오면 꼭 집에 데려다주고 가라. 짜식아, 위로랍시고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가 마음이 상했을 때는 일단 그냥 두어야 한다더라. 나, 간다. 내일 보자.”


도민은 점퍼 깃을 세우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다.


희정은 언제나처럼 느지막이 나왔다. 학원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선오를 힐끔 쳐다보고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지나쳐 걸어갔다.


예쁜 콧날만큼 당당하기만 하던 희정의 어깨는 처져있었고, 사뿐사뿐 걷던 걸음에도 맥이 빠져있었다. 그 모습에 뒤따르는 선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란히 걷고 있는 선오에게 희정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희정은 먼 곳만 바라보았다.


버스에 빈자리가 많았지만, 선오는 희정이 앉은 자리 옆에 섰다.


희정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에 묵직한 돌이 하나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 돌이 점점 커져 숨구멍을 막았다. 선오는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돌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희정의 돌보다는 작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방을 벗어 희정의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희정은 그저 창밖만 바라보았다.


선오는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꽂았다. 이어폰 한쪽을 자신의 귀에 꽂고, 한쪽을 희정의 귀에 꽂았다.


비트 있는 전주에 이어 허스키한 남자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희정이 좋아하는 가수다. 어둠에 덮인 창밖 정경이 노래 선율처럼 흘러갔다.


노래는 간주를 지나 클라이맥스로 이어졌다. 눈길 돌리는 것을 잊어버린 듯 희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류장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음이 희정이 내리는 버스 정류장이다. 여전히 희정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버스가 섰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희정과 선오는 내리지 않았다.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했다. 그때 희정의 손이 눈가로 갔다. 희정의 손등에서 별을 닮은 것이 반짝였다. 희정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선오의 눈도 물기에 젖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행복한 글 읽기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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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전쟁 같은 날 (1) 23.05.11 20 0 9쪽
17 17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3) 23.05.10 18 0 12쪽
16 16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2) 23.05.09 19 0 8쪽
15 15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1) 23.05.08 24 0 8쪽
14 14화. SKY 그게 뭐라고 (2) 23.05.06 24 0 10쪽
13 13화. SKY 그게 뭐라고 (1) 23.05.05 24 0 9쪽
12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23.05.03 27 0 16쪽
11 11화. 기념이 될 성적표 (1) 23.05.02 25 0 14쪽
10 10화. 입 없는 얼굴 23.05.01 24 0 13쪽
9 9화. 금쪽같은 내 자식 (2) 23.04.30 27 1 19쪽
8 8화. 금쪽같은 내 자식 (1) 23.04.29 30 1 21쪽
7 7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다 23.04.28 30 1 20쪽
6 6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2) 23.04.27 34 1 16쪽
5 5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1) 23.04.26 3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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