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703
추천수 :
10
글자수 :
128,593

작성
23.04.28 10:00
조회
30
추천
1
글자
20쪽

7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다

DUMMY

여름의 뜨거운 기세는 한풀 꺾였다. 그래도 아직 창문 밖 세상은 새하얀 태양빛에 지쳐 보였다.


3학년 1반 담임인 박준우는 교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미닫이문이 낼 수 있는 제법 큰소리가 났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다.


일순간 멈췄던 교실의 소란이 큰소리를 낸 주인공이 담임이라는 걸 확인하고 난 다음 다시 시작되었다.


자신의 등장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시큰둥하기만 한 학급 아이들을 보고 준우는 맥이 빠졌다.


‘그래, 길지 않은 여름방학이라고 해도 며칠 만에 만났으니 서로가 반갑고 궁금한 것이 많아서 저렇게 시끄러운 거겠지’, 하고 칠판으로 다가갔다.


‘개학식 9시. 강당으로 가라. 앞뒤 번호 확인해서 안 온 친구가 있으면 담임에게 말해라.’


큰글씨로 쓴다고 해서 아이들이 잘 따르는 것도 아닌데, 지시사항을 적을 때는 평소보다 칠판 글씨가 커졌다.


“선생님, 그럼 매점 갔다 가도 돼요?”


영국의 축구선수 베컴을 흉내 내서 앞머리를 세운다는 성식이가 말했다. 바싹 마르고 키만 훤칠하게 커서 식탐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받은 용돈의 대부분을 학교 매점에 갖다주는 녀석답다.


“가도 돼. 근데 매점에 갔다가 먹는데 정신 팔려서 개학식에 늦게 들어오면 오늘 청소 각오해라.”


준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식을 비롯해서 아이들 몇이 뒷문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강당 안은 에어컨이 돌아가는데도 후텁지근했다. 훈화하는 교장 선생님의 벗겨진 이마가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조는 아이들이 있고, 몇몇은 아예 앞자리 등받이에 이마를 대고 잠에 빠졌다. 어제만 해도 잠자리에 있었거나 잠에서 깼어도 뒹굴뒹굴했을 시간이니 저러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고 준우는 생각했다.


두리번거리는 시선에 2반 담임인 오동석 선생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 선생도 눈을 감고 있었다. 준우 역시 연이어 하품이 나왔다.




4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준우는 담임을 맡은 1반 수업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출석부를 확인한 준우가 놀라서 말했다.


“뭐야, 지금 4교시인데, 승현이 아직 안 왔어?”


출석부에는 승현이 3교시까지 수업에 빠진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제가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핸드폰이 계속 꺼져 있던데요.”


승현과 단짝인 희성이 말했다.


승현은 아침에 가장 일찍 등교하는 편이어서 한 달에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맡아서 잠겨있는 교실 문을 열었다. 이동수업 시에도 가장 먼저 가서 앉아있는 부지런한 아이다.


그런 승현이 연락 없이 4교시가 되도록 오지 않고 연락도 안 된다고 하니 아이들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담겼다.


준우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승현의 핸드폰은 희성이 말한대로 꺼져 있었다. 준우는 주소록에서 승현이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한참 만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승현이가 어제부터 아프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영 못 일어나더라고요. 깜빡 잊고 전화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승현이 어머니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 준우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가 되자 화창하던 하늘이 갑작스레 어두워지더니 한바탕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종례를 마친 후에도 빗발이 사그라지지 않아 출입문마다 아이들로 북새통이었다. 준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새삼 2학기 개학을 실감했다.




그제, 어제, 이틀 내내 줄기차게 내린 비로 대지는 짙고 교정은 한결 싱그러워졌다.


파란 인조 잔디 운동장에는 공을 차고 뛰는 아이들로 북적댔다. 방과 후 시간이 되어서는 쏟아져 나온 아이들로 운동장, 농구장 할 거 없이 온통 웃음이 피었고, 말풍선이 떠다녔다.


교무실 창가에 서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준우에게 희성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승현이 많이 아프대요?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오는 건 몰라도 핸드폰이 계속 꺼져 있는 게 좀 이상해서요.”


준우는 승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승현이 어머니가, 승현이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한다고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성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대하고 보니 불쑥 의구심이 들었다. 승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승현의 집을 찾아가 보겠다고 주소를 알려달라는 희성을, 준우는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자는 말로 돌려보냈다. 희성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교무실을 나갔다.


준우는 하루 종일 자질구레한 일 처리로 바빴다. 학기말에는 성적 마감, 생활기록부 적성 등 중요한 일들로 바쁘고 신경이 날카롭지만, 학기초에는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서류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는 일로 하루 종일 발을 동동거리다 보면 금방 퇴근 시간이 된다.


또 방학 동안 목소리를 쓸 일이 없다가 먼지 많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 보면 며칠 지나지 않아 목에서 신호가 온다. 선생님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목감기에 걸렸다느니, 목이 쉬었다느니 한마디씩 했다.


그 신호가 준우에게도 왔다. 오전에 목이 따끔거린다 싶더니 오후에는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준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준우는 지난번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딸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었을 아내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목은 심하게 부었고, 오슬오슬한 게 몸살기마저 돌았다. 준우가 덮은 이불 끝을 잡고 놀아달라고 칭얼대는 딸아이를 안아 들고 아내가 거실로 나갔다.


준우는 잠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때,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잠깐 망설이다가 준우는 핸드폰을 집어 액정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승현이었다.


“어, 승현아.”


준우는 잠결이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승현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어머니한테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구나.”


“······”


“왜, 아직도 많이 아프니? 어머니 말로는 감기몸살이라고 하던데, 심해진 거야?”


“······”


준우는 자신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승현이 이상했다. 잠이 달아났다.


“선생님께는 거짓말하지 않을래요. 선생님, 사실은 저 아프지 않아요.”


승현은 소리를 삼키듯이 작게 말했다. 준우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그게 무슨 소리니? 근데 어머니는 왜 네가 아프다고 했지, 학교는 왜 안 나오고?”


“실은 저 집 나왔어요.”


준우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반 아이들 가운데 가장 반듯한 승현이 가출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왜, 무슨 일 있니?”


“······”


“그럼 그동안은 어디 있었는데, 지금 어디야?”


두근거리는 마음에 준우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승현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준우는 기다렸다.


“저 지금 학교예요.”


“학교라고? 지금 학교에 있다고? 학교 어디?”


“교실이요.”


준우는 승현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갈 데가 없어서요.”


“그럼 계속 교실에 있었던 거니?”


“예,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교실에서 잤어요.”


준우는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해지며 텅 빈 느낌이었다. 승현이 그 깜깜하고 적막한 공간에서 혼자 감당했을 고립감을 생각하니 몸이 가누어지지 않았다. 준우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승현아,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해 줄 수 있겠니?”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저 가출했다는 말 듣고 걱정할 것 같아서 전화한 거예요.”


“내가 학교로 갈까?”


“아니에요, 오지 마세요. 선생님께 와 달라고 전화 드린 거 아니에요. 며칠 만 더 있다가 들어갈게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여기 있다는 말 아무에게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 알았다. 매일 이 시간에 전화 줄 수 있겠니?”


“예, 그럴게요.”


준우는 연결이 끊어진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침대 곁을 서성이던 준우는 옷장을 열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 방에서 나오는 준우를 보고 아내가 깜짝 놀랐다.


“아프다더니 이 밤에 어디 나가요?”


“승현이란 애가 가출을 했는데 글쎄 며칠을 교실에서 잤다는군. 그놈은 오지 말라는데 나한테 전화를 한 게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모르면 몰랐지, 그놈이 교실에 있는 줄 알면서 어떻게 모른 척하겠어.”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근심이 담겼다.




늦은 밤에 나타난 준우를 보고 경비 아저씨가 허둥대며 다가왔다. 잊고 간 게 있어서 왔다고 말하는 준우에게 경비 아저씨는 플래시를 건넸다.


새까만 어둠에 싸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며 교실을 올려다봤다. 유리창은 모두 검정 물감을 칠해 놓은 것 같았다.


건물로 들어서서는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저 멀리 복도 끝에 있는 흐릿한 비상등 불빛이 으스스했다.


1층 복도 중간,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서 준우는 전등 스위치를 찾아 계단 불을 켰다.

승현이 불빛에 놀라 모습을 감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 계단을 지나고 3층 계단을 올라 전등 스위치를 더듬었다. 불 꺼진 3층 복도의 정경은 호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스산한 기운에 뒷덜미가 섬뜩섬뜩했다.


복도 끝에 있는 3학년 1반 교실까지의 거리가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 마침내 교실 문 앞에 서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준우는 교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유리창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에 교실 안은 어슴푸레했다.


정연하게 놓여있는 책상들을 쳐다보던 준우의 시선이 멈췄다. 두 번째 줄 중간에 있는 책상 위에 무언가 놓여있었다. 그뿐이었다. 어디에도 승현의 모습은 없었다.


준우는 문 옆의 스위치를 켰다. 밝은 조명이 눈을 찔렀다. 익숙한 교실 정경이 새삼 반갑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 있는 것은 가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방은 승현의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가방을 보자 준우는 승현이 이곳에서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져 목이 멨다.


5분쯤 지났을까. 뒷문이 열리며 승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승현아.”


준우를 확인하고 눈이 동그래진 승현이 머뭇머뭇 다가왔다.


“저녁은 먹었니?”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었어요.”


준우가 손을 뻗어 건너편 의자를 가리키자 승현이 와서 앉았다.


“무섭지 않았어? 선생님은 교실까지 오는데 으스스하던데.”


승현은 아무 말 없이 손만 만지작거렸다.


“네가 여기 있는 걸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더구나. 놀랐다면 미안해.”


“······”


“나한테 전화 준 거 고마워. 참, 희성이가 핸드폰 꺼져 있다고 걱정 많이 했는데.”


“그냥 꺼놓고 있었어요. 희성이가 남긴 메시지는 확인했어요.”


“어머니 아버지께는 연락드렸니?”


“기다리시지도 않으실 텐데요, 뭐.”


“기다리시지 않다니, 어머니 목소리 들으니까 기운이 하나도 없으시던데. 꼭 다신 집에 안 들어갈 사람처럼 말을 하는구나.”


승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들어가야죠, 안 들어갈 방법이 없잖아요.”


준우는 이런 승현의 모습이 낯설었다.


“내가 아는 승현이가 맞나 싶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겠니? 내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마음 답답한 일은 털어놓기만 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거든.”


준우를 쳐다보는 승현의 눈이 흔들렸다. 깍지를 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대로 승현은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후, 굳어버린 것 같던 깍짓손을 풀며 승현이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셨어요.”


의외의 말에 준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당에서 추천을 받으셨대요. 엄마하고 저는 말렸는데 아버지는 뭣도 모르면서 말린다고 화를 내셨어요. 솔직히 ○○당이 유명하지는 않잖아요. 아버지는 누구 누구가 있는 당이라서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는데 제가 물어본 친구들 중에 ○○당을 아는 애들은 거의 없었어요. 선거 유세 한다고 일도 팽개치고 엄마에게는 돈 걱정만 한다고 큰소리 치시는데 정말 우리 아버지 같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의 감정이 북받치는지 승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 표는 정말 조금 나왔어요. 표가 너무 적게 나와 돈도 많이 날렸다고 걱정하시는 엄마한테 아버지는 심한 말까지 하셨어요. 근데 아버지는 다음에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시겠대요.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된대요. 최선을 다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무조건 될 거래요. 요즘 엄마하고 아빠는 말 한마디 안 하세요. 저하고 동생은 방에만 처박혀 있어요.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겠어서 집을 나왔어요.”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준우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도 집을 나온 행동은 지나쳤다고 꾸짖으려다 그만두었다. 집안 상황에 상처를 받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준우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승현의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바랐다.


“넌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게 싫으니?”


“예.”


“왜?”


“어차피 안 될 거잖아요.”


승현이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준우는 움찔했다.


“국회의원이라는 게 쉽게 되는 자리는 아니지만 네가 너무 딱 잘라서 말하니까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최선을 다한다고 모든 걸 이룰 수는 없다고.”


“그래,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모든 걸 이룰 수는 없는 거지. 정치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많지 않지만 ○○당으로 출마해서 서울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런데 승현아, 아버지가 예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니?”


“예, 구의원에 나가서 당선되셨어요.”


“그럼 그때도 어머니나 네가 반대를 했니?”


“저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어머니는 많이 말리셨대요.”


“그럼 아버지가 구의원으로 일하시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니?”


“별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승현의 말투가 점점 퉁명스러워졌다.


“난 조금 이해가 안 되는구나. 아버지가 구의원인 거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거에는 왜 가출까지 했을까?”


“솔직히 말해서 국회의원 선거에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나가는 게 아니잖아요.”


준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국회의원에 나가려면 일류 대학을 나오고 유학도 갔다 오고 지위도 높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돈이잖아요, 돈이 많아야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만 되는 게 국회의원이잖아요. 근데 아버지는 일류 대학도 안 나오고 무슨 무슨 장도 아니고 돈도 많지 않잖아요. 그러면서 노력만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창피해요. 불쌍하기도 하구요. 또 그렇게 가능성 하나 없는 일에 돈을 쓰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정치하다가 망한 사람도 많대요. 아버지는 자식들이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고 대학 가게 해주는 게 의무잖아요.”


준우는 놀랐다. 승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회 경험이 없는 19살 청소년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은가.


입에서 맴도는 말이 교사가 해줄 수 있는 판에 박힌 말이라는 생각에 준우는 망설였다. 하지만 그 뻔한 말이 자신의 가치관이기에 말을 꺼냈다.


“그런데 승현아, 혹시 국회의원이 되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버지의 꿈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니?”


“이루어질 수 없는 거니까 꿈은 아니죠.”


“네 말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건 꿈이 될 수 없는 거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네.”


승현이 준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물론 네 말이 맞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게 꿈이지. 근데 그 가능성이 있다 없다는 건 어떻게 따질 수 있지? 퍼센트로 표시할 수는 없을 테고, 또 표시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걸 누가 할 수 있겠니. 그렇게 본다면 꿈은 가능성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열정이나 절실함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닐까? 아까도 말했지만 ○○당으로 출마해서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 그런데 그걸 아버지라고 모르실까. 마찬가지로 정치를 하다가 돈이 다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아버지도 분명히 아실 걸. 나는 그럴 거라고 확신하는데.”


말을 하다 보니 흥분이 되어서 선생티를 내며 훈계만 한 것 같아 준우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승현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승현아, 나는 네가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의사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나오는 건 의사 표현이라기 보다는 외면하고 피하는 거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승현은 한일자로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승현을 보면서 준우는 자신의 진심이 통하기를 바랐다. 자기로 인해서 승현의 마음이 더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도 났다. 체격은 크지만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승현의 두 어깨가 위태롭게 보였다.


그때, 드르륵 문이 열렸다. 준우와 승현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교실로 한걸음 들어섰다.


“오셨어요.”


준우가 일어서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승현은 놀란 표정으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자식을 맡겨 놓고 미리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안 좋은 일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승현이 아버지는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준우는 의자 하나를 끌어다 놓았다.


“승현이 아버님, 이리 와 앉으세요.”


“아닙니다.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선생님도 댁에 가서 쉬셔야죠. 실은 복도에서 승현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승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승현이를 너무 어리게만 생각했나 봅니다. 집에 가서 승현이하고 맘속에 있는 얘기를 나눠 봐야겠어요. 제 자식 일에 신경 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승현이 아버지는 준우를 지나쳐 책상 위에 놓인 가방을 들쳐 맸다.


“아버님, 그동안 걱정도 많이 하시고 화도 많이 나셨겠지만 승현이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솔직히 핸드폰도 꺼 놓고 집에 전화 한 통 안 하는 승현이한테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부모 속 끓는 거 나 몰라라 하는 놈에게 화가 왜 안 났겠어요. 그런데 아까 선생님 전화 받고, 승현이가 학교에서 잤다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고마운지. 어디 다친 데 없이 그리고 나쁜 일 안 생긴 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애 엄마도 오겠다는 걸 간신히 눌러 앉히고 혼자서 학교로 오는데 화가 뭡니까 너무 감사해서 언제 했는지도 까마득한 기도를 다 했습니다. 저희 걱정은 마시고 선생님은 얼른 들어가서 좀 쉬세요.”


승현이 아버지는 준우의 등을 연신 떠밀었다. 준우의 눈에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승현의 눈빛이 들어왔다. 그 눈빛은 아까와는 다르게 편안하고 따스했다.


준우는 더 이상 자기가 할 역할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준우가 먼저 가야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승현이 아버지의 성화에 준우가 먼저 차에 올랐다. 나이로 치면 한참 연장자인 승현이 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려니 영 마음이 불편했다.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움직이며 차창 밖으로 목례를 하는데,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말

행복한 글 읽기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슬픈 고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23.05.18 32 0 -
23 23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3) 23.05.19 13 0 10쪽
22 22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2) 23.05.18 14 0 10쪽
21 21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1) 23.05.16 19 0 7쪽
20 20화. 전쟁 같은 날 (3) 23.05.15 18 0 13쪽
19 19화. 전쟁 같은 날 (2) 23.05.12 25 0 8쪽
18 18화. 전쟁 같은 날 (1) 23.05.11 20 0 9쪽
17 17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3) 23.05.10 18 0 12쪽
16 16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2) 23.05.09 20 0 8쪽
15 15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1) 23.05.08 24 0 8쪽
14 14화. SKY 그게 뭐라고 (2) 23.05.06 25 0 10쪽
13 13화. SKY 그게 뭐라고 (1) 23.05.05 24 0 9쪽
12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23.05.03 29 0 16쪽
11 11화. 기념이 될 성적표 (1) 23.05.02 25 0 14쪽
10 10화. 입 없는 얼굴 23.05.01 24 0 13쪽
9 9화. 금쪽같은 내 자식 (2) 23.04.30 28 1 19쪽
8 8화. 금쪽같은 내 자식 (1) 23.04.29 32 1 21쪽
» 7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다 23.04.28 31 1 20쪽
6 6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2) 23.04.27 34 1 16쪽
5 5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1) 23.04.26 39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