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슬픈 고삼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얌선생
작품등록일 :
2023.04.25 00:21
최근연재일 :
2023.05.19 16:47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701
추천수 :
10
글자수 :
128,593

작성
23.05.09 15:00
조회
19
추천
0
글자
8쪽

16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2)

DUMMY

1교시 국어영역 답안지부터 4교시 국어영역 답안지까지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은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떠나고 있었다.


박준우 선생은 최 선생과 계단에 서서 어깨가 축 처져 걸어가는 수험생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최 선생, 나는 저 때 정말 허탈하더라고. 시험을 잘 봤는지 못 봤는지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이고 그냥 이 하루를 위해서 그 많은 날들을 고생했나 싶어 원통하기만 하더라고.”


“그건 아마 박 선생이 시험을 그런대로 봐서 그랬을걸. 난 교문에서 어머니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데 울컥하던데. 그때 눈물 참느라고 혼났지. 1년을 더하겠구나 하는 예감에 얼마나 암담하던지. 아니나 다를까 지원한 대학에 다 떨어지고 결국 재수했잖아.”


시간이 흐르고 북적이던 시험장 앞도 한산해졌다.


준우는 주차장을 빠져나온 최 선생의 차에 올랐다.


모처럼 이 선생과 함께 셋이서 뭉치기로 했다. 이 선생이 감독 간 시험장은 교통편이 불편해서 좀 늦을 거라고 했었다.


도로에는 수험생을 태우러 온 차량으로 가득했고, 인도 역시 수험생과 가족들로 북적였다.


차는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했다.


준우는 핸드폰을 꺼내 반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우리 3학년 1반 친구들, 하루 종일 시험 보느라 고생 많이 했다. 저녁 맛있게 먹고 오늘은 맘 편히 쉬어라. 내일 학교에서 가채점할 때까지는 시험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대학 입시라는 마라톤을 완주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최 선생 학급 아이들에게 보낼 메시지도 최 선생이 불러주는 대로 입력해서 보냈다.


잠시 후, 아이들로부터 오는 답 메시지로 핸드폰 두 개가 계속해서 울렸다.


예상대로 준우와 최 선생이 만나기로 한 음식점에 먼저 도착했다.


이 선생이 언제쯤 올지 물어보려고 핸드폰을 드는데, 전화가 들어왔다. 작년에 졸업한 임태수였다.


준우는 태수가 시험 감독 하느라 고생한 자신을 위로하려고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 태수야.”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지금 전화 받기 괜찮으세요?”


반갑게 전화를 받은 자신과는 달리 태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어 준우는 의아했다.


“괜찮아. 근데 웬일이니?”


“선생님 혹시 민기 연락 받으셨어요?”


“민기? 아니, 아무 연락 못 받았는데.”


태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않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민기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불안한 예감에 준우는 숨이 막혔다.


“민기가 죽었대요.”


사냥총에 맞은 새가 곤두박질치듯 심장이 뚝 떨어졌다.


“오늘 아침에 깨우러 들어갔더니······ 죽어있었대요.”


눈앞에 있는 사물들의 윤곽이 뭉개지며 하나로 합쳐졌다. 심장의 고동에 몸 전체가 흔들렸다. 목이 조여들어 준우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K대 병원에 있대요. 친구들에게는 제가 연락했어요.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선생님께도 알려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준우는 현기증에 휘청했다.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나동그라졌다.


덜덜덜 몸을 떠는 준우를 최 선생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최 선생이 손을 뻗어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나 최상호 선생이야 ··· 그래 태수구나.”


최 선생의 낯빛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알았다. 이따 박 선생하고 같이 병원으로 가마. 그래 병원에서 보자.”


준우와 최 선생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최 선생은 핸드폰을 준우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야.”


낮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준우가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해.”


“재수한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어.”


준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 상황에서는 박 선생이 아니라 어떤 담임이라도 재수를 허락했어. 그리고 재수라는 게 담임이 허락한다고 하고 말린다고 안 하는 건 아니잖아. 박 선생이 잘못한 거 없어, 자책하지 마.”


최 선생의 말을 건성으로 받으며 준우는 벗어둔 웃옷을 챙겼다.


“나 먼저 일어날게. 이 선생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 줘.”


엉거주춤 일어서는 준우를 따라 최 선생도 일어섰다.


“기다렸다가 이 선생 오면 같이 병원에 가자고. 지금 박 선생 얼굴 보니까 혼자 보내서는 안 될 것 같네. 이 선생 금방 올 거니까 잠깐 앉았다가 마음 가라앉히고 같이 가자.”


만류하는 최 선생의 손길에 준우는 무릎을 꺾고 힘없이 주저앉았다.



✭✭✭



작년 겨울, 그날은 소복하게 눈이 내렸다.


3학년 교무실은 시끌벅적했다. 교실에서 수능 성적표를 나눠주고 나서, 담임 선생마다 학생들을 몇 명씩 불러온 탓이었다.


불려온 학생들은 대부분 가채점 점수와 실제 점수의 차가 큰 아이들이었다. 가채점은 수능시험 다음날 했었다.


수능 시험 때 답안지에 표기한 답을 적어온 아이들은 비교적 정확한 채점을 할 수 있었지만, 시험 시간에 쫓겨 답을 적어오지 못한 아이들은 대강 채점을 했었다. 그런데 그 가채점 점수에 비해 실제 점수가 뚝 떨어진 아이들의 낯빛은 어둡게 굳어 있었다.


준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손에 들고 있는 성적표를 노려보았다.


준우 앞에는 민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피부가 하얀 민기의 얼굴이 백반처럼 창백했다.


“민기야, 가채점해서 낸 점수도 너무 낮아서 걱정했는데 이건 더 낮잖아, 너 정확히 채점해서 낸 거야?”


준우는 민기의 심정을 헤아려보려고 애썼지만, 허탈감이 핀잔으로 바뀌어 나왔다.


민기의 고개가 축 처진 어깨보다 더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가 어려웠다고 난리인데. 영어하고 수학은 평소보다 잘 본 놈이 그렇게 잘하던 국어 점수가······ 너무 황당해서 내가 말이 안 나올 정도니 네 심정이야 오죽하겠니. 이거 밀려 쓴 거야? 마킹을 잘못한 거니?”


미동조차 없이 굳어 있던 민기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하지만 밀려 쓰거나 마킹을 잘못한 거 같지는 않아요. 1교시 국어 시험을 보는데 너무 긴장이 됐어요. 지문을 읽어도 내용이 이해가 안 되고, 답이 이건지 저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당황이 돼서 그런지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손에 자꾸 땀도 나고 그냥 정신없이 풀었던 거 같아요. 10분 남았다고 방송이 나왔을 때 못 푼 지문이 네 개나 있었어요. 평소에 모의고사 볼 때는 10분 정도 남으면 문제 다 풀고 답안지에 마킹했는데. 지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허둥지둥 마킹을 했어요. 제가 뭘 답으로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가채점 점수는 대강 적어서 냈던 거예요.”


준우는 수능 성적표를 책상 위에 툭 던져 놓고는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등을 기댔다.


민기가 지난 일 년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잘 알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실망감과 허탈감에 민기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위로의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참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던 준우가 말을 꺼냈다.


“민기야, 받아들이자 자꾸 돌이켜 봤자 뭐 하겠니. 분명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경제학과라는 방향은 정해졌으니까, 이 점수에 맞춰 대학을 정해보자. 기운 내고, 네가 기운을 내야 부모님이 덜 힘드시단다.”


민기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교무실을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슬픈 고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23.05.18 32 0 -
23 23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3) 23.05.19 13 0 10쪽
22 22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2) 23.05.18 14 0 10쪽
21 21화. 현명하지 못한 선택 (1) 23.05.16 19 0 7쪽
20 20화. 전쟁 같은 날 (3) 23.05.15 18 0 13쪽
19 19화. 전쟁 같은 날 (2) 23.05.12 25 0 8쪽
18 18화. 전쟁 같은 날 (1) 23.05.11 20 0 9쪽
17 17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3) 23.05.10 18 0 12쪽
» 16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2) 23.05.09 20 0 8쪽
15 15화. 번지점프대에 서 있다 (1) 23.05.08 24 0 8쪽
14 14화. SKY 그게 뭐라고 (2) 23.05.06 25 0 10쪽
13 13화. SKY 그게 뭐라고 (1) 23.05.05 24 0 9쪽
12 12화. 기념이 될 성적표 (2) 23.05.03 28 0 16쪽
11 11화. 기념이 될 성적표 (1) 23.05.02 25 0 14쪽
10 10화. 입 없는 얼굴 23.05.01 24 0 13쪽
9 9화. 금쪽같은 내 자식 (2) 23.04.30 28 1 19쪽
8 8화. 금쪽같은 내 자식 (1) 23.04.29 32 1 21쪽
7 7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이다 23.04.28 30 1 20쪽
6 6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2) 23.04.27 34 1 16쪽
5 5화. 수채화로 그린 사랑(1) 23.04.26 39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